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hwa Manri RAW novel - Chapter 350
아투사의 칼 쥔 손이 떨렸다.
손뿐만 아니라 온몸이 떨리고 있었다.
그녀가 자객 수련을 하면서 기초 과정 중에 가장 많은 시간을 들여 익힌 것이 바로 상대의 강약을 파악하는 기술이었다.
상대의 능력을 알아야 거기에 맞춰 가장 효율적인 살해방법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음산하게 웃고 있는 사범이란 자는 그녀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동일한 사람이 갑자기 두 배 이상의 기도를 폭발시키고 있기 때문이었다.
상식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지금 현실로 눈앞에 존재했다.
그리고 자신의 능력을 입증하기라도 하듯 기수의 무기를 부러뜨리고 몸에 깊은 상처까지 내고 있었다.
아투사는 자신의 몸에 감추고 있는 무기들을 모두 머릿속에 한 번씩 떠올려보았다.
칼을 찾아 돌아가는 임무를 완수하려면 자기가 죽으면 안 되었다.
그러나 일이 이 지경까지 이른 이상 최소한 부모님의 원수와 함께 죽기라도 해야겠다는 쪽으로 마음이 돌아서고 있었다.
물론, 그것도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보장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가 그렇게 결사의 각오를 다지고 있을 때, 기수가 지혈된 팔을 빙글빙글 돌리며 사범과 마주섰다.
“삼재가 낀 게 분명해. 요즘 들어 왜 이렇게 피를 자주 보는 거지?”
사범이 그에게 말했다.
“내 질문에 순순히 답한다면 고통을 다소나마 줄여줄 수는 있다. 흐흐흐…..”
“내가 그랬지. 대답할 사람은 너라고.”
“흐흐흐…. 곧 죽을 놈이 입만 살았구나.”
그의 칼이 웅웅거리며 진동하기 시작했다. 진기를 주입해서 생기는 현상이었다.
기수도 내력을 최대한 끌어 올렸다.
한편으로는 겁이 나는 것도 사실이었다.
‘멸천제보다 강하면 곤란한데…’
상식적으로 보자면 사범이란 자의 무공이 이곳 캠프에서 배우고 나간 제자보다 위일 가능성이 컸다.
그러나 다행스럽게 상대의 기도가 멸천제만큼 강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초열의 기억을 되짚어 봐도 목소리에게 배웠지, 이 사범에게 배운 것은 아니었다.
“받아랏!”
사범의 칼이 소름끼치는 파공음을 내며 기수의 허리를 베어 왔다.
기수는 그 빠르기에 깜짝 놀라 뒤로 피했다.
그러나 사범은 그림자처럼 따라붙으며 연거푸 공격을 해왔다.
“내게서 도망칠 수 있을 것 같으냐? 흐흐흐….”
그때, 희미한 파공음과 함께 암기 서너 개가 그의 요혈로 파고들었다.
아투사가 기회를 보아 던진 것이다.
사범은 칼을 휘둘러 암기를 쳐냈는데, 단지 막아내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그것들을 아투사에게 되돌려 보냈다.
밋밋한 직구를 담장너머로 넘기는 홈런타자의 배팅같았다.
아투사는 그것들을 피하느라 바닥을 데굴데굴 굴러야 했다.
그래도 그녀 덕분에 기수는 반격의 기회를 잡았다.
그의 선택은 속전속결.
자신의 몸 상태로는 길게 싸울수록 불리해질 수밖에 없었다.
파천강기 10줄기가 거의 동시에 사범의 전신요혈에 박혔다.
“크윽!…..”
사범은 신음을 토하며 뒷걸음질을 쳤다.
적지 않은 타격을 받은 모습이었다.
그러나 기수의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다. 관통상은커녕 점혈조차 못한 것이다.
사범이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이, 이것은 파천강기 아니냐?”
기수는 상대가 기술 이름까지 정확히 알고 있다는 사실에 더 크게 놀랐다.
