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hwa Manri RAW novel - Chapter 322
곽염은 현현각 각주를 암습한 그 수법을 기수에게도 쓰려 했다.
기수는 자기가 직접 나서서 싸운다 해도 이길 확률이 높지 않은 상대였다. 며칠 전 몸 상태가 안 좋을 때도 실패한 바 있었다.
하지만 부하들이 싸우는 동안 슬그머니 접근하여 기습적으로 유성비를 던진다면 훨씬 수월하게 잡을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 잡으면 우선적으로 그 자리에서 힘줄부터 잘라줄 작정이었다.
기수가 말했다.
“부하들 전부가 덤빈다고 해도 상관없다. 하지만 이 마을은 나와 아무 상관도 없으니 관군으로 에워쌀 필요까지는 없지 않느냐?”
곽염을 코웃음을 쳤다.
“아무 상관이 없다고? 반역자를 숨겨주었으니 마을 전체가 역도다!”
기수는 깜짝 놀랐다.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
“흐흐흐…. 관의 일이란 본래 그렇게 돌아가는 것이다. 문서를 만들고 결재를 받았으면 그에 상응하는 공적이 있어야 한단 말이다.”
관군 동원령을 내렸으니까 죄인이 필요하다는 말이었다.
아무 잘못도 없는 합가촌 사람들이 역도로 몰려 관가에 끌려갈 거라는 얘기를 듣고 보니 불같은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기수보다 더한 분노를 느끼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멀찍이 나무 위에 사하와 나란히 서있는 합비였다.
그는 당장이라도 뛰어 내려가 곽염과 동창 고수들은 물론, 관군까지 전부 다 몰살시키고 싶었지만 일단 기수가 하는 걸 지켜보기로 했다.
그러나 관군이 마을 사람, 아니 개 한 마리라도 건드리면 언제든 뛰어들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기수는 곽염이 아닌 관군들을 향해 말했다.
“너희들 중 누구라도 마을사람들에게 손가락 하나라도 댄다면 맹세코 내 손에 죽을 것이다. 허튼소린지 아닌지 내 무공을 보고 스스로 판단하기 바란다.”
살기등등한 어조에 관군 진영이 술렁거렸다.
곽염은 소리 내어 웃었다.
“하하하!…. 웃기는 놈이로구나. 여긴 합가의 집성촌인데 양가인 네놈이 무슨 상관이란 말이냐?”
기수가 착 깔린 어조로 말했다.
“너 같은 놈이 약속의 무게를 알겠느냐.”
합비는 그 말을 듣고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자기가 사람을 잘 봤다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곽염은 턱짓으로 부하들의 포위망을 좀 더 좁혔다.
오늘만큼은 기수를 절대로 놓칠 수 없었다. 그랬다간 주군에게 해명할 방법이 없게 되고, 결국 자기 목숨이 위태롭게 되는 것이다.
동창 고수들이 조여오자 기수는 목을 한 바퀴 돌려서 풀어준 후 자세를 낮추고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자! 덤벼라!”
동창 고수들은 함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그러나 무질서하지는 않고, 움직임에 뭔가 규율이 잡혀 있었다.
미리 진형을 연습한 게 분명했다.
기수는 기다리지 않고 돌진하며 지난번에 이은 발차기 스페셜리스트의 면모를 자랑하기 시작했다.
동창 고수들은 지난번 탈출 때에 비해 숫자도 많고, 진형까지 갖추었고, 정신적으로도 준비가 잘 되어 있었다.
그러나 지난번과 다른 것은 그들만이 아니었다.
기수도 사나흘 쉬면서 몸 상태가 정상으로 돌아왔고, 통증이 느껴지는 부위도 없었다. 그가 손을 쓰지 않는 것은 아물던 상처가 덧나지 않게 하려는 것이지, 쓸 수 없어서가 아니었다.
발로 싸우는 것은 몹시 위험한 일이지만 일단 보기엔 통쾌하고 시원했다.
사하는 자기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고 흔들어 대며 응원했다.
차는 기수도 상대가 퍽! 퍽! 무너지며 날아가니까 기분이 좋았다.
합비만 표정이 심각했다.
사하가 그에게 물었다.
“선배님. 왜 그런 눈으로 보세요?”
“동창의 천호가 뭔가 준비하고 있어.”
사하도 그제야 기수 배후로 돌아 들어가는 곽염을 발견했다.
한창 신이 난 기수에게 암습을 가하려는 수작이 분명했다.
알려줘야겠다고 소리를 지르려는 찰라.
곽염의 손에서 예리한 파공음이 울렸다.
그가 암기를 던진 것이다.
순간, 곽염의 입에서 비명이 동시에 터져 나왔다.
“크아악!…..”
그는 무릎을 움켜쥐고 뒹굴었다.
그러면서도 자기가 던진 암기가 어떻게 되었는지 고개를 들어 확인했다.
암기는 자루까지 척추에 박혀 있었다.
그러나 그 대상이 기수가 아닌 자기 부하였다.
기수는 계속 발차기를 하면서도 양손에 파천강기의 진기를 모으고, 곽염의 위치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그가 전과 같은 수법을 쓸 거란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암기의 파공음이 들리자마자 파천강기를 날렸다.
