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hwa Manri RAW novel - Chapter 347
기수는 갑자기 나타난 두 명의 남자가 바로 자기가 찾는 사도의 패거리일 거라고 확신했다.
척 보는 순간 고수의 기도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 움직임도 경쾌하고 민첩했다.
‘내가 아까 진입을 시도했기 때문에 찾으러 나온 건가?’
그건 아닌 것 같았다.
둘이 시시덕거리면서 계곡을 따라 곧장 내려갔기 때문이다.
뭘 찾거나 두리번거리는 기색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기수는 조심스럽게 그들의 뒤를 밟았다.
그들을 추격하면 이 협곡과 연결된 또 다른 거점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두 사내는 바쁠 것 없는 걸음으로 산을 내려가며 시대와 문명을 초월한 남자들의 공통 화제를 얘기하고 있었다.
“정말이야! 털이 배꼽까지 올라왔더라니까.”
“그래? 그럼 엄청나게 밝혔겠는걸?”
“말도 마. 계속 조르더라고. 한잠도 못 잤다니까.”
“하하!… 오늘은 내가 한 번 지명해봐야겠는걸.”
“아서. 허리 부러질라.”
“무슨 소리야? 정력이라면 자네보단 내가 한참 위지.”
“웃기고 있네.”
“내 말 못 믿어? 좋아. 그럼 걔한테 물어보면 되겠네. 점수가 딱! 나올 거 아냐.”
“내기할까?”
기수는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코웃음을 쳤다.
‘아저씨들. 털의 길이나 양, 분포 형태는 유전일 뿐이고 여성의 성적 성향과는 관계가 없습니다요. 내 다년간의 경험을 통해 보장하는 바입니다. 후후후….’
두 남자는 계속 그 기녀인지 창녀인지 얘기를 했다.
뒤를 따르던 기수는 문득 자기 생각에 의문을 품게 되었다.
‘그런데 내가 정말 그런 얘기를 자신 있게 할 정도로 여자 경험이 많은가?’
물론 현대에 살던 당시와 지금 중원 무림의 관계를 따지자면 양과 질 면에서 하늘과 땅 차이. 비교조차 되지 않았다.
그러나 모두 합해봐야 100명도 안 되는 일천한 경험.
캐주얼하게 만나고 헤어지는 현대에서라면 사실 카사노바라는 명함을 내밀기 부끄러운 숫자였다.
‘100명이 뭐냐. 50명도 안 되는 거 같은데?’
그러고 보면 자기는 참 일편단심이랄까, 소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주일에 3번 클럽에 가서 원나잇 스탠드를 하는 삶을 1년만 하면 한 150번의 기회는 채울 수 있을 것 같았다.
‘현대로 돌아가면 꼭 해봐야지!’
얼굴은 그대로지만 예전에 비하면 체형도 변했고, 키도 좀 커졌고(성장판이 닫힌 줄 알았는데, 탈태환골 하면서 달라졌다), 피부도 공청석유로 씻어서 매끄러워졌고, 특히 염정구심술로 심리를 훤히 꿰뚫게 되었으니 모텔까지 데려가는 건 아주 쉬울 것 같았다.
그리고 일단 모텔에 간 다음엔 어떤 여자건 천국에 보낼 자신이 있었다.
‘가만있어 봐… 주 5일 근무하면 1년에 250명도 가능한 거잖아?’
남자라면 꿈을 크게 가져야 한다는 말이 생각났다.
그리고 세상은 넓고 여자는 많은데 자신의 ‘좁은’ 경험으로 너무 쉽게 단정 짓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 난 아직 멀었어. 좀 더 분발하자!’
사실, 털 많은 여자가 더 밝힌다는 속설이 어쩌면 맞을 수도 있었다.
기수가 이제까지 경험한 여인들도 그 양과 길이와 분표 형태는 다들 제각각이었다.
그러나 그들 중 누구도 심하게 밝힌다는 느낌이 없었던 것은, 그녀들의 요구를 늘 100% 이상 충족시켜주고도 남았기 때문이다.
