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hwa Manri RAW novel - Chapter 317
곽염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음공만 아니면 자기보다 나을 게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사공명과 양십일은 한 단계 높은 차원의 능력을 보여 그를 놀라게 했다.
그러나 유효적절한 시기에 끼어듦으로 해서 양십일이 아니 자기 손으로 적의 수괴를 잡은 것이다.
무림인끼리의 대결이었다면 흠이 잡힐 수도 있겠지만, 관리가 도적을 잡는 일이라면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는 화극을 휘두르며 쓰러진 사공명을 향해 몸을 날렸다.
완전히 명줄을 끊어놓아야만 안심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공명 근처로 가는 중에 문제가 생겼다.
뭔가 쿵! 하는 충격음이 들리는가 싶더니 갑자기 어지럼증이 느껴지면서 몸이 자꾸만 휘청거렸다.
사공명을 호위하던 악사와 징잡이들이 음공을 펼친 것이다.
곽염은 내공을 끌어올리고 정신을 집중하여 화극을 휘두르려 했지만 똑바로 서기도 힘든 상황이라 몇 발 안 남은 목표가 멀게만 느껴졌다.
게다가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사공명이 벌떡 몸을 일으킨 것이다.
“어, 어떻게…”
유성비가 그의 접선을 관통한 것은 맞지만 그 과정에 겨냥이 빗나간 게 문제였다.
요혈에 제대로 맞지 않아 치명상을 면한 것이다.
“네놈이 감히!…”
분노한 사공명의 얼굴은 이제까지와 달리 몹시 늙어 보였다.
곽염은 황급히 기수를 향해 말했다.
“어서 놈을!”
자기가 죽일 작정으로 뛰어들었지만 지금은 서있기도 힘든 상태이니 다시 양십일에게 도움을 청할 수밖에 없었다.
기수는 단검 두 자루를 차례로 사공명을 향해 날렸다.
곽염의 개입이 마음에 안 들기는 했지만 사공명을 죽여야 한다는 사실엔 변화가 없었기 때문에 주저하지 않고 손을 쓴 것이다.
사공명은 접선을 휘둘러 두 개의 단검을 모두 쳐냈지만 단정홍에 이여 유성비에 상처를 입은 뒤라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니었다.
그가 비틀거리며 밀리자 악사와 징잡이들이 득달같이 달려들며 음공을 펼쳐댔다.
기수는 또 다시 단검을 던졌다.
그러나 이번엔 사공명이 아닌 징잡이들이 징을 방패처럼 세워서 막아냈다.
보통 단검이 아닌 파천강기가 함께 실렸기 때문에 단검이 징을 뚫고 들어가 징잡이를 죽게 만들긴 했지만 사공명에겐 닿지 못했다.
“으으…..”
음공이 강화되자 가까이 있던 곽염은 결국 한 쪽 무릎을 꿇고 화극을 바닥에 찍어 세워 겨우 균형을 잡았다.
기수는 부하들의 보호를 받는 사공명을 계속 쫓을 것인지 죽음 앞에 몰린 곽염을 구할 것인지 양단간에 결정을 내려야 했다.
‘괜히 끼어들어서 귀찮게!’
그러나 곽염의 암기 덕에 사공명이 피를 철철 흘리며 물러나고 있으니 공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기수는 결국 곽염을 안고 뒤로 물러났다.
징잡이들이 악을 쓰며 달려들었지만 기수에겐 통하지 않았다.
어느 정도 간격이 벌어지자 곽염은 힘겹게 손을 휘저어 부하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방패수 뒤에 숨어 있던 궁수들이 일제히 활을 쏘기 시작했다.
현현각 무리는 감히 따라오지 못하고 퇴각했다.
한꺼번에 수백, 수천 발씩 쏟아지는 화살은 그들에게 큰 위협이었다.
더구나 각주를 안전하게 피신시키는 게 중요한 때라 모험할 이유가 없었다,
기수는 안전한 거리까지 물러난 뒤 곽염을 동창 고수들에게 인계했다.
