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hwa Manri RAW novel - Chapter 377
다음 날 아침.
공주는 며칠 동안 지체되면서 벌어진 한귀비와의 간격을 좁히기 위해 경공을 펼치기로 했다. 조백호를 먼저 보내는 게 아니라 네 명이 동시에 가게 된 것이다.
조유는 부하들에게 강남으로 따라오라는 명령을 내린 후 세 명을 따랐다.
관도를 벗어나자 그가 조심스럽게 공주에게 물었다.
“마마. 한귀비가 강남으로 갔다고 보시는 겁니까?”
공주는 아투사의 보석에 대해 그에게 말해주지 않았다.
믿기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해명하기 귀찮았던 것이다.
“너는 내가 시키는 대로 따르기만 하면 된다.”
약간은 냉랭한 어조였다.
“예! 죄, 죄송합니다.”
조유는 옳고 그름의 판단보다 윗사람 눈치 살피는 능력이 더 중요한 환관이다 보니 동창이라면 더 잘 찾을 수 있다는 생각을 그 순간 전부 거두어들였다.
공주는 며칠 지체되는 사이 그어진 직선들이 전부 소주로 향한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한귀비의 현재 위치에 대해 확신을 가진 상태였다.
“자! 가볼까?”
공주가 앞장서고 기수와 아투사, 조유가 차례로 따랐다.
출발은 평범했다.
그러나 공주가 기수에게 도발을 하며 치고 나간 게 문제였다.
기수도 지지 않고 맞대응을 했고, 두 사람은 폭발적인 속도로 치고 나가버렸다.
“언니! 양소…. 양언니! 같이 가요!”
아투사도 죽어라 그들을 따라갔고, 조유는 혼자 뒤쳐지지 않으려고 사력을 다했다.
그는 아투사와 겨루면서 어느 정도 자존심이 상한 상태였다.
그래도 차이가 크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만약 실전이고, 목숨 걸고 싸우면 이길 수도 있다는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생각들을 모두 접어야 했다. 공주와 못생긴 궁녀의 경공은 그렇다 쳐도, 아투사의 경공을 도저히 따라갈 수 없었다.
정말 죽을 힘을 다해도 간격은 계속 벌어지기만 했다.
‘이제 보니 저 궁녀는 내공을 숨기고 있었구나!’
며칠 사이에 내공이 증진되었을 거라고는 상식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라서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조유는 이십 리 정도를 달려간 뒤에야 공주 일행을 만날 수 있었다.
공주가 웃으며 말했다.
“미안하구나. 앞으로는 네 속도에 맞추도록 하마. 앞장서거라.”
“화, 황송하옵니다. 헉헉…”
그렇게 조유를 앞장세운 일행은 중간에 잠시 쉬면서 객잔에서 싸 온 음식을 먹었고, 계속 인적 없는 경로를 찾아 소주로 향했다.
조유가 다른 세 사람만큼은 못하지만, 그래도 동창의 고수이다 보니 결코 느린 것은 아니었다. 일행은 저녁 무렵 상주에 도착하게 되었다.
소주까지 가는 데 절반쯤 되는 지점을 하루만에 주파했으니 사실 굉장한 속도라고 할 수 있었다.
“오늘은 저곳에서 하루 머물고 가자.”
아무리 바빠도 하룻밤 제대로 머물 장소를 찾는 것은 세 사람에게 몹시 중요했다.
조유 때문에 온종일 장난도 치지 못했기 때문에 몸이 근질거렸다.
그러나 상주성은 뭔가 이상했다.
일단 성문을 지키는 병사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서자 여기저기 불길이 이는 게 보였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조유는 공주의 물음에 대답하고 싶었지만, 그 역시 방금 도착했으니 아는 게 없었다.
“제가 관아에 가서 알아보겠습니다.”
“아니다. 우리는 정체를 드러내선 안 된다는 사실을 잊었느냐? 한귀비가 눈치 채고 도망치면 일이 더 커진다.”
“죄, 죄송합니다.”
“좀 더 안으로 들어가 보자.”
고함과 비명. 겁에 질려 뛰어다니는 사람들.
상주성 안은 무슨 전쟁이라도 난 것 같은 분위기였다.
기수는 아기를 안고 뛰어가는 아녀자 한 명을 붙잡고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무슨 일이라도 났습니까?”
여인은 겁에 질린 표정으로 일행을 훑어보더니 모두 여자라 그런지 약간은 안심하는 기색으로 대답했다.
“일월신교 놈들이 또 난동을 부리고 있어요. 아가씨들도 봉변 당하기 싫으면 당장 성 밖으로 달아나는 게 좋을 거요.”
그리고는 팔을 뿌리치고 계속 달아났다.
“일월신교라…”
기수는 뭔가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소화산에서 절반 이상 박살냈고, 장군부가 추격해 와서 섬멸을 눈앞에 둔 상태.
