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hwa Manri RAW novel - Chapter 366
기수는 조심스럽게 공주에게 말했다.
“진정하고 내 말 좀 들어 봐. 동창에서 태화각을 찾는다고 해도 거기에 한귀비가 있다는 보장은 못 하는 거잖아.”
“무슨 소리야?”
“우선, 그 태화각이라는 게 실제로 존재하는 건물인지, 아니면 단지 상징적인 의미인지부터 모르잖아. 동창은 황궁 동쪽에 있는 창고 건물을 사용하기 때문에 동창이라 부르지만, 그 실체는 전혀 다르듯이 말야.”
공주의 기세가 약간 수그러들었다.
“뭐… 그렇기는 하지만, 그래도 건물을 찾으면 단서도 나오지 않겠어?”
“단서가 나오면 뭐 해? 사람을 잡지 못하면 다 소용없는 얘기잖아. 지금만 해도 그래. 환관들이 경양궁을 샅샅이 뒤지고 있지만 무슨 소득이 있어? 태화각도 마찬가지야. 건물은 찾아봤자 의미가 없다고.”
공주는 할 말이 없었다.
아투사를 노려보자 그녀는 약간 어깨를 펴고 턱도 살짝 들었다.
괄시하지 말라는 태도였다.
공주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물었다.
“도대체 그 보석은 어떤 방식으로 한귀비를 찾는 거야?”
기수는 솔직히 대답해주었다.
“사실은 한귀비가 아니라 그녀가 들고 있는 단검을 찾는 거야. 단검 손잡이에 달린 보석하고 서로 감응하는 거지.”
“아! 네 검을 잘라버렸던 그 단검?”
“맞아. 아투사가 찾아야 하는 마지막 세 번째 보물이야.”
“흥! 그럼 그녀가 단검을 버리면 아무 소용없잖아?”
“우리는 그 사실을 알고 있지만 한귀비는 모르지. 잘 벼린 장검을 뚝뚝 부러뜨릴 정도로 예리한 단검을 왜 버리겠어?”
“그건 그러네…”
공주는 다시 한 번 못마땅한 얼굴로 아투사를 노려봤다.
부황폐하께 허락을 받고 이제 바야흐로 기수와 손잡고 온 천하를 돌아다니면서 매일 밤 대법 연마하는 부푼 꿈을 꾸고 있었는데, 귀찮은 혹이 따라붙게 된 것이다.
하지만 한귀비를 찾는데 있어서 아투사는 꼭 필요한 존재였다.
처음엔 쉽게 생각했지만, 막상 기수의 얘기를 듣고 보니까 태화각은 찾아봤자 별 소용이 없을 가능성이 컸다.
그렇다면 이 넓은 천하에서 한귀비의 은신처를 어떻게 찾아낸단 말인가.
더구나 한귀비를 찾는 데서 끝이 아니었다.
그녀의 눈이 붉어지기 전에 기습적으로 제압하려면 그녀가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은밀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었다.
아투사의 보석은 그 길을 제시해줄 수 있는 것이다.
결국 공주는 긴 한숨을 내쉰 후 말했다.
“좋아. 한귀비 잡는 일을 도우면 나중에 일이 성사된 뒤 아주 큰 상을 내려주마.”
꼭 필요한 사람이라면 당근을 제시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투사는 기뻤다.
“감사합니다! 공주마마.”
그녀는 기수와 시선을 맞춘 후 만면에 미소를 머금었다.
사실, 아투사는 한귀비가 카드를 휘두르는 모습을 보고 단숨에 달려가서 빼앗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러나 당시 한귀비와 싸우던 세 사람 중 가장 약한 동창 창주 만욱도 자기보다는 월등한 고수였다.
괜히 나서봤자 카드를 빼앗기는커녕 방해만 될 거라는 사실에 얼마나 절망감을 느꼈는지 모른다.
그런데 공주를 따라가게 되면 우선 기수와 헤어지지 않아도 되고, 자신의 사명을 완수할 가능성도 높아지고, 나중에 상까지 받게 되니 그보다 더 좋을 수가 없었다.