곽염도 동창의 천호가 될 정도의 고수. 기수 입장에서도 수십 명의 동창 무사들에 둘러싸인 상태가 부담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상대가 회심의 일격을 가하도록 놔두고, 성공했다고 믿는 그 순간의 방심을 노려서 불시에 파천강기를 쏜 것이다.
순간 반응속도도 곽염에 비해 기수 쪽이 조금이나마 빨랐고, 무엇보다 날아가는 속도에서 파천강기가 유성비보다 빨랐기 때문에 곽염은 무릎을 관통당하고, 기수는 적 한 명을 잡아당기며 몸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이다.
곽염은 오히려 자기가 무릎에 깊은 상처를 입었다는 사실에 크게 놀랐다.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까 아픔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나를 보호해라! 어서!”
기수를 잡는 것보다 자기가 살아서 도망치는 게 더 급해진 것이다.
그러나 기수가 이제까지 동창 고수들의 포위에 갇혀 있었던 것은 힘이 모자라서라기보다는 기회를 노리기 위함이었다.
그 기회가 왔는데 놓칠 리가 없었다.
“그놈은 내 거야! 건드리지 마!”
기수는 가로막는 동창 고수들을 발차기와 잔백지로 번갈아 공격하며 길을 열었다.
이제껏 발차기에만 눈이 익숙해져 있던 동창 고수들은 날카로운 파공음과 함께 갑자기 날아오는 지풍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결국 곽염은 부하 두 명의 부축을 받아 몸을 일으키다가 기수의 앞차기에 정확히 가슴을 맞아 뒤로 날아가고 말았다.
“크윽……!”
“앗! 실수!”
기수는 깜짝 놀라서 날아가는 곽염을 뒤따라갔다.
그리고 그의 몸이 땅에 닿기 전에 금나수로 팔을 잡아 비틀었다.
“끄아악!….”
곽염은 팔이 탈구되는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
기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다! 죽지 않았구나.”
첫 번째 발차기에 너무 감정이 실려서 혹시 즉사해버린 건 아닌지 걱정되었던 것이다. 그렇게 쉽게 죽일 거였으면 단정홍을 좀 더 크게 만드는 편이 쉬웠을 것이다.
기수는 진기를 뺀 주먹으로 곽염의 눈두덩에 스트레이트를 꽂았다.
곽염은 신음을 토하며 비틀거렸고, 기수는 왼손 보디블로우를 곽염의 옆구리에 적중시켰다. 혈도를 피해서 때린 것은 물론이다.
푹! 팍! 퍽! 픽!…
픽사리까지 포함해서 주먹에 고스란히 전해져 오는 충격들이 기수로 하여금 감정적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주었다.
원래 이런 잔인한 취향은 아니지만 곽염에 대해서만큼은 예외였다.
“천호님은 구해라!”
“놈을 저지해라!”
동창 고수들이 곽염을 위해 달려들었다.
그러나 그들 실력으로 기수를 저지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기수는 곽염 한 대 때리고 적 한 명 쓰러트리는 쪽으로 양쪽을 다 박살냈다.
도망치지 못하도록 곽염의 다리 하나를 못 쓰게 만들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곽염은 뒤늦게라도 반격을 시도했지만 한 쪽 다리 관통상, 한 쪽 팔 탈구인 상태로는 해볼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결국 기수는 관군이 보는 앞에서 동창 고수들을 모두 쓰러트린 것은 물론, 우두머리인 곽염을 무자비하게 두들겨 패서 마침내 죽여 버렸다.
곽염의 숨이 끊어진 것을 확인한 기수는 고개를 젖히고 광소를 터뜨렸다.
“크하하하!……”
사도를 죽였을 때만큼은 아니지만 속이 후련했다.
물론, 약간의 문제도 있었다.
다 웃고 나서 손을 보니 붕대에 피가 잔뜩 배어나와 있었다.
두 주먹으로 기분 좋게 때려죽인 것까지는 좋았는데,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에 의해 손의 상처도 아물다 말고 다 터져 버린 것이다.
기수는 곽염의 시신을 힐끗 본 후 씩 웃었다.
‘이만한 가치는 있었어.’
다만, 주군이란 자에 대해 물어보지 못한 것은 아쉬웠다.
‘어쩔 수 없지 뭐.’
그 정도로 냉정했다면 사람을 때려죽일 생각을 했겠는가.
기수는 관군들을 향해 돌아섰다. 그리고 큰소리로 말했다.
“보았다면 썩 물러가지 않고 뭐 하느냐!”
병사들이 주춤거리며 뒷걸음질을 치자 지휘를 맡은 장수들은 당황했다.
“대형을 유지해라!”
“흥! 누구 마음대로?”
기수는 곽염이 떨어트린 화극을 집어 들고 선풍비를 시전하여 관군 지휘관을 향해 날아갔다.
사람이 새처럼 나는 모습에 놀라, 장수는 칼을 제대로 뽑지도 못했다.
장수가 창에 꿰어져 즉사하자 병사들은 더 이상 제 자리를 지키지 못했다.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기 바빴다.