곽염은 안색이 창백한 채로 중얼거렸다.
“총 공격…. 총 공격 명령을….”
그러나 자기 발로 서지도 못하는 상태이다 보니 목소리에도 힘이 없었다.
기수는 동창 고수들에게 그의 갑옷 일부를 벗기라고 해서 명문혈에 자신의 장심을 대고 진기를 불어넣어주었다.
관군의 총지휘관이 헤롱거리고 있기에는 현재의 전투상황이 너무나 중요했기 때문에 자신의 진기소모가 극심함에도 불구하고 도와주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으음….”
곽염은 도도하게 흘러 들어오는 기수의 진기 덕분에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기수가 손을 뗀 후 서너 차례 주천으로 메스꺼움과 어지러움을 몰아낸 곽염은 벌떡 일어서서 잠시 균형을 바로잡은 후 우렁찬 소리로 각 부대 지휘관에게 명령을 내렸다.
관군이 일제 공격을 가하자 사마연합군은 제대로 맞서 싸우지 못했다.
현현각주가 정상 상태가 아니라는 사실이 가장 큰 문제였다.
기수는 그들이 퇴각하는 모습을 보면서 사공명의 기도에 온 정신을 집중했다.
곽염이 다가와서 말했다.
“고맙습니다! 양호법님 덕분에 살았습니다.”
“별말씀을요.”
“아! 저쪽에 무림맹 본진이 산을 올라오고 있군요.”
기수는 반가운 마음에 뒤를 돌아봤다.
과연 깃발 일부가 다가오는 게 보였다.
이제 그들과 힘을 합치면 사마연합을 박살내기는 어렵지 않을 것이었다.
자기는 잠시 호흡을 가다듬어 텅 비어버리다시피 한 단전을 보충하고 현현각주를 잡으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때,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허리가 뜨끔! 한다 싶더니 혈도를 짚히고 만 것이다.
“이게 무슨….”
등 뒤에서 곽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조용히 있어줘야겠어.”
그러더니 곧바로 마혈이 짚였다.
기수의 온몸은 통나무처럼 굳어버렸고, 말도 할 수 없었다.
움직일 수 있는 거라고는 눈을 깜빡이거나 숨을 쉬는 근육뿐이었다.
‘야! 너 미쳤냐? 이게 무슨 짓이야?’
기수는 현재의 상황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즉시 진기를 움직여 보았지만 사공명과 싸우면서 워낙 진기 소모가 심했기 때문에 곽염의 점혈이 제대로 혈도를 막아버린 상태였다.
도무지 풀 방법이 없었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이유라도 좀 알자!’
기수는 계속 절규했지만 소리가 되어서 밖으로 나오지는 않았다.
곽염의 지시를 받은 동창 고수들은 헐렁한 포대 두 개로 기수를 위와 아래 양쪽에서 포장(?)한 후 말안장에 얹고 묶었다.
기수는 불편한 자세로 숨만 겨우 쉬면서 도대체 곽염이 왜 이러는지 생각해보았다.
‘점혈하고 묶어둔 걸 보면 죽일 생각은 아니군. 그렇다면 무슨 이유로…?’
가장 가능성 높은 추론은 자기 대신 공을 독차지하려는 생각인 것 같았다.
그러나 현현각을 일망타진하는 데는 자신의 힘이 꼭 필요했다. 각주가 아닌 악사와 징잡이들에게 당해봤기 때문에 곽염 본인도 그 사실을 잘 알 것이었다.
말이 걸을 때마다 복부에 압박감을 느끼며 얼마나 버텼을까.
파공음과 함께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양호법은 어디 있습니까?”
바로 비령검문의 문주 진백의 음성이었다.
‘문주님! 저 여기 있습니다!’
기수는 있는 힘껏 소리도 지르고 몸도 움직여보려 했지만 점혈 당한 그는 말등에 얹힌 짐에 불과했다.
진백은 물론이고 순우광과 조치성도 가까이에 있었지만 그 포대 자루가 기수일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곽염이 그들에게 말했다.