자기가 강남을 떠날 때까지만 해도 분명히 그런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런 큰 도시에서 방화와 약탈을 벌일 정도의 세력이 남아 있다니…
‘장군부는 도대체 뭘 하고 있단 말인가?’
더불어 혈매궁의 사매들에게 혹시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도 되었다.
그때 공주가 말했다.
“밖으로 나가자.”
기수는 당황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무슨 소리입니까? 도적떼가 백성들을 괴롭히는데 못 본 척 하고 그냥 가다니요?”
그가 정의로워서 하는 얘기는 아니었다. 일월신교가 어떻게 기세를 올리게 되었는지, 그리고 규모는 어느 정도인지 확인하고 싶었다.
공주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건 관군이 할 일이다. 우리에겐 우리의 일이 있지 않느냐?”
냉정한 판단이라고 할 수 있었다.
기수가 다시 말했다.
“일월신교가 날뛰는 땅으로 한귀비가 들어온 것은 우연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저들이 뭘 믿고 설치는지, 힘을 어느 정도인지 봐두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입니다.”
공주는 잠시 생각한 후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일이 이 지경이 되도록 관리들은 뭘 하고 있었는지, 어째서 조정에 보고도 하지 않았는지 궁금하구나.”
그녀가 걸음을 내딛자 조유가 칼을 뽑아들고 맨 앞으로 나섰다.
오늘 뭐 하나 잘 한 게 없으니 앞장서서 길이라도 열려는 것이었다.
대로를 따라 들어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붉은 두건을 맨 사내 십여 명과 마주쳤다. 그들은 어떤 집을 약탈하고 나오는지 저마다 자루 하나씩을 메고 있었으며 무기와 옷에는 핏자국이 선명했다.
그들 중 한 명이 일행 네 명을 보고 외쳤다.
“여자다!”
모두의 시선이 동시에 일행 쪽으로 향했다.
“맨앞의 놈은 남자잖아?”
“그건 죽여 버리면 되지. 흐흐흐….”
“아냐. 놔 둬. 얼굴이 희여멀건 한 게 딱 내 취향이다.”
“아! 맞다. 남자도 함부로 죽이면 안 되지. 크크크….”
그들은 자루를 내려놓고 순식간에 포위대형을 만들었다.
“맨 오른쪽 계집은 내가 먼저 찍었다!”
“난 왼쪽!”
“왼쪽은 내가 먼저다.”
“누구 마음대로? 내가 제일 먼저 할 거다.”
그들은 죽립 아래 턱선만 보고 점수를 매기면서 다가왔다.
기수는 이따위 시시한 도적놈들 중에도 가운데 선 자기를 선택하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에 왠지 모르게 기분이 나빠졌다.
그러나 그가 나서기도 전에 조유가 화살처럼 튀어나갔다.
“이놈들! 감히 누구 안전이라고…”
도광이 번뜩이면서 피가 사방으로 튀고 잘린 목과 팔다리가 공중으로 떠올랐다.
“크악!…”
“으윽! 막아라…”
그러나 일월신교 무리 중 조유의 칼을 제대로 받아내는 자는 한 명도 없었다.
순식간에 전멸.
오늘 종일 열등감에 시달리던 조유가 공주 앞에서 제대로 실력발휘를 한 것이다.
조유는 약간 자부심까지 느끼며 공주를 돌아봤다.
그러나 그녀는 못마땅한 어조로 말했다.
“전부 다 죽여 버리면 어떻게 하느냐? 심문할 놈은 생포했어야지.”
“아! 죄, 죄송합니다.”
기수는 쓰러진 일월신교 교도들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하네…”
공주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뭐가 이상해?”
“고작 이 정도 실력을 가지고 성 안에서 난리를 치는데 어째서 관군이 그냥 내버려두고 있을까요?”
“고수는 따로 있겠지. 더 들어가 보자.”
두 번째로 만난 패거리 역시 조유 혼자 나서서 모두 베어 버렸다.
그러나 마지막 한 놈은 무기 들었던 팔만 자르고 목숨은 살려두었다.
그는 놈을 점혈하고 칼로 허벅지를 푹 찌른 후 물었다.
“네놈은 누구냐?”
귀신같은 칼솜씨에 겁먹은 일월신교 교도는 고통을 참으며 대답했다.
“저, 저는 적천방 방도입니다.”
“적천방? 일월신교와는 무슨 관계냐?”
“저희 적천방은 일월신교의 한 지파입니다.”
“여기서 뭐 하는 거지?”
“그, 그게….”
“성을 약탈하러 온 것이냐?”
“그, 그렇습니다.”
“관군은?”
“그, 그들은 우리의 강시를 막느라 정신없을 것입니다.”
“강시라고?”
조백호뿐만 아니라 공주와 기수도 깜짝 놀랐다.
기수가 적천방 방도의 멱살을 잡고 물었다.
“일월신교 교주가 이곳에 왔느냐?”
그가 강남을 떠날 때 남아 있던 일월신교의 강시는 모두 500마리 정도.
