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hwa Manri RAW novel - Chapter 378
기수는 어이가 없었다.
‘소항산에서 한두 번 해본 일이 아닌데… 실수를 하다니…’
싸구려 검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바닥에 떨어진 무기 중 제일 단단해 보이는 것을 찾았고, 자루가 부러진 대도를 집어 들었다.
나무로 된 자루는 부러졌지만 육중한 칼 부분은 날이 잘 벼려져 있었다.
그러는 사이 강시는 기수 쪽으로 공격방향을 돌렸다.
강시와 싸우던 관군이 외쳤다.
“소저! 위험하오!”
기수는 급한 대로 칼을 휘둘러 다가오는 강시의 얼굴을 내리 그었다.
이번에도 쇳소리가 나면서 놈은 서너 걸음 뒤로 밀려났다.
“크워어!….”
녹색 체액을 흘리며 괴서을 지르는 강시의 모습이 괴기스러웠다.
“입 냄새 난다. 이놈아!”
기수는 놈의 정수리를 정확히 겨냥하고 칼을 수직으로 내리찍었다.
퍽! 소리와 함께 칼은 강시의 머리에 박혔다.
그러나 놈은 비틀거리던 신형을 바로잡고 다시 손을 휘저었다.
칼날이 인중까지 내려왔지만 대가리를 박살내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기수는 비로소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왜 이렇게 단단해졌지?’
박힌 칼은 뽑히지 않고, 강시는 계속 몸부림을 쳐 대서 결국 손을 놓고 물러섰는데, 고통을 모르는 놈은 성큼성큼 간격을 좁혀왔다.
‘몸놀림도 전보다 민첩한 것 같은데….’
잠시 떠나 있는 사이에 방업, 공업, 발업 다 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기수는 박힌 칼날이 흰 연기를 피워 올리며 부식되는 모습을 보고 맨손으로 상대하고 싶은 마음이 싹 달아났다.
혹시라도 체액이 튈까봐 일단 멸절강기로 몸을 보호하면서 파천강기를 끌어올려 칼이 박힌 자리에 정확하게 한 방을 먹였다.
퍽! 소리와 함께 놈의 대가리가 박살나자 감지기관을 잃은 몸은 현저하게 움직임이 둔해졌다.
관군이 환호성을 올리며 몰려들었다.
“됐다! 놈의 머리를 부쉈어!”
“밧줄과 요구창. 어서 앞으로!”
그들의 움직임은 몹시 능숙했다.
허우적거리는 강시를 꽁꽁 묶어 쓰러트리는 과정에 손발이 척척 맞는 것을 보니 이미 여러 번 해 본 솜씨였다.
‘백시랑과 사매들이 놀고 있었던 건 아닌가보군.“
군관 한 명이 기수에게 다가왔다.
“소저는 누구시오? 방금 무슨 수법으로 강시의 머리를 부쉈소?”
기수는 대답할 말이 없었다.
공주의 말마따나 강남에 온 가장 큰 목적은 한귀비를 잡는 것.
아무리 관군이라고 해도 행적을 드러내서 좋을 일이 없었다.
그는 포권으로 가볍게 인사만 한 후 말없이 몸을 날려 공주를 찾아갔다.
‘내가 한 번에 잡기 어려울 정도라면 그녀가 위험에 처했을 지도 몰라’
걱정이 되어서 선풍비의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기수는 오래지 않아 공주를 발견했다.
그녀는 기합을 토하며 강시를 상대하고 있었는데, 의외로 별다른 어려움을 겪지 않는 모습이었다.
푹! 소리와 함께 검극이 강시의 두개골로 파고들면서 주변이 함몰되었고, 검을 휘저어 뽑는 것으로 강시의 머리는 더 이상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했다.
기수는 그녀의 검에 운룡비결의 내력이 잔뜩 실려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예전에 소항산에서 상대해 본 경험이 있는 자신과 달리, 공주는 처음부터 각오를 단단히 하고 절세고수와 싸우는 마음가짐으로 임하는 것이었다.
