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hwa Manri RAW novel - Chapter 364
한귀비는 형편없이 밀리기 시작했다.
기수와 공주와 만욱이 모두 만만치 않은 고수들인데, 그들이 협공까지 하니까 도저히 버텨낼 재간이 없었던 것이다.
공주가 호기롭게 외쳤다.
“조금만 더 몰아붙이면 돼요!”
공주의 무공에 놀라고 있던 만욱은 정신을 바짝 차리고 싸움에 임했다.
혹시라도 자기가 실수를 해서 놓치면 안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기수는 다른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자연스럽게 죽일 수 있을까?’
생포는 안 될 말이었다.
두 명의 고수가 도와주는 절호의 기회를 최대한 이용해서 실수하는 척 하며 치명타를 날리리라 마음 먹었다.
바로 그때, 한귀비의 눈빛이 달라졌다.
놀랍게도 그녀의 눈동자는 붉은 빛을 띠기 시작했다.
동시에 물러서던 걸음이 멈추는가 싶더니 오히려 반격이 나오기 시작했다.
기수가 큰소리로 말했다.
“조심해! 잠재력을 끌어내는 수법으로 내공을 증폭시키고 있어!”
공주는 갑자기 한귀비의 힘이 두 배 이상 강해지는 느낌에 깜짝 놀랐는데, 기수의 말을 듣고 내공을 더욱 끌어 올렸다.
만욱은 궁녀의 건방진 반말이 우선 마음에 걸렸지만, 지금은 워낙 위급한 전투상황이다 보니 그럴 수도 있다 생각하고 역시 한귀비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혈안(血眼)으로 변한 한귀비는 자신의 앞에 있는 세 사람을 한 차례 훑어봤다.
한 명은 황제의 딸로, 자신의 정체가 탄로 나게 한 주모자라고 할 수 있었다.
동창의 창주는 이제 그녀의 수족처럼 움직일 것이고, 키 큰 궁녀는 자신과 주군에 대해 가장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었다.
“누구를 먼저 죽여줄까?”
말은 그렇게 했지만 손발은 이미 기수를 향하고 있었다.
심장이 두근거리는 꺼림칙한 느낌이 그녀(그)를 1순위로 선택하게 한 것이다.
그녀의 급격한 돌진에 기수는 속절없이 뒤로 밀려났다.
‘젠장! 이 수법을 다들 익혔군. 무슨 특별 과외라도 받은 건가?’
한귀비는 눈동자 색깔만 바뀐 게 아니었다.
멸천제나 청탑산 사범에 비해 잠재력 발현 비율이 훨씬 더 컸다.
그런 그녀와 손이 맞닿자 뼈가 울리고 기혈이 뒤얽혔다.
만약 이 정도 파워가 멸천제가 버틴 시간만큼 이어진다면 자기는 물론이고 공주와 만욱까지 차례로 목숨을 잃을 것 같았다.
기수 입장에선 절대로 바라지 않는 끔찍한 결과였다.
그때, 한귀비의 뒤쪽에서 밝은 금빛 광채가 일렁였다.
기수는 그 빛이 용의 형상처럼 꿈틀거린다는 느낌을 받았다.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깨달은 공주가 운룡비결을 운기하는 것이었다.
자기를 때릴 때와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강한 빛을 뿜는 걸 보니 진짜 작정하고 풀 파워를 끌어올린 게 분명했다.
“못된 년! 나와 싸우자!”
붉은 눈으로 변한 한귀비의 무공이 급격히 상승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공주는 기수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다급한 마음에 앞뒤 가리지 않고 혼신의 일격을 가했다.
그러나 한귀비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고수들끼리의 싸움에서 심리적 동요는 금기사항.
공주의 다급한 출수는 능력이 상승한 한귀비에게 최고의 기회를 제공했다.
힘을 최대한 실은 만큼 두드러져 보이는 허점.
한귀비의 단검이 정확하게 그 틈으로 파고들었다.
