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hwa Manri RAW novel - Chapter 345
기수는 신에게 물었다.
[이제까지 제압한 여덟 명의 사도들을 보면 녹림72채, 삼황맹, 장강수로맹에 2명, 동창, 일월신교, 개방, 그리고 천마교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실력은 충분하지만 우두머리 자리는 피해서 말입니다.]
[그랬지.]
[도대체 저놈들 목적이 뭡니까? 왜 무림맹과 삼황맹, 그리고 동창과 마교에 모두 사람을 배치해놓은 겁니까?]
서로 적대적인 조직에 사람들을 넣어 놓으면 맞붙었을 때 어느 편을 위해 싸우란 말인가. 심지어는 서로 맞서는 경우도 생길 수 있지 않은가.
신이 잠시 시간을 두고 대답했다.
[서로 싸우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렇다면 무림맹이나 사마연합 중 한 쪽에 사도들을 집중 배치해야 쉽게 이길 수 있지 않습니까?]
[그렇게 하면 싸움이 쉽게 끝나버리겠지.]
[그게 무슨 뜻입니까?]
[승리가 아니라 싸움 자체가 목적이란 뜻이지.]
기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쉽게 이길 수 있는 방법을 놔두고, 양쪽에 모두 사람을 넣어서 일부러 오래 싸우도록 한단 말입니까? 왜 그런 멍청한 짓을…]
[혼란을 원하기 때문이다.]
[혼란이라면…. 난세 말입니까? 그게 뭐가 좋다고…]
[신들은 저마다 힘을 얻는 방식이 다르다. 인간의 고통과 절망에서 에너지를 얻는 신도 있지.]
기수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렇다면 그건 마신이라고 해야 맞을 텐데….]
[네가 어느 편에 서서 싸우는지 이제 알겠느냐?]
[내가 정의의 편이라는 건 처음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물론 방금 알게 된 사실이고,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원래 기본이 바른생활 사나이이다 보니까 마신 쪽에 서는 것은 아무래도 체질 상 잘 안 맞을 것 같았다.
신이 말했다.
[어떠냐? 돔 더 의욕이 생기지 않느냐?]
기수는 피식 웃었다.
[당신의 적인데 왜 내가 의욕이 생겨야 합니까?]
[말을 꼭 그런 식으로 해야겠느냐?]
약간 기분이 상한 목소리였다.
그러나 기수는 신경 쓰지 않았다.
애당초 자기 동의도 없이 이곳에 데려오지 않았던가.
정말 자신에게 숨겨진 능력이 있어서 스카웃된 거라면, 상대편 마신이 먼저 픽업했을 가능성도 있었다.
그들의 대결구도는 저희들끼리 알아서 해결하라고 하고, 자기는 조건을 충족시킨 후 집으로 돌아가면 그뿐인 것이다.
기수에게 의욕을 불러일으킬 요인이라면 마신의 야욕을 분쇄한다는 명분보다는 시공간 넘나드는 기술 혹은 마법을 배운다는 점이 더 현실적 욕구를 자극했다.
기수가 신에게 말했다.
[뭔가 좀 현실적이고 직접적인 도움이 될 만 한 팁 좀 주십시오. 오행류보다 더 뛰어난 무공을 배울 수 있는 방법이라던지…]
[그런 것은 없다.]
[그렇게 말씀하실 줄 알았습니다.]
[나 간다.]
[멀리 안 나갑니다.]
신이 간다고 해도 별로 아쉽지도 않았다.
마음속이 잠잠해진 뒤에도 기수는 멍하니 밤하늘을 보며 누워있었다.
상당한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사지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멸천제와의 싸움이 그를 탈진 상태로 이끈 것이다.
기수는 긴 한숨을 내쉰 후 중얼거렸다.
“휴우….! 난세를 원하는 마신이라…. 사람의 고통과 절망에서 에너지를 얻는다고?”
정말 나쁜 새끼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무림의 유력한 여러 문파에 사도들을 심어놓은 걸 보면 상당히 오랜 기간 치밀하게 준비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최종적으로는 난세를 막고 평화를 찾아야 승리하는 건가?’
기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자기가 그것까지 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되었다.
그것은 신의 승리조건.
자신의 승리조건은 사도 12명을 다 죽이는 것이었다.
그때, 달 위로 뭔가 검은 그림자가 휙! 지나간 것 같았다.
‘뭐지? 샌가? 비행기? 아니면 슈퍼맨?’
그런 생각을 하며 피식 웃는데 가슴이 뜨끔했다.
“헉!…”
기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황당하게도 점혈을 당하고 만 것이다.
바로 옆에서 탁한 남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넌 누구냐?”
달빛 아래 드러난 검은 그림자는 건장한 사내의 모습이었다.
‘이놈은 뭐지? 어째서 이렇게 가까이 오도록 내가 감지하지 못했지?’
소름이 쫙 끼쳤다.
멸천제와 싸우면서 온몸이 상처투성이에 멍투성이가 되고, 진기도 바닥나기는 했지만 이렇게 허망하게 당했다는 사실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사내는 기수를 놔둔 채 주변을 둘러봤다.
