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hwa Manri RAW novel - Chapter 390
아투사와 함께 한 시간은 길지 않았지만 밀도는 아주 진했다.
그래서 그 여운이 떠나기 전 함께 저녁을 먹는 시간까지 이어졌다.
8명의 여인들이 있지만 그 중 한 명과 둘만의 비밀을 가지는 게 의외로 짜릿했다.
모든 준비를 끝내고 아투사가 주문을 외우자 보석이 빛을 발했다.
여전히 서쪽이었다.
공주가 지도에 선을 그은 후 말했다.
“확실해. 장안으로 가고 있어.”
“거기에 뭐가 있는 거지? 혹시 또 다른 강시?”
기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런 시설을 다른 곳에 만들기는 굉장히 어려울 거야. 사득공도 일월신교의 재력 덕분에 겨우 해낸 거니까.”
공주가 문득 걱정 된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백시랑은 괜찮을까?”
“강시 없이 일월신교만 남았다면 장군부만으로도 충분하지. 지금의 일월신교는 예전에 비해 전력이 삼분지 일 정도에 불과할 테니까.”
공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장군부에도 고수들이 있으니까 맡겨둬도 될 것 같았다.
“좋아! 오늘은 반드시 잡는 거다. 동창의 인원이 더 늘었으니까 모르고 지나칠 가능성은 없어. 우리만 속도를 내면 되는 거야.”
여섯 사매는 공주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들은 예림에 대해 반말이나 욕을 하는 경우가 차츰 줄어드는 중이었다.
여섯 명, 특히 탁지연의 눈치가 빤하다 보니 예림이 일반 궁녀가 아니라는 사실을 차츰 확신하게 된 것이다.
군대에 가까운 인원을 동원하는 능력.
황제가 하사한 금패를 가지고 있으니 그건 그럴 수 있다 쳐도, 함께 생활하면서 동창의 조백호가 그녀 대할 때의 태도를 보면 단지 무공뿐만 아니라 신분도 꽤 높은 게 분명했다.
적어도 황제가 아끼는 비빈.
미모로 보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얘기였다.
공주는 감히 회의에 끼지 못하는 조백호에게 경로를 가르쳐주고 동원된 인원의 편성도 확인하기 위해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아투사도 따라갔다.
탁지연이 기수에게 물었다.
“궁주. 어떻게 할 거야?”
“뭘 어떻게 해?”
“황상의 비빈을 건드리고 뒷일을 어떻게 감당할 거냐고.”
기수는 미소 지었다.
황제의 딸은 목욕도 안 시킨다고 세간에 알려져 있었다.
워낙 존귀한 신분이다 보니, 아무도 없는 곳에서조차 알몸이 되는 게 예법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물론 확인해 본 결과 그것은 소문에 불과했지만…)
탁지연이 예림을 비빈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설마하니 공주가 궁 밖으로 나올 수 있다고 상상도 못 하는 것이다.
기수는 말하고 싶어서 근질거렸지만 본인이 직접 밝힐 때까지는 입을 다물기로 했다.
아투사의 자주 씻는 습관에 대해 얘기했다가 아까는 한 번 물리기까지 하지 않았던가.
“지극한 마음은 하늘을 감동시켜서 어떻게든 길이 열리는 법이지.”
기수는 말해놓고 아차 싶었다.
여섯 명 모두의 표정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동매가 따졌다.
“예림이한테 지극한 마음이면 우린 뭐야?”
춘매도 한 마디 했다.
“그 애한테 매일 너만을 사랑한다고 속삭이기라도 하는 거야?”
“무슨 소리! 내겐 너희들밖에 없어. 진짜야! 내 맘 몰라?”
“예림이나 아투사나 예쁘잖아. 눈이 돌아갈 만큼…”
“에이… 비교할 걸 비교해야지. 세상에서 너희들이 제일 예뻐.”
“웃기고 있어.”
사매들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손을 내저었지만, 그러면서도 다들 자기가 가장 자신 있다고 생각하는 얼굴 혹은 몸매 각도를 기수 쪽으로 향했다.