사실 상은 받아도 그만, 받지 않아도 그만이지만, 공주가 자기를 더 이상 괴롭히지 않을 거라는 약속이라고 생각할 수 있어서 기뻤다.
기수도 웃는 얼굴로 말했다.
“오늘밤 첫 번째 직선을 긋는 것으로 시작하면 되겠네. 동창에 최대한 정밀한 지도를 갖다 달라고 해.”
공주는 기수를 보고 미소 지었다.
그리고 방심한 사이 그녀의 발이 기수 얼굴에 정타를 먹였다.
“쿠엑!….”
방구석까지 날아가며 의자와 병풍을 쓰러트린 기수는 자기가 왜 사정거리 안으로 들어갔을까 하고 후회를 했다.
공주가 양손을 허리에 얹고 말했다.
“네가 제일 나빠! 내가 한 달을 비웠어? 하루를 비웠어? 한 나절 잠시 부황폐하를 뵙고 왔을 뿐인데 그 사이를 못 참아?”
“하핫!…. 진짜 아무 일도 없었다니까.”
“그래도 헛소리를!”
기수는 억울했다.
서로 옷을 입은 상태에서 무슨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야! 사람을 좀 믿기도 해봐라. 그리고 왜 하필 얼굴을 때리냐?”
“네 얼굴도 아니면서 어때서?”
“겉은 다른 모양이라도 속은 내 살과 뼈라고!”
“흥! 너도 내 얼굴 때리잖아!”
“야! 그거하고 발하고 같냐!”
“그게 더 나쁘지! 모욕감이 느껴지잖아!”
“발이 더 모욕적이지!”
“흥! 그럼 너도 맞아볼래?”
“때려 봐. 때려 봐! 뭘로 때릴 건데?”
아쉽게도 공주는 휘두를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녀가 주먹을 쥐고 팔을 걷어붙이자 기수도 일어나서 주먹을 쥐었다.
공주는 살짝 기가 죽었다.
지난번 한귀비와 싸울 때 확인한 바에 따르면, 기수가 자기에게 밟혔던 것은 결코 힘이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주먹 쥔 두 사람의 어정쩡한 대치상태를 푼 것은 아투사였다.
“얼굴을 뭐로 때렸기에 모욕적이에요?”
그녀는 진짜로 궁금해서 묻는 것이었다.
하지만 기수와 공주 모두 거기에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그날 밤.
정밀한 지도 위에 패철과 자가 놓이고 아투사의 보석이 빛을 발했다.
공주는 신중하게 자를 움직여 방향을 정한 후 가느다란 선 하나를 그었다.
그 선은 남쪽을 향하고 있었다.
공주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처음에 지도를 펼쳐놓고 봤을 때는 암담하기만 했는데 직선을 하나 긋고 보니까 뭔가 범위가 엄청나게 좁아진 기분이었다.
하루에 한 번이라는 제약이 있긴 하지만 이런 식이라면 결국엔 한귀비를 찾아낼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좋아! 내일 일찍 떠나자.”
그녀는 기수를 지하실로 끌고 들어갔다.
떠나기 전에 음양대법으로 충실한 준비를 하려는 의도였다.
아투사는 가슴이 아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쫓겨날 신세에서 길잡이로 지위가 격상되긴 했지만 기수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는 건 여전히 요원한 일이었다.
다음 날.
왠지 싱글벙글 웃는 기수와 양 볼이 벌겋게 부은 공주는 새벽부터 길 떠날 준비를 시작했다. 시녀들이 시장에서 사온 옷들이 많이 있었다.
아투사도 바빴다.
이번 강호행에 다른 시녀들은 동행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에 공주의 시중을 전부 그녀가 들기로 한 것이다. 배워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리고 아침을 먹을 즈음 환관 한 명이 찾아왔다.
“공주마마를 뵙습니다. 소인은 조유라고 하옵니다.”
“만태감이 보냈느냐?”
