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hwa Manri RAW novel - Chapter 394
기수는 사매들이 혹시 눈치 채지 않았나 싶어서 그녀들이 모여 차를 마시는 방 쪽으로 최대한 가까이 다가가 결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그리고 청력에 내공을 집중하여 무슨 얘기들을 하나 들어보았다.
“그러니까 얼음을 만드는 게 목적이 아냐.”
공주의 목소리였다.
사매들에게 한음빙정공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다.
꽤 진지한 태도였고, 사매들의 질문도 심도 깊은 내용이었다.
그동안 면학분위기 조성에 애썼는데, 사매들이 잘 따라줘서 정말 고마웠다.
동매 목소리가 들렸다.
“아! 너무 어려워. 난 포기하고 멸절강기나 연습할래. 한음빙정공도 아마 뇌전격처럼 잘 되는 사람, 안 되는 사람이 따로 있는 걸 거야.”
탁지연이 말했다.
“평생 한 가지만 제대로 익혀도 절세고수 소리 들을 수 있는 신공들이 한꺼번에 쏟아지니까 선택이 어렵네. 일단 자기가 잘 되는 거에 집중해.”
“집중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예매. 너는 그거 할 때 언제가 제일 좋아?”
동매의 질문에 공주는 살짝 당황하는 듯 했다.
“뭐, 뭐를 알고 싶은 건데? 그리고 왜 날 예매로 부르는 거지?”
“뭐는 뭐야? 궁주하고 대법 할 때 말야. 나는 깊이 들어왔을 때 빙글빙글 돌리는 게 최고로 좋아. 아! 그 때의 느낌을 상상만 해도….”
찰싹! 하고 때리는 소리가 났다.
“주책이야! 주책!”
“아야! 춘매 너는 언제가 좋은데?”
기수는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골반돌리기로만 놓고 보자면 동매가 독보적이긴 했다. 그런데 그런 얘길 꼭 해야 되나?
춘매가 말했다.
“난 말야. 안 쪽 깊숙한 곳을 꾸욱~ 눌러줄 때가 최고로 좋아.”
“와! 그럼 넌 대법 할 때 집중력 유지하기 좋겠다!”
“당연하지.”
“나도 오늘은 돌리지 말고 그렇게 해봐야겠는걸. 가만히 보면 대법은 쾌감을 깊이 느낄수록 효과도 좋더라고.”
“이제 알았어? 궁주가 마음이 통해야 한다고 말했잖아.”
“그 마음이란 게 다리 사이에 있는 줄 알았나? 머리나 가슴에 있는 줄 알았지.”
“호호호!… 얘는 궁주를 뭘로 보고…”
기수의 이마에 힘줄이 빠직! 솟아났다.
‘춘매 넌 오늘 플라토닉 러브다.’
공주가 어떤 반응을 보이나 궁금해서 청력을 더 집중시켜 보니 그녀는 미약하게 웃고 있었다. 얼굴이 보이지는 않지만 꽤나 여유로운 표정일 것 같았다.
‘의외로 담담하네.’
기수는 그녀가 독 가루 앞을 막아준 일 때문에 아직까지도 자기가 1번이라는 자신감에 휩싸여 있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었다.
‘하루에도 넘버원이 8번씩 바뀐다는 사실을 왜 모르냐? 크크…’
기수는 속으로 웃었다.
그러나 8명 중에서 딱 한 명만 무인도로 데려갈 수 있다면 누굴 고르느냐라는 질문을 스스로 해봤을 때 답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우선 탁지연. 긴 역사가 있고, 머리 좋은 것도 섹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 준 다재다능한 여인이었다. 그녀와 있으면 한 순간도 지루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투사. 하드웨어적으로 따라올 여인이 없었다.
공주에게도 물론 장점이 있었다.
주먹질, 발길질 하지 않고 다소곳할 때는 솔직히 미모로만 놓고 보면 그녀가 8명 중 탑이라고 할 수 있었다. 단지 얼굴뿐만이 아니라 구석구석 빠짐없이 아름다웠다.