혈매궁의 여섯 사매와 동시에 링(침대)에 올라도 다운되지 않고 남아 있는 사람은 늘 자기뿐이었는데 여자들 중 누가 더 밝히고 덜 밝히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다음엔 좀 더 자세히 관찰해 봐야지.’
그렇게 앞선 두 사람과 뒤 따르는 한 사람이 모두 여자 생각에 골몰해 있는데, 뜻밖의 변수가 발생했다.
앞서 가던 남자가 신음을 토하며 쓰러진 것이다.
“으윽!….”
“이, 이봐! 왜 그래?”
“도, 독침….”
사내는 목을 감싸 쥐며 그 한 마디만 겨우 내뱉었다.
두 번째 사내는 급히 검을 뽑아들고 사방을 경계했다.
“웬 놈이냐! 모습을 보여라!”
기수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자기가 알아차리지 못한 적이 암습에 성공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기수는 여자 생각을 모두 걷어버리고 전방에 집중했다.
그러자 미약한 기도가 감지되었다.
‘저기 숨어 있구나!’
그러나 검을 뽑아든 사내는 암중인의 존재를 여전히 모르는 것 같았다.
그때, 극히 미약한 파공음과 함께 바늘 모양의 암기 서너 개가 날아왔고, 그는 검을 휘둘러 그것들을 쳐내면서 비로소 암중인의 위치를 감지해냈다.
“감히 우리를 공격하다니! 죽고 싶어 환장했구나!”
그가 몸을 날리며 검을 휘두르자 암중인도 모습을 드러냈다.
온몸에 헐렁한 검정색 야행복을 걸친 데다 복면까지 써서 눈만 보이는 괴인은 양손에 반달 모양의 칼을 뽑아들고 상대의 검을 막았다.
기수는 그의 움직임에 탄성을 토했다.
‘대단한데?’
괴인은 두 자루 반월도를 뒤쪽으로 잡아서 칼날이 팔꿈치 쪽으로 삐져나오도록 했다.
그 상태로 민첩하게 상대의 몸 주변을 돌면서 자신의 몸을 회전시키는, 특이한 접근전을 펼쳤다.
검을 든 사내의 무공은 뛰어났다.
그러나 괴인의 초식들이 워낙 기괴하고 변화막측하니까 제대로 대응하기 어려웠다.
결국, 반월도가 겨드랑이와 가슴에 연달아 긴 상처를 남겼고, 사내는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고 말았다.
“으아악!…..”
기수는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아! 죽이면 안 되는데…”
모처럼 길잡이 해 줄 사람을 만나 따라왔는데 괴인이 둘 다 죽여 버렸으니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순간, 괴인이 고개를 홱 돌리더니 곧장 기수를 향해 달려왔다.
기척을 알아차린 것이다.
기수는 즉시 칼을 뽑아 들고 상대와 맞섰다.
두 자루 반월도의 회전은 기수도 대적하기 만만치 않았다. 어딘가 이질적인 괴초와 기초들이 조합되어서 전혀 예측할 수 없는 각도로 그어왔다.
게다가 저자 대장간에서 산 박도의 칼날이 금세 이가 빠질 정도로 단단하고 예리한 무기이기도 했다.
기수는 위기감을 느끼고 정신을 바짝 차렸다.
‘지금 내 상태로는 당할지도 모른다!’
그는 상대의 움직임과 같은 방향으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민첩한 선풍비와 선풍보를 통해 파고드는 각도로부터 벗어나자 괴인의 공격은 위력을 잃기 시작했다.
그러자 순간, 그의 초식이 일변했다.
뒤를 향하도록 잡았던 두 자루 반월도가 앞으로 확 튀어나오는가 싶더니 기수의 박도를 단숨에 부러뜨려버렸다.
당황한 기수는 괴인에게 파천강기를 날리기 위해 왼손 검지에 진기를 모았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상대와 눈이 마주쳤다.
쌍꺼풀이 짙은 눈.
기수는 순식간에 괴인의 골반과 가슴을 체크했다.
‘여자잖아?’