그러나 잠시 생각해보니 그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자신이 파천강기를 배운 것은 사도인 유소진이 준 책자를 통해서였다.
그녀는 자기가 창안했다는 식으로 얘기했지만 그것은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
사도였던 그녀와 주군이란 자 밑에서 교관 역할을 하고 있는 사범이 같은 무공 풀을 가지고 있다고 보는 게 타당했다.
사범은 의혹어린 시선으로 물었다.
“네가 어떻게 이 기법을 알고 있느냐?”
“이까짓 게 뭐 대단하다고? 우리 문파에선 입문 첫 주에 익히는 하등 수법이다.”
“미, 미친 수작 하지 말고 파천강기를 어떻게 익혔는지 어서 말해라!”
기수는 대답 대신 진기를 끌어 올렸다.
‘멸천제처럼 진기 갑옷을 두르고 있군.’
그러나 그 갑옷이 멸천제처럼 강하지 않아 보였다.
사범이 갑자기 눈을 부릅뜨며 말했다.
“호, 혹시…. 네놈은?….”
“눈치가 영 없지는 않구나.”
기수의 열손가락이 무시무시한 파공음과 함께 파천강기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진기 운용 효율이 나쁘기는 하지만, 사범이 들고 있는 예리한 칼에 다시 베이기는 싫었다. 그 날카롭고 단단한 날이 자기 살을 가르고 지나가는 느낌을 상상만 해도 똥구멍이 쫄밋거렸다.
파파파파팟!…..
사범은 도막을 펼쳐 강기 탄환들을 튕겨냈다.
거기에 진기갑옷까지 갖춰졌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몸은 뒤로 밀렸다.
기수의 예상대로 사범은 현재 각성상태에 있지만 멸천제보다 약한 편이었다. 어쩌면 그래서 교관 역할을 배정받은 것일 수도 있었다.
기수는 적을 더욱 거세게 몰아붙였다.
“죽어라!”
파파파파파팍!…..
그러나 핏방울을 튀지 않았다.
사범은 이를 악물고 간신히 버티고 있지만 끝내 무너지지 않았다.
기수 입장에선 곤란한 상황이었다.
꿰뚫지 못한다면 진기 운용에 문제가 생길 수 있었다.
흉년에 아껴둔 쌀을 겨울이 오기도 전에 다 먹어버린 상황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죽어! 죽으란 말야!”
조금만 더 몰아붙이면 뚫릴 것 같은데, 잠재력 각성 상태의 사범은 질기게 버텨냈다.
기수의 무서운 공격에 놀라 잠시 물러서 있던 아투사는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눈치 챘다. 두 사람의 표정만 봐도 지금이 고비임을 알 수 있었다.
뚫으려는 기수와 버티는 사범. 만약 못 뚫으면 기수는 그 다음 이어질 사범의 반격을 이겨낼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봐야 했다.
실제로 사범의 입가엔 차츰 미소가 번지고 있는데 반해 기수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그리고 몹시 지쳐 보였다.
아투사는 기수를 위해, 그리고 자기 자신을 위해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녀는 쌍칼을 단단히 고쳐 쥐고 몸을 회전시키며 사범의 허리를 베어 들어갔다.
빠르고 정확한, 그리고 치명적인 공격!
순간, 사범이 눈을 부릅뜨며 칼을 돌려 그녀를 베었다.
쨍! 소리와 함께 세 자루 칼이 격돌했고, 아투사는 강력한 반탄력을 이기지 못해 뒤로 밀려났다.
“으윽!…..”
그녀는 답답한 신음을 토했다.
손바닥이 화끈거린다 싶더니 두 팔을 거쳐 기경팔맥 안으로 따끔거리는 기운이 파고들었다.
진기를 끌어올려 저항하려 했지만 그 이질적인 통증이 훨씬 빨리 혈맥을 장악했다.
