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hwa Manri RAW novel - Chapter 321
사하는 아침 일찍 일어나 밥을 지었다.
그리고 붕대를 풀고 진물을 씻어낸 후 새로 약을 바르고 깨끗한 붕대로 다시 감는 수고를 마다않고 해주었다.
“밤사이 많이 아물었네.”
“우리 보타문의 금창약은 확실하다니까.”
“가만히 누워서 잤으면 훨씬 더 효과가 있었을 텐데.”
“어머! 말하는 것 좀 봐. 자기가 밤새도록 날 안 재웠으면서…”
“네가 시작을 해버렸잖아!”
“호호호!…. 그랬나?”
배시시 웃는 그녀가 사랑스럽기 짝이 없었다.
아침엔 마을 사람들이 와서 기구와 연장을 챙겨가고 청소도 해주었다. 그들을 모두 보내고 나니까 빈 집에 다시 둘뿐이었다.
“그 선배님은 어떤 분이야?”
“응. 그냥 오가다 만난 분이야.”
합비가 손자, 증손자, 고손자에게까지 자기 정체를 숨기기 위해 애쓴다는 사실을 알기에 아무리 사하지만 사실을 얘기할 수는 없었다.
“무공이 상당히 고강한 것 같던데…”
“맞아.”
“사나흘 있다가 오신다는 약속은 지키시겠지?”
“너 설마….”
“긴장하지 마. 딴 짓은 안하고 그냥 닦아주기만 할 거니까.”
그러더니 사하는 기수의 바지와 속옷을 한꺼번에 끌어내렸다.
“또 어딜 닦으려고?”
“알면서 뭘 그래?”
사하의 머리가 병아리를 낚아채는 솔개처럼, 2차 대전 독일의 수투카처럼 급강하했다.
“으윽!…..”
기수는 신음을 토하며 몸을 비틀었다.
치료도 해주고, 간호도 해주고, 밥도 챙겨 먹여주고, 거기에 더해 개인위생에까지 도움을 주는 그녀가 정말 고마웠다.
‘그런데 거기는 왜 꼭 침으로 닦는 거야?’
사소한 문제가 있긴 하지만 뭐 그냥 넘어가 주기로 했다.
다른 곳을 물수건으로 닦을 때는 두세 번 슥슥 문지르고 끝이지만, 그곳을 침으로 닦을 때는 미끌미끌, 뽀득 뽀득 소리가 날 정도로 정말 열심히, 여러 번, 강약을 바꿔가면서 정성을 다했다.
그러다가 그녀가 고개를 들고 물었다.
“입 말고 다른 거로 닦아줘도 될까?”
“물론이지.”
그녀는 생긋 웃었다.
“조금만 더 하고.”
말은 조금만 더 한다고 해놓고 손까지 가세해서 오래 지속했다.
기수가 워낙 좋아한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위로도 닦고, 아래로도 닦고, 마시면서 닦고를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날이 어둑어둑해지고 말았다. 하루 해가 금방이었다.
사하는 부엌으로 가서 저녁 준비를 했다.
몸은 탈진 상태였지만 사랑하는 남자가 먹을 음식을 만든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아졌는지 콧노래까지 흥얼거렸다.
음식냄새를 맡으면서 기수는 생각에 잠겼다.
‘결혼을 하면 이런 식으로 사는 걸까?’
물론 밤낮 밥 먹고 섹스만 반복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굉장히 좋을 것 같았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이혼을 하는 거지?’
아직 결혼 경험이 없는 기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나도 현대로 돌아가서 한 여자를 사랑하고… 그녀와 결혼해서 잘 살 수 있을까?’
그러나 곧바로 부정적인 대답들이 튀어나왔다.
‘난 이혼하게 된다면 그 사유가 뻔할 거야.’
배우자의 외도. 거기에 바로 걸릴 것 같았다.
법적으로 일부일처제니까 아무래도 혼자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대에서 자신에게 맞는 파트너를 찾을 수 있다는 보장도 없었다.
여자들이 운동선수를 좋아하는 것은 후반 90분까지 가는 스태미너 때문이다.
그건 여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지금 기수가 이곳 무림에서 상대하는 여인들은 내외공을 겸비한 고수들로, 1시간 연속으로 피스톤을 가동해도 온도와 습도와 탄력, 특히 습도가 계속 유지되는 정력녀들이었다. 워낙 건강 상태가 좋아서 냉 같은 것도 별로 없었다.
그런데 이런 여자들과 즐기다가 민간인 여자 1명과?
‘아! 돌아가기 싫다!’
미모니, 몸매니, 성격이니 다 떠나서 스태미너가 맞는 상대를 찾으려면 아마도 태릉선수촌 앞으로 가서 알아봐야 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기수는 진심으로 이곳이 좋았다.
합비는 자기 말대로 꼬박 사흘동안 돌아오지 않았다.
기수와 사하에겐 그 기간이 꿈결처럼 달콤했다.
