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hwa Manri RAW novel - Chapter 379
상주 성 밖에 자리 잡은 장원.
조유가 패찰을 보이자 문지기 병사들이 깜짝 놀라 안으로 알린 뒤 뒤의 세 여인을 가리키며 물었다.
“저들은 대인의 수하입니까?”
조유는 슬쩍 뒤를 보았다.
공주가 턱짓을 하자 조백호는 약속한 대로 대답했다.
“그렇다. 내 부하들이다.”
“그러시군요. 자, 저를 따라오십시오.”
안내하는 병사를 따라 들어가면서 보니 장원엔 군영이 차려져 있었다.
군관과 병사들 모두 군기가 바짝 들어 바쁘게 움직였다.
객청으로 들어가자 병사는 자리를 권한 뒤 차를 내왔다.
“여기서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15분쯤 시간이 지나자 한 군관이 나와서 군례를 올린 후 조백호에게 말했다.
“실례합니다만, 패찰을 한 번 더 확인하게 해주십시오.”
기수는 그 군관이 누군지 알고 반가웠다.
바로 자신과 함께 활동하던 석초, 석통판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아는 체를 하고 싶었지만 이곳에 오면서 백무영 앞에서는 정체를 드러내지 않겠다고 마음먹었기 때문에 그냥 모른 척 했다.
패찰을 자세히 살펴본 석초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군요. 그런데 동창에서 이 머나먼 곳까지 사전 통지도 없이 갑자기 방문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조백호와 일행을 보는 표정이 그다지 우호적이지는 않았다.
동창을 환영하고 반길 사람은 세상에 없겠지만, 그래도 겉으로는 다들 웃는 낯을 보이기 마련인데, 장군부는 달랐다.
병부를 대표한다는 프라이드 같은 게 느껴졌다.
당연히 조유의 표정이 좋을 리 없었다.
“우리 동창이 언제 어디 간다고 밝히고 다니는 것 봤소? 그나저나 시랑께서는 여기 있는 거요? 없는 거요?”
“계십니다. 곧 나오실 테니 기다리십시오.”
석초는 네 사람을 한 차례 훑어본 후 나갔다.
그러나 곧 나온다던 백무영은 30분이 지나도록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다.
조백호가 공주에게 말했다.
“마마. 저들이 마마를 무시하고 있사옵니다.”
“내 정체를 밝히지 않았는데 무슨 무시란 말이냐. 동창의 갑작스런 방문에 놀라서 회의라도 하나보지. 좀 더 기다려 보자.”
그러나 백무영이 나타난 것은 그로부터 20분이 더 흐른 뒤였다.
느긋한 걸음걸이로 보니 대책회의를 한 게 아니라 엿 먹이려고 일부러 늦게 나온 것 같았다.
조백호가 못마땅한 어조로 말했다.
“오랜만이오. 백시랑.”
백무영은 조유를 위아래로 훑어본 후 대꾸했다.
“동창의 백호라고 했소?”
한 마디로 ‘너 나 아냐? 난 너 모르는데.’ 하는 태도였다.
기수는 자기도 모르게 킥! 소리를 내고 말았다.
환관을 벌레 보듯 하는 백시랑의 태도가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그를 다시 만난 것도 반가웠다.
이번에도 역시 ‘형님!’하면서 나서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기수가 소리를 내자 백무영은 세 여인을 차례로 훑어보았다.
남자라고 해도 추남에 속할 못생긴 여인, 그 옆엔 아리따운 서역 여인, 그리고 세 번째 여인을 보는 순간 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분명 만나 본 적이 있는 얼굴 같기는 한데, 이곳에 와 있을 리가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조백호가 백무영에게 말했다.
“긴히 드릴 말씀이 있으니 주변의 사람들을 모두 물리쳐 주십시오.”
“그냥 말씀하시오. 우리 장군부는 본래 비밀 같은 걸 좋아하지 않으니까.”