기수는 이번에도 잘 넘겼다고 스스로를 칭찬해주었다.
그는 거울을 보고 역용상태와 복장상태를 확인한 후 아래층으로 내려가서 공주에게 다가가 물었다.
“준비 다 된 거야?”
“응. 조백호가 300명을 횡대로 펼쳐서 따라오기로 했어.”
“역적을 잡는다는 게 정말 큰일이구나. 우리 혈매궁이 동창을 거느리고 다닐 줄은 꿈에도 몰랐는걸.”
“후궁전에까지 자객이 들어와 있을 줄을 누가 알았겠어. 너의 공이 정말 커. 이번에 역도 토벌에 성공하면 넌 아주 큰 상을 받게 될 거야.”
그렇게 말하고 공주는 예쁘게 웃었다.
기수는 그 상이 바로 공주 본인이라는 사실은 알지 못했다.
알았다면 함께 웃지는 못했을 것이다.
기수는 슬그머니 물었다.
“사매들한테 신경 쓰이지는 않아?”
“여자끼린데 치근대는 사람이 한 명 있긴 하지만, 뭐 나머진 다들 괜찮아.”
기수는 낮에 아투사와 한 짓 때문에 제 발이 저려서 혹시라도 공주가 눈치 채지 않았나 확인해보기 위해 질문을 한 것이었다.
그런데 의외의 대답을 듣게 되었다.
‘사매들이 괜찮다고? 갑자기 왜 이렇게 여유를 가지게 되었지?’
두 명 대 여섯 명.
숫자에서 밀리는 만큼 점유시간도 1:3에 불과한 상황.
불안하고 초조해야 정상인데 ‘다들 괜찮다.’라니…
기수가 궁금해 하고 있을 때 공주가 중얼거렸다.
“네 마음은 지난번에 확인했으니까…”
기수는 씩 웃었다.
사득공이 터뜨린 독 가루를 막아준 것 때문에 감동받은 모양이었다.
무의식중에 그렇게 할 정도로 자기를 아끼고 사랑한다면 사매 6명이 한꺼번에 덤벼도 걱정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예림아. 넌 모르는 게 한 가지 있다. 난 다른 문화에서 교육 받고 자랐거든. 여자한테 물이 튀거나 할 때 막아주는 걸, 우리 세상에선 매너 혹은 에티켓이라고 한단다. 그건 사랑하고 별 관계가 없어요.’
물론 공주가 그렇게 생각하는 게 나쁠 이유는 전혀 없기에 그냥 놔두기로 했다.
안 그래도 성질머리 더럽고 손버릇, 발버릇까지 나쁜데 괜히 스트레스 줄 필요는 없지 않은가.
지금처럼 자신감(비록 착각이라도)을 가지고 너그럽게 지내는 게 좋았다.
잠시 후 시작된 세 번째 추격.
횟수가 거듭되면서 패철을 다루거나 대형을 유지하는데 익숙해져서 속도를 좀 더 낼 수 있었다.
내공이 깊어지면 밤에도 시야가 넓어지고 청각이 예민해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심야에 숲과 언덕과 계곡을 지나가면서 대형까지 맞추는 것은 역시 쉬운 일이 아니었다.
평소 매화육궁진으로 호흡이 척척 맞는 사매들 덕분이라고 할 수 있었다.
산길을 달린 지 세 시간쯤 지났을까.
기수는 황급히 손을 들어올렸다.
그 수신호는 좌우로 봉화처럼 전달되었고, 아홉 명은 순차적으로 멈추었다.
기수는 좌우로 다시 손짓을 했다.
전방에 뭔가 있으니까 기척을 죽이라는 의미였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기감에 내공을 집중해보았다.
희미하게 멀어지는 중이긴 하지만, 분명 고수의 기도 두 개가 느껴졌다.
기수가 천천히 그들과의 속도에 맞춰 경공을 펼치자 사매들은 기척을 죽이며 기수 쪽으로 좁혀왔다. 공주와 아투사도 마찬가지였다.
