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hwa Manri RAW novel - Chapter 388
“마마. 다시 한 번만 생각해 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조백호가 자기 본분을 떠나 집요하게 달라붙는 것은 강시 제조시설을 찾아낸 게 대단히 큰 공적이기 때문이었다.
처음엔 그렇게까지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강남에서도 번화하기로 소문 난 소주.
그 거대한 도시를 쑥대밭으로 만들었으니 조정에 상세한 보고가 올라갈 게 분명했다.
바로 그 상황에 적의 소굴을 발견하고 불태운 게 자기라고 보고된다면 지금 공석인 천호 자리는 물론, 나중에 잘하면 동창의 창주 자리까지 넘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건 그의 사정일 뿐, 공주의 생각은 달랐다.
그녀가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넌 참 욕심이 많구나.”
“예? 제가요?”
“이것저것 다 먹으려 하지 말고 하나만 선택해. 우리를 따라 가서 역적을 잡거나, 아니면 여기 남아서 강시 소탕의 공을 장군부와 나누거나.”
“아아!….그, 그러니까 둘 다…”
“우린 내일 저녁에 바로 출발할 거야. 또 한 번 말하게 하면 너 나한테 혼난다.”
조백호는 더 이상 입을 열 수 없었다.
그렇게 조백호를 떨쳐낸 공주는 기수를 찾아갔다.
그새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아투사를 발견하고 물으니 그녀는 어느 건물 쪽을 턱으로 가리켰다.
공주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내 이럴 줄 알았어! 그새 못 참고 사매들한테 가?”
화가 났지만, 궁주가 자기 문도들과 함께 있는 게 딱히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공주는 아투사와 함께 그 건물로 들어갔다.
그리고 객청 문 앞에서 심호흡을 한 뒤 벌컥! 열어젖혔다.
다행스럽게도 일곱 사람 모두 옷을 제대로 입은 채 차를 마시고 있었다.
“아! 어서 와.”
기수는 두 사람에게 자리를 권하고 차를 따라주었다.
“무슨 얘기들 하고 있었어?”
“응. 한귀비와 사득공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 의견 교환 중이었지.”
공주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제 혈매궁과 함께 할 이유가 없는 거 아닌가?”
그녀들의 자료조사 덕분에 적의 소굴을 단번에 찾을 수는 있었다.
그러나 한귀비가 도망쳐 버렸으니까 이제 강남의 정보는 더 이상 필요 없었다.
공주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차린 여섯 사매의 표정이 일제히 변했다.
춘매가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
“설마. 이제 와서 우리를 떼어낼 생각은 아니겠지?”
“그런 건 아니고… 난 단지 역할에 대해서 얘기한 것뿐이야.”
동매도 분개했다.
“궁주가 너를 따라갈 것 같아?”
공주도 자기가 좀 염치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더 이상은 말하지 않았다.
기수가 사이에 끼어들어 진정시켰다.
“하하… 괜히 신경 곤두세울 필요 없어. 한귀비를 잡는 데는 너희 여섯 명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거든.”
공주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기수를 봤다.
기수는 이유를 설명해주었다.
“한귀비 혼자라면 몰라도, 그녀의 곁엔 골치 아픈 놈이 따라붙었어. 독 가루를 터뜨려서 진로를 막아버리는 놈이지. 만약 맞바람이라도 불면 아주 위험해질 수 있어. 하지만 우리 쪽에 매화육궁진이 추가된다면 도망갈 길을 다 막아버릴 수 있지.”
공주는 즉시 혈매궁 여인들의 필요성을 인지했다.
아투사와 조백호가 자신 정도의 무공만 된다면 네 방향을 막을 수 있겠지만, 그 두 사람은 사득공과 한귀비를 막을 능력이 없었다.
하지만 형매궁 여인들의 합격진이라면 둘 중 하나, 잘 하면 두 사람 모두의 발을 묶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었다.
공주는 얼른 화제를 돌렸다.
“차 향기가 참 좋네요. 아! 그리고 제가 동창의 창주한테 편지를 썼어요. 혈매궁이 이번에 큰 공을 세웠으니까 더 이상 괴롭히지 말라고요.”
나름 고맙다는 인사를 기대하고 꺼낸 얘기였다.
