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hwa Manri RAW novel - Chapter 319
기수는 신음을 토했다.
“으으….”
기경팔맥에 진기가 순환하기 시작하자 가장 먼저 찾아온 느낌은 극심한 통증이었다.
사공명에게 당한 손바닥뿐만 아니라 곽염에게 맞은 전신이 모두 아팠다.
그래도 일단 감사 인사부터 했다.
“정말 고마워. 금영.”
금영이 머리에 꽂아두었던 철사로 수갑과 족쇄를 풀어주며 물었다.
“괜찮아요?”
“내 의지로 팔다리를 움직일 수 있다는 게 이렇게 좋은 일인 줄 몰랐어. 너에게 진심을 담아 보답하고 싶어.”
“무기도, 주머니도 다 털린 것 같은데요?”
“돈 말고 다른 걸로….”
기수는 여자에게 최고의 환희를 선사해줄 수 있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금영은 그걸 몰랐다.
“약속이나 잘 지켜요.”
“그건 걱정 말고. 우리 잠깐 시간을…”
“전 가서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을게요.”
금영은 서둘러 들창 밖으로 나가버렸다.
기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래도 시도는 해봤으니까 뭐… 자기가 싫다면야…’
기수는 몸 상태를 확인해보았다.
아픈 곳은 많았지만 뼈가 골절된 곳은 없었다.
그러나 손이 문제였다. 사공명에게 당한 손바닥, 특히 오른손은 손금이 새로 새겨지기라도 한 것처럼 십여 개의 깊은 상처가 남아 있었다.
심지어는 움직이지 않는 손가락도 있었다.
분광권, 잔백지, 파천강기, 단정홍 등 대부분의 무공을 손으로 펼쳐내는 입장이다 보니 상황이 많이 나쁘다고 할 수 있었다.
왼손은 그나마 상황이 나아서 검지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다.
‘좋아! 일단 내공부터 회복하자.’
기수는 가부좌를 틀고 앉아 북궁심법을 운용했다.
3개 단전으로 최대한 빨리, 집중적인 운기조식을 한 결과 30분만에 진기의 상당부분을 회복할 수 있었다.
기수는 호흡을 갈무리하고 일어섰다.
적이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불안한 상태에서 100%를 복구하려는 건 욕심이었다.
여전히 온몸 구석구석에서 전해져 오는 통증이 곽염에 대한 살심을 부추겼다.
‘절대로 곱게 죽도록 놔두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결심한 기수는 발로 창고 문을 박차고 나갔다.
깊은 밤. 적막을 깨트리는 굉음에 동창 무사들이 즉각 반응했다.
“이게 무슨 소리냐!”
“상황을 보고하라!”
후원을 지키던 경비병이 즉시 달려와 기수를 발견하고 외쳤다.
“죄인이 도망친다!”
기수는 냉소를 지었다.
“흥! 도망?”
창을 들고 달려오는 두 병사를 각각 옆차기와 앞차기로 박살낸 후 기수는 큰소리로 외쳤다.
“도망쳐야 할 것은 너희들이다! 곽염! 나와라!”
그의 음성은 밤하늘의 고요를 깨고 건물 전체에 울려 퍼졌다.
그에 화답이라도 하듯 사방에서 파공음이 울리며 동창 고수들이 몰려왔다.
기수는 선풍비로 몸을 날리며 그들을 한 놈씩 상대했다.
선풍비는 경공술, 신법, 보법이 총괄적으로 포함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기본적인 각법과 퇴법까지 익히도록 되어 있었다.
고수끼리 싸울 때는 두 다리로 위치와 무게중심을 변경하면서 두 팔로 치고받는 게 기본인데, 기수는 양손이 엉망이라 두 발로 위치도 이동하고, 무게중심도 잡고, 적도 공격했다.
비효율적이긴 하지만 무공 수준의 차이 때문에 동창 고수들 중 누구도 기수를 위협하지 못했다.
기수는 평소에 하수들을 상대할 때 잔백지로 수혈 짚는 방법을 주로 사용했다.
상대의 전투력을 30분에서 길게는 3시간 정도 0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에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대부분 태권도.