“순서가 좀 바뀌어도 상관없겠지. 호호호!…”
그러나 한귀비의 웃음은 꼬리가 미묘하게 비틀렸다.
분명히 공주의 눈에 단검을 박아넣을 수 있었는데, 뭔가 끈끈한 게 달라붙은 것처럼, 누군가 잡아당기는 것처럼 팔의 움직임이 느려졌다.
그 차이는 크지 않았지만 공주가 위기를 벗어나기엔 충분했다.
고수의 허점이라는 게 찰라지간에 나타났다 사라지는 것이라서, 그 순간을 놓치면 기회도 영영 없어져버리는 것이다.
한귀비는 뒤를 돌아봤다.
“이 년이…”
무슨 수작을 부린 건지는 알 수 없지만 키 큰 궁녀의 소행임은 분명했다.
동창 창주 만욱은 공주의 금빛 광채에 놀라 정신을 차리는 못하는 중이었다.
한귀비가 기수를 향해 덤벼들려고 하자 다시 공주의 금빛 광채가 강해졌다.
이번엔 처음과 달리 신중한 공격이었다.
한귀비 입장에선 공주의 공격을 무시할 수 없었다.
자신이 아무리 각성상태라고 해도 공주의 공격에 맞았다간 무사하지 못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급히 마음을 바꿔 공주를 먼저 처치하려고 했는데, 그때 또다시 끈끈한 기운이 느껴졌다. 이번엔 발이었다.
“으아아아!…..”
한귀비는 괴성을 지르며 양손을 뻗어 공주와 기수를 동시에 공격했다.
실로 무시무시한 암경이 반대방향으로 뿜어져 나와 두 사람을 타격했다.
만욱은 그 기세를 보는 것만으로도 온몸에 소름이 끼쳐 자기도 모르게 팔이 움츠러들었다.
그러나 한귀비의 회심의 일격은 공주를 둘러싼 금빛 광채, 그리고 기수를 둘러싼 붉은빛 반투명한 막을 뚫지 못했다.
두 사람은 각각 비틀거리거나 한 걸음 뒤로 물러서긴 했지만 곧바로 균형을 되찾았다.
한귀비는 같은 공격을 두 번, 세 번 반복했다.
“으아아아!….”
비효율적이고 무식한 방법.
그러나 한귀비는 두 사람 사이에 끼어 놀림감이 되기보다는 자신의 힘이 얼마나 우위에 있는지 과시하는 쪽을 택했다.
안타깝게도 그녀의 의도는 전혀 먹혀들지 않았다.
공주와 궁녀가 각각 금빛 광채와 붉은 막으로 꿋꿋이 버텨낸 것이다.
공주가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흥! 이제 보니까 주안술을 쓰고 있었구나. 도대체 몇 살이나 처먹었기에 얼굴에 주름이 그렇게 자글자글한 것이냐?”
한귀비는 깜짝 놀라 자기도 모르게 뺨에 손을 대보았다.
흥분상태로 무리하게 진기를 운용한 부작용이 드러나고 있었다.
그녀의 표정이 변했다.
공주와 궁녀의 조합에 부담감을 느낀 것이다.
분명 두 사람은 자신의 적수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들을 죽이는 일이 쉽지도 않았다.
자기는 두 사람과 만욱을 모두 처치한 뒤 동창과 금군의 방해를 뚫고 황궁을 탈출해야 하는 입장.
시간을 끌다가 각성이 풀리면 평소보다 현저히 약한 상태가 되기 때문에 자칫 하수들에게 잡힐 가능성도 있었다.
한귀비는 결정을 내렸다.
불확실한 승부보다 일단 자신의 안전부터 도모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그녀가 단숨에 지붕 위로 올라가자 기수는 고함을 지르며 쫓았다.
“거기 서라! 어딜 도망가느냐!”
사도를 그냥 보낼 수는 없었다.
한귀비는 기수를 노려보며 코웃음을 한 번 친 후 곧바로 등을 보였다.