파천강기 대신 잔백지 지풍이 발출되었다.
그러나 상대의 반월도가 완강히 저항하는 바람에 수십 번의 공격을 펼친 뒤에야 겨우 점혈을 할 수 있었다.
괴 여인은 마혈을 눌려 쓰러지면서도 신음조차 뱉지 않았다.
기수는 부러진 박도를 버리고 그녀를 내려다봤다.
미지의 적에게 파천강기 대신 잔백지를 쓴 것은 상대가 여자라서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적의 적은 친구일 수도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기수는 우선 그녀의 복면을 벗겼다.
까만 곱슬머리가 확 풀리며 흩어졌다.
기수는 조심스럽게 그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 넘겨보았다.
자신을 노려보는 강렬한 눈빛.
마치 한 마리 맹수 같았다.
그러나 얼굴은 전체적으로 아름답기 짝이 없었다.
나이는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사이. 그리고 어딘가 이국적인 생김새였다. 백인이라고 해야 할 흰 피부, 깊게 쑥 들어간 눈, 뾰족하게 날 선 콧등, 육감적인 입술…
‘유럽 쪽은 아니고…. 중동인가? 인도?’
중동이나 인도라고 보기엔 피부가 너무 밝았다.
‘이란인가? 아니면 무슨 스탄, 무슨 스탄 하는 그쪽인가?’
기수는 궁금증을 참을 수 없었다.
“이봐. 너. 벙어리는 아니지? 네가 누군지, 저들을 왜 죽였는지 얘기해 봐.”
여인은 대답 없이 기수를 노려볼 뿐이었다.
기수는 혹시 자기가 혈을 잘못 눌렀나 싶어서 그녀 팔을 잡아당겨 완맥을 짚어 보았다. 그러면서 침을 꿀꺽 삼켰다.
야행복 안에 감춰진 몸매가 자기도 모르게 파악되었기 때문이다.
‘죽인다!’
키에 비해 다리가 긴, 그러면서도 허리는 잘록하고 골반과 가슴은 잘 발달된, 중원에서 보기 드문 체형이었다.
기수는 머리를 좌우로 흔들어 딴생각을 털어버린 후 다시 물었다.
“진기 흐름엔 이상이 없는데 왜 대답을 하지 않는 거지?”
그래도 아무 말이 없자 결국 기수는 염정구심술을 통해 호기심을 풀었다.
‘뭐야? 완전 쫄아 있잖아?’
그녀는 계속 매서운 눈초리로 기수를 노려보고 있지만 속마음은 가녀린 소녀에 불과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능욕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기수에게 다행인 점은 그런 생각들이 모두 한어라는 사실이었다.
‘생긴 건 서역 쪽인데 속은 한인이네. 여기서 나고 자랐나?’
기수는 그녀에게 질문을 던진 후 속마음을 읽어보았다.
“왜 대답을 하지 않는 거지?”
그녀의 생각은 기수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가족 이외의 남자와는 말해선 안 된다고? 무슨 이런 황당한 가정교육을 받았지?’
기수는 그녀의 가슴 쪽으로 손을 뻗었다.
정말 만지려는 건 절대로 아니고 ‘네가 이래도 입을 다물고 있나 보자.’는 심정으로 테스트를 해보는 것이었다.
그러자 여인은 놀라고 겁먹은 표정을 짓더니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
기수는 깜짝 놀라서 얼른 손을 거두어들였다.
“어! 미안. 울릴 의도는 아니었어. 겁먹지 마. 나 나쁜 사람 아냐. 특히 여자를 힘으로 취하는 남자를 증오하는 사람이라고. 아! 참…”
기수는 역용술을 풀어 본래 얼굴을 보여주며 말을 이었다.
“이게 내 진짜 얼굴이야. 어때? 거짓말 할 사람으로 안 보이지?”
여인은 기수의 얼굴을 한 번 보고는 다시 외면하고 눈물을 흘렸다.
기수는 어떻게든 그녀를 달래고 싶었다.
“진짜야. 믿어 줘. 아투사. 난 네 적이 아니라고.”