기수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아!~ 공주의 외모에 탁지연의 마인드와 예쁜 힙 라인, 그리고 아투사의 혀와 목을 가진 여인은 없을까?’
있다면 당연히 그녀를 무인도에 데려갈 것이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니까, 한 사람이라면 질릴 것 같기도 했다.
사실, 외모에서 공주를 1순위로 뽑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머지 7명이 현저히 차이나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공주가 동매보다 얼굴이 약간 예쁜 건 사실이지만, 동매처럼 골반 회전운동을 잘 하지는 못했다.
다들 저마다의 독특한 개성이 있고, 그 다양성이 잠자리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비프스테이크가 맛있어도 계속 같은 고기만 먹으면 질리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삼겹살도 먹고, 갈비도 먹고, 닭고기도 먹고, 오리고기도 먹고, 생선회도 먹어야 하지 않겠는가. 편식은 나쁜 것이다.
늘 그렇지만, 바람직한 결론이 나왔다.
‘아! 난 역시 세상 모든 여자들을 행복하게 해줘야 할 팔자인가 봐.’
기수가 그렇게 무인도 상상을 끝내는 중에도 사매들은 자신의 성감을 상대와 비교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그 얘기의 목적은 여인들끼리 은밀하게 방중술 정보를 나누자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음양대법을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느냐 하는 쪽으로 이어졌다. 탁지연의 리드 덕분이었다.
그때, 객잔 아래층이 시끄러워진다 싶더니 번장 한 명이 올라왔다.
“죄송합니다! 아래로 좀 내려와 보셔야 하겠습니다.”
조백호가 돌아온 것이다.
기수는 가부좌를 풀고 일어섰다.
아래층. 조백호의 방.
부목 대고 붕대 맨 조백호 앞에 공주와 사매들이 모두 모였다.
“도대체 무슨 일을 당한 거야?”
“역도들이 우리를 추격하는 게 분명합니다.”
조백호의 말에 공주는 깜짝 놀랐다.
“그게 무슨 소리야? 역도라니.”
“그들 중 한 명이 저를 습격했습니다. 워낙 은밀한 기습이라 미처 대처할 틈도 없었습니다.”
기수는 어이가 없었다.
정말 헛소리 지어내는 유전자가 따로 있는 것 같았다.
‘이 새끼 다음 생에 한국에 태어나서 관리가 된다면 틀림없이 북한소행이란 말을 입에 달고 살 거야.’
콱! 때려 죽여 버릴까 하는 마음이 갑자기 생겼다.
공주가 먼저 화를 냈다.
“도대체 누구 역적이란 거야?”
“아주 험상궂게 생긴 사내놈이었습니다.”
“그래. 그놈한테 네가 맞았다는 건 알겠는데, 그를 왜 역도라고 하냐고.”
“역도가 아니면 저를 왜 공격했겠습니까?”
“그러니까 한귀비가 우리한테 쫓기는 와중에 자기 부하를 보내서 널 때렸다고?”
“예. 그러니까 지금 즉시 놈을 찾기 위해 총동원령을 내려야 합니다. 부디 허락해 주십시오.”
공권력을 자기 개인 원한 갚는데 쓰겠다는 소리였다.
기수는 그를 왜 살려두었을까. 하고 후회했다.
다행히 공주는 바보가 아니었다.
“우린 기척을 최소화하고 움직임을 은밀하게 해야 돼. 그런데 인원을 동원하겠다고? 단지 네가 맞았다는 이유 때문에?”
“그는 굉장한 고수였습니다.”
“그러니까 당연히 네가 맞았겠지. 그런데 너. 강호에 고수가 얼마나 많은지 알기나 해? 그렇다고 그들이 전부 역도는 아니잖아?”
“하지만 마마!”
“어디서 감히 그 호칭을 써?”