백무영의 태도에 조백호는 발끈했다.
“흥! 일을 얼마나 잘 하는지는 알고 있소. 거리에 강시들이 나돌아 다니도록 내버려두는 것은 장군부 아니면 감히 해낼 수 없는 장한 일이지요.”
이번엔 백무영이 발끈했다.
“지금 우리를 모욕하는 것이오?”
“난 있는 사실을 그대로 말했을 뿐이오.”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공주가 나섰다.
“부탁합니다. 긴히 드릴 말씀이 있어서 그러니 제발 주위를 물리쳐 주세요.”
백무영은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더욱 놀란 표정이었다.
그는 즉시 모두를 물러가게 했다. 조백호 때문이 아니라 공주 때문이었다.
객청에 다섯 사람만 남자 그가 물었다.
“혹시, 마마 아니십니까?”
공주는 손으로 입을 가리고 조신하게 웃었다.
“호호호! 저를 기억하시는군요. 오랜만이에요. 형부.”
“아! 마마를 뵙습니다. 저의 결례를 용서해주십시오.”
백무영은 급히 군례를 올렸다.
공주는 그를 일으켜 세웠다.
“예는 거두어주세요. 언니는 잘 있죠?”
“물론입니다.”
“벌써 여러 해 전이네요. 언니와 함께 만나뵈었던 게.”
“그렇습니다.”
형부와 처제 사이라고 해도 여염집과 달라서 실제로 만나는 건 이번이 두 번째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굴을 기억하는 것은 주예림이 한 번 보면 잊기 어려운 미모의 소유자이기 때문이었다.
고개를 제대로 들지도 못하는 백무영을 보며, 기수는 자기가 정체를 드러내지 않기 잘했다고 생각했다.
사이에 끼어서 처지가 애매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공주가 백무영에게 물었다.
“조카는 언제쯤 볼 수 있나요?”
“그, 그게….”
“이렇게 나와 계시는 시간이 많아서 좀 더 기다려야 할까요?”
“예. 아무래도 좀….”
“언니 정말 외롭겠다. 편지는 자주 쓰세요?“
“그러니까 그게…”
평소 자신만만한 백무영이지만 지금은 계속 쩔쩔 매고 있었다.
공주는 미소 지으며 기수 쪽을 한 번 돌아본 후 더 이상 백무영을 곤란하게 하지 않고 바로 본론을 꺼냈다.
“강시는 일월신교 소행인가요?”
백무영이 놀란 어조로 물었다.
“혹시 강시를 만나셨습니까?”
“아, 예. 포정사사에서 스무 마리 남짓 어기적거리기에 머리를 부숴줬죠.”
“아! 그게 마마가 하신 일이었습니까? 어쩐지…”
백무영은 포정사사의 병력만으로 강시 24마리를 잡고 더불어 적천방 방주까지 생포했다는 엄청난 전과 보고를 받고 긴가민가했는데 이제야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해를 할 수 있었다.
그는 조백호와 공주 옆의 두 시녀를 자세히 봤다.
공주가 무공 고수일 거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하고 조백호와 두 시녀의 솜씨였을 거라고 판단한 것이다.
조백호보다 서역 여인의 기도가 더욱 강렬한 것은 의외였다.
못 생긴 궁녀에게선 아무런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 일행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구성원으로 보였다.
백무영이 공주에게 말했다.
“많이 놀라셨겠습니다.”
“뭐, 황궁에선 더 놀라운 일도 겪었는걸요.”
“아! 그 소식은 들었습니다. 한귀비가 대역무도한 짓을 벌이려 했다면서요?”
“맞아요. 정말 끔찍한 일이었지요.”
“금군과 동창은 도대체 뭘 했는지 모르겠군요.”
조백호가 인상을 구겼지만 두 사람 대화중에 감히 끼어들지는 못했다.
“저희는 부황폐하의 명에 따라 한귀비를 추적하고 있어요.”