그들에게 명령을 내리려면 교주가 종을 쳐야 했다.
소항산에서 호중만이 교주에게 강시들을 인수인계하던 장면을 봤기 때문에 확실히 알고 있었다.
강시가 관군과 싸우고 있다면 교주도 가까이 있을 것이고, 그를 잡으면 모든 분란을 단번에 종식시킬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적천방 방도의 대답은 기수의 생각과 달랐다.
“교주님이라니요? 그분이 여기에 왜 오십니까?”
“누군가 강시에 명령을 내리는 자가 있을 것 아니냐?”
“그건 우리 방주님이….”
“교주가 종을 빌려주었단 말이냐?”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너희 방주가 강시를 조종한다면서?”
“아! 방주님이 강시들을 부릴 때 흔드는 방울을 말씀하시는군요.”
“그래. 바로 그거 말이다.”
공주가 기수에게 물었다.
“무슨 얘기를 하는 거야?”
“강시들에게 명령을 내릴 때 종이 필요합니다. 원래 일월신교 교주가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만 빼앗으면 모든 강시를 무력화시킬 수 있습니다.”
공주는 반색을 했다.
“그런 게 있다면 찾아내야지.”
조백호가 다시 적천방 방도를 심문했다.
“강시는 지금 어디 있느냐?”
“포정사사를 치기로 했습니다.”
“그래. 고맙다.”
조유는 칼을 휘둘러 방도의 목을 베어 버린 후 앞장섰다.
“제가 포정사사로 가는 길을 안내하겠습니다.”
그는 즉시 경공을 펼쳤고, 세 사람은 그를 따라 이동했다.
포정사사는 다른 곳처럼 불이 붙은 것은 아니지만 사방에서 고함과 비명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담 위로 올라선 네 사람의 눈에 여기저기 무리지어 싸우는 관군과 바닥에 쓰러진 사상자들이 보였다.
무슨 전쟁이라도 난 것 같았는데, 기수가 확인한 강시의 수는 이십여 마리.
“으음….”
기수는 침음성을 흘렸다.
정말 오랜만에 다시 만나는 마물들이었다.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기 중에 독한 약냄새가 배어 있는 것 같아서 절로 코가 실룩거려졌다.
그는 담을 내려가기 전에 공주에게 말했다.
“마마. 제 말 잘 들으세요. 강시들은 몸 안에 피가 아닌 초록색 약물이 채워져 있습니다. 거기에 닿으면 옷이나 피부가 타니까 조심해야 합니다. 그리고 저들을 제압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머리를 부수는 것입니다.”
공주뿐만 아니라 모두 그 얘기를 들었다.
아투사는 걷힌 소매를 당겨서 내렸다.
공주가 검을 고쳐 쥐며 물었다.“
“그럼 목을 베면 끝나는 건가?”
“그게 잘 안 될 겁니다. 피부가 엄청나게 질기거든요. 아무리 예리한 칼이라고 해도 여러 번 내리쳐야 잘릴 겁니다. 그에 비하면 머리는 단단하니까 정타로 치면 한 번에 부술 수 있습니다.”
“그렇군. 무슨 말인지 알겠어.”
“대가리가 워낙 단단해서 빗겨 맞으면 튕기니까 꼭 정타로 쳐야 합니다. 그리고 저 두 사람은 좌우로 나누어 강시 조종자를 잡도록 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자기와 공주가 나선다면 둘로 충분하다는 생각이었다.
공주도 선뜻 동의했다.
“조백호. 아투사. 너희들은 담을 따라 돌면서 종을 흔드는 자를 잡아. 절대로 놓쳐선 안 돼. 할 수 있겠지?”
“맡겨주십시오!”
“예. 언니.”
그들은 즉시 파공음만 남기고 좌우로 사라졌다.
둘만 남게 되자 기수가 씩 웃은 후 말했다.
“우리도 가볼까?”
“좋아! 누가 많이 잡나 내기 하자. 이긴 사람 원하는 거 해주기.”
“그래볼까?”
두 사람은 각자 무기를 뽑아들고 좌우로 몸을 날렸다.
기수는 관군에 에워싸인 강시에게 다가갔다.
숫자는 관군이 압도적으로 많았지만 싸움은 일방적이었다.
관군은 강시가 두려워서 방패와 창으로 간격만 벌릴 뿐, 감히 나서서 공격은 하지 못하고 있었다.
주변에 쓰러져 죽거나 신음하고 있는 병사의 수만 이미 수십 명에 달했다.
무림의 중견급 고수도 다루기 버거운 놈이니 관군이 밀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병사 중 한 명이 기수에게 말했다.
“당신은 누구요? 아녀자가 나설 일이 아니니 저리 비키시오! 위험하오.”
기수는 씩 웃어준 후 몸을 날려 강시의 머리를 검으로 정확하게 찔렀다.
쨍!
순간, 기수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검이 두 동강으로 부러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