아투사는 극심한 고통과 현기증을 느끼며 쓰러졌다.
“아투사!”
기수는 깜짝 놀랐다. 그리고 사범이 무슨 수법을 썼는지 즉각 알아차렸다.
“단정홍!”
“호오!…. 그것도 알고 있느냐?”
사범은 기수 쪽으로 한 걸음씩 내딛으며 활기차게 칼을 휘둘렀다.
기수는 이를 악물었다.
‘오냐. 네놈이 들은 적도, 본 적도 없는 기술을 써주마.’
기수는 이 한 번의 공격에 자신의 생사가 걸려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100%가 아닌 상태에서 무리하게 들어온 적의 소굴.
상대는 잠재력 각성의 술법을 사용했다. 그리고 파천강기와 단정홍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치명상을 입힐 수 있는 최후의 필살기로 기수는 멸절강기를 택했다.
스푼 컷으로 음산하게 웃어대는 놈의 낯짝을 뭉개주리라 마음먹었다.
기수는 즉각 3개 단전을 각각 달리 운용했다.
상단전에 멸절강기를 모으고, 중단전에 수류의 태포련을 응집시키면서, 하단전으로는 계속 파천강기를 운용했다.
“크하하하!…. 벌써 한계에 다다른 거냐?”
사범은 상대가 3개의 단전을 따로 운용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자기가 다가감에도 불구하고 파천강기의 공격이 현저히 약해진 게 더 이상 버틸 수 없어서라고 판단했다.
기수는 만반의 준비를 마쳤지만 섣불리 나서지 않고 신중히 기다렸다.
‘사도도 아닌 놈에게 당할 수는 없지.’
목숨이 걸린 일에 요행을 바랄 수는 없었다.
완벽한 기회가 올 때까지 참을성을 가지고 기다려야 했다.
‘두 발만 더.’
상대가 알아차린다 해도 피할 수 없을 만큼의 거리.
그가 속으로 정한 위치에 사범의 발이 닿는 순간, 기수의 눈이 반짝였다.
사범은 기수를 둘러싼 기도가 갑자기 변하는 것을 느끼고 흠칫하여 걸음을 멈추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갑자기 누가 팔을 잡아당기기라도 하는 것처럼 움직임이 부자연스러워졌다.
그는 파천강기를 막는데 지장이 생길까봐 내력을 끌어올렸다.
그 짧은 순간. 갑자기 얼굴에 섬뜩한 기운이 느껴졌다.
붉은 기운이 어른거리는 것으로 보아 파천강기가 아니었다.
“어억!…..”
사범은 얼굴의 일부가 도려져 나가는 것 같은 낯선 느낌에 신음을 토했다.
순간, 파파팍! 소리와 함께 파천강기가 그의 몸에 구멍을 냈다.
기수는 아차 싶었다.
방금 전까지는 살아남아야 한다는 절박감 때문에 어떻게든 적을 죽일 생각밖에 없었지만, 막상 사범이 피를 쏟으며 뒤로 넘어가자 자기가 이곳에 온 목적이 생각난 것이다.
그는 다급하게 달려들어 사범을 점혈했다.
그리고 피를 쿨럭거리며 죽어가는 그의 상체를 받쳐 안은 다음 급히 염정구심술로 동조 하며 질문을 했다.
“네가 모시는 주군은 누구지?”
순간 한 남자의 얼굴이 보였다.
네모난 얼굴. 눈썹과 수염이 반백인 것으로 보아 50세 내외로 보였다.
일견 부드러워 보이지만 눈빛과 입술 선에서 권위와 위압감이 느껴졌다.
그러나 그 영상은 곧 흐려졌다.
사범의 의식이 끊어지는 것이었다.
“아직 죽으면 안 돼!”
기수는 그의 명문혈에 장심을 대고 진기를 불어넣었다.
그러자 사범이 눈을 번쩍 떴다.
