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hwa Manri RAW novel - Chapter 344
기수는 악착같이 거리를 좁혀 오는 멸천제를 수류 태포련으로 늦추면서 게속 간격을 유지했다.
눈을 뜨고 싶어도 깨지 않는 악몽 같은 순간이었다.
그런 상황이 이어지면서, 기수는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건 아닌 것 같아.’
그의 수류 태포련은 아직 완성된 무공이 아니었다.
고양이를 제압한 적은 있지만 사람을, 그것도 고수를 상대로 쓰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처음엔 멸천제 정도의 고수도 늦출 수 있다는 사실이 마냥 기분 좋았지만, 소모되는 진기의 양을 따져보면 뭔가 엄청나게 손해 보는 느낌이었다.
‘자영과 열심히 가꾼 내공을 지금 엉뚱한 데 낭비하고 있다!’
수류 태포련에 익숙해져서가 아니라 내공이 증진되어서 통하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저놈의 각성 상태는 도대체 언제까지 이어지는 거야?’
멸천제의 기도는 줄어들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고 있었다.
기수는 오기가 발동하는 것을 느꼈다.
‘내 실력이 사도로부터 도망쳐야 할 수준에 불과했던가?’
솔직히 멸천제의 각성 이후에 맞은 자리들이 아직도 아팠다.
정말 어찌해 볼 도리 없이 무자비하게 당했던 것이다.
그러나 쌍방간에 큰 실력 차이가 없다고 해도 일단 한 대 맞기 시작하면 연타를 허용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수는 우뚝 걸음을 멈추었다.
그러자 멸천제도 흠칫하여 간격을 유지했다.
“흐흐…. 이제 포기한 거냐?”
“아니. 이제 충분히 쉬었으니까 싸워보려고.”
“흐흐흐….. 싸움이란 건 서로 실력이 비슷할 때 하는 거지.”
순간 멸천제의 주먹이 바람을 가르며 기수의 인중에 꽂혔다.
퍽! 소리와 함께 멸천제의 주먹을 막은 것은 기수의 손바닥이었다.
“그래. 진짜로 누가 강한지 너도 궁금하지?”
멸천제는 자기 공격이 막혔다는 사실에 놀랐다.
반면에 기수는 어느 정도 자신감을 회복하게 되었다.
손바닥이 망치에 찍힌 것처럼 아팠지만 막기는 분명히 막은 것이다.
기수는 입 안에 고여 있던 피를 퉤! 뱉고 입술을 핥았다.
흙냄새와 함께 약간 짭짜름한 피 맛이 그의 전투본능을 깨웠다.
“한 판 해보자!”
기수의 분광권이 제대로 발출되기 시작했다.
멸천제는 살짝 당황했지만 뒤로 물러서지 않고 맞섰다
진정한 힘 대 힘의 격돌!
기수는 이를 악물고 버텼지만 역시 멸천제의 각성상태 파워는 무시무시했다.
곧바로 밀리게 된 기수는 이번에 새로 익힌 멸절강기를 사용해 보았다.
3단전 중 중단전만 따로 운용하여 다가오는 멸천제에게 커터를 날렸다.
“윽!….”
멸천제의 걸음이 멈칫했다.
그리고 그의 뺨으로 피가 흘러내렸다.
기수의 기대와 달리 스푼 커터는 멸천제의 살과 뼈를 도려낸 게 아니라 광대뼈 위에 반달 모양의 상처를 내는데 그쳤을 뿐이었다.
“진짜 단단하구나.”
기수는 비록 적이지만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단정홍이나 파천강기, 멸절강기 등이 상성 때문이 아닌 단단함 때문에 파고들지 못한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멸천제는 냉소를 지었다.
“이것 말고 다른 재주도 있다면 지금 다 써봐라. 그래야 죽더라도 후회가 없을 테니까. 후후후….”
기수는 상대를 노려봤다.
‘화류의 태포련으로 속을 다 익혀버려도 그런 웃음이 나올까?’
그러나 운기법만 알 뿐, 연습도 못해 본 기술을 실전에 쓸 수는 없었다.
