Dohwa Manri RAW novel - Chapter 316
사공명은 미소를 지으며 곽염에게 말했다.
“한 가지 조건만 들어준다면 조정으로 들어가겠다.”
“그게 무엇이냐?”
“옥좌를 내게 다오.”
“뭐, 뭣이라고!…”
“그걸 준다면 기꺼이 조정으로 들어가마. 하하하!…..”
곽염은 분노에 치를 떨었다. 자기를 놀리고 참람된 말을 거침없이 해대는 마도의 우두머리를 절대 용서할 수 없었다.
그는 화극을 빙글빙글 돌리며 말을 몰아 사공명에게 달려갔다,
“내 기필코 네놈 목을 베리라!”
사공명은 코웃음을 쳤다.
“여기까지 올 수나 있겠느냐?”
그리고는 허리춤에 차고 있던 작은 접선을 하나 꺼냈다.
그것을 한 차례 부친 후 얼굴을 가렸는데, 순간 곽염의 말이 소리 내어 울다가 달리던 기세 그대로 고꾸라졌다.
곽염은 황급히 안장에서 뛰어올랐고, 화극으로 땅을 짚어 공중에서 두 바퀴 회전한 이후 날렵하게 착지했다.
모습만 놓고 보자면 올림픽 체조 도마 종목 금메달감이지만 음종의 수법에 꼼짝없이 당했다는 낭패감으로 곽염의 얼굴 근육들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사공명은 부채를 살랑살랑 흔들며 말했다.
“왜 거기 멈춰 서 있나? 계속 덤비지 않고.”
“으으…..”
곽염은 이를 악물었다. 그러나 발을 움직이지는 못했다.
동창 부하들과 수많은 관군이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당장 달려가서 사공명을 찔러 죽여야 하겠지만, 귀에서 피를 흘리며 죽어버린 자신의 말을 보니 온몸이 얼어붙기라도 한 것처럼 꼼짝할 수 없었다.
별다른 움직임 없이도 말 한 마리를 즉사시킨 음종의 수법에 겁을 먹은 것이다.
곽염뿐만 아니라 관군 진영 전부가 동일한 공포를 느꼈다.
기수 역시 마찬가지.
‘저놈은 루주들과는 격이 다르다. 화류의 호신강기가 과연 막아줄 수 있을까?’
두려움 때문에 심장박동은 빨라지고, 호흡은 가빠졌다.
그리고 머리가 화끈거리면서 온몸의 솜털이 곤두섰다.
그때 곽염이 고개를 돌려 기수 쪽을 봤다.
기수 입장에선 달갑지 않은 상황이었다.
겨울비 맞으며 돌아다니는 유기견의 눈빛이랄까.
제발 도와달라고 애원하는 기색이 그의 두 눈에 가득했다.
‘내가 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그것이었다.
현현각주는 사도가 아니었다. 그가 가마 밖으로 나온 뒤 기수는 가장 먼저 몸의 반응부터 확인했다.
그러나 사공명에게서는 어떠한 느낌도 전해져오지 않았다.
‘사도가 아니라면 내가 왜 목숨을 걸어야 하나.’
그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사공명이 곽염에게 말했다.
“지금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는다면 목숨만은 살려주마.”
“무, 무슨 헛소리냐! 절대 그럴 수 없다!”
“후후후….. 싫다면 죽을 수밖에. 너뿐만 아니라 네 뒤에 서있는 놈들도 전부.”
곽염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관군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공명의 위협은 단순히 말로만 끝날 게 아니라는 사실을 모두 느끼고 있었다.
그들의 공포를 보면서, 기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뭐야! 씨발…. 내가 쫄다니…’
공포감에 억눌리는 것은 몹시 불쾌한 경험이었다.
사공명이 사도가 아니기 때문에 목숨 걸 이유는 없다고 해도, 관군 전체의 생사가 결정되는 상황에 힘을 가진 자신이 모른 척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현대에 살던 때는 골목에 모여 담배 피는 고딩들이 붙잡고 술 좀 사다 달라고 할 때 저항하지 못한다 해도 큰 흠이 아니라고 해도, 이곳은 달랐다.