피하기로 마음을 먹은 이상 불필요하게 시간을 지체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달아나는 그녀를 따르며, 기수는 선풍비를 극상까지 끌어올렸다.
“멈춰라! 이 할망구야!”
그러나 한귀비는 순식간에 황궁 담을 넘어 점이 되어버렸다.
기수는 황궁 담에서 더 이상 따라가지 않고 멈추었다.
선풍비로 간격을 좁히지 못할 정도라면 따라붙는다 해도 제압한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었다.
잡시 후 공주가 따라와 그의 옆에 섰다.
“어떻게 됐어?”
“이미 보이지도 않아.”
“아!…. 그럼 놓친 거야?”
공주는 아쉬움에 발을 굴렀다.
기수고 아쉽기는 마찬가지였다.
‘아! 진짜…. 여장까지 했는데…’
그녀를 놓쳐서 아쉽기도 했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이로 인해 적이 경각심을 가지게 될 거라는 사실이었다.
자기는 상관없었다.
이 궁녀 캐릭터는 두 번 다시 쓸 일이 없을 것이다.
문제는 공주였다.
그녀는 실제로 아무 것도 모르는데, 적 진영에서는 자기네 계획을 방해하는 가장 큰 위협으로 여기고 제거하려 들 가능성이 컸다.
한귀비를 제외하고도 사도가 셋이나 남았고, 청탑산 협곡에서 훈련받은 고수가 몇 명이나 될지 짐작도 못하는 상황에서 그녀의 안전을 보장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가슴이 답답해졌다.
“잡았어야 하는데….”
공주도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너와 내가 힘을 합치면 잡을 수 있었는데…”
기수는 그 사실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멸천제와 싸울 때처럼 끝까지 갔다면 나 혼자 이길 수 있었을까?… 역용을 풀었다면 이길 수 있었을까?’
해보지 않고는 모르는 일이지만, 한귀비의 그 붉은 눈동자는 다시 생각해봐도 영 꺼림칙한 느낌으로 남아 있었다.
두 사람은 한귀비가 사라진 방향을 멍하니 보다가 경양궁으로 돌아갔다.
경양궁은 발칵 뒤집혀 있었다.
창주 만욱이 환관들을 총동원해서 한귀비의 거처와 궁녀들의 거처를 샅샅이 뒤지는 중이었다.
“공주마마. 곧 역모의 증거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만욱은 평소 자신의 무공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한귀비와 공주의 무시무시한 실력을 보고 주눅이 든 상태였다.
공주의 시녀만큼도 역할을 못했으니 부끄럽기도 했다.
그래서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일에 어느 때보다 집중했다.
사로잡은 궁녀들과 한귀비가 살던 방이 있으니 이 잡듯이 뒤져서 사소한 꼬투리라도 찾아낼 작정이었다.
공주는 그에게 뒤처리를 맡기고 자신의 거처로 돌아왔다.
돌아오자마자 공주가 한 일은 기수를 지하실로 데려가는 것이었다.
기수는 슬쩍 아투사의 눈치를 봤다.
몹시 분해 하는 표정이었다.
기수는 도살장에 억지로 끌려가는 소, 혹은 영양탕 집 골목에 매여 있는 개의 표정을 지으며 공주에게 끌려갔다.
그러나 들어가고 입구가 닫히자마자 공주를 번쩍 안아들었다.
그 역시 목숨 건 대결 이후에 혈관에 호르몬이 가득한 상태로 즐기는 섹스의 쾌감을 만끽하고 싶었던 것이다.
공주가 부끄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데, 여자 품에 안기니까 기분이 이상해.”
“후후…. 공주마마.”
“꺅! 그 목소리 징그러워. 원래대로 돌아와. 어서!”
“왜? 재미있잖아?”
“싫다니까. 아야! 살살해. 옷 찢어지겠다.”
두 사람은 그렇게 얽혀서 정신없이 뒹굴었다.
그러나 열정의 폭풍이 지나간 뒤엔 둘 다 한동안 말이 없었다.