‘괜한 걱정을 했네.’
강시 머리가 아무리 단단해도 그녀 검에 실린 운룡비결의 경력을 견뎌내지는 못했다.
공주가 기수를 발견하고 말했다.
“뭐 하고 있어? 난 세 마리짼데.”
“벌써?”
기수는 그녀의 호흡이 약간 가빠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적지 않은 내력을 소모했다는 의미.
게다가 검신이 연기를 내며 부식하고 있으니, 그녀가 한계에 도달하기 전에 자기가 하나라도 더 잡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아! 너희들 다 죽었어!”
기수는 내공을 잔뜩 끌어올렸다.
그리고 가까이 있는 강시를 향해 멸절강기를 시전해 보았다.
끼끼끽!….
쇠로 철판을 긁는 듯한 소리가 나면서 강시의 머리에 온통 녹색 체액이 흘러내렸다.
그러나 아쉽게도 두개골이 박살나지는 않았다.
‘역시 파천강기밖에 없는 건가? 후후…’
기수 입장에선 오행류의 10가지 변화 중 가장 자신 있는 게 파천강기였다.
그는 양 손을 쌍권총처럼 앞으로 뻗은 후 열 손가락에서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파천강기를 연속발사했다.
파파파파파팍!…..
10연발 쌍권총. 목표지점은 모두 이마 한 가운데.
표적지 역할을 한 강시는 목이 뒤로 젖혀지며 넘어졌지만, 놀랍게도 곧바로 다시 일어나 달려왔다.
“크워어어어!….”
“참 질기네.”
또 한 번 발사된 10연발 쌍권총.
맞은 자리를 또 맞는 데는 아무리 강시라고 해도 견디지 못했다.
16발인가 17발째부터 두개골이 관통되었고, 나머지가 대가리를 산산조각 내버렸다.
머리를 잃고 어기적거리는 놈을 보며 기수는 입맛을 다셨다.
‘4성 정도 진기 집중으로 20발이라…’
자신의 내력이 소항산 시절에 비해 많이 향상되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강시의 업그레이드는 정말 놀라운 수준이라고 할 수 있었다.
‘호중만이 죽었는데 어떻게 강시 성능이 이 정도까지 향상된 거지?’
누군가 그의 뒤를 이어 연구를 계속한다고 볼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홍택호의 장원 말고도 숨겨둔 시설이 있었다는 얘긴가?’
너무 안일하게 대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마교에서 갈라져 나온 일월신교.
강남 일대를 장악했기 때문에 세력만 놓고 보자면 천마교를 능가하는 수준이라고 볼 수 있었다. 그런 그들이 모처럼 손에 넣은 전략무기에 대해 백업대책을 마련하지 않았을 리가 없었다.
개를 풀어 냄새를 찾아간 뒤 전부 때려잡을 거라는 기대도 너무 쉽게 생각했던 것 같았다.
소항산에선 홈그라운드의 이점으로 수월하게 이겼지만, 이곳 강남은 일월신교의 땅.
뭔가 약냄새 숨길 방법을 강구했을 가능성이 컸다.
‘사매들은 별 일 없겠지? 괜찮을 거야.’
기수는 일단 이곳부터 정리하기로 마음먹었다.
다음 강시에게 다가간 그는 손가락 발칸 10발을 대가리의 한 지점에 발사했다.
손가락 10개로 짧은 기간에 10발을 쏘면서 움직이는 한 점을 맞추는 것은 상당한 집중력을 요구했다.
군대에서 영점 잡을 때 탄착군 삼각형이 작을수록 실력이 좋은 거라고 하던데, 기수는 그런 면에서는 특등사수라고 할 수 있었다.
이번 강시에 시험한 것은 내공을 5성까지 끌어올린 파천강기였다.
그러나 10발째엔 성공하지 못하고 11발이 두개골을 갈라지게 만들었고, 12발째부터 내부로부터의 폭발을 이끌어냈다.
“이제 나도 세 마린가?”