무엇보다 자신은 신이 인정한 무공천재가 아닌가.
관군을 위해, 무림맹을 위해, 비룡검문을 위해, 그리고 다른 무엇보다 자신의 자존심을 위해 이렇게 뒤로 물러서 있을 수만은 없었다.
기수는 깊은 심호흡으로 마음을 다잡은 후 앞으로 나섰다.
“나하고 얘기하는 게 먼저 아닐까?”
사공명은 곽염에게서 기수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일부러 느리게 고개를 돌리는 모습이 꽤 거만해 보였다.
“너는 무릎을 꿇는다 해도 살려줄 수 없다. 가장 끔찍한 고통에 최대한 오랫동안 시달리다가 죽도록 해주마.”
“난 어진 성격이라 그런 짓은 못 해. 즉사하게 만들어주지.”
“후후후… 그렇다면 네놈 솜씨부터 볼까?”
사공명은 허리춤에서 또 하나의 접선을 꺼내어 펼쳤다.
처음 꺼낸 것의 두 배는 됨직한 길이라 상반신 전체를 가리고도 남았다.
기수는 양손에 단검을 든 채 상대를 향해 뚜벅뚜벅 다가갔다.
모두의 시선이 두 사람에게 쏠리자 곽염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슬그머니 뒤로 빠졌다. 그의 입장에선 구사일생이라고 할 수 있었다.
기수가 다가가는 것은 상대에게 단검을 막거나 피할 여유를 주지 않기 위해서였다.
사공명은 그 의도를 알고 있을 텐데도 의외로 간격이 좁혀지는 걸 보고만 있었다.
‘부채로 막을 생각인가?’
기수는 일단 사공명의 능력을 알고 싶었다.
그래서 오른손의 단검만 팔 힘으로 던져보았다.
“흥!…”
사공명은 단검이 얼굴 가까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작은 접선을 휘저어 간단히 쳐냈다. 상당히 노련하고 절제된 움직임이었다.
“뭔가 다른 재주는 없나?”
기수는 자유로워진 오른손으로 장검을 뽑아 들었다.
“처음부터 다 보여주면 시시하잖아?”
“나도 간단한 것부터 시작해볼까?”
사공명이 접선을 한 차례 흔들었다.
순간, 기수는 눈을 뜨기 어렵게 만드는 돌풍이 몸 전체를 밀어내는 것은 느끼고 중심을 잡기 위해 천근추의 수법을 써야 했다.
사공명은 소리 내어 웃었다.
“하하하!…내공이 제법 깊구나. 그럼 이건 어떠냐?”
접선이 다시 움직이자 갑자기 숨을 쉬기 어려워졌다.
들숨과 날숨이 모두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갑갑한 느낌.
기수는 호신강기를 한층 더 끌어올렸다.
그러자 그의 몸 주변으로 확! 하는 소리와 함께 불꽃이 피어올랐다.
구경꾼들 모두 경악성을 터뜨렸고, 대결 당사자인 사공명도 놀란 표정을 지었다.
기수는 왼손에 들고 있던 단검을 파천강기에 실어 날리는 동시에 선풍비를 펼쳐 사공명을 향해 달려들었다.
역시 현현각 놈들과 싸울 때는 거리와 여유를 주면 안 된다는 게 그의 결론이었다.
단검에 이어 접근전을 펼침으로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도록 몰아붙이는 게 최선의 방법이라는 생각이었다.
단검의 날아오는 기세가 처음과는 확연히 다르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사공명은 자세를 낮추며 부채를 비스듬히 세워 튕겨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격이 남아 자세가 약간 흔들렸다.
그 자세를 바로잡기도 전에 기수의 장검이 파고들어왔다.
단검과 도착 시간이 거의 차이 나지 않는 가공할 신법이었다.