게다가 화류 태포련은 손을 대고 약간의 시간이 지나야 성공할 수 있는 기술이었다. 1초면 멸천제에게 10대도 더 맞을 시간이었다.
‘이놈을 이길 방법이 정말 없단 말인가?’
절망감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한꺼번에 솟아올랐다.
그리고 마음은 선풍비로 도망치기를 요구했다.
시간을 끌면 최종적으로는 자기가 이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기 싫었다.
각성상태인 멸천제를 꼭 꺾고 싶었다.
자기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똥고집이지만 여기서 등을 보인다면 사도들의 주군이라는 자와는 어떻게 싸울까 싶었다.
사도 11명을 다 죽여도 마지막에 버티는 그 끝판왕을 넘어서지 못하면 결국 엄마를 만나러 갈 수는 없는 것이다.
“오냐! 좋다. 싸워보자!”
기수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내공을 끌어올리자 멸천제가 웃었다.
“하하하! 네놈이 제법 기개가 있다는 사실만큼은 인정해주마.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승패가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기수는 정신을 집중했다.
‘시간을 끌수록 유리하다는 생각부터 버려야 한다. 바로 그 생각이 나를 약하게 만드는 거야. 좀 더 절박한 심정으로 싸워야 돼.’
퇴로는 없다고 마음을 고쳐먹자 뭔가 새로운 의지가 솟아나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머릿속이 맑아지면서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놈은 지금 엄청나게 단단한 갑옷을 입은 거나 마찬가지야. 단정홍도 뚫고 들어가지 못할 정도지. 하지만 속은 어떨까? 화류의 태포련이라면 익혀버리는데 문제가 없을 거야. 그건 암경이나 진기를 유형화한 공격과 달리 열을 전달하는 거니까. 그렇다면 다른 물리에너지를 쓰는 방식도 통하지 않을까?’
공격법에 대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기수는 주먹을 풀고 양손을 장(掌) 형태로 바꾸었다.
상대의 단단한 갑옷을 단순히 가격하는 게 아니라 파동에너지를 전달해서 갑옷 너머에 내상을 유도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기수는 그런 방식의 가격방법을 따로 익힌 적이 없었다.
하지만 무학을 두루 공부했기 때문에 기본원리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다.
그리고 북궁천에게 흡정공을 배울 당시를 떠올려보면 손바닥이 상대의 몸에 닿았을 때 파동을 만들어내는 게 크게 어려울 것 같지는 않았다.
멸천제는 느긋한 걸음걸이로 다가오다가 갑자기 돌진하며 주먹을 날렸다.
기수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분광권 중 가장 유연하고 부드러운 초식들을 동원하여 충격을 완화시키며 상대의 팔에 손바닥을 갖다댔다.
워낙 짧은 순간 초식 격돌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파동을 전달한다는 게 뜻대로 되지 않았다. 게다가 멸천제의 파워는 여전히 무시무시했다.
“으으….”
“크하하하! 포기해라. 그러면 편안해질 것이다.”
기수는 이를 악물고 버텼다. 부딪힐 때마다 팔이 부러질 것 같았지만 끝까지 견디며 상대의 갑옷 너머에 충격을 전달하려고 애썼다.
한 순간. 손바닥에 전율이 느껴졌다.
어떻게 된 건지 확실치는 않지만 뭔가 파동을 보냈는데, 그게 메아리처럼 되돌아 와서 장심을 자극한 것이다.
‘돼, 됐다!’
기수는 그 느낌을 잊지 않으려고 집중하면서 반복 시험해 보았다.
횟수가 거듭될수록 그 감각은 익숙해졌다.
동시에 멸천제의 안색은 굳기 시작했다.
두 팔에서 이해할 수 없는 통증이 전해져 왔기 때문이다.
그는 시간이 자기 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거기에 더해서 상대의 수법이 뭔가 심상치 않은 문제를 야기시키자 두려움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분명 자신이 우위에 있지만 속 시원하게 승부를 결정짓지는 못하는 상황.
처음엔 억지로 꾸역꾸역 버텨내는 상대가 가소로웠지만 이젠 겁이 날 지경이었다.