그 발차기의 쾌감을 마음껏 만끽하면서 가장 치명적인 급소만 골라 찼다.
자기를 여기까지 납치해 오는데 협조한 놈들이니까 용서해 줄 이유가 없었다.
기수가 팽이처럼 돌면서 계속 상대를 제압하자 동창 고수들도 주춤했다.
기수는 그들을 향해 말했다.
“너희들 정도는 손을 쓸 필요도 없다. 곽염! 어디 숨었느냐! 당장 나와라!”
그때, 날카로운 파공음과 함께 창 한 자루가 날아왔다.
기수는 그 기세에 놀라 몸을 회전시키며 피했고, 곽염이 곧바로 다가와 자신이 던진 화극을 뽑아 들었다.
그는 기수가 밖으로 나왔다는 사실에 크게 놀란 눈치였다.
“어떻게 점혈을 풀었지?”
“후후…. 네 부하가 풀어주었다.”
“거짓말 마라!”
동창의 수직 명령체계는 그 어느 조직보다 확고한 것이었다.
기수는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네가 동창 밖의 사람을 섬긴다는 사실을 알고 창주가 감시하라고 시켰다더구나. 창주로부터 의심받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모양이지?”
곽염의 표정이 변했다.
기수는 통쾌한 기분이 들었다.
‘심리적 스트레스라는 게 장난 아니지?’
기수는 그를 더 괴롭혀주기 위해 동창 소속 무사들을 향해 말했다.
“천호라면 창주 바로 다음 지위인데, 무엇이 부족해서 다른 주인을 섬기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군. 동창은 오로지 황상을 위해 몸과 마음을 바치는 조직인데, 도대체 뭐가 아쉬워서 다른 주인을 섬기지? 혹시 그 주인이 자기가 황제가 되기 위해 모반이라도 계획 중인가?”
그러자 곽염의 표정이 더욱 굳어지며 화극이 번뜩이기 시작했다.
“닥쳐라! 죄인 주제에….”
기수는 그의 맹렬한 공격을 빠른 보법으로 피했다.
양팔도 손목 위로는 방어 목적으로 쓰는 데 지장이 없기에 공세 전환은 힘들더라도 자기 몸을 지키는 데는 큰 무리가 없었다.
그는 목소리에 힘을 주어 말했다.
“왜 이렇게 정색을 하고 덤벼들지? 혹시 내가 정곡을 찔렀나? 누군가 역모를 계획하는 거야? 그런 거야?”
“닥쳐라!”
“얼굴이 붉어졌네? 하하하!… 너희 동창 놈들은 지금 상황을 하나도 빠짐없이 창주에게 보고해라. 곽천호가 역모를 꾸미는 중이라고. 하하하!….”
곽염은 미친듯이 창을 휘둘러댔다.
기어이 기수를 죽여서 입을 막겠다는 의도였다.
그러나 그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기수는 비록 양 손의 상태가 좋지 않다고 해도 허점을 노출하지 않았다.
곽염은 직접 싸우면서 기수의 강함은 절절이 체감할 수 있었다.
그래서 두려움이 커지는 만큼, 상대가 부상당한 지금 반드시 죽여야만 한다는 의지도 강해져갔다.
기수는 기수대로 고민에 빠졌다.
곽염의 무공은 분명 이곤보다 한 수 아래였다.
그러나 의외로 만만치 않은 실력이라 현재의 몸 상태로는 제압하기가 쉽지 않았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에 때려죽이고 싶었지만 자칫 서두르다가 당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있었다. 특히 사공명에게 던졌던 암기에 신경이 쓰였다.
‘어떻게 하지?’
현재 상태에서 곽염을 기어이 죽여야겠다면 단정홍이 답일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죽이기는 싫었다.
상대가 사도였다면 가능한 가장 빠르고 효율적인 방법으로 죽이는 게 급선무이고, 다른 생각을 할 이유가 없지만, 곽염은 달랐다.
그는 원수였다.
파천강기로 헤드샷을 날리거나 단정홍으로 혈도를 찢어발기는 것 정도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감정적으로 좀 더 직접적인 접촉을 하고 싶었다.