그리고 다시 기수에게 다가와 물었다.
“천제님을 해친 자가 누구냐? 너냐?”
그의 목소리는 격정적으로 떨리고 있었다.
기수는 비로소 그의 옷차림을 확인할 수 있었다.
등활, 흑승과 같은 것으로 보아 멸천제 휘하의 마령임이 분명했다.
“내가 한 짓이 아니오! 범인은 따로 있소!”
일단 시치미를 뗄 수밖에 없었다.
마령은 기수의 말을 믿지 않는 눈치였다.
“네놈이 아니면 누가 저런 짓을 저질렀단 말이냐?”
“나도 그자의 이름은 모릅니다. 웬 키 크고 잘 생긴 청년이 길을 막더니 다짜고짜 기습을 했습니다.”
“기습을 당했다고?”
“그렇습니다.”
“천제님이 고작 청년 한 명에게 당했다고? 흑승과 등활이 함께 있었는데?”
사내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보시다시피 나는 제일 먼저 당해서 이제까지 혼절한 상태로 있었기 때문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혀 보지 못했습니다.”
“조금 전에 장소성을 터뜨린 사람이 네가 아니란 말이냐?”
기수는 그가 멸천제를 마중 나왔다가 자기가 승리한 후 내지른 장소성을 듣고 여기까지 찾아왔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었다.
무공의 깊이, 특히 은밀하게 접근한 수법으로 짐작하건데 먼저 죽은 두 마령보다는 좀 더 고수라는 생각이 들었다.
‘암살이나 잠입 스페셜리스트인가?’
어쨌거나 점혈당한 지금의 위기를 벗어나는 게 급선무였다.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난 같은 편입니다. 암천제님의 동생 자영소저라고 아시겠지요? 난 그녀의 호위입니다.”
“흥! 어이가 없구나.”
기수는 상대의 반응에 당황했다.
“왜 내 말을 못 믿으십니까?”
“자영소저는 미혼인데 왜 남자를 호위로 삼는단 말이냐? 그리고 지금 여기에 자용소저가 온 것도 아닌데 네가 왜 있단 말이냐?”
“그것은 멸천제님이….”
기수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가 지적한 두 가지가 모두 극히 상식적인 의문이기 때문이었다.
“사람을 보내서 제 말을 확인해 보십시오. 분명한 사실이란 걸 알게 될 것입니다. 저는 건곤방 출신으로 이름은 양명, 혹은 양십삼이라고 합니다. 양팔에 붕대를 감고 있는 자영소저의 호위라고 하면 금방 확인이 될 것입니다.”
공연히 말싸움을 할 필요가 없었다.
사내는 기수를 빤히 내려다보다가 고개를 돌려 휘파람을 불었다.
그러자 얼마간 시간이 지난 뒤 사람들이 몰려왔다.
천마교 교도들이었다.
그들은 세 구의 시신을 보고 크게 놀랐다.
개중엔 울부짖는 자들도 있었다.
사내가 그들에게 명령했다.
“천제님과 두 마령을 본진으로 모셔라. 그리고 이 자도 데려다가 일단 수갑과 족쇄로 묶어두어라.”
기수는 번쩍 들려 멸천제 진영으로 끌려가는 신세가 되었다.
그러나 두려움은 처음에 비해 많이 가셨다.
지난번 동창에 잡혔을 때와는 달리, 같은 천마교 사람들이니까 사실 관계만 확인되면 곧 풀려날 것이기 때문이었다.
멸천제의 군영은 큰 혼란에 휩싸였다.
작전회의에 갔던 수장이 주검이 되어 돌아왔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현장을 발견한 마령 초열은 우선 교주와 다른 두 천제에게 보고를 하도록 전령을 보내는 한편 전체 병력이 동요하지 않도록 엄중한 경계 강화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곧바로 기수를 심문하러 갔다.
가장 궁금한 점은 천하의 멸천제를 도대체 누가, 왜 죽였느냐 하는 것이었다.
“양명이라고?”
“그렇습니다.”
초열의 어조는 처음에 비해 많이 누그러져 있었다.
밝은 곳에서 보니까 기수의 옷차림이 암천제 진영 마령들과 같았기 때문이다.
“네가 본 것을 모두 말해봐라. 하나도 빠짐없이.”
기수는 수갑과 족쇄에 차례로 시선을 주었다.
“우선 이것부터 좀 풀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확인될 때까지 기다려라. 곧 전령이 돌아올 것이다. 그보다 상황을…”
“천제님과 두 마령을 따라 이리 오던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어둠 속에서 누군가 튀어나와서는 생전 듣도 보도 못한 무공으로 무차별적인 공격을 가해 왔습니다. 저는 어떻게든 천제님을 지키기 위해서….”
“웃기지 마라. 천제님은 남에게 호위를 받을 분이 아니다.”
“어쨌거나… 그 괴인이 열 손가락을 쫙 펼쳐서 저를 향해 내밀었는데, 마치 주먹과 발길에 맞은 것처럼 온몸이 아파서 쓰러졌고, 그대로 기절하고 말았습니다.”