“아! 죄, 죄송합니다. 하지만 전 억울합니다. 분명히…”
“분명히 너보다 고수였겠지. 그러니 팔이 부러지고 똥구덩이에 굴렀겠지. 그런데 그 못난 꼴로 돌아와서 나더러 병력을 동원해 달라고? 너 미쳤냐? 아니면 내가 그렇게 만만하고 멍청해 보여?”
조백호의 낯빛이 해쓱해졌다.
“아, 아닙니다.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꼴 보기 싫으니까 지금 당장 돌아가.”
“예?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돌아가라니요?”
“팔이 그 꼴이 되서 네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겠어? 장안까지 가는 길은 너희들 없이도 얼마든지 찾아갈 수 있으니까 당장 북경으로 돌아가. 안 그래도 언제 떠날 거냐고 자꾸 묻는 통에 귀찮던 참이야.”
조백호는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잘못했습니다! 앞으로는 절대로 심기를 불편하게 하지 않을 테니 제발 그 명령만은 거두어 주십시오.”
공주의 표정은 냉랭했다.
“한 말 또 하게 할래?”
“제, 제발….”
“오른팔까지 부러뜨려줄까?”
그녀의 단호한 태도에 결국 조백호는 포기했다.
기수는 씩 웃었다.
공주가 제법 사리분별을 할 줄 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층으로 올라온 공주는 밝은 표정으로 기수한테 말했다.
“아! 이제 좀 자유롭게 지낼 수 있겠네. 동창과 함께 다니는 것은 아무래도 뭔가 불편하거든.”
사리분별이 아니라 찬스를 잘 살리는 것 같았다.
사실, 동창이란 거대 조직을 마음대로 부릴 수 있다면 역적 토벌에 여러모로 편하고 유리한 게 사실이었다.
그러나 막상 강호행을 하고, 한귀비와 싸워보니까 동창이 한 일이라고는 객잔에서 방 잡아준 것밖에는 없었다.
한귀비의 무공이 워낙 뛰어나기 때문이기는 하지만, 어쨌거나 이제는 동창이 필요 없다는 게 공주의 판단이었다.
조백호와 두 번장을 돌려보낸 공주는 또 누구를 감시자로 붙일지 모른다며 장소 이동을 제안했다.
사매들도 동창과 불편한 관계인지라 즉시 동조했다.
일행은 오랜만에 수백 리 길을 경공으로 주파하여 곡성이라는 작은 마을에 객잔을 잡았다. 2층을 통째로 빌려 방 여덟 개를 하나씩(공주와 아투사만 2인 1실) 차지하고 나니까 폐관수련 분위기를 제대로 낼 수 있었다.
감시자도, 재촉하는 사람도 없다는 게 홀가분했다.
그날 함께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 탁지연이 공주와 아투사에게 말했다.
“너희 둘. 오늘부터 매화육궁진을 배워.”
“매화육궁? 너희들 여섯 명이 만드는 그 검진?”
“맞아. 원래 육궁진이지만 세 명 이상만 되면 어느 정도 위력을 발휘할 수 있어.”
공주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래도 여섯일 때 가장 위력이 강하니까 육궁진일 거 아냐. 우리 둘을 배울 필요 없어. 사양할게.”
“한귀비와 싸우던 때를 돌이켜보는 게 어때?”
공주의 젓가락질이 딱 멈추었다.
그 당시 검진은 검진대로, 자기는 자기대로 따로 놀다가 결국 한귀비로 하여금 회복할 시간을 주고, 도망칠 여유까지 허용했던 것이다.
탁지연은 아투사를 향해서도 말했다.
“아매. 너도 혼자서는 전력에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거야. 사득공은 바보같이 등을 완전히 내보여서 당했던 거고, 한귀비는 이미 너의 능력을 봤으니까 절대로 방심하지 않을 거야.”
“맞아. 그건….”
“네가 검진 안에 들어오면 우리에게도 너에게도 큰 도움이 될 거야. 상대는 그 파란 불꽃을 보기만 해도 움츠러들 테니까.”
아투사는 공주와 달리 반색을 했다.
