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hwa Manri RAW novel - Chapter 324
사하와 기수가 집으로 가는 사이, 합비는 마을 주변을 한 바퀴 돌았다.
혹시나 살아 있는 목격자나 정찰병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현현각과 동창의 졸개 몇 명을 깨끗이 처리한 그는 마을로 들어오다가 사람들이 모여 웅성거리는 모습을 봤다.
장소는 촌장의 집.
수십 명이 기대어 앉거나 누워서 신음하고, 가족들이 근심 가득한 얼굴로 그들을 간호하고 있었다.
합비는 그들이 현현각의 대성률에 내상을 입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기수와 사공명이 싸운 장소는 마을 밖이라 음공이 미칠 거리가 아니었지만, 마을 사람들 중 일부는 좀 더 가까이에서 구경을 했고, 소리를 들은 것이다.
거리가 있었다고 해도, 무공을 익힌 사람도 견디기 어려운 음공이다 보니 몇 명은 상태가 심각해 보였다.
촌장과 아들은 의원을 붙잡고 방도를 물었지만, 마을 의원은 원인 자체를 몰랐다.
합비는 현현각주에 대해 분노를 느꼈다.
도망칠 때 쫓아가서 죽여 버리지 않은 게 후회되었다.
그리고 마을사람들의 고통에 책임감도 느끼게 되었다.
합비는 망설이다가 가장 상태가 나빠 보이는 청년에게 다가가 슬그머니 그의 손발을 주물러주었다.
진기를 불어넣으며 추궁과혈을 한 것이다.
잠시 후 청년의 혈색이 본래대로 돌아오자 그의 부모 형제가 호들갑을 떨었다.
“살아났다! 우리 원아가 살아났어!”
곧바로 마을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촌장이 합비에게 물었다.
“어르신. 도대체 어떻게 하신 겁니까?”
“아! 그, 그게…. 내가 소싯적에 의술을 좀 배웠는데… 어쩌다 보니 용케도 이 사람 증상과 들어맞는 게 있어서 치료가 되었네.”
그러자 마을 사람들이 자기 가족도 좀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허! 이것 참….”
합비는 사람들의 주목을 끄는 게 곤혹스러웠다.
촌장이 말했다.
“어르신. 부디 저희들을 위해 조금만 더 힘을 써주십시오. 멀쩡하던 사람들이 떼로 죽어 나가게 생겼는데, 어르신처럼 고명한 의술을 지닌 분이 우리 마을에 오신 것은 정말 하늘의 보살핌입니다.”
마을사람들 모두가 머리를 조아리며 부탁했다.
합비로서는 그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다.
따지고 보면 그들 모두가 자기 후손들이었기 때문이다.
“뜨거운 물을 준비하게. 치료가 끝난 사람들도 뜨거운 물에 몸을 푹 담그고 땀을 한 차례 빼내야 완치가 빠르니까.”
“알겠습니다!”
합비는 마을 의원을 불러 그에게 처방전을 하나 써주었다.
“이대로 탕재를 만들게. 모두가 마실 수 있을 만큼.”
“예. 그리 하겠습니다.”
합비는 환자들 중 가장 상태가 나쁜 순서대로 추궁과혈을 해주었다.
한 사람씩 목숨을 구할 때마다 가족들은 환호했고, 합비의 얼굴에도 점점 미소가 짙어져 갔다.
그렇게 하다 보니 치료가 모두 끝났을 때는 어느새 날이 어두워져 있었다.
촌장이 정성스럽게 차린 저녁을 함께 먹고 기분 좋게 술까지 한두 잔 마신 합비는 밤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갔다.
기수가 마당에서 멍하니 달을 보고 있다가 그를 맞았다.
“오셨습니까? 어르신.”
“보타문의 아이는 어디 갔느냐?”
“제가 무림맹으로 보냈습니다.”
“거긴 왜?”
“현현각주의 지금 상태가 좋지 않으니까 추격을 시도해보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모두가 한꺼번에 연주하는 음공이 꽤 위험해 보이던데…”
“그걸 조심하라고 얘기 해두었습니다.”
합비는 고개를 끄덕였다.
현현각주를 잡지는 못하더라도 상당히 괴롭힐 수는 있을 것 같았다.
“그나저나 너는 왜 밖에 나와 있느냐?”
“갑갑해서요.”
“치료는 다 끝났느냐? 아까 보니 뼈가 보이는 상처도 있던데…”
“예. 그녀가 제대로 치료해주었습니다.”
“그런데 뭐가 갑갑해?”
“아, 아닙니다.”
합비는 대략 눈치 채고 더 묻지 않았다.
기수는 분해서 자리에 누워 있을 수가 없었다.
사도와 싸우는 것은 자신의 사명이기 때문에 어떤 방법을 쓰건 상대를 죽여야 한다는 한 가지 생각밖에 없었다.
사공명은 그와 달랐다.
의무감이 없는 상대. 하지만 이기고 싶었다.