‘이겼다!’
기수는 공격의 성공을 직감했다.
그러나 그의 검극은 상대의 큰 부채를 꿰뚫지 못했다.
기수는 실망하지도, 멈추지도 않았다.
2차, 3차 공격을 연달아 펼쳤고, 사공명은 계속 뒷걸음질로 물러서기에 바빴다.
관군 진영에서 거대한 함성이 터져 나왔다.
곽염도 부하들과 함께 소리를 지르며 응원했다.
그는 기수가 음종의 공격에 내성을 지녔기 때문에 이번 출정에 동행을 요청한 것이었다. 그런데 막상 그의 싸우는 모습을 보고 자기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기수는 무시무시한 고수였다.
화살 같은 신법뿐만 아니라 검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깊이와 무게, 그리고 현묘한 변화가 가득 담겨 있었다.
하수들 눈엔 그저 사공명이 뒷걸음질 치는 모습만 보이겠지만, 곽염은 기수의 검술이 얼마나 고명한지 제대로 확인할 수 있었다.
기수는 계속 우세를 유지하면서도 불안감을 느꼈다.
상대가 비록 위태위태하지만 끝까지 버텨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음공이 다가 아니었구나.’
현현각주는 루주들과 확연히 달랐다.
기본 무공도 상당한 수준까지 갖춰져 있었다.
특히 크고 작은 두 자루 접선을 번갈아 사용하는 방어초식들이 대단히 노련하고 효율적이었다.
‘승부를 내야 한다!’
기수는 내공을 한 층 더 끌어올리고 검술에도 변화를 주었다.
그러나 사공명도 계속 밀리기만 하지는 않았다.
그의 접선이 세로로 회전한다 싶은 순간, 기수는 자신의 옷자락이 베어져나가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이건 무슨 수법이지?’
분명 접선과 자신의 옷 사이에는 1미터 정도의 거리가 있었는데 마치 면도칼로 자른 것처럼 옷이 잘린 것은 섬뜩한 일이었다.
사공명은 입을 꾹 다물고 있었지만, 그의 눈빛엔 자신감이 가득했다.
기수는 직감적으로 상대방이 비장의 카드를 꺼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리하여 호신강기를 더욱 강화하며 좀 더 집중적인 공격을 퍼부었다.
특히 접선의 회전동작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검 움직임에 조금 더 신경을 썼다.
뒷걸음질 치던 사공명의 스텝이 정지 상태로 바뀌자 이번엔 사마연합 쪽에서 응원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기수는 조급함을 느꼈다.
검은 한 자루고 부채는 두 개이다 보니 공기 면도날 공격을 모두 막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옷뿐만 아니라 피부가 베어 피가 흐르는 곳이 여기저기 늘어났다.
사공명이 꼭 다물고 있던 입을 열었다.
“그 호신강기를 누구에게 배웠느냐?”
자신의 공격이 팔다리를 썽둥썽둥 잘라내는 게 아니라 옷을 찢고 피부에 상처를 남기는 정도에서 그친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 표정이었다.
기수 입장에선 합비를 만나 오행류를 배운 덕분에 현현각의 공격을 유리한 상성으로 막아낸다는 사실이 정말 다행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단순히 패배하지 않는 데서 만족할 수 있는 싸움이 아니었다.
어떻게든 승리를 해야 하는데, 두 개의 부채는 여전히 완강하게 버티면서 틈을 보이지 않았고, 바람 면도날 공격은 계속해서 횟수가 늘고 강도도 세졌다.
‘이런 식으로는 이길 수 없다.’
돌파구를 원하는 기수의 눈에 한 순간 상대 접선 움직임의 허점이 보였다.
기수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힘차게 찔러 들어갔다.
순간, 사공명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기수는 아차! 싶었지만 이미 무게중심이 앞으로 쏠린 다음이었다.
사공명의 큰 접선이 착! 소리를 내며 접히면서 기수의 장검을 잡았다.