주먹으로 때려죽이는 것.
그것도 급소를 피해서, 최소한 자기가 맞은 횟수만큼은 고통을 주고 싶었다.
곽염이 말한 것처럼 손발의 힘줄을 끊는 것도 생각해 보았지만, 아무래도 그건 너무 잔인했다.
그냥 때려서 죽이는 정도가 자기 성격에 딱 맞는 수준 같았다.
‘일단 이곳을 피하고 보자.’
군자의 복수는 10년이 걸려도 늦은 게 아니라고 했던가.
두 주먹을 쥘 수 있을 때까지 대결을 미루자는 결론이 나왔다.
물론 다른 생각도 들었다.
‘기회가 있을 때 죽여야 하는 것 아닐까?’
그러나 아니었다. 그것으로는 절대로 분이 풀리지 않을 것 같았다.
기수가 퇴로를 찾는 움직임을 보이자 곽염의 화극이 더 빨라졌다.
“흥! 어딜 도망치려고? 얘들아! 놈의 퇴로를 막아라!”
동창 무사들은 즉시 곽염의 명에 따랐다.
기수의 말을 듣고 의심이 일기는 했지만 그것은 나중에 밝힐 문제고, 당장은 뇌옥에서 탈출하여 동료 수십 명을 죽고 다치게 만든 죄인을 잡는 게 우선이었다.
기수는 상황이 나빠지는 걸 빤히 보면서 기다릴 이유가 없었다. 복수를 다음으로 미루기로 한 이상 빠르게 움직여야 했다.
확 끌어올린 내공으로 선풍비를 시전하자 곽염이 기를 쓰고 따라왔다.
“어딜 도망치느냐! 승부를 가리자.”
기수는 그를 똑바로 노려보며 말했다.
“걱정 마라. 너와의 승부를 잊거나 포기하는 일은 절대로 없을 테니.”
곽염은 기수의 표정과 말투로부터 전해지는 한기로 인해 온몸에 소름이 끼치는 것을 느꼈다. 창고 안에서 자기가 한 일이 있기 때문에 상대의 심정이 어떤지 짐작이 갔다.
“네놈을 절대로 놓칠 수 없다!”
후환이 두려운 건 둘째 치고, 주군에게 보고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잡아야만 했다.
그는 허리춤에 꽂아둔 유성비를 뽑았다.
그리고 기회를 보아 벼락치듯 그것을 날렸다.
기수의 눈빛이 번뜩였다.
안 그래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던 터라 당황스럽지는 않았다. 사공명처럼 괜히 막으려고 하다가 낭패를 당하고 싶지 않기에 몸을 회전시켜 피해버렸다.
그런데, 그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암기가 허공에서 경로를 바꾸어 날아오는 것이었다.
‘이게 뭐야! 슬라이던가?’
굳이 방향을 따지자면 스크류볼의 궤적이지만, 어쨌거나 가까운 곳에서 갑자기 경로가 바뀌니까 여간 곤란한 게 아니었다.
기수는 끝까지 암기에 시선을 집중하면서 허리를 뒤로 젖혔다.
매트릭스에서 네오가 총알 피하는 슬로우 모션 같은 기분으로 간신히 피하고 보니 어느새 곽염의 화극이 가슴을 찔러오고 있었다.
곽염은 사공명에게 암기 던지는 모습을 기수가 이미 봤다는 사실에 착안해서 이번엔 유성비의 숨겨진 기능을 이용했다.
그리고 확실한 마무리를 위해 화극 공격까지 병행한 것이다.
중간에 방향이 꺾이는 유성비를 피하는 기수의 놀라운 반사 신경에 놀라긴 했지만, 최종적인 승리는 자신의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의 화극 날이 기수의 명치에 박히는 순간.
기수는 왼손을 뻗어 그 날을 움켜쥐었다.
“으윽….!”
손바닥 가득 통증이 전해져왔다.
그러나 명치를 찔리는 것보다는 손을 다치는 게 나은 선택이었다.
