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hwa Manri RAW novel - Chapter 348
아투사는 조심스럽게 얘기를 시작했다.
“제 부모님은 원래 아사신파의 대사제 출신이세요. 알라무트 산성에서 산장로님의 특명을 받고 이곳 중원에 오셨고, 저를 낳으셨어요.”
“워! 워! 알라무트는 어디야?”
“아마 말씀드려도 모르실 거예요. 저도 얘기만 들었으니까요. 테헤란이란 도시 근처에 있다고 들었어요.”
“테헤란? 강남의 테헤란로? 아! 이란의 수도?”
“이란이요?”
“그러니까… 페르시아 말야. 맞지? 페르시아?”
“예. 당신 발음이 제 부모님 발음과 비슷해요. 어떻게 아시죠?”
“아! 그 나라 사람이구나.”
기수는 이란에 대해 알고 있는 모든 지식을 떠올렸다.
아투사에게 호감을 사고 싶었기 때문이다.
“머리에 터번 쓰고, 상술에 뛰어난 사람들이 사는 나라 맞지?”
“페르시아란 말은 고귀하다는 뜻이라고 배웠어요.”
“자존심 존나 센 사람들이기도 하고…”
기수는 미국과 맞서는 나라, 자기네 민족이 최고라는 자만심 교육 쩌는 나라라는 사실들도 기억해냈다.
“저는 이스파한 족 출신이라고 들었어요. 혹시 거기에 대해서도 아세요?”
기수가 알 리가 없었다.
보아하니 아투사는 페르시아 혈통이긴 하지만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랐기 때문에 부모의 고향에 대해 막연한 동경을 가지고 있을 뿐 지식은 전무한 것 같았다.
“도대체 무슨 사명이기에 네 부모가 이 머나먼 타국 땅까지 온 거야?”
“그건….”
“알라무트 아사신파 대사제의 딸이란 얘기까지 했으면서 뭘 숨겨?”
아투사는 결심한 듯 말했다.
“우리 민족은 오랜 세월 동안 칸의 악독한 통치에 시달려왔어요.”
“칸이면…. 몽고?”
“예. 이곳 중원에선 오래 전에 물러갔지만 제 고향에선 아부 사이드 칸이 죽은 후 티무르 칸이 그 제국을 이어받아 아직까지도 일부 지역을 통치하고 있어요.”
자기 고향이란 말에 힘이 없었다.
이국땅에서 나고 자랐으니 그럼직도 했다.
“우리 아사신파는 이스마일님과 함께 그들을 몰아내는 게 목적이에요.”
“그럼 그 티무르 칸이란 자를 치러 가야지. 중원엔 왜 왔어?”
“사만조라는 왕국이 한때 그 꿈을 실현시키기 직전이었는데, 몽골군을 따라온 중원의 고수들에게 왕가의 보물을 빼앗겼어요. 부모님은 그걸 되찾으러 오신 거예요.”
기수는 잠시 상황을 정리했다.
‘사만조는 또 뭐야?’
무슨 세계사 수업 듣는 것도 아니고… 아무리 아투사가 예뻐도 이름들이 헷갈리기 시작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곧장 포인트를 물었다.
“그 보물을 훔쳐간 사람이 누군데?”
“중원의 무림인인데, 의외로 거의 알려지지 않았더라고요. 우내삼공 혹은 삼태공, 삼선, 삼태성 등으로 불리는 사람들 중 두 명이에요.”
“어라? 삼태성이라고? 그 중 두 명?”
기수는 깜짝 놀랐다.
합비가 바로 그들 중 한 사람 아닌가.
“예. 두 사람이 부부라고 들었어요.”
“아! 그럼 어르신을 뺀 두 사람이구나. 무슨 신혼여행이라도 간 건가? 이란까지?”
보통 사람이라면 평생 가볼 엄두도 낼 수 없을 만큼 먼 곳.
하지만 합비 수준의 고수들이라면 천하가 얼마나 넓은지 여행 삼아 가볼 수도 있었을 것 같았다. 자기도 몸 상태만 정상이라면 선풍비를 믿고 유럽 여행에 도전해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뭘 훔쳐갔는데?”
“킬리지와 카드에요.”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해 봐.”
“킬리지는 말을 타고 쓰는 긴 칼이에요.”
“아! 반달모양으로 휘어진 칼?”
페르시아의 군도라면 어디선가 본 것 같았다.
아투사가 쓰던 쌍칼에 비하면 훨씬 길고 가는 디자인. 아마 십자군 전쟁 때 이슬람 쪽의 주무장이었을 것이다.
“예. 그리고 카드는 짧은 단검이에요.”
“그 칼들이 뭐 그리 중요하다고 여기까지 찾으러 와? 그냥 새로 만들지.”
무슨 마법검이라도 되나?
“그 두 자루 검은 왕관과 함께 사만조 왕가의 상징이었어요. 우리 이스파한 족의 제국을 세우려고 하는데, 왕가의 상징이 남의 손에 있어서야 체면이 말이 아니죠.”