“조금 전까지 제 옆에 있었는데 적이 퇴각하는 모습을 도저히 참고 보지 못하더군요. 제가 말렸음에도 불구하고 적진으로 뛰어들었습니다.”
“하하! 양호법이라면 능히 그랬을 겁니다.”
순우광이 말했다.
“문주님. 저희들도 호법님의 뒤를 따르도록 해주십시오.”
“그리 하도록 해라.”
기수는 절규했다.
‘안 돼! 가지 마! 난 여기 있단 말야! 그리고 그들 중에 음공을 제대로 쓸 수 있는 놈의 수가 아직도 많아. 너희끼리 가는 건 위험해!’
그러나 기수의 속마음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기수는 염정구심술을 써서라도 자기 의사를 전달하고 싶었지만 깊이 점혈된 상태라 내공을 사용하는 수법들은 모두 막혀버리고 말았다.
다행히 곽염이 기수 대신 그들을 만류했다.
“현현각주는 제가 던지 암기에 맞아 중상을 입었지만 적진엔 음공을 쓰는 자들이 아직도 십여 명이나 남아 있습니다. 가까이 가는 것은 위험합니다. 잠시 우리 궁수들에게 맡겨주십시오.”
그 말을 듣고 진백은 순우광에게 안 된다는 손짓을 했다.
“우리는 현무단을 지휘하기 위해 가보겠습니다.”
“예. 양호법과 재회하기를 빌겠습니다.”
진백이 멀어지는 기척을 들으면서 기수는 좌절감을 느꼈다.
이제 자신은 꼼짝없이 곽염의 손아귀에 들어간 것이다.
‘도대체 이유가 뭐지?’
곽염은 적진에 음공 쓰는 사람이 아직도 많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들을 궁수만으로 제압하기는 어렵다는 사실 역시 알 것이었다.
‘이 전쟁에서 이길 마음이 없는 건가?’
그것은 또 말이 되지 않았다.
극히 위험한 선봉까지 자처하며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던가.
기수로서는 답답하지만 그냥 기다리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두 귀를 열어놓고 소리만으로 전황을 판단해 보건데 적은 제대로 된 반격을 하지 못했다. 무림맹의 가세 때문인 듯 했다.
그러나 시간이 좀 더 지나자 다른 정황이 드러났다.
적은 퇴각하고 있었다.
그것도 단계적이고 유기적인 움직임이었다.
아마도 십면매복을 할 때부터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여 퇴각로와 절차를 미리 준비해둔 듯 했다.
‘결국 현현각주를 이렇게 놓치는 건가?’
곽염의 암기에 맞아 쓰러졌던 그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벌떡 일어섰다.
그러나 그의 옷을 적신 출혈량은 결코 적은 게 아니었다.
즉사는 면했다고 해도 위독한 상태임이 분명했다.
이런 기회를 놓친다는 게 몹시 아쉬웠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그런 정도의 고수가 비밀스런 암기공격 한 번에 목숨을 잃는 것은 좀 불공평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떻게든 내 손으로 죽이고 싶다.’
그것이 기수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자기를 겁먹게 만든 강자. 그런 사공명을 자신의 능력으로 누를 수만 있다면 정말 사도를 죽였을 때 이상으로 벅찬 희열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려면 일단 여기서 벗어나야 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허리가 끊어질 것 같은 통증이 점점 강해졌다.
그 상태가 지속되자 짜증이 엄청나게 누적되었다.
‘곽염. 이 개새끼! 내가 풀려나기만 하면 넌 죽은 목숨이다. 허리를 잘라서 몸을 두 토막 내주마.’
자기를 공격하다니. 그것도 등 뒤에서 암습하다니.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일이었다.
관군은 적 진영을 점령하고 그 자리에 군영을 세웠다.
초당진 전체가 내려다보이는 위치라서 베이스캠프 자리로는 최적이었다.
무림맹 본진과 사신단도 언덕 주변으로 군영을 세웠다.
