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hwa Manri RAW novel - Chapter 395
기수는 자신의 방으로 갔다.
사매들이 전력강화 하는 모습을 보고 놀고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운룡비결의 토대 위에 오행류를 결합하는 것은 거의 10개의 상승무공을 새로 창안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야말로 평생을 무학연구에 바쳐도 될까말까 한 일.
그러나 기수는 오행의 음양 중 합비로부터 화의 음양, 수의 양을 정통으로 배웠다.
화의 태포련은 손이 익어버릴까 봐 겁나서 차마 수련하지 못했지만 남은 두 가지를 제대로 배운 것은 큰 수확이었다.
거기에 전부터 알고 있던 파천강기는 목의 태포련과 흡사하고, 천마교의 자영을 만나 그녀의 문제를 해결해주면서 배운 멸절강기는 금의 음양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공주의 운룡비결이 토의 음양이라 볼 수 있으니 10가지 중 총 8가지를 배웠고, 그 중 6가지는 능숙하게 다룰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감히 상승무공 10개 창안이라는 프로젝트에 도전할 마음을 낼 수 있었다.
사실, 합비를 스승으로 모셨으면 간단히 해결될 수도 있었던 일이다.
그가 억지로라도 가르쳐주기 위해 무진 애를 썼던 걸 생각하면, 눈 딱 감고 사부로 모셨으면 이미 오행류를 마스터한 상태였을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어딘가에 매이기 싫다는 마음 때문에 똥고집을 부렸고, 어떻게 생각하면 그 덕에 편견 없이 여러 유파의 상승 수법을 접하게 된 것이기도 했다.
기수는 우선 운룡비결 연마에 집중했다.
배우기는 맨 마지막이었지만 그 담긴 내용으로 보자면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진기 운용법을 담고 있었다.
타법은 딱 하나.
거대한 압력으로 목표를 깨거나 부수는 게 아니라 우그러뜨리는 것을 태포련이라 할 수 있고, 지키는 것은 공주의 표현대로라면 이른바 청, 합, 반이라고 하는 되치기가 있었다. 호신강기는 아니지만 상대의 힘을 역으로 이용하여 감아 치는, 이른바 사량발천근의 묘용이 담겨 있어서 호신강기 못지않은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기수는 그 두 가지를 열심히 연마한 후 거기에 대입해서 각각의 오행을 운용하며 비교, 분석했다.
평소 학교 다닐 때 공부는 절대로 그렇게 열심히 한 적이 없지만, 이곳에 온 이후 운기조식이나 무학 공부는 꽤 집중력이 높아져서 잠깐 몰두하다 공주가 부르는 소리에 정신을 차려 보니 어느새 새벽이 되어 있었다.
공주가 문을 반쯤 열고 얼굴을 내민 채 말했다.
“궁주. 오늘의 대법 시작해야지.”
“아! 그, 그런가? 벌써 시간이…”
“깊이 몰두하는 것 같아서 그냥 놔둘까 하다가… 하루라도 대법을 거르면 꾸준한 내공 증진이 안 될 것 같아서…”
“후후… 잘했어. 이리 와.”
기수는 품안에 쏙 안기는 공주의 옷을 벗기며 물었다.
“그런데 너 방금 나를 궁주라고 불렀냐?”
“왜? 듣기 이상해?”
“아니. 난 상관없지만… 왜 느닷없이 궁주야? 우리 문파에 입궁하려고?”
“호호!…. 사실은 아까 탁매하고 얘기를 좀 했는데, 장안으로 가면 무림맹 사람들이 워낙 많이 몰려 있으니까 좋건 싫건 마주치게 될 거고, 그때 정체를 드러내기 원하지 않는다면 혈매궁의 일원인 것처럼 행동해도 좋다고 허락해줬거든.”
“그 허락을 왜 내가 아닌 탁매한테 받아?”
“왜? 삐졌어?”
“아니. 그건 아니지만…”
“내가 위로해줄게.”
공주의 머리가 아래쪽으로 내려갔다.
“오늘은 내가 1번이니까 나머지 일곱 명한테는 힘 하나도 쓰지 못하도록 전부 쪽쪽 빨아버릴 거야!”