“흐음…. 그럼직하군. 그럼 삼태공을 추적해서 여기까지 온 거야?”
“우리는 사람이 아닌 칼을 따라왔어요.”
기수는 좌우를 둘러보았다.
“네 부모도 지금 이 근처에 있나?”
“아뇨. 두 분 모두 돌아가셨어요.”
아투사의 목소리가 울먹이고 있었다.
“미안해.”
“아, 아뇨….”
그녀의 어깨가 한참을 들썩였다. 애써 오열을 참는 듯 했다.
기수는 뭐라 위로할 말도 생각나지 않아서 한참 그냥 놔두었다.
그리고 그녀가 심호흡으로 감정을 정리한 듯 하자 물었다.
“그럼 지금은 누구와 함께 그 일을 하고 있지?”
“원래는 아사신파의 전도사와 아저씨들도 함께 했는데 지금은 저 혼자만 남았어요. 모두 다 적에게 당하셨어요.”
듣고 보니 딱한 처지였다.
“그 삼태공 중 두 사람이 그렇게 한 건가?”
합비의 능력과 비슷하다고 하면 엄청난 고수일 테니, 아무리 페르시아에서 날고 기는 실력자라고 해도 당해내지 못했을 것이었다.
애당초 그런 보물을 빼앗긴 데서부터 실력 차가 드러났다고 할 수 있다.
아투사가 말했다.
“그 두 사람은 이미 죽었을 거예요. 세월이 너무 많이 흘렀으니까요.”
“하긴 그렇겠네.”
합비가 살아 있는 게 이상한 거였다.
손자가 할아버지가 되었어도 정정한 걸 보면 뭔가 특별한 신공이라도 익힌 게 분명했다. 아니면 오행류라는 게 자연의 기운을 순환시키는 방식이라 수명 연장의 효과가 있는 것일 수도 있었다.
아투사의 말이 이어졌다.
“그들의 사후에 후손들에게 전해졌을 거라고 생각 돼요.”
“네 부모와 그 동료들을 해친 게…”
“그 칼을 가진 자들이 분명해요.”
기수는 턱짓으로 쓰러진 자들을 가리킨 후 다시 물었다.
“그래서 저들을 죽인 건가?”
“한 명은 죽였지만 한 명은 아니에요.”
“안 죽었다고? 독침이 아니었어?”
“지금 잠든 상태에요. 해약을 먹이면 깨어날 거예요.”
“아! 다행이다.”
협곡으로 침투할 방법을 알아낼 기회가 아직 유효한 것이다.
기수는 약간 넉넉한 마음이 되었다.
“저 협곡 안에 그 삼태성 중 두 사람의 후손이 산다고 생각해?”
“그건 몰라요.”
기수는 어이가 없었다.
“한 사람은 마취시키고, 한 사람은 죽였으면서 그게 무슨 무책임한 발언이야?”
“우리는 오로지 칼을 따라갈 뿐이에요. 지금 주인이 누구냐는 상관없어요.”
“저 안에 누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칼이 있다는 건 확신한다?”
“맞아요.”
“어떻게 그걸 알지?”
아투사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저희만의 찾는 방법이 있어요.”
기수는 씩 웃었다.
“독심술이 있다고 얘기했는데도 숨기려고 하네?”
아투사는 안절부절못했다.
기수는 염정구심술을 시전하지 않았다.
어떤 방식을 쓰건 별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의 관심은 아투사에 쏠려 있었다.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우리 힘을 합칠까?”
“예? 그게 무슨 뜻이죠?”
“난 저 안에 볼일이 좀 있어. 너도 해야 할 일이 있는 거잖아?”
“예. 전 그 칼을 꼭 찾아야 해요.”
“아까 보니까 실력이 꽤 괜찮던데… 네가 힘을 좀 써주면 나도 좀 더 수월해질 것 같아서 하는 얘기야.”
기수 입장에선 협곡 안이 궁금하기 짝이 없는데, 현재 몸 상태가 최상은 아니었다.
그러니 아투사를 보험 삼아 데리고 가려는 것이었다.
물론, 그녀가 예쁘고 몸매가 탁월하다는 사실이 결정에 약간의 영향을 미치기는 했다. 하지만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려는 의미가 더 컸다.
아투사는 기수를 훑어봤다.
얼굴도 여럿이고, 이름도 여럿인 남자.
신뢰가 가지 않았다.
그러나 현재 자신의 처지에선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자기보다 고수이고, 지금 마음만 먹으면 자기를 죽일 수도 있는 사람이었다.
그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당신은 저들과 무슨 원한이 있죠?”
“내가 반드시 죽여야 할 자가 저곳과 연관되어 있어. 저 안에 들어가서 최대한 많은 정보를 수집해야 돼.”
“좋아요. 당신과 함께 하겠어요.”