그러나 혈매궁 여인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흥! 네가 뭐라고 동창에서 그 말을 들어주겠느냐?”
춘매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모두 괜한 생색내기라고 생각했다.
공주는 억울한 마음에 자기 정체를 밝히고 싶었지만, 괜히 신분만 밝히고 동창 창주가 자기 말을 안 들어주면 꼴만 더욱 우스워질 것이기에 그냥 참았다.
“내일 저녁 떠나기 전까지 우리 뭐 하지?”
공주가 무심코 꺼낸 말에 객청 분위기가 묘하게 변했다.
하고 싶은 일이 딱 한 가지 있는데, 낯선 장소, 유동적인 상황이다 보니 실행하기에 애매한 면이 있었던 것이다.
추매가 공주와 아투사를 번갈아 훑어보다가 갑자기 물었다.
“너희들. 우리 궁주하고 할 때 함께 하니? 아니면 따로 하니?”
공주와 아투사의 볼이 붉어졌다.
갑작스럽고도 노골적인 질문에 당황한 것이다.
추매가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은 뒤 말했다.
“호호호!… 대답은 들은 걸로 하고…. 뭐, 어차피 그런 사이라면 우리하고도 함께 어울리는 게 어때?”
“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불필요한 낭비를 없애자는 말이지. 어차피 서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뻔히 알면서 궁주를 시간 맞춰 보내고 맞고, 번거롭게 할 이유가 없잖아?”
“말도 안 되는 소리!”
공주는 펄쩍 뛰었다.
아투사와는 어쩌다 보니 한 남자를 공유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특수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둘 정도면 부족하지도 않고, 남지도 않고 딱 좋았다.
어미 젖 물겠다고 싸우는 강아지들도 아니고, 8명이 남자 하나에 매달려 경쟁하고 싶은 생각은 눈꼽 만큼도 없었다.
“뭐. 싫으면 관두고…”
추매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공주와 아투사의 얼굴, 그리고 몸매를 유심히 관찰했다.
기수는 추매와 동매가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지금 추매는 효율적인 시간 관리나 편리함 때문이 아니라 공주와 아투사의 알몸을 보고 싶어서 그런 제안을 하는 게 분명했다.
사실 공주는 각별한 미모와 바디라인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아투사는 서역 여인 아닌가.
옷 속이 궁금한 건 남자만이 아닐 것이었다.
기수 입장에서는 8:1을 원하지 않았다.
물론 구성원이 한 자리에 모이면 좀 더 효율적이긴 하겠지만, 그건 그녀들에게 효율적이란 얘기지, 자기는 엄청 빡세게 노동을 해야 하는 것이다.
옛날 우리나라 방직공장들 중엔, 여직공들이 화장실 자주 못 가게 하려고 점심밥에 국을 안 주는 곳도 있었다던데, 자기도 그 짝이 나기는 싫었다.
어느 정도의 휴식은 필요했다.
적어도 이쪽 방에서 저쪽 방으로 걸어가는 시간만이라도…
다음날 저녁까지 뭘 할지는 기수가 결정했다.
한귀비와의 만남에 대비해서 청탑산 사범의 무공들을 배우기로 한 것이다.
실망하던 기색은 은혈대법에 대한 설명과 아투사의 뇌전격 시범, 공주의 한음빙정공 시범 이후 진지한 학구열로 바뀌었다.
여섯 사매 모두 은혈대법, 뇌전격, 단정홍, 파천강기 등의 필살기 성격 무공들을 연습해 보았는데, 아쉽게도 뇌전격에 성공하는 사매는 없었다.
기수는 내친 김에 멸절강기도 공개했다.
“이건 사득공의 독 가루를 막는데 효과가 있을 거야. 미리 펼치면 공방에 방해가 되지만 그가 종이봉투 같은 걸 던지면 즉시 펼칠 수 있도록 연습해.”
그러나 공주와 달리 나머지 7명은 그걸 쉽게 익히지 못했다.
탁지연이 그나마 미약하게나마 강기 형태를 갖추는데 성공했을 뿐이다.
기수 입장에선 약간 아쉬웠지만 상승무공을 하루 만에 익히기를 바라는 건 과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 날 때마다 연습 해 둬.”
