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hwa Manri RAW novel - Chapter 40
호운혜와 헤어진 기수는 비무대회 예선을 보다가 날이 어두워지자 팔각정으로 갔다.
당운영을 보고 싶어서였다.
그녀는 예쁜 얼굴로 기수에게 미소를 보였다.
표정이 밝은 걸 보니 기수 기분도 덩달아 좋아졌다.
그런데 기수에게 미소를 보이는 사람이 당운영 말고 또 있었다.
바로 백서린과 호운혜였다.
백서린은 어느 때보다 화려한 장신구로 온몸을 치장했고, 호운혜도 새옷으로 갈아입고 머리 모양을 바꾸었는데 사당에서 뒹굴 때보다 훨씬 예뻐 보였다.
특히 희고, 매끄럽고, 뽀얀 살결이 예술이었다.
기수는 그들 세 여인 중 어디에 시선을 둬야 할지 몰라 난감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그들을 밝은 곳에서 다시 보니까 자기가 정말 복 받은 놈이라는 생각이 끊임없이 들었다.
백서린과 호운혜는 정말 무림맹, 아니 정사를 떠나 무림인이라면 누구라도 꿈속에 그릴만한 미녀들이었다.
희고 맑은 살결, 발그레한 볼, 붉고 도톰한 입술, 긴 속눈썹 아래 반짝이는 눈, 무엇을 꼽아도 사내의 가슴을 설레게 하기에 충분했다.
만약 기수가 서울의 거리에서 이런 여인을 봤다면 아마 연예인이라 생각하고 인터넷을 찾아봤을 게 분명했다.
성형의 도움이 없기에 더 더욱 진정한 미녀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런 미녀들과 이틀 연속으로 뒹굴었다는 사실이 정말 꿈만 같았다.
특히 백서린의 에스라인은 옷 입은 상태로 다시 봐도 예술이었다.
‘저 예쁜 입에다가 내가 무슨 짓을 했던 거지? 아!… 미안해라….’
미안하지만 또 하고 싶었다.
그리고 호운혜와의 기억은 아직까지도 몸 여기저기에 통증으로 남아 있었다.
‘저런 순진한 얼굴을 해가지고는 나를 깔고 눌렀겠다? 다음엔 두고 보자.’
그런 생각을 하면서 당운영을 바라보자니 절로 흐뭇한 미소가 번졌다.
‘그녀의 알몸은 어떤 모습일까?’
정말 궁금했고,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그리고 그들 세 명 외에 화양문의 양여옥과 아미파의 능소화도 기수와 시선이 마주치면 요염한 미소를 지어 보이곤 했다.
내기가 여전히 진행 중인 게 분명했다.
기수 입장에선 마냥 즐거운 상황이지만, 팔각정에 모인 다른 남자들은 표정이 좋지 않았다.
미녀들이 전부 기수 한 사람에게 추파를 던지고 있으니,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흐뭇해 하던 기수는 다른 남자들의 시선을 뒤늦게 눈치 채고 표정관리에 들어갔다.
그리고 적당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늘은 좀 피곤하군요. 내일 뵙겠습니다.”
기수는 여인들과 일부러 시선도 마주치지 않고 팔각정을 나왔다.
그렇게 숙소로 돌아가는데, 중간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돌아보니 따라온 사람은 십절금왕문의 소문주 백무련이었다.
기수는 웃는 얼굴로 아는 체 했다.
“어! 백형. 여긴 어쩐 일입니까?”
백무련은 안 그래도 작은 눈을 더 작게 뜨며 말했다.
“언제부터 내가 호형을 허락했느냐? 변변치 못한 가문 출신이면서 괜히 친한 척 하지 마라.”
“호오! 그래?”
기수는 코웃음을 쳤다.
상대가 이런 식으로 나온다면 자기도 예의나 격식을 차릴 필요가 없는 것이다.
“한밤중에 처 자지 않고 뭐한다고 남 뒤꽁무니나 따라 다니냐? 병신아.”
기수의 돌변한 태도에 백무련은 깜짝 놀랐다.
“너, 너… 지금 나보고 뭐라 했느냐?”
“쥐새끼라고 했다. 씨발놈아.”