그의 상처로 봤을 때 회광반조의 순간이라고 할 수 있었다.
기수는 황급히 다른 질문을 했다.
“도대체 병력은 얼마나 키웠지? 그들의 실력은 어느 정도고, 지금 어디에 숨겼어? 그리고 그들을 무슨 일에 쓸 계획이냐?”
“으으….”
사범은 힘겹게 눈동자를 돌려 기수를 노려봤다.
“날 보지 말고! 대답, 아니… 생각을 해! 어서! 네 제자가 몇 명이야?”
순간, 기수는 189라는 숫자를 읽었다.
‘뭐가 그렇게 많아?’
사범의 기억은 엉뚱한 쪽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자기가 그동안 외운 무공비급들이 주르르 이어졌다.
실로 엄청난 양이었다.
황궁비고만큼은 안 되지만 서가 두세 개를 꽉 채울 만큼은 되는 것 같았다.
기수는 그의 멱살을 움켜쥐고 흔들었다.
“이봐! 지금 그딴 거 생각할 때가 아니라고! 내 질문에 대답해!”
그러나 사범의 마지막은 무공비급에 대한 기억들로 끝을 맺었다.
기수는 숨이 끊어진 그를 내려놓았다.
결국 주군이란 자의 얼굴을 본 것, 이곳에서 훈련시킨 자의 수가 189명이라는 것을 알아냈을 뿐 다른 소득은 없다고 할 수 있었다.
“아차! 아투사…..”
기수는 화들짝 놀라 그녀에게 달려갔다.
복면을 벗기고 보니 안색이 푸르스름했고 호흡은 미약했다.
기수는 그녀의 허리띠를 풀고 갑옷을 묶은 끈, 무기 벨트도 풀었다.
조이는 부분을 없애서 호흡과 기혈 흐름을 편하게 해주기 위함이었다.
덩달아 옷이 열리면서 대리석처럼 새하얀 속살이 일부 드러났지만 기수의 눈엔 들어오지 않았다. 일단 사람부터 살려야 하는 것이다.
아투사의 상체를 일으켜 90도로 세운 기수는 뒤로 돌아가 다리를 벌리고 앉아 그녀가 쓰러지지 않도록 안았다.
“이봐! 정신 차려.”
사명이 뭔지, 부모까지 잃었으면서 기어이 칼 한 자루 찾겠다고 애쓰던 그녀를 이렇게 죽게 놔두고 싶지는 않았다.
기수는 그녀 명문혈에 장심을 대고 진기를 주입했다.
“허억!…..”
아투사가 숨을 몰아쉬며 정신을 차렸다.
그녀는 자신의 복면이 벗겨지고, 옷도 풀어헤쳐진 채로 누군가의 품에 안겨 있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
그러나 그보다 빠르게 어마어마한 통증이 몰려왔다.
“아아악!…..”
아투사는 비명을 질렀다.
고통을 당하느니 차라리 그냥 죽고 싶을 정도의 통증이었다.
그때 등 뒤에서 기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참아! 정신 똑바로 차려!”
아투사는 죽어가는 자신의 몸에 진기를 주입한 사람이 그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가 자기 옷을 풀어헤쳤다는 사실에 수치심이 일었다.
그러나 그것이 생존본능보다 앞에 설 수는 없었다.
알몸을 드러낸 것도 아니지 않은가.
“단전에 정신 집중하고, 내 진기 흐름은 거역하지 마! 할 수 있지?”
아투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순간, 등을 통해 뜨거운 기운이 파고 들어와 기경팔맥으로 퍼져 나갔다.
“으음….!”
아투사는 신음을 토했다.
새로운 진기 때문에 통증이 더 강해졌기 때문이다.
“정신 집중해! 통증에 지면 안 돼!”
기수는 단정홍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를 강하게 다그쳤다.
아투사는 아득해져 가는 의식을 힘겹게 붙잡고 이를 악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