“아! 그러시군요. 그런데 어째서 마마께서…”
“제가 부황폐하 앞에서 솜씨를 좀 보여드렸거든요.”
“한귀비의 정체를 밝혀낸 게 마마라는 소문도 듣긴 했습니다만…”
“정체를 밝혀낸 정도가 아니라 그녀를 잡기 직전까지 갔었죠. 하지만 아쉽게도 놓치고 말았어요. 그녀와 배후세력을 전부 색출해내기 위해 여기까지 따라온 거예요.”
공주는 품 안에서 금패를 꺼내어 보였다.
백무영의 눈이 커졌다.
황제가 하사한 금패는 공주가 단지 놀러 온 것이 아니라 황제의 특명을 받고 공무를 수행하는 신분이라는 것을 증명했다.
“이곳에 있는 저와 장군부의 모든 군관, 병력은 지금부터 마마의 명령에 충심을 다해 따르겠습니다.”
공주의 한 마디는 황제의 명령과 같은 무게를 지니게 된 것이다.
“호호!…. 고마워요. 일단 일월신교와 강시에 대해 알고 싶어요.”
“예. 일월신교는 본래 천마교라는 집단에서 갈라져 나온 사교집단으로, 오래전부터 소주, 항주, 상주, 남경, 양주 일대를 기반으로 세력을 쌓아왔습니다. 그러다가 혈매궁이라는 강호 문파와 알력이 생겨 소항산에서 서로 대치하게 되었는데, 거기서 혈매궁에게 크게 패해 지도부와 교주의 아들들이 죽고 퇴각하였습니다.”
공주는 기수 쪽을 보고 ‘오우!’하고 놀란 입모양을 해 보였다.
기수는 어깨를 한 번 으쓱했다.
백무영의 말이 이어졌다.
“그런데, 일월신교에는 사체에 주술로 생명을 불어넣는 끔찍한 수법이 전해져 오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혈매궁에 대한 복수를 꿈꾸며 500마리의 강시를 이끌고 자신들의 본거지에 숨었다는 사실을 파악한 우리 장군부에서는 전력을 기울여 강시를 찾아내어 없애고 일월신교 잔당도 토벌하였습니다.”
공주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500? 강시가 500마리나 있다고요?”
“저희가 그동안 잡아서 태운 게 400마리가 넘습니다.”
“강시가 불에 약한가요?”
“예. 실험을 통해 알아낸 바에 의하면 물과 불에 모두 약합니다. 하지만 머리를 부수고 묶은 뒤에 태울 때나 통하는 얘기지, 보통 상태에선 몸에 불이 붙도록 놔두지를 않습니다.”
“물에 약하다는 건 뭐죠? 물을 뿌리면 녹기라도 하나요?”
“강이나 호수에 빠졌을 때를 말하는 겁니다. 반 시진 정도 잠겨 있으면 상태가 몹시 나빠집니다. 그래서 비가 많이 오는 날엔 놈들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물에 빠트려도 빠져나올 거 아녜요?”
“역시 그게 문제입니다.”
“결국 머리를 부수지 않으면 물이고 불이고 통하지 않는다는 의미네요. 반대로 머리만 부수면 나머지 처리는 쉽고.”
“그렇습니다.”
기수는 장군부에서 자기가 넘겨준 자료들을 통해 연구를 많이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도 아직 다 없애지 못한 것은 이해할 수 없었다.
공주가 말했다.
“그럼 어제 우리가 스무 마리 정도 해치웠으니까 70여 마리쯤 남은 게 되나요?”
“아닙니다. 얼마나 남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500마리라고 하지 않으셨나요?”
“처음엔 그랬습니다만, 최근에 새로운 강시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들은 몸이 더 단단하고 움직임은 더 민첩합니다.”
“새로운 강시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말씀인가요?”
“그렇습니다.”
“그거 큰일이군요.”
“죄송합니다.”
공주는 입맛을 다셨다.