격분한 백무련이 곧바로 출수했다.
그러나 기수는 이미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는 상태였기에 단번에 그의 일장을 와해하면서 완맥을 잡아버렸다.
“헉….!”
백무련은 경악성을 터뜨렸다.
무공이라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거라는 자신감이 가득했었는데, 어디서 들어보지도 못한 문파 출신의 사내에게 단 한 수에 제압당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기수는 그의 완맥을 잡은 채 다른 손으로 백무련의 뺨을 때렸다.
세게는 아니고 손목에 스냅을 줘서 찰싹! 소리만 날 정도로 때리는 것인데, 통증보다 굴육감이 훨씬 더 커서 백무련은 이를 갈았다.
기수는 한 5대쯤 때린 후 물었다.
“너 쥐새끼 맞지?”
“으으… 당장 혈도를 풀지 못하겠느냐?”
“이 쥐새끼가 무공이 부족해 제압당했으면서 큰소리 치네?”
“아니다! 너무 방심해서 잠깐 실수했을 뿐이다! 실력대로 한다면 네놈 따위에게 절대로 지지 않는다.”
“그래? 어디 해 봐.”
기수는 그의 혈도를 풀어주었다.
자유의 몸이 된 백무련은 내공을 있는 대로 다 끌어 올리고 다시 한 번 기수를 공격했다. 처음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강맹한 일 장이었다.
그러나 기수 역시 내공을 끌어 올리고 기다리던 상태.
그는 분광권을 펼쳐 이번에도 단 3초만에 백무련의 완맥을 다시 제압했다.
그것은 기수 본인으로도 자랑스러운 상황이었다.
자객의 암살 시도 이후. 무공과 의지와 운이라는 3가지 요소에 대해 깊이 생각해 온 기수는 백무련을 상대로 의지력이 실전에 얼마나 큰 차이를 만들어내는지 체험할 수 있었다. 그것은 대단히 소중한 경험이었다.
두 번 연속으로 제압당한 백무련은 그 비만한 몸으로 땀을 삐질삐질 흘렸다.
“네, 네놈은 도대체 누구냐?”
“놈? 이 새끼가 부잣집 소문주라고 다들 떠받들어주니까 눈에 뵈는 게 없구만?”
기수는 제대로 세 개 따귀를 때리기 시작했다.
“윽! 왜 때리느냐! 멈추지 못할까?”
“멈추지 못하겠다. 씨발놈아.”
기수의 손길이 계속 되고 짝! 짝! 소리와 함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르자 백무련은 대응전략을 바꾸었다.
“이, 이보시오. 기형. 그, 그만 때리시오.”
“요런 쥐새끼를 봤나? 내가 언제 너한테 호형을 허락했어?”
기수의 손길이 더 매서워지자 백무련은 알아서 기었다.
“기소협. 제발 부탁입니다. 그만 때리십시오.”
차라리 갈비뼈가 부러지는 게 낫지, 얼굴에 손자국이 남으면 며칠 동안은 사람들 앞에 창피해서 나설 수도 없는 것이다.
“내 맘이다. 씨발 놈아.”
기수는 백무련의 살 찐 낯짝을 몇 대 더 때리다가 손을 멈추고 물었다.
“너 쥐새끼 맞지?”
“예. 맞습니다. 저는 천한 쥐새끼입니다.”
“하! 요놈 진짜 나쁜 놈이네.”
“예? 제가 왜요? 순순히 쥐새끼임을 시인하지 않았습니까?”
백무련은 억울하다는 표정이었다.
기수가 이번엔 그의 이마에 딱밤을 때리며 말했다.
“사내자식이 왜 그렇게 쉽게 구부려? 너 일본 놈이 나라 집어삼키면 금방 그쪽 편에 붙어서 돈 벌 궁리만 할 거지? 맞지?”
“예? 일본이라니요?”
“음… 그러니까 몽고가 이 땅을 점령한다면 말야…”
“아닙니다. 우리 가문은 대대로 오랑캐들과 싸웠고 군자금을 대 왔습니다.”
“어쨌거나 너란 놈은 변절자야.”