그러다 나흘째 되는 날. 밥 먹고 막 낮 시간을 즐겁게 보내려고 하는 참인데 합비가 슬그머니 모습을 드러냈다.
“허어! 약 진짜 잘 듣네.”
합비의 첫 마디는 약의 효능에 놀라는 것이었다.
고작 사흘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그 많던 상처들이 대부분 사라진 것이다.
양손을 묶은 붕대에만 약간 진물이 배어 나와 있을 뿐이었다.
기수가 약간 불만어린 표정으로 물었다.
“관군이 움직임이기라도 했습니까?”
합비도 눈치가 빤한 사람이라 둘만의 파라다이스에 낯선 사람이 낀 느낌을 즉시 감지했다. 하지만 자기 집인데 눈치 볼 이유는 없었다.
“변화가 있었지. 그것도 아주 큰 변화가.”
“그게 무엇입니까?”
“관군은 초당진에서 완전히 철수했어. 그리고 부대를 나누어서 마을들을 샅샅이 뒤지고 있어. 아마 오래지 않아 우리 마을에도 들이닥칠 거야.”
기수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누구를 찾는 걸까요?”
“겉으로는 현현각의 잔당을 쫓는다고 하지만 곽염의 부하들이니까 누굴 찾는지 뻔한 일 아닌가?”
“쳇! 그렇다면 사람들 눈 때문에라도 제가 현현각의 첩자였다는 식으로 소문을 냈겠군요.”
“역시 머리가 좋은 것 같아.”
“으으! 진짜 그렇단 말입니까?”
사하가 물었다.
“관군이 초당진에서 철수했다면 무림맹은 어떻게 하고 있나요? 선배님.”
“그들도 철수했지.”
“예? 어디로요?”
“함양 쪽으로 가는 것 같던데?”
사하는 불안한 기색이었다. 제자들이 자기 없이 움직였다는 사실에 걱정이 된 것이다.
기수가 그녀에게 말했다.
“난 이제 다 나았으니까 돌아가 봐.”
“그래도 될까?”
“여분의 약과 붕대가 있으니까 내가 알아서 약도 바르고 붕대도 갈게. 양손만 하면 되니까 혼자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어.”
“알았어. 미안해.”
“미안하기는… 어서 가 봐. 아! 참 내가 여기 있는 건 비밀이야.”
“아무한테도 말 안 할게.”
사하는 두 번 얘기하지도 않고 합비에게 인사를 한 후 곧바로 떠났다.
무리의 리더로서 할 일이 많았던 것이다.
합비와 둘만 남게 되자 기수는 자기가 주방에 들어가서 음식을 준비했다.
그동안 사하가 환자 취급하는 바람에 누워만 있어서 몰랐는데, 몸이 대부분 정상으로 돌아왔고 양손만 조금 불편할 따름이었다.
합비가 주방으로 따라 들어와 물었다.
“뭐 하려고?”
“식사 하셔야죠.”
“네가 만드는 건 싫다. 나가서 사먹고 오자.”
“그럴까요?”
기수도 없는 요리실력 억지로 짜내고 싶지 않았다.
오랜만에 붕대로 얼굴을 가리고 죽립까지 눌러 쓴 기수는 합비와 함께 함양 성 밖의 한 객잔으로 가서 고기와 술을 사먹었다.
두 사람은 내친 김에 거기 하루 묵었다.
음식이 맛있고 술도 향기로워서 굳이 집으로 돌아갈 필요를 못 느낀 것이다.
느지막이 일어나 술국 챙겨먹고 나중에 먹을 생각으로 거기서 파는 고기까지 싸들고 합가촌으로 돌아왔는데, 어젯저녁 떠날 때와는 사뭇 분위기가 달랐다.
합비와 기수는 긴장한 표정으로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동네 여기저기서 무림고수의 기운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모두 14명이군.”
“어디서 갑자기 나타난 걸까요? 혹시…. 동창?”
“아무래도 그런 것 같지?”
“제가 여기 있다는 걸 어떻게 알았을까요?”
“뒤를 밟혔나?”
“그러게 조심하셨어야죠! 어르신.”
“이놈아! 천하에 내 뒤를 밟을 사람이 몇 명이나 될 것 같으냐?”
“어르신이 아니라면…. 사하?”
기수는 집으로 접근하여 나무 위에서 내려다보았다.
과연 집 주변에 고수들이 집중적으로 배치되어 있고, 마당엔 사하가 초조한 기색으로 서성이는 중이었다.
기수는 그녀가 뒤를 밟혔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무림맹의 장원으로 돌아가 제자들을 만난 후 별 이상이 없다는 사실이 확인되자 곧바로 되돌아오면서 추적을 당한 게 분명했다.
기수가 합비에게 말했다.
“저들은 제가 여기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무림맹에서 야밤에 빠져나오는 사람을 추적했을 뿐이니까 하루 종일 기다려도 제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면 그냥 돌아갈 겁니다.”