기수가 공주의 탐스럽게 솟은 가슴을 주무르며 물었다.
“무슨 생각 해?”
공주도 기수의 솟은 부분을 주무르며 대답했다.
“한귀비가 다시 궁으로 돌아오면 막을 수 있을까? 부황폐하가 걱정 돼.”
“동창이 대책을 세우겠지. 아무리 고수라고 해도 기문진이나 합격진이 겹겹이 쳐져 있으면 절대로 쉽게 뚫을 수 없어.”
“그건 그렇지만…”
“난 네가 더 걱정이야.”
“내가 왜?”
“그들의 음모를 까발렸는데 가만 놔둘 것 같아?”
“흥! 얼마든지 오라지. 난 겁 안 나.”
“그런 의미에서 음양대법이나 한 번 더 할까?”
“응. 좋아.”
기수는 그녀의 희고 따듯하고 보드라운 알몸 위로 체중을 실었다.
그리고 갑자기 생각나는 게 있어서 음식 바구니로 손을 뻗었다.
꿀단지를 찾아낸 기수는 검지로 꿀을 찍어 공주의 가슴에 떨어트렸다.
“아아…. 연공하자며?”
“일단 좀 먹고.”
기수의 혀와 입술이 꿀을 한 방울 남김없이 핥아먹기 시작했고 공주는 콧소리를 냈다.
“아아~ 아까 땀 흘리고 씻지 않았는데…”
“간이 딱 맞아.”
“그, 그럼 나도….”
“일단 나부터.”
두 사람은 꿀단지가 다 빌 때까지 음식을 서로의 몸에 발랐다.
기수는 그녀의 몸 구석구석을 맛보았지만, 공주는 한 부분에 집착했다.
그러고 나서야 두 사람은 음양대법을 시작했다.
길게, 오래 오래 이어진 연공은 새벽이 되어서야 끝났다.
혼자 감당하기 버거운 강적과 싸웠기 때문인지, 꿀을 먹었기 때문인지, 이제까지 이렇게 오랜 시간 대법을 지속한 것은 처음인 것 같았다.
두 사람은 나란히 앉아 운기조식으로 성과를 확인했고,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공주가 옷을 입으며 말했다.
“나. 좀 다녀올 데가 있어.”
“어디를 가려고? 대법이나 한 번 더 하지…”
“아냐. 부황폐하를 뵙고 청할 일이 있어.”
“황상한테?”
“응.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는 건 도저히 갑갑해서 못 견딜 것 같아. 나가서 그년과 일당을 잡으러 다녀야겠어.”
“하핫!… 그건 좀…”
“왜? 안 될 것 같아?”
“공주가 궁 밖으로 나가도록 허락할 리가 없잖아.”
“그렇긴 하지만… 지금은 특별한 상황이야. 보통 사건도 아니고 역모잖아. 게다가 한귀비의 무공이 나하고 너 아니면 제압이 불가능하다는 걸 만태감도 봤고….”
기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허락을 받을 수 있다면야 좋지. 네 위치가 고정되어 있으면 위험에 노출되겠지만 계속 이동한다면 최소한 기습에 당할 일은 없을 테니까.”
“맞아. 오히려 우리가 기습을 할 수 있지. 천하에 태화각이란 곳이 몇 군데나 있겠어. 동창에 명령하면 하루 만에 다 찾아낼 거야… 그런데…”
공주가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기수에게 물었다.
“태화각이란 곳은 어떻게 알아낸 거야?”
“후후후…. 나의 수많은 능력 중 하나지. 독심술이라는 거야.”
“독심술? 호호호!…말도 안 돼.”
“왜? 못 믿겠어? 그럼 증거를 보여주지. 마음속으로 아무거나 한 가지 생각해 봐. 내가 맞출게.”
“좋아!”
공주는 뭔가를 떠올리며 맞춰보라는 표정을 지었다.
“으으….”
기수는 그녀 생각을 읽었지만 차마 말로 표현하지 못했다.
자기 존슨을 그 각도에서는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