멸천제는 눈을 빛내며 한 두 걸음씩 뒤로 물러섰다.
기수는 자기 공격이 효과를 내기 시작했다는 생각에 공세를 강화했다.
그러나 그것은 멸천제의 유인책이었다.
한순간. 그의 전신이 화살처럼 튕기면서 손이 아닌 몸으로 강력하게 들이받아 왔다.
“씨발!”
기수는 상황을 알아차리고 황급히 피하려 했지만 간격이 너무 좁았다.
트럭에 치이는 것 같은 통증과 함께 그의 몸은 공중에 뜨고 말았다.
‘위험해!’
멸천제의 공격이 이어질 것을 안 기수는 황급히 멸절강기막을 펼쳤다.
그가 아는 한 가장 밀폐력이 강한 방어체계였다.
그러나 멸천제는 개의치 않고 주먹을 날리고, 무릎으로 찍고, 발로 밟았다.
“크으윽….!”
기수는 극심한 고통에 신음을 흘렸다.
강기막은 찢어지지 않았지만 충격을 100% 막아내지도 못했다.
풍선 안에 들어가 있긴 하지만 외부에서 때리는 매는 고스란히 다 맞는 느낌.
그만큼 멸천제의 파워는 무시무시했다.
기수는 약해지려는 자신을 다잡았다.
“맞는 게 뭐 어때서? 뼈만 부러지지만 않으면 되지! 쫄지 마!”
일부러 큰소리로 외치며 최대한 빨리 균형을 잡고 착지하려고 했다.
막상 마음을 강하게 먹고 보니까 강기막이 나름 충격 완화 역할을 해서 치명타는 면하게 해주고 있었다.
두 발을 땅에 디딘 기수는 곧바로 강기막을 풀고 쌍장을 번갈아 휘둘러 멸천제와 맞서 싸웠다.
멸천제는 기수의 그런 태도에 질려버리고 말았다.
분명 자신이 더 강한데, 싸우면 죽을 게 뻔한데, 그런데도 상대는 도전을 멈추지 않는 것이다.
“넌 바보냐? 아니면 미친 거냐?”
기수는 마음이 시키는 그대로 여과 없이 대답했다.
“조까! 이 개새끼야! 그딴 건 알아서 뭐 하려고?”
지금 기수의 심정은 이거니 저거니 재보거나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무조건 멸천제를 때려죽이겠다는, 오로지 그 한 마음뿐이었다.
지금까지 맞은 게 억울해서도 절대로 물러설 수 없었다.
물러설 수 없기는 멸천제도 마찬가지였다.
서로 목숨 걸고 벌이는 난타전.
누가 봐도 기수가 불리한 상황.
멍이 들고, 부어오르고, 살이 찢어져 피가 튀었지만 기수는 계속 달려들었다.
이젠 멸천제의 각성상태가 언제 끝날지 따위는 관심도 없었다.
‘한 대 맞으면 나도 한 대 때린다.’
단순하기 이를 데 없는 본능이 그의 팔을 뻗게 만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싸움은 종국을 향해 갔다.
“헉… 헉…. 도대체 너는….”
멸천제의 호흡이 눈에 띄게 거칠어졌다.
각성 상태가 풀린 게 아니라 기수의 파동 실린 타격이 누적되면서 폐와 심장의 기능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기수는 그의 상태를 알아차렸다.
“후후…. 부드러운 건 휘지만 단단한 건 부러지기 마련이지.”
그는 아까처럼 당하지 않기 위해 신중하게 간격을 유지하면서 난타전을 이어갔다.
그리고 마침내 멸천제의 무릎이 꺾였다.
“헉헉!…. 이, 이럴 수는 없다… 헉헉!….”
기수는 손을 멈추고 그에게 한 발 다가섰다.
“숨 쉬기 괴롭지? 지금쯤 폐가 박살났을 테니…”
“헉헉…. 내가 죽더라도 네놈만은….”
“후후…. 포기해라. 그게 가능했다면 지금까지 왔겠느냐?”
기수는 검지를 들어 멸천제의 이마를 겨냥한 후 파천강기 헤드샷을 날려주었다.