모두가 한 자리에 모이자 기수가 말했다.
“찾았어! 이쪽으로 사오리쯤 되는 것 같아.”
“사오리라고? 그 정도를 감지할 수 있단 말야?”
공주가 깜짝 놀란 어조로 물었다.
자기는 아무 것도 감지하지 못했기 때문에 약간 자존심이 상한 상태였다.
“고수 두 명이 경공을 펼치고 있어. 그들이 숨기려고 작정했다면야 찾을 수 없었겠지만 우리의 추적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 같아.”
“당연히 모르겠지.”
“자! 다들 마음의 준비 든든히 하고 무기도 재차 확인해. 그리고 이제부터는 최대한 빠르게 경공을 펼칠 거니까 기식도 조절하고.”
기수는 아투사의 손을 잡아 자기 옆에 세웠다.
“네 속도에 맞출 테니까 너무 무리하지는 않는 선에서 최고 속도를 내 봐.”
“아, 알았어요.”
아투사는 아홉 명 중 자기 내공이 가장 딸린다는 사실, 자기가 모두에게 짐이 된다는 생각에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래서 심호흡을 서너 차례 한 후 자기가 낼 수 있는 최고 속도에 도전했다.
기수가 바짝 붙어 방향을 교정해주며 말했다.
“와우! 굉장히 빠른데? 전과 달라진 것 같아.”
“호호호! 아까 낮에 좋은 걸 듬뿍 먹어서 그런가 봐요.”
“하핫!… 그, 그래?”
“예 평소보다 아주 진하….”
사매들이 금세 따라붙었기 때문에 아투사는 더 이상 얘기하지 못했다.
말하면서 달릴 정도의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녀가 분발해준 덕분에 일행은 빠르게 목표에 접근할 수 있었다.
상대가 이쪽을 감지할 수 있을 만큼 접근했을 때, 기수는 공기 중에 섞여 있는 독한 약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제대로 찾았구나!’
기수는 뒤따르는 탁지연에게 우회하라는 수신호를 했다.
그리고 자신은 폭발적인 가속도로 치고 나가면서 공중으로 도약하여 사득공과 한귀비의 지척까지 단숨에 거리를 좁혔다.
그리고 양손을 앞으로 뻗어 파천강기 개틀링 건을 쏘기 시작했다.
부우우욱….!
10발, 20발씩 쏠 때와는 소리부터 달랐다.
전화번호부를 찢는 것 같은 굉음.
거기에 따라 두 사람과 기수 사이에 있던 나무와, 풀, 바위들은 산산조각이 나서 허공에 날아올랐다.
불시에 기습을 받은 두 사람은 깜짝 놀라 방어태세를 갖추었다.
안타깝게도 그 공격으로 두 사람에게 상처를 입히는 데는 실패했다.
거리도 멀었고, 질보다 양으로 쏘아댔기 때문에 관통력도 떨어진 탓이었다.
아무리 불시 기습이라고 해도 그 정도로 뚫을 수 있는 상대들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래의 목적은 이룰 수 있었다.
그들의 발길을 붙잡았고, 혈매궁 여섯 사매가 뒤로 돌아 퇴로를 차단할 시간을 벌 수 있었다.
“너, 너희들은….”
한귀비는 놀란 표정으로 기수와 공주, 아투사를 바라봤다.
사득공 역시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어, 어떻게 우리를 찾았지?”
공주가 나서서 말했다.
“대역죄를 범하고 숨을 곳이, 하늘 아래 있을 줄 알았더냐?”
사득공과 한귀비는 뒤쪽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여섯 여인을 보고 침음성을 흘렸다.
하나같이 꽃처럼 아리따운 미모를 자랑하면서, 동시에 무시무시한 살기를 내뿜고 있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으로서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곳에서 꼼짝없이 포위를 당한 터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기수와 공주는 시선을 교환한 후 즉시 공격을 시작했다.
워낙 만만치 않은 상대들이기 때문에 이런 기회가 다시 찾아와준다는 보장이 없었다.