강하기에 더욱 더 꺾고 싶었다.
순수한 호승심 그 자체로 싸웠기 때문인지, 패배가 더욱 괴롭고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기수는 긴 한숨을 내쉰 후 합비에게 물었다.
“어르신. 사공명을 움찔거리게 만들었던 수법은 무엇이었습니까?”
“수류의 태포련.”
“아! 그것도 태포련이라고 하는 겁니까?”
“강기를 만들어 내 몸을 지킬 수도 있고, 밖으로 발출할 수도 있지. 발출하는 기술이 바로 태포련이야. 그러니까 각각의 오행에 따라 다섯 가지 태포련이 있는 거지.”
“그렇군요.”
“크크….. 배우고 싶지?”
가르쳐주십시오! 사부님. 하는 소리가 기수의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그러나 정작 입으로는 다른 소리가 나왔다.
“싫습니다. 저 혼자 깨치겠습니다.”
“에잉~! 저 똥고집!”
잠시 생각에 잠겼던 기수가 물었다.
“그렇다면 저의 파천강기도 목류의 태포련이라고 할 수 있겠군요?”
“이해가 빠르구나. 머리는 나쁜 놈이.”
기수는 지난번에 배운 화류의 태포련과 자신이 애용하는 파천강기가 같은 기본 원리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공통점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기수가 골몰해 있는 동안 합비는 고개를 들어 밤하늘의 달을 봤다.
어제도 봤던 달인데 느낌이 사뭇 달랐다.
그 이유는 한 가지.
마을 사람들과 친해졌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제까지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세상이 전부 다르게 보이는 것이었다.
진기 소모가 심하긴 했지만 수많은 목숨을 구했고, 그 당사자와 가족들로부터 감사 인사를 받은 것은 정말 기분 좋은 일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손자, 증손자, 고손자와 함께 밥을 먹고 술을 마신 것은 정말 믿기 어려울 만큼 행복한 시간이었다.
오랜 세월 강호를 떠돌며 안 가본 곳 없고, 안 먹어 본 음식이 없지만 손자가 차린 식탁의 음식과 술이 최고였다.
합비는 기수 쪽을 봤다.
그는 난도질당한 팔을 허공에 휘저으며 뭔가를 알아내려고 애쓰고 있었다.
‘어쩌면 저놈 덕분이라고 할 수 있지.’
기수가 목숨 걸고 싸우는 모습을 보면서 자기도 뒷짐 지고 물러서 있을 수만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지금에 이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합비가 기수에게 말했다.
“그 파천강기라는 걸 어떻게 운기하는지 구결을 내게 얘기해줄 수 있겠느냐?”
기수는 의이했다.
“어르신에겐 목류의 태포련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이놈아! 무학의 경지엔 끝이 없는 것이다. 다른 유파의 방식에 호기심을 가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란 말이다?”
“아, 알겠습니다.”
기수는 파천강기 운용법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자기는 합비에게 훨씬 더 많은 것을 배웠으니 감출 이유가 없었다.
다 들은 합비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검지로 땅바닥을 가리켰다.
그러자 퓩! 하는 파공음과 함께 구멍이 깊이 파였다.
“호오! 이런 식이로구나.”
기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리 오행류의 고수라고 해도 한 번만 듣고 곧바로 파천강기를 펼쳐낼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것이다. 사매들이 보면 자괴감을 느낄 것 같았다.
합비는 장난치듯 땅바닥에 연달아 구멍을 10여개나 만든 후 말했다.
“목류의 태포련과 완전히 똑같지는 않지만 거의 비슷하다고 할 수 있구나.”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살육을 위해 관통력에만 집중된 운기법이야. 그래서 깊은 맛이 없어.”
“그, 그렇군요.”
파천강기에 어떻게 깊은 맛을 가미한다는 건지, 상상이 잘 안 됐다.
합비가 기수에게 턱짓을 했다.
“돌아서서 등을 내게 보여 봐라.”
“예? 뭐 하시게요?”
곽염에게 등 뒤에서 암습당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좀 꺼려졌다.
“잔말 말고 돌아서.”
기수는 합비가 시키는 대로 했다.
그와 자신의 무공 차이라면 암습을 할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합비는 기수의 명문혈에 장심을 댄 후 말했다.
“지금부터 내 진기의 흐름을 잘 관찰해라. 공연히 방해나 저항하지 말고 오로지 관찰만 하는 거다. 할 수 있겠지?”
“예. 알겠습니다.”
명문혈로 흘러 들어온 합비의 진기는 기수의 혈맥을 따라 자유롭게 이동했다. 기수의 의지가 완전히 수동적인 태도를 취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몸을 따라 한 바퀴 돌린 후 합비가 물었다.
“기억했느냐?”
“예. 특이한 경로로군요.”
“네놈은 머리가 나쁘니까 딱 한 번만 더 해주마. 집중해라.”