“예. 공주마마를 모심에 있어서 한 치의 소홀함도 없도록 하라는 엄명을 내리셨습니다. 소인, 목숨을 바쳐 마마를 보필하겠사옵니다.”
공주는 조유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환관들은 어려서 남성을 제거하기 때문에 키가 크고 덩치가 좋은 경우가 많았다.
돼지의 불을 까면 살이 찌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조유는 몹시 왜소한 체형이라 나약해 보였다.
“네 직책이 무엇이냐?”
“백호입니다.”
“흐음… 실력이 없다면 그 자리엔 오르지 못하는 걸로 아는데…”
“제겐 과분한 직책이옵니다.”
공주는 아투사에게 턱짓을 했다.
“네가 한 번 겨뤄 봐.”
“예?”
“예는 무슨 예야? 우리가 잡아야 할 한귀비는 무시무시한 고수야. 게다가 그녀를 모시던 궁녀들도 보통 실력이 아니었어. 너희 두 사람 무공이 어느 정도인지 알아둬야 적과 마주쳤을 때 적절한 조치를 할 거 아냐.”
그것은 맞는 말이었다.
조유는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살짝 불만이었다.
한귀비가 무서운 고수라는 사실은 현장에서 봤기 때문에 잘 알고 있었다.
더불어 공주와 키 크고 못생긴 궁녀의 무공 역시 똑똑히 봐둔 터였다.
그러나 이 서역 여인은 그 당시에 한 일이 없었다.
‘공주마마가 동창 백호의 능력을 무시하시는구나. 이번 기회에 솜씨를 좀 보여드려야겠는 걸.’
조유는 비어 있는 천호 자리를 노리고 이번 일에 자원했고, 창주의 언질도 받아둔 터라 의욕이 충만한 상태였다.
그래서 아투사가 포권을 하고 기수식을 취하자마자 한 걸음 크게 내딛으며 정권을 찔러 들어갔다.
체구는 작지만 웅혼한 내력이 실린 일권이었다.
그러나 순간, 아투사의 모습이 사라졌다.
회전하며 측면으로 파고드는 그녀의 보법은 비록 쌍칼이 없는 맨손이지만 여전히 빠르고 위협적이었다.
조유는 깜짝 놀라 허리를 비틀며 아투사의 공격을 피했다.
그러나 한 번 기선을 빼앗긴 뒤라 수세에 몰릴 수밖에 없었다.
“오오!…”
기수가 탄성을 토했다.
청탑산 이후 아투사의 솜씨를 오랜만에 제대로 보는 셈인데, 그때와 많이 달랐다.
움직임에 여유가 있으면서도 더 빠르고 치명적이었다.
조유가 이를 악물고 내공을 끌어올려 반격에 나섰지만 쉽게 밀릴 것 같지 않았다.
‘언제 저렇게 고수가 되었지?’
이유는 분명했다. 북경에 와서 지내는 동안 열심히 음양대법을 해서 내공을 증진시킨 게 이제 실력으로 나타나는 거라고 볼 수 있었다.
자신과 공주는 열심히 해도 확연한 차이를 만들어내긴 어렵지만, 아투사처럼 중상급 수준에서 고수로 올라서는 건 단기간에 효과를 볼 수 있는 것이다.
공주도 아투사의 실력이 의외라 놀라는 표정이었다.
가장 놀란 사람은 아투사 본인이었다.
청탑산 이후 자기가 나서서 실전을 치르는 건 처음이라고 할 수 있는데 몸이 예전과 달랐다. 특히 난이도가 높아서 잘 안 되던 초식들이 너무 쉽게 펼쳐져서 신이 났다.
눈앞의 환관은 공주의 부하.
공주를 때리는 심정으로 주먹과 발을 무차별 난사했다.
조유는 계속 반격의 기회를 노렸지만 결국 방어에만 치중할 수밖에 없었다.
“그만! 그만하면 됐으니 멈추어라.”
공주의 명령이 떨어지자 아투사는 아쉬움의 탄식을 토했다.
한 방 제대로 먹여줄 생각이었는데 결국 실패한 것이다.