합비는 자기 마을에 동창 고수들이 들어와 있다는 사실 때문에 신경이 예민하고 곤두선 상태였다.
“무림맹 안에도 동창의 첩자들이 있을 테니 너와 저 아이의 관계도 알고 있겠지.”
“우리는 아무 관계도 아닌데요.”
“사람들이 눈치 못 챌 거라고 생각하냐? 가만 보면 머리가 좋은 편은 못 돼.”
“으으….”
기수는 마당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만약 동창이 자신과 사하의 관계에 대해 알고 있다면 그녀가 위험해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우려는 현실로 드러났다.
멀리서부터 새롭게 다가오는 고수의 기운이 느껴졌다.
뿐만 아니라 관군도 함께 몰려오고 있었다.
기수는 그들 중 곽염의 기도를 감지할 수 있었다.
합비의 걱정대로 동창은 사하와 자신의 관계를 알고 있는 게 분명했다.
‘아! 동창 놈들. 정이 안 가.’
사하를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기수가 합비에게 말했다.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몸도 성치 않잖아?”
“이만하면 다 나은 겁니다.”
“적이 저렇게 많은데?”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르신과 한 약속을 지켜야죠.”
“하지만….”
합비는 말리려 했지만 기수는 경공을 시전하여 마을 입구로 갔다.
그리고 거기 혼자 서서 다가오는 관군을 맞았다.
적의 수가 많았지만 기수는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앗다.
자기 때문에 마을에 피해를 줄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기수를 가운데 놓고 관군은 멈춰서서 대열을 정비했다.
그들 앞으로 동창 고수들이 나왔고, 뒤로도 마을에 배치되었던 고수들이 되돌아 나와 기수의 퇴로를 차단했다.
합가촌 사람들도 갑작스런 난리에 놀라 모두들 집밖으로 나왔지만 겁이 나서 가까이는 못 오고 멀찍이 담 뒤에 숨어 구경했다.
사하는 마을 입구가 소란스러워지자 궁금해서 나가보려 했는데 합비가 나타나서 그녀를 막았다.
“넌 나와 함께 구경이나 하자.”
“밖에 무슨 일이죠?”
“동창이 양가놈을 포위했다.”
“예? 그럼 가서 도와야죠.”
“보타문이 동창과 적이 되기를 바라는 거냐?”
“그, 그것은…..”
“일단은 나와 함께 있으면서 상황을 지켜보자. 나중에 돕게 되더라도 네가 먼저 나설 필요는 없을 거야.”
“아, 알겠습니다. 선배님.”
사하는 기수를 좋아하지만 문파의 대외적인 입장을 자기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 자격은 가지고 있지 못했다.
그래서 합비가 시키는 대로 일단 관망할 수밖에 없었다.
기수가 완전히 포위되자 동창 고수들 사이로 곽염이 모습을 드러냈다.
“드디어 찾았구나. 쥐새끼 같은 놈.”
기수는 미소 지었다.
“네 발로 찾아와줘서 고맙다. 오늘 여기서 끝내자.”
곽염은 코웃음을 쳤다.
“흥! 지난번처럼 속임수를 써서 도망치려고? 오늘은 그렇게 안 될 거다. 새로 보강한 인원이 적지 않으니까.”
곽염은 기수가 단정홍을 일부러 약하게 썼다는 사실에 대해 모르고 있었다.
기수는 40여명에 달하는 동창 고수들을 둘러본 후 물었다.
“저들도 네가 역모에 가담한 사실을 알고 있느냐?”
“하하하!… 그런 말장난이 통할 것 같으냐? 너야말로 사마외도와 결탁한 반역의 무리 아니더냐?”
“너야말로 말장난을 하고 있구나. 상식적인 판단력을 지닌 사람이라면 누구 말이 더 신빙성 있는지 금방 알아차릴 것이다. 더구나 동창의 간부들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겠지. 후후…. 넌 돌아갈 곳이 없어.”
곽염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스쳤다.
그러나 그는 곧 호통을 쳤다.
“닥쳐라! 아무 증거도 없이 말로만 모함하는 게 통할 것 같으냐?”
기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좋다. 네가 꾸미는 역모가 밝혀지거나 말거나, 사실 나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일이지. 난 너만 죽이면 되니까.”
“흐흐흐…..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는구나.”
기수는 좌우를 둘러본 후 말했다.
“여러 사람 귀찮게 하지 말고 조용한 곳으로 장소를 옮기는 게 어때? 너와 나 단둘이 오붓하게 말야.”
“후후후…. 난 동창의 천호다. 존귀한 몸이 고작 죄인 한 놈 잡는데 직접 손을 쓸 것 같으냐?”
기수는 피식 웃었다.
몸에 엄심갑 걸치고, 손에는 화극을 들고, 허리엔 그 이상한 암기까지 다 챙겨왔으면서 딴소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