백무영이 미안해 할 일은 아니지만 상황이 심각한 것은 사실이었다.
“적이 이곳 상주를 근거로 삼고 있나요?”
“아닙니다. 우리들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끌기 위함인지 도시를 번갈아가며 강시를 출몰시키고 있습니다. 지난 며칠 동안 이곳을 떠들썩하게 했으니 다음엔 소주나 항주에서 말썽을 일으킬 것입니다.”
“강시 만드는 곳을 찾아내지 못하게 하려는 수작이군요.”
“그렇습니다. 저들의 의도를 알고 있지만 강시 제압하기가 워낙 까다롭다 보니 인력을 나누어 운용할 수가 없는 실정입니다.”
공주가 웃으며 말했다.
“저희가 형부를 좀 도와드려야겠네요. 호호!…”
백무영은 반색했다.
하룻밤 새에 신형 강시 24마리를 처치한 것은 정말 믿기 어려운 전과였다.
지금까지 장군부에서 해온 식이라면 사나흘에서 길면 열흘 정도가 걸렸을 일을 이들 4명이 하루저녁에 해낸 것이다.
일월신교 측도 몹시 당황하고 있을 게 분명했다.
“마마께서 도와주신다면 정말 강남 백성들에게 크나큰 복이 될 것입니다.”
“우선 부탁드릴 일이 있어요.”
“하명하십시오.”
“저와 우리 세 사람의 정체를 오로지 형부만 아시고 그 외의 다른 어떤 사람도 알지 못하도록 해주세요. 아무리 심복이라고 하더라도요.”
“그리 하겠습니다.”
공주는 심각한 어조로 다시 말했다.
“한 번 더 말씀드립니다. 정말 중요해요. 우리가 여기 온 목적은 강시가 아니라 한귀비를 잡는 거예요. 그녀가 우리 존재를 알아차리면 이제까지의 노력이 모두 허사로 돌아갈 수 있어요. 강시의 폐해를 보니 어쩌면 역모에 관련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강시토벌을 돕는 것이지만, 우리 진짜 목표가 나타나면 그걸 우선할 거예요.”
“명심하겠습니다.”
공주는 조백호를 가리키며 말했다.
“당분간은 우리 세 사람을 동창 소속 장반이나 영반쯤으로 알려지도록 하면 문제 없을 것 같네요.”
“그리 하겠습니다. 머무실 곳을 마련해드리겠습니다.”
“방 세 개에 목욕통이 하나쯤 있으면 좋겠네요.”
백무영은 즉시 방을 마련했다.
황제의 딸이라는 사실만 해도 귀빈 중의 귀빈인데, 황상으로부터 금패를 하사받아 장군부 지휘의 전권을 가지고 있기까지 하니 한 치의 소홀함도 없어야 했다.
아예 별채를 하나 통째로 비워 머물게 하자 부하 무관들은 볼멘소리를 했다.
“동창 놈들에게 그렇게까지 잘 해줄 이유가 있습니까?”
문무 관원들은 환관을 근본적으로 미워했다. 그들이 과거를 통해 능력을 검증받은 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권력을 휘두르기 때문이다.
하물며 경쟁관계인 동창과 장군부 사이에 별채를 통째로 내주는 융숭한 대접은 무관들의 심기를 긁을 수밖에 없었다.
백무영은 답답했지만 사실을 밝힐 수 없었다.
그는 석초를 따로 불러서 지시했다.
“자넨 별채를 철저히 경계하고, 동창의 네 사람을 가까이에서 모시면서 그들이 원하는 일이라면 무엇이건 들어주도록 하게.”
석초는 동창 시중드는 일을 자기한테 맡기는 게 불만이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보니 백시랑이 그렇게 행동하고, 자기한테 특별한 지시까지 내리는 데는 뭔가 이유가 있을 것 같았다.
“예! 알겠습니다. 맡겨주십시오.”
백무영은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석초는 네 사람이 머무는 별채로 찾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