반대로 조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입장에선 공주뿐만 아니라 두 시녀 모두 함부로 대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계기였다.
공주가 조유에게 말했다.
“이번 출정은 한귀비가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하는 게 몹시 중요하다. 눈에 띄지 않도록 잘 따라올 수 있겠느냐?”
“예. 마마. 어디로 가시건 그 지역의 표국, 상단, 방회의 행색으로 꾸미고 그 지방 사투리를 유창하게 할 줄 아는 인원을 원하시는 만큼 동원할 수 있사옵니다.”
기수와 공주는 흡족한 표정으로 마주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동창이 그렇게 지원해준다면 귀찮고 번거로운 일은 없을 것 같았다. 한귀비를 찾아냈을 때 포위망을 치고 뒤처리를 하는 일도 수월하게 처리될 것이었다.
공주는 지도를 보여주며 조유에게 명령했다.
“너는 먼저 출발해서 이 선에 닿는 객잔을 잡고 우리의 도착을 기다려라.”
“50리 밖 정도면 되겠습니까?”
“그 정도면 괜찮을 것 같구나. 너무 비싼 곳은 안 된다.”
“알겠사옵니다. 평범한 상단이 묵는 수준으로 고르겠습니다.”
“하지만 목욕통은 있어야 한다. 방도 네가 머물 곳까지 3개는 필요하고.”
“알겠습니다.”
기수는 목욕통이란 말에 자기도 모르게 씩 웃었다.
그리고 조유가 나간 뒤 불현듯 한 가지 사실을 떠올렸다.
“잠깐만! 나 계속 여장해야 하는 건가?”
“당연하지.”
“워우! 워우! 잠깐만… 계속 치마를 입어야 한다고? 게다가 이 얼굴로?”
“조백호가 봤으니까 그 얼굴 계속 유지해야지.”
기수는 거울을 봤다.
눈은 쭉 째지고, 광대뼈는 튀어나오고, 어깨는 떡 벌어지고, 가슴은 절벽에, 키는 큰, 여자다운 모습이라곤 전혀 없는 인물이 자기를 노려보고 있었다.
“아!… 적응 안 되네.”
역용술의 일부인 축골공을 운용하여 최대한 여성 체형으로 만들었지만 아무래도 한계가 있었다. 계속 이 모습으로 살아야 한다는 건 형벌에 가까웠다.
“빨리 옷 입어!”
공주는 궁 밖으로 나간다는 사실에 잔뜩 들떠서 등을 떠밀며 재촉했다.
가마 3대가 들어오고, 마침내 세 사람은 황궁 밖으로 나갔다.
가마는 동창 소유의 저택에 들어가서 세 사람을 내려주었고, 평복을 입은 세 여인은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저자거리에 섞일 수 있었다.
허름한 장포에 죽립까지 눌러써서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행색을 꾸미는 데는 성공했지만 고려하지 못한 변수가 있었다.
공주가 전부 다 망쳐버렸다.
시장 거리의 모든 것이 다 신기한 그녀는 이리 기웃, 저리 기웃, 이리 쪼르르, 저리 쪼르르 휩쓸려 다니면서 도읍에 처음 올라온 촌년 티를 물씬 풍겼다.
원래는 정오까지 북경을 벗어났어야 하는데 오후가 되어도 성 안이었다.
기수는 그녀의 심정을 이해하기에 그냥 내버려두었다.
공주는 아투사에게 명령했다.
“조백호가 우리를 기다릴 테니까 네가 먼저 가서 하루 늦게 도착한다고 얘기해.”
“알겠습니다.”
아투사가 떠나고 둘만 남게 되자 공주의 눈빛이 변했다.
“나 오래 걸었더니 피곤한데 우리 객잔에 들어가서 좀 쉴까?”
기수는 비로소 그녀의 계획을 알아차렸다.
‘피곤하기는 개뿔.’
그러나 황궁 이외의 장소에서 방해 없이 단둘이 지내고 싶어 하는 그녀 마음이 이해되기에 기수도 전적으로 호응해주었다.
그날 밤. 공주의 몸은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