관군은 이번 출정을 통해 무림고수들이 얼마나 무서운 자들인지 똑똑히 목격했다.
사람이 날아다니고, 검을 한 번 휘두르면
그냥 일상적인 삶을 살면 평생동안 한 번도 못 볼 일들이었다.
기수는 껄껄 웃으며 화극을 빙글빙글 돌리다가 화극을 무릎에 내리쳐 두 동강 내버렸다. 그리고 곽염의 시체를 뒤졌다.
지난번에 사로잡혔을 때 단검조끼와 돈주머니를 다 압수당했는데, 적어도 돈이라도 되찾기 위해서였다.
곽염의 주머니엔 상상 이상의 거액이 들어 있었다.
그러나 절반 이상이 전표라서 동창도, 관리도 아닌 기수는 그것들을 버리고 금과 은만 챙겼다.
“그래도 내가 밑지는 거야.”
기수는 곽염의 시체를 발로 한 번 찼다.
그러자 그의 몸이 움직이면서 긴 막대형의 암기가 드러났다.
자신을 향해 날아왔던 바로 그 암기였다.
뒤쪽에 반고정의 작은 날개가 달려 있어서 손으로 누르면 형태가 변했다.
‘이게 공중에서 꺾이는 비밀이었군.’
종이비행기도 날개 끝을 살짝 구부리면 날아가는 항로가 달라지는데 그런 비슷한 원리 같았다.
기수는 곽염의 드러난 팔에 뭔가 지렛대 비슷한 장치가 매달려 있는 것도 발견했다. 단순히 팔의 근육 힘만이 아닌 어떤 기구를 활용해서 속도를 배가시키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것까지 떼어서 원리를 연구할 생각은 없었다.
그냥 암기만 허리춤에 찔러 넣었다.
그러는 동안 나무 위에선 사하가 합비에게 말했다.
“손의 상처가 덧났나 봐요. 가서 치료해줘야겠어요.”
“잠시만….”
합비의 시선이 먼 곳에 향해 있었다.
사하는 그가 왜 그러는지 궁금했다.
“무슨 일인가요?”
“적이 다가오고 있어.”
사하는 깜짝 놀랐다.
“적이라니요?”
적의 정체는 곧 밝혀졌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날카로운 피리 소리.
그것은 음종 현현각에서 사용하는 신호였다.
기수도 그 소리를 듣고 긴장했다.
관군과 무림맹을 피해 도망 다니는 줄 알았는데 스스로 모습을 드러냈다는 사실이 의외였다.
그들은 몹시 빠른 속도로 기수 앞으로 다가왔다.
인원은 삼십여 명.
사마연합의 병력 없이 현현각만 움직여서인지 움직임이 대단히 빨랐다.
그리고 그들 가운데 낯익은 가마가 한 채 있었다.
기수는 불길한 예감을 느꼈다.
‘설마…. 현현각주가?‘
설마가 아니었다. 휘장이 걷히고 사공명이 모습을 드러냈는데, 붕대를 감고는 있지만 혈색이나 기도가 정상이었다.
며칠 안 되는 사이에 회복한 것을 보니 지난번에 입은 상처가 별 것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사공명은 두 자루 부채를 꺼내어 들었고, 그 중 작은 것을 펼쳐 흔들면서 좌우를 둘러보았다.
“여긴 웬 벌레들이 이렇게 많은 거지?”
그가 말하는 벌레란 동창 고수들이었다.
기수가 죽인 자들도 있지만 발차기에 맞아 부러지거나 잔백지에 혈을 짚였다가 회복되는 자들이 여기저기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기수가 사공명을 향해 말했다.
“배짱도 좋구나. 모습을 드러내다니.”
“후후…. 내가 숨을 이유라도 있나? 난 그동안 너희 둘을 찾아다녔다.”
사공명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곽염의 시신을 살펴본 후 말을 이었다.
“안타깝게도 하나는 먼저 죽어버렸군. 네가 죽였느냐?”
“그렇다.”
“같은 편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나보구나. 뭐, 어쨌거나 상관없다. 진짜 목표는 너였으니까.”
사공명은 큰 부채를 펼쳤다. 지난번에 검을 잡았던 것과는 문양이 다른 것으로 보아 여러 개를 가지고 다니는 듯 했다.
기수는 내공을 운기해 보았다.
다행히 큰 문제는 없었지만 베스트 컨디션이라고 하기는 어려웠다.
거기다 손에 상처까지 있는 지금 느닷없이 강적이 나타난 것은 확실히 부담스러웠다.
‘그동안 동창을 피해 다닌 게 아니라 움직임을 감시하고 있었구나.’
사공명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면서 말했다.
“자! 그때 못 다한 놀이를 오늘 끝내도록 하지.”
그러면서 펼친 접선 두 개를 상하로 맞붙여 자세를 취했다.
기수는 심호흡을 한 차례 했다.
사공명으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가공할 기도에 압박감을 느낀 것이다.
‘쫄지 마. 놈도 부상을 입었던 몸이니까 컨디션이 100%는 아닐 거야.’
기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세 단전을 풀 가동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