기수는 눈을 감고 진기 흐름을 관찰했다.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지나는 경로로 보아 상당히 수준 높은 운기법이었다.
두 번째 순환이 끝나자 기수는 그 길을 완전히 외울 수 있었다.
첫 번째 순환에서 약간 미심쩍었던 부분도 모두 교정했다.
합비가 손을 뗀 후 말했다.
“이제 혼자 해 보거라.”
기수는 진기를 서너 차례 움직여 완전히 익숙해진 후 물었다.
“이게 뭡니까?”
“후후…. 항상 아래로 흐르고, 잘 뭉치고, 무엇이건 녹이고, 어디에건 잘 달라붙는 게 오행 중 무엇인지 알겠느냐?”
“글쎄요. 수의 성질인가요?”
“맞다. 만물을 숨기는 지혜의 표상이기도 하지. 방금 그 운기는 수류의 태포련이다.”
기수는 깜짝 놀랐다.
“예? 그러면 사공명의 움직임을 제지했던 그 기술 아닙니까?”
“그렇다. 물론, 네가 펼치면 나와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약하겠지만…”
기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어르신. 저는 제자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고연 놈! 누가 너 같은 놈을 제자 삼겠다더냐? 이건 단지 네놈이 파천강기를 가르쳐주었으니 나도 하나 가르쳐준 것에 불과하다. 선배가 되어서 후배의 기술을 빼먹을 수는 없는 일 아니겠느냐?”
“아아!….”
기수는 뭐라 말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뭔가 말이 되는 듯 하면서도 앞뒤가 맞지 않았다.
합비의 말대로라면 파천강기와 수류 태포련을 1대1로 맞교환 한 거지만, 그 비중이 같다고는 볼 수 없는 것이다.
합비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한 마디 했다.
“뭘 그렇게 머리를 굴리느냐? 그냥 넙죽 받으면 될 것을…”
“아! 가, 감사합니다!”
기수는 그것이 합비의 선물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호의를 보이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파천강기를 교환조건으로 걸면서까지 일부러 가르쳐주었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합비에게 연거푸 감사인사를 한 기수는 벅차오르는 기쁨을 느꼈다.
사공명의 움직임을 방해하던 수류의 태포련은 예전에 자신이 합비와 처음 만났을 때도 직접 당해본 경험이 있었다.
뭔가 끈적거리는 게 팔다리를 잡아당기는 불쾌한 느낌이었다.
‘이걸 제대로 익혀서 대결 중에 써먹는다면 사공명을 이길 수 있다!’
고수들끼리의 대결에선 잠깐의 머뭇거림도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지기 마련이었다. 사공명의 회선참이 몹시 위력적이기는 하지만, 부채질 한 번만 머뭇거리게 할 수 있다면 선풍비로 간격을 좁힐 수 있고, 또 한 번의 머뭇거림을 유도해내면 치명타를 먹일 찬스도 잡을 수 있는 것이다.
‘잘 하면 상처 하나 없이 이길 수도 있을 거야.’
주먹에 불끈 힘이 들어갔다.
기수는 합비에게 말했다.
“어르신. 먼저 주무십시오. 전 좀 다녀올 데가 있습니다.”
합비는 손을 내저었다.
“서두르지 마! 진기 운용법을 알았다고 해도 실전에 써먹을 정도가 되려면 오랜 연공이 필요해. 아직은 현현각주를 상대할 수 없어.”
“하핫! 그를 찾아가는 게 아닙니다. 다른 일입니다.”
합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다른 일?”
“아까 낮에 곽염이 말하기를, 관군을 움직이기 위해 공문서를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그걸 놔두면 이곳 합가촌에 해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 맞아. 그게 있었지.”
“그 일을 처리하고 오겠습니다.”
합비는 고개를 끄덕였다.
기수가 합가촌을 위해 자기가 생각지 못했던 것까지 알아서 챙겨주는 게 고마웠다.
“조심해서 다녀와.”
“걱정 마십시오.”
피 묻은 옷을 벗고 새 옷으로 갈아입은 기수는 함양으로 달려갔다.
성벽을 넘은 그는 관청을 향해 갔다.
산풍비로 지붕과 담을 넘던 그는 마침 고양이 한 마리가 지붕 위에 있는 것을 발견하고 걸음을 멈추었다.
고양이는 기수의 출현에 긴장하는 태도를 취했다.
기수는 수류의 태포련을 운기한 후 장심을 고양이에게 향했다.
그러자 고양이가 우는 소리를 내며 바닥에 착 엎드렸다.
그러더니 앞발과 뒷다리를 휘저으며 뒹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마치 그물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치는 것 같았다.
‘된다! 성공이야!’
기수는 뛸 듯이 기뻤다.
비록 사람에 비해 아주 작은 동물에 불과하지만 첫 시도치고는 대단한 성과라고 할 수 있었다. 이제 꾸준히 연마하면 사람, 그것도 무공을 익힌 고수의 움직임까지 방해할 수 있게 될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