마치 큰 조개가 황새의 부리를 잡고 놔주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기수는 자루를 비틀어 검을 뽑아내려고 했는데, 바로 그때 손바닥에 격렬한 통증이 전해져 왔다.
“크윽!…..”
마치 면도날 여러 개를 맨손으로 꽉 움켜쥔 것 같은 느낌.
바람 면도날을 공기가 아닌 접선에서 검을 거쳐 침투시킨 것이다.
바로 그 순간!
기수는 자기만 당할 수 없다고 생각했고, 위기를 오히려 기회로 이용했다.
단정홍은 검과 접선을 거쳐 상대의 손으로 흘려보낸 것이다.
“으윽!….”
사공명은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다가 갑자기 뜨거운 물건에 손을 댄 사람처럼 깜짝 놀라 자기 접선을 놓았다.
기수 역시 손바닥이 엉망이 된 상태라 검을 쥐고 있을 수 없었다.
검을 문 접선이 바닥에 떨어져 요란한 소리를 내는 동안, 기수는 단검 두 자루를 각각 뽑아들었다.
왼손은 그나마 좀 나았지만 오른손은 상태가 심각했다. 그래서 팔 힘보다 파천강기를 더 많이 운용해서 실어 날릴 수밖에 없었다.
두 자루 단검이 무서운 기세로 날아가자 사공명은 뒤로 피하면서 작은 접선으로 그것들을 쳐냈다.
큰 접선 들었던 손은 굳은 채로 있는 것을 보니 기혈 흐름을 막아놓은 듯 했다.
기수는 그 모습을 보고 좌절감을 느꼈다.
단정홍이 기대한 만큼 충분히 침투하지 못한 게 분명했다.
상대의 공격을 받고 나서 뒤늦게 반격하다 보니 부족했던 모양이었다.
장검을 잃고 양손바닥이 엉망이 된 자신과 한쪽 팔을 자유롭게 쓰지 못하는 상대.
일견 비겼다고 볼 수도 있지만, 필살기를 계속 사용하는 상대에 비해 단검의 수에 한계가 있는 자신이 조금은 더 불리한 상황이었다.
사공명은 눈에 살기를 띠었다.
“절대로 살려둘 수 없다. 네놈을 지금 이 자리에서 죽여주마!”
루주들의 복수를 위해 천천히 괴롭히겠다던 처음의 생각은 기수의 실력이 만만치 않음을 보고 싹 사라졌다.
치명적인 위협이 될 수도 있기에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생각이었다.
기수는 더욱 날카로워진 바람 면도날을 호신강기로 막으며 계속 뒤로 물러섰다.
손바닥의 통증 때문에 단검을 뽑아서 들고 있는 것조차 쉽지 않을 지경이니 후퇴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어떻게 해야 이놈을 이길 수 있을까?’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때, 금빛 광채가 번뜩인다 싶더니 파공음이 연달아 울려 퍼졌다.
곽염이 화극을 휘둘러 사공명을 공격하는 것이었다.
“네놈은 내가 상대해주겠다!”
“흥! 미친 놈!”
사공명은 곽염의 공격을 피한 후 접선을 펼쳤다.
그때, 곽염의 손이 잽싸게 움직였다.
음공에 취약한 그가 싸움에 뛰어든 것은 기수를 구해야 한다는 사명감 때문이 아니라 사공명의 기도가 기수와의 대결로 인해 약해진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에겐 유성비가 있었다.
상대가 음공을 펼치기 전에 비장의 암기를 날리면 자기에게도 승산이 있다 생각하고 모험을 건 것이었다.
사공명은 예리한 파공음과 함께 날아오는 암기에 깜짝 놀라 공세를 수세로 전환할 수밖에 없었다.
접선을 비스듬히 비틀어 튕겨내려 했는데, 유성비는 기수의 단검과 달랐다.
빠른 속도와 예리한 날로 접선의 천잠사 막을 그대로 관통했다.
“크아악!……”
사공명은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고 허공으로 피가 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