기수는 즉시 그녀의 점혈을 풀어주었다.
아투사는 조심스럽게 자기 무기부터 챙겨 들었다.
그리고 복면으로 얼굴을 가리며 물었다.
“당신을 기소협이라고 부를까요? 아니면 양소협이라고 부를까요?”
“양소협이 좋겠는데.”
“좋아요. 양소협. 저 안으로는 어떻게 들어갈 거죠?”
“넌 어떻게 할 생각이었어?”
아투사는 이미 여러 번 진입을 시도해보았다.
그러나 도무지 방법이 없어서 나오는 자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포로를 고문해서 방법을 알아내려고 했어요.”
“나도 같아. 하지만 심문 방법이 좀 다르지.”
“아! 독심술?”
“빙고. 저 녀석을 깨워 봐.”
아투사가 박힌 침을 뽑아내고 작은 병을 하나 꺼내 검은 액체 한 방울을 사내의 인중에 떨어트리자 사내의 코가 벌름거리는가 싶더니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그는 그 자세로 곧장 몸이 마비되고 말았다.
기수가 점혈을 한 것이다.
“너, 너는 누구냐!”
사내는 자기가 독침에 맞은 이후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살피다가 동료가 피흘리며 쓰러진 모습을 보고 침을 꿀꺽 삼켰다.
기수가 미소 지으며 물었다.
“저 안에 몇 명이나 있어?”
“너희들은 누구냐!”
사내는 비록 동료의 주검을 보았지만 다른 동료를 팔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기수는 계속 질문을 했다.
“저 안에 있는 사람 중 가장 고수는 누구지?”
“너희들이 먼저 대답해라! 누가 시켜서 이런 짓을 하는 거냐?”
“협곡을 통과하려면 기문진을 어떤 방식으로 지나가야 하지?”
“내가 말해줄 거라고 생각하느냐?”
기수는 씩 웃었다.
“너. 죽음이 두렵지 않냐?”
“두, 두렵지 않다!”
“그럼 고문은?”
“저, 절대로 두렵지 않다!”
기수는 소리 내어 웃었다.
“하하하!…. 그래. 그 말을 믿어주마.”
사내는 자신의 혈도가 풀리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곧바로 잔백지에 수혈이 짚여 쓰러지고 말았다.
기수는 돌아서서 협곡을 향해 걸으며 아투사에게 말했다.
“자! 들어가 볼까?”
“들어간다고요? 방법을 알아냈나요?”
“응.”
“어, 어떻게요? 달랑 질문 세 번을 했을 뿐인데…”
“너도 당해봐서 알잖아. 독심술.”
“아!….”
아투사는 반신반의하는 표정으로 기수를 보다가 물었다.
“저 자는 왜 살려두신 거죠?”
“잠들면 위협이 안 되니까.”
“하, 하지만 기회가 있는데도 적을 살려두는 것은…”
기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적이라고 해도, 저 정도 신의와 의리를 지킬 줄 아는 사람이라면 굳이 죽일 필요는 없다는 게 내 생각이야.”
무공 차이가 많이 날수록 살심이 줄어드는 기수였다.
하물며 저항이 불가능한 사람을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
아투사는 아쉬운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며 손으로 표창 손잡이를 잡기까지 했다.
그러나 차마 던지지는 못했다.
지금은 기수의 비위를 거스를 때가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다.
독심술이라는 기이한 술법뿐만 아니라 무공에서도 자기보다 고수니까 그를 앞세우면 킬리지를 되찾을 가능성이 컸다.
일단 그때까지는 모든 일을 미뤄두는 게 현명한 처신일 것이었다.
협곡이 가까워지자 아투사가 기수에게 물었다.
“안에 모두 몇 명이나 있죠?”
“사범 한 명, 그리고 동료 스무 명.”
아투사는 깜짝 놀랐다.
“예? 그, 그럼 전력 차이가 너무 나잖아요?”
“그렇긴 한데, 인원이 수시로 변하나 봐. 지금이 그나마 가장 적은 때인 것 같아. 뒤로 미루었다간 영영 기회가 없을 수도 있어.”
“그런 것까지 알아낼 수 있나요?”
“사람이 생명의 위협을 느낄 때 얼마나 많은 생각들이 순간적으로 떠오르는지 알면 아마 놀랄걸?”
심지어는 하드의 모 폴더에 가득한 avi, mkv, mp4 파일들을 들춰볼 때처럼 살색 화면들이 촤르르~ 지나가기도 했다.
아투사가 다시 물었다.
“그 사범이란 자의 무공은 어느 정도인가요?”
그에게 칼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이론으로는 뛰어나지만 실력은 거기에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있더군. 물론 저 녀석보다 고수이긴 하지만….”
아투사는 적 전력이 만만치 않다고 느꼈다.
하지만 기수와 함께 가면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다.
“좋아요! 들어가요.”
두 사람은 조심스럽게 협곡으로 진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