자기가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기뻤던 것이다.
“그런데 내가 껴서 칠궁이 되면 혼란스럽지 않을까?”
“그러니까 연습을 해야지.”
아투사는 공주의 손을 잡았다.
“언니. 언니도 함께 해요.”
“그, 글쎄…”
“예매는 실력이 출중하니까 굳이 우리 검진에 들어올 필요는 없어. 하지만 훈련은 함께 해야 돼. 그래야 서로 방해가 되지 않을 테니까. 뭐, 서로 협조해서 전력을 상승시킬 수 있다면 더 좋고.”
공주는 입술을 샐쭉거렸다.
“왜 자꾸 예매라고 그래? 난 예씨가 아닌데.”
“그럼 성을 얘기해 줘.”
공주는 머뭇거렸지만 사실 대로 말할 수 없었다.
황궁에 사는 주씨라면 범위가 너무 좁아지기 때문이다.
탁지연이 대수롭지 않다는 투로 말했다.
“아투사도 아씨 아닌데 그냥 아매라고 하잖아. 너도 그냥 받아들여.”
“그, 그래. 육궁진의 변화를 배워 두면 한귀비와 싸울 때 도움이 되겠지.”
공주는 탁지연을 빤히 봤다.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자기보다 똑똑한 여자는 처음 만나는 것이었다.
탁지연은 드러내놓고 잘난 척하지 않으면서도 늘 합리적이고 현명한 결정을 내렸다.
혈매궁의 나머지 다섯 여인은 물론이고, 때로는 기수까지도 그녀의 판단력을 존중해주었다.
방금의 선택도 꽤 현실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상승무공을 배우는 것은 좋지만, 완성에는 꽤 긴 시간이 필요한 게 사실이었다. 그와 달리 자신과 아투사를 검진에 포함시키는 것은 당장 효과를 볼 수 있는 방법이었다.
공주는 탁지연에게 약간의 경쟁심과 호감을 동시에 느끼게 되었다.
곧바로 시작된 연습에서 공주는 아투사보다 열심히 배웠다.
혼자 무공을 익힌 그녀 입장에선 합격진이 어떻게 구성되고 운용되는지 몹시 궁금하기도 했다.
탁지연이 기본적은 사항을 설명해주자 공주는 곧바로 이치를 이해했다.
“손과 발의 수가 늘어나고, 공격과 방어는 분리한다. 그러면 방패를 든 채로 동귀어진 하는 거나 마찬가지네?”
“그렇게 볼 수 있지.”
“하지만 내 대신 방어해줘야 할 동료가 실수라도 하면 위험해지잖아?”
“그래서 연습이 필요한 거야.”
“좋아! 해보자.”
마침내 시작된 매화진 훈련.
공주는 금세 배웠다. 아투사도 마찬가지였다.
기수는 그들의 그런 모습을 보며 감탄했다.
매화육궁진이 그렇게 만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그런데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니까 탁지연이 아주 잘 가르쳤다.
공주나 아투사가 질문을 하면 뭘 모르고, 뭘 알고 싶어 하는지 정확히 파악해서 가장 효과적인 답을 제시해주었다.
그리고 모르고도 그냥 넘어가는 게 있으면 자기 쪽에서 먼저 질문을 해서 확실히 알도록 해주었다.
그 덕에 아투사와 공주의 진척이 빠른 것이었다.
공주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한귀비와 싸울 때 내가 잘못했네. 그녀가 옆으로 빠질 때 내가 치고 들어갈 게 아니라 배후만 차단해줬으면 검진이 금세 자세를 바로 잡고 압박할 수 있었을 텐데.”
“바로 그거야. 이해가 빠르네.”
탁지연의 칭찬에 공주는 어깨가 으쓱해졌다.
기수가 보기에 공주는 탁지연의 손바닥 안에서 놀고 있었다.
‘오늘 지연이한테는 스페셜 서비스를 해줘야지.’
뭔가 상을 듬뿍 주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