기수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사공명이 접선과 검을 통해 암경 공격을 했듯이 자신도 순간적으로 단정홍을 만들어 화극을 통해 밀어넣었다.
곽염의 얼굴엔 잔인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창날을 맨손으로 잡았으니 조금만 더 힘을 주면 손도 베고 명치도 찌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힘을 주는 순간 불에 달군 쇳덩어리를 움켜쥔 것 같은 통증이 전해져 와서 깜짝 놀라 두 손을 모두 놓을 수밖에 없었다.
“으으…. 무, 무슨 짓을 한 거냐?”
“지금 당장 정좌하고 운기조식을 하지 않는다면 넌 잠시 후 뜨는 아침 해를 영원히 볼 수 없을 것이다.”
기수는 가볍게 미소 지어 보인 후 선풍비를 시전하여 추격을 따돌렸다.
곽염은 손바닥에서 손목을 지나 팔로 타고 올라오는 낯선 통증에 놀라서 감히 기수의 뒤를 추격하지 못했다.
대신 부하들을 독려했다.
“놈을 쫒아라! 잡지 못해도 좋으니까 어디로 가는지는 꼭 알아내야 한다!”
동창 고수들은 천호의 명에 따랐다.
곽염은 4명의 호위를 남도록 하고 그 자리에 앉아 운기조식을 시작했다.
몸 안에 들어온 암경이 심상치 않았던 것이다.
그가 모르는 사실이 한 가지 있었는데, 기수는 곽염을 쉽게 죽일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아주 미약한 수준으로만 단정홍을 만들었고, 생명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
곽염이 운기조식 하는 동안 기수는 동창 고수들을 이끌고 북으로 달리다가 동으로 꺾고, 다시 남으로 달리다가 동으로 꺾는 식으로 지그재그 행보를 했다.
속도도 그들이 따라올 정도를 유지했다.
그렇게 시간을 끄는 것은 금영과의 약속 때문이었다.
곽염을 비롯한 고수들 전부를 저택에서 끌어냈으니까 이제 그녀는 자유롭게 자신의 길을 갈 수 있을 것이었다.
‘외숙부를 죽이는 게 목표라고 했나?’
일견 이해하기 어려운 얘기였지만, 사람마다 처한 환경이 다르니 그런 식의 살인이 새 출발의 좋은 발판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충분히 시간이 지났다고 생각한 기수는 걸음을 멈추었고 동창 고수들이 순식간에 그를 에워쌌다. 곽천호도 막지 못한 고수라는 사실을 눈으로 봤기 때문에 다들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기수가 그들에게 말했다.
“지금부터 발차기로만 점수를 따는 유형의 격투기를 보여주마. 후후…. 너희들은 지휘관 잘못 만난 걸 탓해라. 그리고 곽염이 역모를 꾸미는 무리의 일원이란 사실을 너희들 창주에게 꼭 보고하기 바란다. 자! 시작해볼까?”
아무도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기수는 기다리지 않고 먼저 몸을 날려 앞차기, 옆차기, 돌려차기, 뒤돌아 돌려차기, 뒷차기, 후리기, 뒤후리기, 찍기, 나래차기를 다양하게 선보였다.
초등학교 때 잠깐 배웠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기술들이 제대로 나와 주었다.
솔직히 실전에서 발차기 공격을 하는 것은 위험부담이 꽤 높지만, 그만큼 성공했을 때의 쾌감도 대단했다.
쫓아온 인원의 절반 이상이 나가떨어지자 동창 무사들은 멀찍이 거리를 벌리고 감히 가까이 다가오지 못했다.
어느 정도 분이 풀린 기수는 더 이상 놈들을 괴롭히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겁먹은 동창 고수들을 향해 말했다.
“자! 이제….. 나 잡아 봐라!”
쌩~! 하는 소리와 함께 선풍비가 시전되었다.
동창 무사들은 즉각 추격을 시작했지만, 기수가 진짜로 달리는 속도는 이제까지의 시간 끌기 경공과는 차원이 달랐다.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 그를 찾기 위해 사방으로 흩어져 보았지만 결국 어떤 흔적도 찾지 못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