퍽! 소리와 함께 구멍이 뚫리며 그의 몸이 무너져 내렸다.
내부가 다 망가지면서 더 이상 파천강기를 막아낼 내공이 남지 않게 되었던 것이다.
마침내 멸천제를 쓰러트린 기수는 고개를 젖히고 하늘을 향해 장소성을 토했다.
“으아아아!………..”
사도를 이긴 희열뿐만 아니라 강적과 맞서 끝까지 싸운 자신에 대한 자부심 때문에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길게 이어지던 장소성을 그친 기수는 그 자리에 벌렁, 큰댓자로 드러누웠다.
긴장이 풀리자 온몸에서 통증이 전해져 왔다.
그러나 기분은 더할 나위 없이 좋아서 자꾸 웃음이 나왔다.
“하하하!…. 이렇게 많이 맞아본 것도 처음이군. 하하하!….”
그는 한참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단전이 텅 비어버린 건 아닌가 싶을 정도로 탈진한 상태라 손가락 하나 까닥이기도 싫었고, 온몸 안 아픈 곳이 없어서 오히려 몸이 자기 몸이 아닌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기수는 그런 와중에도 자신이 멸천제를 쓰러트린 수법에 대해 다시금 천천히 복기를 했다. 그리고 그 느낌이 확실히 기억해 두었다.
“아! 세상에 이런 천재가 또 있을까?”
강적과 싸우는 도중에 무공을 창안하다니.
정말 자신이 두렵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렇게 자아도취해 있는게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 그냥 갈까?]
신이었다.
[하핫! 그럼 섭섭하죠. 평소엔 내가 죽을 위험에 처해도 끝까지 코빼기도 안 비치는 분이 약속된 만남에서 그냥 가셔서야 되나요.]
[수고했다. 벌써 여덟 번째니 이제 네 명이 남았을 뿐이구나. 정말 대단하다!]
[저 같은 천재를 찾아낸 신의 안목도 대단하다고 해야겠죠. 하하하!…]
[천재라는 건 잘 모르겠지만, 겸손하지 못하다는 건 확실히 알겠다.]
[그런데… 당신이 진짜로 내 주변 사람들을 안배해주는 겁니까?]
[나는 상황을 만들어줄 뿐이고, 그 안에서 세부적인 선택은 모두 네가 하는 것이다.]
[나는 합비의 제자가 되어야 하는 겁니까?]
이번 멸천제와의 대결을 통해서 강함에 대한 갈증이 어느 때보다 강해졌다고 할 수 있었다.
지금 주변에서 자신을 강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가장 유력한 고수는 합비였다.
신이 대답했다.
[아까도 말하지 않았느냐. 선택은 너의 몫이다.]
기수는 입맛을 다셨다.
[자유냐 강함이냐. 그 두 가지 선택밖에 없다는 건 좀 너무하지 않습니까? 사지선다형 정도는 되어야죠.]
[맞출 확률은 더 낮아지는데?]
[전 정말 중요한 일을 하고 있으니까 정답을 좀 가르쳐 주십시오. 어떤 쪽을 택해야 저도 좋고, 신님도 좋고, 합비 어르신도 좋은 윈-윈-윈이 될까요?]
[정답 같은 것은 없다. 네가 선택한 바에 따라 운명은 결정될 것이다. 그 선택의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바로 인생이다.]
[아 놔… 교과서 읽는 것 같은 얘기 말고, 진짜 도움 될 말씀을 해주십시오.]
[진짜 도움 될 말이다. 자기가 책임지지 않고 선택을 남에게 맡기는 마음가짐이라면, 만약 내가 제자가 되라고 해도 나중에 불만을 가질 것이고, 되지 말라고 해도 마찬가지로 불만을 가질 것이다. 그것은 운명의 문제가 아니라 너의 문제다.]
기수는 뭔가 맞는 말 같아서 대꾸를 할 수 없었다.
[이제 난 가도 되겠느냐?]
[워! 워! 워! 웨이러미닛! 진짜 질문은 아직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게 무엇이냐?]
기수는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