의욕은 대단하지만 그게 과연 가능한 일일까?
결론적으로 말해서 공주의 도전은 실패!
다음 날 아침이 되자 탁지연이 기수에게 말했다.
“궁주. 오늘 우리와 함께 산으로 좀 들어가 줘.”
산에서 하자는 소린가? 그것도 나름 흥취가 있기는 하지만…
“무슨 일인데?”
“매화진이 제대로 돌아가려면 실전 연습이 필요하거든.”
“음… 그거라면 다시 돌아오기 귀찮으니까 아예 여길 떠나 다음 마을로 가기로 하지.”
그렇게 하여 아침 든든히 먹고 저마다 건량과 음료를 챙긴 후 서쪽으로 길을 나섰다.
다들 편하게 남장을 하고 죽립까지 깊이 눌러썼지만, 절세가인 8명과 여자 1명이 몰려 다니니 사람들 시선을 끌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몇몇 사내들이 마을 밖까지 따라오는 게 골치였다.
“조백호가 없으니까 귀찮은 일도 한 가지 있네.”
그동안은 그와 동창 수하들이 신경 쓸 일 없도록 잘 처리했던 것이다.
관도에 접어들어도 남자들이 계속 따라오자 아투사가 기수에게 말했다.
“궁주. 내가 가서 저놈들 지지고 올까?”
“너도 궁주라고 하기로 했냐?”
“나한테 맡겨 줘. 응?”
“얘가 아주 맛 들였네. 안 돼. 하지 마. 저놈들은 그저 미녀를 따라오는 것뿐인데, 그건 죄가 아냐. 남자의 본능이지.”
“하지만….”
“자! 저 모퉁이 돌자마자 경공으로 떨쳐낸다. 알았지?”
아투사는 아쉬워했지만 그것이 가장 쉽고 합리적인 해결책이었다.
구부러진 길을 지나자마자 갑자기 9명 모두가 사라지자 따라오던 사내들은 멍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봤다.
“다, 다들 어디로 간 거야?”
“그러게. 혹시 선녀였나?”
“한 명만 빼고…”
그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한적한 산길로 접어든 일행은 충분히 길에서 멀어진 후 적당한 공터를 찾아 짐을 내려놓았다.
“이 정도면 충분할 것 같아. 해보자.”
다들 나뭇가지를 잘라 검 대신 들었다.
기수는 미소 지으며 그녀들 앞에 섰다.
“진검으로 해도 되는데.”
“궁주가 다치는 건 원하지 않아.”
“다친다고? 내가? 하하하!…좋아. 재롱을 감상해볼까? 전부 덤벼!”
그러나 재롱이라고 할 수준이 아니었다.
매화육궁진 한가운데 아투사가 끼어 들어가고 공주가 전방으로 나섰는데, 진이 발동되자마자 압도적인 위력으로 밀고 들어와서 기수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어! 어…. 잠깐만… 어! 어엇!…”
공주는 막아냈지만 우회한 설매의 나무 막대기에 허리를 제대로 맞고 나니 은근히 열이 받았다.
“다시 한 번 해보자!”
“궁주. 화난 거 아니지?”
“화나기는…. 자! 이번이 진짜다.”
두 번째는 처음과 달랐다. 기수는 매화육궁진의 변화를 속속들이 다 알고 있기 때문에 처음부터 연결의 고리를 파고들었다.
그러자 공주와 아투사에게서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고 풍매를 제압함으로써 진을 와해시킬 수 있었다.
탁지연이 말했다.
“궁주. 잠시만 시간을 줘.”
그녀는 일곱 명을 모아놓고 검진의 변화에 대해 숙의했다.
마치 배구시합 중간의 작전 타임 같았다.
그리고 이어진 세 번째 대결에선 기수의 방법이 역으로 당해서 춘매의 막대기에 찔리고 말았다.
“아! 진짜…”
기수는 약이 올랐다.
솔직히 공주가 포함된 매화진은 사기라고 할 수 있었다.
그래도 막상 찔리고 나니까 기분이 안 좋았다.
“좋아! 다시 해보자. 이제부터는 다칠지도 모르니까 다들 조심해.”