초열은 기수의 온몸에 난 타박상의 흔적을 살핀 후 다시 물었다.
“그 자의 인상착의는?”
“나이는 20대 중반. 큰 키에 균형 잡힌 체형, 근육 빵빵한 두 팔과 상체. 얼굴은 송옥과 반안도 울고 갈 정도로 미남자이면서 동시에 짙은 눈썹 아래 두 눈은 가을하늘 같은 맑은 기상과 심모원려한 지혜를 겸비하고 있었습니다.”
초열은 인상을 일그러뜨렸다.
“제대로 못 봤다면서.”
“얼핏 봤으니까 그 정도지. 자세히 봤다면 같은 남자끼리도 반했을 겁니다.”
초열의 인상이 더욱 험악해졌다.
“너. 지금 장난 치냐?”
기수는 정색하고 대답했다.
“절대 아닙니다! 물어보셔서 대답하는 것뿐입니다. 내가 왜 장난을 치겠습니까? 우리 천마교를 떠받치는 세 개의 기둥 중 하나가 부러진 이런 심각한 상황에 말입니다.”
물론 장난치는 것이었다.
‘너희들은 나한테 고맙다고 해야 돼. 멸천제는 애시당초 천마교를 위해 일하는 놈이 아니었거든. 오히려 너희들을 무림맹과의 전쟁으로 내몰아 지속적으로 고통과 절망을 느끼게 할 목적이었단 말야.’
이번 기회에 무림맹 공격도 취소되고 싸움도 끝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무림맹과 마교는 오랜 세월 적으로 지내온 사이인 데다, 최근에 원한이 더욱 깊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누군가가 배후에서 일을 꾸민다는 얘기를 들으면 마음을 돌릴지 모르는 일이었다.
초열이 다시 물었다.
“그 밖에 기억나는 게 있으면 말해봐라.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글쎄요….. 제가 기절에서 막 깨어날 즈음에….”
“즈음에…?”
“제갈 누구라던가…. 안배라던가… 하여간 그런 소리를 들었던 것 같습니다.”
“제갈이라고? 분명하냐?”
“정신이 혼미해서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제갈이란 두 자를 들은 건 확실합니다.”
“제갈세가에서 감히 천제님을 노릴 리가 없지 않느냐!”
“그래서 저도 처음에 말씀드리지 않은 겁니다. 앞뒤가 맞지 않아서요.”
“흐음….!”
초열의 표정이 심각해지는 것을 보고 기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후후후!… 넌 고민할 필요 없어. 그냥 보고만 해.’
누군가 배후에서 난세를 불러오고 있다고 생각하니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삼황맹을 중원으로 끌어들인 제갈세가였다.
그들 중에 사도는 없었지만, 마신을 위해 일하고 있을 가능성은 아주 컸다.
이번 기회에 마교 안에 제갈세가에 대한 의심의 씨앗을 뿌려 놓으면 안 그래도 신뢰가 깊지 않은 양측 진영의 거리를 더 벌릴 수 있을 것이고, 마신의 난세 프로젝트는 한 단계 더 후퇴할 게 분명했다.
무림맹이 사마연합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면 자기는 편한 마음으로 사공명을 잡으러 다닐 수 있었다.
멸천제와의 대결을 통해 얻은 자신감이라면 굳이 오행류를 마스터하지 않고 현재 가진 기술들만 가지고도 이길 수 있을 것 같았다.
화류로 막고, 수류로 늦춘 뒤에 단정홍이나 새로 창안한 격산타우의 파동 전달 타격법으로 부채 너머를 치면 승산이 있는 것이다.
자영에게 배운 멸절강기와 음종간의 상성이 어떤지도 시험해보고 싶었다.
기수가 도전욕구를 불러일으키는 동안, 초열은 심각한 표정으로 한참동안 골똘히 생각하다 벌떡 일어섰다.
“네 신분이 확인될 때까지 조금만 더 기다려라.”
그 말을 남기고 그는 급히 나갔다.
기수가 보기에 보고서를 쓰러 가는 것 같았다.
‘그래. 잘 생각했어. 고민과 의심은 수뇌부들이 하면 되는 거야. 넌 천마교와 제갈세가가 갈라선 다음에 나한테 술이나 한 잔 사주면 되고. 크크크….’
점혈 당한 채 수갑과 족쇄까지 찼지만 기분은 마냥 좋았다.
그러나 전령의 도착을 기다리는 시간은 몹시 길고도 지루했다.
혼자 가만히 있다 보니 통증이 다시 밀려왔다.
그리고 멍하니 누워 있다가 허망하게 점혈당한 것에 대해 반성도 하게 되었다.
‘마령의 무공이 심상치 않았단 말야… 그렇다면…. 저 녀석도 주군이란 자에게 개인교습을 받은 거 아닐까?’
그 생각을 하자 가슴이 뛰었다.
‘염정구심술로 마령의 생각을 읽어내면 그 주군이란 자의 소재지를 찾아낼 수 있는 거잖아?’
만약 그렇게 된다면 이쪽에서 선수를 칠 수도 있는 것이다.
기수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애써 진정시키며 마령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