무림맹주 주일비는 합동 군사회의를 위해 곽염을 청했다.
그러나 그는 참석하지 않았다.
내상을 입었고, 조정에 급한 보고도 해야 한다면서 부하를 대신 보냈다.
관군 측 총사령관이 빠지고 보니 회의는 맥없이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
곽염은 그 시간에 태평령의 진영을 내려와 함양성으로 갔다.
그의 뒤를 따르는 수레엔 포대 자루 하나가 실려 있었다.
바로 기수였다.
말 등에 얹혀 있을 때보다 몸은 편해졌지만 마음은 더 불안했다.
‘나를 어디로 데려가는 거지?’
한참이 지난 뒤에 기수는 수레에서 내려져 맨바닥에 놓였고 포대에서 풀려날 수 있었다. 그곳은 어두운 창고 안이었다.
동창 고수들은 기수의 손목과 발목에 수갑과 족쇄를 채웠다.
그리고 기둥 너머로 쇠사슬을 걸어 잡아당겼다.
기수는 큰대자로 허공에 매달리게 되었다.
‘으윽!… 손바닥의 상처 치료부터 좀 해주면 안 되겠냐? 그리고 밥하고 물도 좀 줘야지. 너희들은 제네바 협정도 모르냐?’
여전히 마혈이 풀리지 않아 목소리가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매달린 채 기다린지 얼마나 지났을까.
곽염이 창고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갑옷을 벗고 평상복을 입은 상태였다.
“너희들은 모두 나가 있어라. 그리고 아무도 가까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해라.”
“예. 알겠습니다!”
부하들이 모두 물러가고 단둘만 남게 되자 곽염은 기수의 마혈을 풀어주었다.
기수는 마혈이 풀리기만 하면 아는 욕을 전부 다 퍼부어줄 생각이었지만 막상 입이 자유롭게 되자 한 마디도 말이 나오지 않았다.
곽염이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이거 기분 더럽네…’
사공명과 맞설 때는 죽이 되건 밥이 되건 도전해볼 수라도 있지만 지금처럼 혈이 짚힌 채 묶여 있는 것은 너무 일방적이었다.
상대가 검으로 찌르면 찔려야 하고, 칼을 휘두르면 베어야 하고, 채찍으로 때리면 맞아야 하고, 간지럼 태우면 참아야 했다.
그로 인한 공포는 정말 두 번 다시 경험하기 싫은 것이었다.
곽염은 그런 기수의 속마음을 읽기라도 하듯 느긋하게 즐기는 표정으로 쳐다보기만 할 뿐 입을 열지 않았다.
기수는 상대의 그런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좆같은 새끼… 넌 기필코 내 손으로 때려 죽여주마.’
강호행을 하는 동안 인간 자체에 대해 증오심을 가진 경우는 드물었는데 곽염에게만큼은 원한을 품지 않을 수 없었다.
기수가 더 이상 겁먹지 않고 자신을 노려보자 곽염이 입을 열었다.
“왜 여기에 와 있는지 이해가 안 되겠지?”
“……”
“후후…. 내게 한 가지만 대답해주면 널 쉽고 편하게 죽여주마. 하지만 만약 날 속이거나 뭔가를 숨기려 한다면 네 몸을 하나씩 무너뜨려줄 것이다. 선택은 너의 것이다.”
“무슨 대답을 원하느냐?”
“네 동료는 지금 어디 있지?”
“동료라니? 비룡검문 말이냐?”
곽염은 피식 웃었다.
“출발이 좋지 않군. 네가 사공명에게 단검을 던질 때 보니, 손을 다쳤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강기를 이용하더구나. 그건 내게도 몹시 익숙한 것이었지. 공태감을 납치했던 놈이 바로 그 수법으로 내 다리를 공격했었거든.”
기수는 깜짝 놀랐다.
곽염이 파천강기를 알아본 것이다.
‘좆 됐다. 씨발…. 어떻게 하지?’
암담하기 짝이 없는 상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