기수는 곧바로 다음 놈을 찾아갔다.
이번엔 6성의 공력으로 10연발.
8번째부터 강시 대가리가 부서져 나갔다.
대략적인 계산으로, 현재 자기 내공의 절반 수준은 되어야 강시를 처치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파천강기는 효율이 떨어지는 공격방식임을 감안하면 적절한 무기로 정타를 먹일 경우 두세 번 만에 놈들의 머리를 부술 수 있을 것이었다.
문제는 자신의 절반 정도 내공을 지닌 고수가 과연 몇 명이나 될 것인가 하는 점이었다. 그리고 멀리 떨어져서 자유롭게 공격하는 자신과 달리, 근접해서 공격하려면 반격을 당한다거나, 체액이 묻는다거나, 무기가 점점 녹는다는 점을 감안해야 했다.
‘백시랑이 엄청 골치 아프겠는 걸.’
힘 조절의 수위를 가늠한 기수는 파죽지세로 강시들을 제거해 나갔다.
공주는 기수의 움직임을 보고 내공을 더욱 끌어올렸다.
그러나 ‘부우욱~!’하고 10발을 발사하고 나면 한 마리가 끝나는 기수의 속도를 도저히 따라갈 수 없었다.
결국 10분도 안 되어 포정사사 내부의 강시들은 전멸하고 말았다.
공주가 연기 뿜는 검을 연못물에 헹군 후 말했다.
“내가 졌다!”
“이기면 뭘 원할 생각이었는데?”
“비밀.”
군관 서너 명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 기수가 말했다.
“여길 뜨자. 저 사람들과 얽히면 정체를 숨긴다는 계획이 어그러져.”
“알았어.”
공주는 기수를 따라 경공술을 펼쳤다.
무관들은 탄성을 토했다.
강시 무리 때문에 숱한 사상자를 내고 전멸을 향해 가던 순간, 홀연히 두 명의 여고수가 나타나 자신들을 구해줬다.
감사의 인사라도 하려고 다가갔는데, 그녀들은 믿기 어려운 경공술로 모습을 감춰 버렸다. 가히 선녀라고 해도 믿을 만한 상승의 몸놀림이었다.
물론 둘 중 한 명의 얼굴은 선녀가 아니었다.
지붕을 타고 담을 넘어간 두 사람은 처음 포정사사로 들어가던 자리를 찾아갔다.
조유와 아투사가 뚱보 사내를 붙잡아 놓고 담 아래서 기다리고 있었다.
공주가 다가가서 포로를 살펴보았다.
“이놈이 적천방의 방주인가?”
“예. 제가 잡았습니다.”
조백호는 자랑스럽게 가슴을 펴 보인 후 구리 방울을 내밀었다.
“이걸 가지고 있었습니다.”
검고 단단한 나무 자루에 구리 방울 세 개가 매달려 있는 물건이었다.
기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건 아닌데.”
자기가 본 것은 방울 세 개 모음이 아닌 하나의 종이었다.
그는 적천방 방주와 눈높이를 맞춘 후 말했다.
“마혈을 풀어줄 테니 조용히 묻는 말에만 대답해라.”
적천방 방주는 혈을 풀어줘도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이걸로 강시를 조종하는 것이냐?”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자기는 잡힌 이상 어차피 죽을 거라고 생각하는 듯 했다.
그러나 기수는 계속 질문을 했다.
“너희 교주의 종과 이 방울은 무슨 관계지?”
적천방 방주는 흠칫 놀란 표정으로 기수를 봤지만 역시 입은 열지 않았다.
기수의 질문이 이어졌다.
“강시는 모두 몇 마리나 남아 있느냐?”
적천방 방주가 계속 대답을 하지 않자 조백호는 화를 냈다.
“이놈! 당장 대답하지 못할까?”
하고 칼을 방주의 옆구리로 찔러 넣었다.
“으윽!….”
방주는 고통스런 신음을 토했지만 이를 악물고 버텼다.
기수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400마리라고? 도대체 장군부는 그동안 뭘 한 거야?”