기수는 우선 기습적으로 멸절강기를 펼쳐 사득공과 한귀비의 얼굴을 긁었다.
“크윽!…”
“아악!…”
사득공은 붕대가 벗겨졌고, 한귀비는 코에서 피를 흘렸다.
원래는 두 사람 다 눈을 노린 것인데 암경이 다가오는 기색을 감지하고 본능적으로 피했기 때문에 겨냥을 약간 빗나가게 되었다.
그러나 고수들끼리의 싸움에서 기선을 제압했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었다.
한귀비는 폭풍처럼 몰아치는 공주의 공격에 속절없이 물러섰다. 순간적으로 은혈대법을 발동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수세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정도였다.
공주가 기세좋게 말했다.
“새빨간 눈이 꼭 토끼 같구나!”
“닥쳐라!”
“주안술을 쓰고도 그 얼굴이냐? 하긴, 은혈대법을 쓰고 주화입마에 걸리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지. 하지만 이번에도 무사할 거란 보장은 없다는 게 문제지. 호호호!…”
“어, 어떻게 은혈대법을 알고 있는 거지?”
“우리는 너희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속속들이 다 알고 있다. 여기까지 추적한 게 그 증거 아니겠느냐?”
한귀비는 이를 갈았다.
“으으…. 과연 동창의 능력은 정말 대단하구나.”
공주는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참았다.
“애당초 황상 같은 성군이 치세하는 때에 역모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거지. 지금이라도 항복하고 주모자를 얘기한다면 목숨만은 살려주겠다.”
“흥! 헛소리 집어치워라!”
한귀비의 공세가 강화되었다.
자칫 여기서 죽을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그녀의 잠재능력을 극한까지 끌어오르게 만든 것이다.
그렇게 되자 공주도 한계에 달하게 되었다.
그녀가 밀리는 낌새를 보이자 탁지연는 즉시 검진을 발동시켰다.
여섯 사매가 달려들자 한귀비는 깜짝 놀랐다.
한 사람 한 사람의 무공도 만만치 않아 보였는데, 검진이 운용되자 숨쉬기조차 어려운 압박감이 느껴진 것이다.
그녀가 당황하는 기색을 드러내자 밀리던 공주도 금세 전열을 가다듬었다.
“항복하라니까!”
“닥쳐라!”
한귀비는 매화육궁진에 대항하기 위해 단검을 뽑아들었고, 괴성을 지르며 좌충우돌하기 시작했다.
은혈대법 상태의 그녀는 실로 무시무시한 힘을 발휘했다.
매화육궁진과 공주의 운룡비결을 혼자 상대하면서도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거기엔 이유가 있었다.
공주도 강하고 매화육궁진도 강하지만 둘의 조합은 그다지 위력적이지 못했다.
일곱 명의 힘이 하나로 뭉쳤다면 아무리 한귀비라고 해도 무릎을 꿇었겠지만 안타깝게도 검진은 검진, 공주는 공주대로 따로 놀았기 때문에 한귀비는 이쪽 한 번, 저쪽 한 번 밀어붙이면서 균형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한귀비의 초식 운용은 점점 안정되어 갔다.
더불어 그녀의 표정도 차분해졌고, 눈빛은 더욱 매서워졌다.
한귀비는 특히 공주의 움직임을 면밀히 관찰했다.
검진은 한 번에 깨기 어려울 것 같지만, 공주에겐 치명타를 먹일 기회가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또 한 명의 까다로운 궁녀는 지금 사득공이 맡고 있으니까 공주, 그리고 검진의 순으로 차근차근 하나씩 제거한다면 위기가 오히려 기회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이번 은혈대법의 후유증을 풀려면 꽤 오래 고생을 해야 하겠지만, 지금은 그걸 걱정할 계제가 아니었다.
한귀비의 기세가 서서히 오르자 공주는 불안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게 한귀비의 진짜 실력이었단 말인가?’
지난번에 싸울 때는 밑천을 전부 드러내지 않은 게 분명했다.
기습에 성공했는데도 제압하지 못한다는 건 심각한 문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