그러자 설매가 중얼거렸다.
“안 되는 이유는 하나밖에 없어. 내공이 부족해서 그래.”
풍매가 맞장구쳤다.
“맞아. 저 궁녀는 도대체 음양대법을 얼마나 많이 해준 거야?”
기수와 공주가 거의 동시에 말했다.
“그런 거 아니거든!”
공주는 격분한 표정으로 해명했다.
“난 원래 영약을 엄청 먹어서 기본 내공이 있었어. 그리고 운룡비결을 기수에게 가르쳐주기까지 했다고!”
“흥! 궁녀 주제에 무슨 수로 영약을 먹어?”
“그리고 그 운룡 뭐라는 것도 보나마나 알량한 무공이겠지. 우리 궁주가 얼마나 고수인데 남한테 무공을 배워?”
사매들이 떠들어대자 공주는 분해서 씩씩거리다가 갑자기 표정이 차분해졌다.
그녀는 일어나서 객청의 기둥 앞에 선 후 말했다.
“운룡비결이 어떤 건지 보여줄 테니 다들 눈 똑바로 뜨고 잘 봐.”
그리고는 내공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탁지연은 급히 손을 내저었다.
“뭐 하려고 그래? 믿을 테니까 그만 둬.”
공주가 기둥을 쳐서 부러뜨리면 지붕이 무너질 수도 있었다.
그러나 공주는 탁지연의 말을 무시하고 주먹을 뻗었다.
푸욱!
특이한 파열음과 함께 공주의 손이 팔뚝 절반까지 기둥에 박혔다.
그 광경을 본 사매들 모두 깜짝 놀랐다.
기둥을 부러뜨렸다면 원래 그녀가 고수라는 사실을 알기에 그러려니 했겠지만, 지금의 타법은 뭔가 이상했다.
공주가 팔을 뽑은 후 턱을 세우고 말했다.
“이게 바로 운룡비결이야. 너희 궁주가 배우고 싶어서 내게 애원했지.”
기수는 한 마디 튀어나오려는 것을 억지로 참았다.
사매들은 우르르 물려가서 구멍 뚫린 기둥을 살펴봤다.
“저 끝에 주먹 모양이 새겨져 있어.”
“도대체 어떻게 한 거지? 내가중수법인가?”
못 믿겠다는 표정으로 기둥을 두드려보는 사매도 있었다.
“이 단단한 나무가 갑자기 진흙이라도 된 것처럼 물러졌네.”
“아까 봤지? 빠르지도 않고 천천히 꾸욱~ 눌리는 거.”
사매들은 신기해했다.
그리고 공주의 무공이 기수와 전혀 다른 유파라는 사실도 확인했다.
단지 예뻐서 궁주의 음양대법을 듬뿍 받은 게 아니라 자기 실력이 있었던 것이다.
추매가 공주의 허리에 슬쩍 팔을 감으며 말했다.
“저 진짜 대단하구나. 우리 친하게 지내자, 예림. 그런데 성이 예씨야? 아니면 따로 있는데 안 가르쳐주는 거야?”
공주는 깜짝 놀라 그녀의 손을 밀어냈다.
“저리 가. 왜 남의 몸을 함부로 만지고 그래?”
“호호호! 민감하게 반응할 것 없어. 여자끼린데 뭐 어때?”
공주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아투사라면 몰라도 여섯 사매들과는 절대로 그럴 마음이 없었다.
좌우를 둘러보니 자신을 향한 그녀들의 시선이 확실히 달라져 있었다.
‘역시 강호에선 실력을 보이는 게 최고구나.’
진작 이렇게 하지 않은 게 후회될 지경이었다.
그 이후로도 무공 연습이 이어졌는데 공주가 운기나 초식 운용에 대해 뭐라고 한 마디라도 할라 치면 다들 경청했다.
기수는 그 짬을 이용하여 잠시 운기조식으로 몸 상태를 점검했다.
실내에 미녀 8명과 함께 있으면서 아직까지 모두 다 옷을 입고 있다는 사실이 몹시 낯설고 어색한… 그러면서도 편안한 느낌이었다.