최소한 반 이상은 줄여놓았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너무나 기대밖이었다.
공주가 기수에게 물었다.
“왜 심문을 하다 말아?”
“독심술로 다 읽었어. 강시 조종술이 발전되었나 봐. 교주의 종으로 이 방울 소리를 따르라고 다시 명령권을 넘겨줬다고 하네.”
조백호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기수를 봤다.
적천방 방주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는데 그걸 무슨 수로 아나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당사자인 적천방 방주는 눈을 부릅떴다.
“그, 그걸 어떻게 알았느냐?”
기수는 방울을 땅바닥에 버렸다.
“이제 이 방울은 필요 없네. 강시들이 전부 처리되었으니까.”
“전부 처리? 무슨 헛소리를 하는 것이냐?”
적천방 방주는 일찌감치 잡혀왔기 때문에 포정사사 담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보지 못했다.
공주가 말했다.
“헛소리인지 아닌지 들어가서 보려무나.”
그리고 방주를 번쩍 들어서 담 너머로 집어던졌다.
점혈을 당한 적천방 방주는 속절없이 안으로 날아갔다.
담 너머에서 쿵! 소리가 나자 공주가 조백호에게 말했다.
“너. 안에 들어가서 저 놈이 적천방 방주라는 사실을 알리고 관리에게 인계하고 돌아오너라. 우리의 정체에 대해 말하지 말고 곧장 나와야 한다.”
“예. 알겠습니다.”
조유가 담을 넘자 기수가 공주에게 말했다.
“우리. 장군부를 찾아가보자.”
공주가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
“그런데 너. 그들이 여기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고 있어?”
“아!… 그, 그러니까 내가 궁주자리를 맡고 있는 작은 문파가 하나 있거든.”
“지난번에 날 버리고 갔을 때 일이 생겼다고 한 그 문파?”
“버리긴 누가 버렸다고 그래? 아~ 참. 말 서운하게 하네. 진짜 급한 일이었다고.”
“그래. 그건 나중에 다시 따지기로 하고… 어쨌든 그 문파가 뭘 어쨌는데?”
기수는 잽싸게 머리를 굴렸다.
이곳을 떠날 때 백무영한테 기수를 잡아오겠다고 했는데, 아무리 추살령이 해제되었다고 해도 양구를 잡으러 떠난 양칠이 빈손으로 모습을 드러낼 수는 없었다.
그러나 백시랑과 사매들을 만나 자초지종을 꼭 듣고 싶었다.
“그 문파가 장군부를 도와 이곳에서 강시토벌을 하고 있었거든.”
공주는 양손을 허리에 얹고 따졌다.
“아니. 그런 무시무시한 적들을 놔두고 궁주가 자리를 비웠단 말야?”
“내가 떠날 때까지만 해도 강시들이 이렇게 강하지 않았다고.”
“어쨌거나 안 돼.”
“왜? 어째서?”
“잊었어? 우리 목표는 한귀비를 잡는 거야. 강시는 장군부에 맡겨둬.”
기수는 손을 내저었다.
“한귀비가 여기로 도망쳐 온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 틀림없이 그녀와 일월신교, 그리고 강시는 연관되어 있어.”
그녀가 사도이고, 일월신교 내에도 사도가 있었으니까 가능성이 영 없는 얘기는 아닐 것이었다.
공주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말했다.
“좋아. 저런 놈들이 설치는 것도 역모만큼이나 중요한 일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 일단 이곳의 상황을 알아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네.”
“잘 생각했어.”
공주가 생긋 웃었다.
“오랜만에 형부 얼굴 보겠네. 형부라면 우리 비밀을 지켜줄 거야.”
기수는 두 사람이 형부와 처제라는 사실에 뜨끔했다.
‘내 얘기가 다시 거론되는 건 아니겠지?’
잠시 후 조백호가 돌아오자 공주는 그에게 동창 부하들을 풀어 장군부의 현재 위치를 알아내고 자신들을 그리로 안내하도록 명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