“바라던 바야. 한귀비에 대비하는 연습이니까 궁주 실력을 마음껏 발휘해봐.”
물론 사매들을 상대로 살초를 쓸 수는 없었다.
그래도 8성 정도의 힘으로 대련에 임했다.
궁주 체면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기수의 움직임이 달라지자 공주의 눈빛도 변했다.
그녀는 선두에서 분전하다가 살짝 뒤로 밀렸지만 여섯 사매들이 민첩한 몸놀림으로 기수의 위협을 와해시켜주었다.
공주는 합격진의 효용을 체득할 수 있었다.
진형이 변화하면서 양손에 불꽃을 만든 아투사가 전면으로 나섰다.
기수도 전기충격기는 두려웠다.
‘설마 날 지지지는 않겠지?’
아무래도 주춤거리다 보니까 매화진은 금세 본래의 위력을 되찾았다.
기수는 심기일전했지만 공주는 같은 방식으로 두 번 당할 만큼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녀가 굳건하게 버티자 검진의 나머지 구성원들이 살판났다.
결국 기수는 수세에 몰리고 말았다.
그나마 동매의 나무 막대기가 어깨를 찔러 들어올 때 운룡비결의 청, 합, 반의 수법을 써서 부러뜨린 것 정도가 성과라고 할 수 있었다.
그 뒤에 탁지연의 목검에 맞았으니 결국 또 패배.
공주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왜 이래? 실망스럽게…”
“야! 네가 거기 끼면 안 되지. 반칙이잖아.”
공주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물었다.
“어때? 이 정도면 한귀비를 잡을 수 있겠지?”
기수는 잠시 생각한 후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번처럼 놓치지는 않을 것 같네.”
“그런데 표정이 왜 그래? 기쁘지 않아?”
“기쁘긴 한데…”
“그런데 왜? 혹시… 져서 화난 거야?”
“아니. 지금까지 한귀비를 어떻게 잡을까 하는 데만 너무 집중했다는 생각이 들어. 그쪽도 열 명, 스무 명, 어쩌면 백 명의 부하를 거느리고 합격진을 짜서 덤빌 수 있는 거잖아. 우리 쪽이 수적으로 불리할 가능성도 생각해봐야겠어. 아니, 이미 우리가 불리하다고 봐야지. 혼자 있는 한귀비를 만나는 건 지난번이 마지막이었을 거야.”
공주와 사매들 표정도 변했다.
기수가 전에 말한 대로 역도들이 대규모 병력을 준비하고 있다면 지금 8명으로 한 사람을 잡았다고 좋아할 일이 아닌 것이다.
탁지연이 말했다.
“겁먹을 필요는 없어. 우리 매화진은 상대가 한 명이건 100명이건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으니까.”
사매들도 그 말에 기운을 냈다.
“그래. 맞아. 천 명, 만 명이 몰려와도 막아낼 수 있어.”
공주와 아투사는 서로를 마주봤다.
매화진에 좀 더 익숙해져야 겠다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기수는 자신의 업그레이드에 좀 더 집중해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청, 합, 반을 실전에서 써먹은 건 나름 수확이라고 볼 수 있지만 거기서 만족할 상황이 아니었다.
마을로 내려가 객잔을 잡은 기수는 밥을 먹고 곧장 자기 방에 들어갔다.
아직 미지의 영역인 목음, 화양, 수음.
그것들을 어떻게 채울까 고민하던 그는 일단 가장 쉬워 보이는 화의 태포련에 도전하기로 마음먹었다.
합비로부터 정통으로 배운 수법은 그가 겁을 줘서 차마 해 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서툴면 상대의 몸보다 자기 손이 먼저 익어버릴 거라는데 어떻게 시험해볼 수 있겠는가. 상대의 몸을 2~3초 동안 붙잡고 있는 것도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기수는 자신만의 방식을 새로 개발하기로 마음먹었다.
화류의 호신강기를 일으킬 때 화염이 퍼져 나가는 게 힌트였다.
화류는 그 폭발적인 기본성질 때문에 음에 해당하는 호신강기를 일으킬 때조차 화염이 방출되는 것이다.