‘매일 이렇게 지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은데…’
물론 그녀들이 가만 놔두지 않겠지만…
사매들은 꼬박 밤을 새면서 새로 배운 무공들을 연습했다.
피곤한 사람은 기수처럼 구석에 가서 운기조식을 하기도 했지만 오래지 않아 다시 공부 대열에 복귀했다.
한귀비와 사득공이 워낙 강적이다 보니 시키지 않아도 다들 열심이었던 것이다.
새벽 무렵 운기조식을 마친 기수는 단전에 충만한 기운을 불현듯 사매들에게 나눠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자기 쪽에 관심 가져주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아투사마저도 멸절강기를 만들어보려고 애쓰고 있었다.
‘아! 진짜로 이 많은 미녀들과 옷 입은 채로 아침을 맞아버렸네.’
다행이라는 생각과, 남자로서 무시당했다는 생각이 교차됐다.
낯선 장원의 허술한 객청이었기 때문이라고 스스로를 위호하는 수밖에 없었다.
아침을 먹은 뒤, 탁지연은 백무영을 찾아가 말했다.
“시랑님. 그동안 감사했어요. 이제 저희들은 이만 떠날까 해요.”
백무영은 깜짝 놀랐다.
“가긴 어딜 간다고 그러십니까? 아우도 아직 돌아오지 않았는데요.”
“궁주님은 아마 저희들 산채에 가 계실지도 몰라요. 거기서 기다리는 게 저희들도 마음 편한 부분이 있고요.”
“아! 조백호 때문에 그러십니까? 그 일이라면 걱정 마십시오. 우리 장군부와 함께 있는 한 동창은 절대 허튼 수작을 할 수 없으니까요.”
“그 이유는 아니예요. 강시를 다 잡았으니까 저희들도 쉬고 싶어서요.”
“하, 하지만…”
백무영 입장에선 아직 모든 강시를 다 잡았다는 확신이 없었다.
좀 더 시간을 두고 살펴봐야 할 일이었다.
이제까지 강시토벌에 있어 혈매궁의 역할은 지대했다.
가녀린 여인 6명이 거의 장군부 무관 100명 몫은 했다고 봐야 했다.
그런 그녀들이 떠나간 뒤에 혹시라도 다른 강시 무리가 나온다면 문제가 심각해질 수 있는 것이다.
“며칠만 더 머물러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사실은… 오늘 저녁에 떠나야 해요.”
“예? 오늘 바로요?”
“조백호가 우리와 함께 가자고 제안을 했거든요.”
“아!… 그랬군요.”
백무영은 무슨 얘기인지 즉시 알아차렸다.
동창이 혈매궁에게 그런 제안을 했을 리가 없었다.
조백호는 공주의 하인 역할로 따라온 상태니까 전적으로 공주의 의지라고 봐야 했다.
즉, 혈매궁은 강시 토벌을 하고 쉬는 게 아니라 역적 잡는 일에 즉시 동원되는 거라고 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자기가 감히 방해할 수 없었다.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부디 종묘사직을 위해 애써주십시오.”
“저희가 무슨 힘이 있나요? 호호…”
“그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 이곳에서 하신 일들은 공적부에 빠짐없이 적어서 조정에 보고하도록 하겠습니다.”
본래 일을 마치고 나면 가장 중요한 게 논공행상인데, 그걸 마다하고 더 중요한 일을 위해 나서겠다고 하니, 최대한 잘 써줄 생각이었다.
“고맙습니다.”
백무영은 오후가 되자 비단주머니 가득 금원보, 은원보를 담아서 직접 가져다주기까지 했다. 사례금 겸 전별금 겸 여비였다.
그리고 따로 공주를 만나 각별히 조심하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기수도 속으로 그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형님. 인사드리지 못해서 미안합니다.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마침내 해가 떨어지자 아투사는 혈매궁 여인들 모두가 지켜보는 앞에서 왕관의 보석을 빛나게 만들었다. 사매들은 연신 탄성을 토했다.
패철로 방위를 맞춘 지도 위에 선이 하나 그어지자 기수는 모두에게 말했다.
“자! 이제 시작이다. 난 먼저 추적할 테니까 다들 이 선을 따라와.”
그리고는 장원 담 위로 올라가 곧바로 선풍비를 시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