그러자 여인이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어, 어떻게 내 이름을 알죠?”
“아하! 드디어 입을 열었군. 목소리도 예쁜데?”
“당신. 어떻게 내 이름을 알죠? 당신 마법사인가요?”
“하하! 진정해. 난 약간의 독심술을 할 뿐이야. 마법 같은 건 몰라.”
“독심술? 당신은… 어느 편인가요?”
이제 대화가 된다 싶어서 기수는 씩 웃었다.
“정사 양도 중 어느 쪽인가를 묻는 거라면 답이 없어.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협곡에서 나온 저 두 사람. 그들과는 적이라는 거야. 너도 그런 것 같은데… 맞나?”
아투사란 이름을 가진 여인은 기수를 빤히 봤다.
속눈썹이 길어서 눈물 머금은 모습이 더욱 애처로웠다.
“당신이 저들의 적이라고요?”
“그래. 인사가 늦었군. 내 이름은 기수. 헉! 아니…. 내 이름은 양십오! 아니… 내 이름은 양이야. 형제 중에 둘째지.”
자기라고 해도 믿지 않을 것 같았다.
여자가 예쁘다고 해도 자영이나 혈천제 정도에 불과한데 너무 당황하는 것 같았다.
‘내가 왜 이러지? 진짜 얼굴도 보여주고, 본명도 대고….’
아무래도 단순히 예쁜 게 아니라 이국적으로 예뻐서 그런 것 같았다.
아투사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기수양십오양이라는 이름을 가진 당신. 저들과는 어떤 식으로 적인 거죠?”
“그러니까…. 내가 반드시 죽여야 하는 원수 집단이 있는데 그들의 근거지가 바로 저 협곡 안이야. 그러니까 거기서 나오는 놈들은 다 내 적이지. 너는 저들과 무슨 원한이 있는지 얘기해 봐.”
아투사가 살짝 찡그리며 말했다.
“날 계속 이 상태로 두고 얘기할 건가요?”
“미안해. 하지만 네가 저들과 어떤 관계인지 확인하기 전에는 풀어줄 수 없어. 독침에, 쌍칼에, 이상한 초식에…. 감당하기 버겁단 말야.”
“허리가 돌에 눌려서 아파요.”
“그래? 그렇다면야…”
기수는 그녀를 번쩍 안아 들었다.
편한 자리로 옮겨주려고 아무 생각없이 한 행동인데, 막상 안고 보니까 기분이 묘했다. 아투사도 볼이 붉어졌다.
“무, 무슨 짓이에요!”
“어허! 난 아무 생각 없으니까 괜히 과민반응 하지 마. 방금 전까지 서로를 죽이려고 칼질하던 사이에 이러는 것쯤 뭐 대수라고.”
아투사는 기수를 외면한 채 잠자코 있었다.
기수는 나뭇잎이 쌓인 푹신한 자리를 찾아 그녀를 내려놓고 말했다.
“자… 왜 저들을 죽였는지 얘기해 봐.”
“나는….”
그녀는 뭔가 걸리는 게 있는지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기수가 으름장을 놓았다.
“내겐 그 무엇도 숨기거나 속일 수 없어. 내 독심술의 실력은 아까 확인했으니까 잘 알겠지? 공연히 진기 소모하게 만들지 말고 순순히 얘기해. 들어보고 이유가 타당하면 풀어주겠지만, 그게 아니면 나로서도 널 죽일 수밖에 없어.”
아투사가 흠칫 놀라며 말했다.
“안 돼요! 전 달성해야만 할 사명이 있어요! 살려주세요.”
“그러니까 얘기를 해보라고. 난 원래 누구를 죽이기보다는 되도록이면 살려주는 쪽을 택하거든.”
“자초지종을 전부 얘기하려면 너무나 긴 얘기에요.”
“그건 걱정 마. 다 들어줄게.”
기수는 원래 여자의 입이 말보다는 다른 쪽에 쓰여야 한다고 굳게 믿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아투사의 얘기라면 밤새라도 들어줄 수 있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