그걸 좀 더 외향적으로 바꾸면 자신만의 태포련을 창안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런 식으로 진기를 운용하면…’
기수는 다른 류, 즉 파천강기와 멸절강기와 운룡비결의 타법과 수류의 태포련들을 비교하면서 화류의 진기 흐름을 호신강기가 아닌 몸 밖으로 배출해 보려고 시도했다.
처음엔 길을 만들어내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진기의 양은 아주 작게 했다.
손바닥에 만든 촛불 크기의 불꽃을 파천강기 쏘듯이 날려 보내는 연습.
그것은 생각만큼 잘 되지 않았다.
‘왜 자꾸 꺼지지? 다른 류와의 차이점이 도대체 뭐지?’
기수는 원형으로 확 퍼지는 불꽃을 한 지점으로 모으는 연습도 해보고, 떨어진 곳에서 불꽃이 일어나도록도 해보았다.
그러나 수많은 시도가 결국 실패로 돌아가고 시간이 흘러 사매들과 대법연마를 해야 했다.
다음날도 새벽부터 문을 닫아 걸고 연구에 몰두했다.
“궁주! 밥 먹어.”
“나중에 저녁에 한꺼번에 먹을게. 너희들끼리 먹어. 방해하지 말고.”
아침, 점심 다 거르면서까지 매달린 것은 조바심 때문이었다. 가장 쉽다고 생각한 화류에서부터 막히면 도대체 언제쯤 오행류가 완성될지 기약이 없는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저녁 먹을 시간이 되었다.
기수가 기운이 없다 보니 즐거워야 할 식사시간도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공주가 물었다.
“잘 안 돼? 우리가 뭐 도울 일 없을까?”
“내일 새벽엔 음양대법을 그냥 건너뛰면 안 될까?”
4시간이 아까웠다.
“그거 말고… 우리가 뭐 도울 일 없을까?”
씨알도 안 먹히는 얘기였다. 표정 하나 변하지 않는다.
“됐어. 나 바로 갈게. 이따 시간 되면 와.”
방으로 돌아온 기수는 침상에 벌렁 누워 생각했다.
‘왜 안 풀리지? 이럴 땐 어떻게 해야 되는 거야?’
잠시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던 기수는 생각의 방향을 바꿔보았다.
‘나 말고 다른 사람이 이런 일로 괴로워하고 있으면 난 어떻게 충고할까?’
제3자 입장에서 생각해보니까 한 마디가 생각났다.
‘Back To The Basic! 뛰지도 못하는 놈이 날 생각부터 하냐? 차분하게 걸음마부터 다시 해 봐. 임마.’
기수는 침상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일단 불꽃을 만드는 데부터 집중해보기로 했다.
손바닥에 화염을 만드는 건 쉬웠다.
그걸 날려 보낼 게 아니라 일단 크기부터 키워보기로 했다.
그러자 화염은 횃불이라도 켠 것처럼 금방 손 전체로 퍼졌다.
손은 뜨겁지 않았다. 마음만 먹으면 더 키울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윽!.. 옷 타겠다.”
기수는 상의를 모두 벗어놓고 다시 시도해보았다.
화염이 손목을 지나 팔뚝, 마침내는 팔꿈치까지 번지자 그 기세도 맹렬해져서 얼굴이 화끈거릴 지경이었다.
하지만 화류를 운용하는 동안 화상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몸 안의 열기가 더 강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분명 피와 살로 이루어진 팔위에서 불길이 이글거리는데도 뜨겁지 않다는 것은 정말 신기한 일이었다.
자신감을 얻게 된 기수는 심호흡을 했다.
‘좋아. 범위는 그대로 두고 온도만 더 올려보자.’
마음먹고 진기를 집중하자 화염의 기세는 물론이고 색깔도 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까지 버틸 만 하던 양팔에 갑자기 견디기 어려운 고온이 감지되었다.
기수는 뜨거운 난로에 손이 닿았을 때처럼 자기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손을 떼는 동작을 했다. 순간 화염이 손에서 분리되었다.
“어라! 어… 어….”
기수는 놀란 얼굴로 중얼거렸다.
“좆됐다.”
손에서 뻗어나간 화염이 순식간에 객실 절반을 태우기 시작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