“예. 잘못했습니다. 제발 용서해주십시오.”
“싫은데?”
“기소협이 엄청난 무공 고수라는 사실을 알았으니 앞으로 저는 소협을 형님으로 모시고 시키는 일은 무엇이건 다 하겠습니다.”
백무련은 눈물 콧물까지 흘려대면서 빌었다.
“정말이냐?”
“정말입니다! 천지신명께 맹세하겠습니다!”
기수는 그가 잠깐의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서 아무 말이나 막 해댄다는 사실을 알았다. 하지만 어차피 그를 죽일 생각은 아니었다.
그의 동생 백서린의 알몸(우와~! 특히 허리에서 힙으로 이어지는 라인)을 생각하면 가족을 해칠 수는 없었다.
기수는 백무련의 귀에 입을 가까이 대고 말했다.
“너 앞으로 나한테 거역하거나 불복종하면 배를 따버린다. 나한테 아주 잘 드는 칼이 한 자루 있거든.”
백무련은 전신을 한 차례 떨었다.
기수라면 충분히 그럴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체험한 터라 정말로 겁이 났다.
혈도가 풀리자 백무련은 곧바로 바닥에 엎드려 기수에게 절부터 했다.
“형님으로 모시겠습니다.”
기수는 귀찮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절은 그만 두고 일어나.”
“아닙니다. 절을 올리겠습니다.”
그러더니 기어이 8번을 다 채웠다.
백무련은 계산이 밝은 사람이었다. 맞을 때는 화가 나서 미칠 것 같았지만, 조금 지나자 굴욕감과 통증보다 기수의 무공이 엄청나다는 사실에 집중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그와 제대로 인연을 맺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무림에 고수가 많다고 하지만, 진정한 고수의 수는 많지 않았다.
기수 정도의 실력자와 친해두면 십절금왕문에 두고두고 이익이 될 거라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기수 입장에선 백무련이 정색하고 머리를 조아리니까 입장이 난처해지고 말았다.
“야! 너 정말로 나를 형으로 모실 생각이야?”
“예! 한 번 입 밖으로 뱉은 말은 지킵니다.”
“네가 나보나 나이가 많잖아.”
“그건 아무래도 좋습니다. 이 순간부터 기소협은 제 형님이십니다.”
“아! 나 어이가 없네.”
“저는 좀 못났지만 우리 집안엔 재산이 좀 있습니다. 저를 동생으로 맞아주시면 앞으로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기수는 어깨를 한 번 으쓱했다.
“좋아. 이제부터 넌 내 의제다.”
“감사합니다! 형님.”
“대신, 이건 우리 두 사람만의 비밀이다. 다른 사람들 있는 데서는 형님, 동생 호칭을 사용하면 안 된다.”
“명심하겠습니다.”
그건 백무련도 바라는 바였다. 기수가 쓸모 있다면 계속 형이라고 불러도 되지만, 불필요해지면 언제든 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기수가 그에게 물었다.
“그런데, 난 왜 쫓아온 거야?”
“아! 예… 그게… 그러니까….”
“왜 말을 못 해? 형 대접하기 싫은 건가?”
백무련은 손을 내저었다.
“아닙니다! 말씀드리겠습니다. 사실은…. 제가 호소저를 마음에 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까 팔각정에서 보니까 그녀가 형님에게 자꾸 추파를 던져서…”
“그래서 날 때려주려고?”
“뭐… 그럴 생각이었습니다.”
“진짜 못 났네. 여자가 마음에 들 행동을 하면 되지 남자를 팬다는 게 말이 돼?”
“부끄럽습니다. 저도 모르게 그만…”
기수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혀를 찼다.
그러면서 살짝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내가 먼저 따먹… 아니, 침 발라놨다는 걸 알면 기분이 어떨까?’
잘못한 일은 하나도 없지만 괜히 백무련의 얼굴 보기가 껄끄러웠다.
“호소저의 어디가 그렇게 좋은 거야?”
“그야 당연히…”
기수는 그의 입에서 눈이나 턱선, 붉은 입술, 큰 가슴 등의 얘기가 나올 거라고 생각했지만, 예상에서 완전히 빗나간 대답이 나왔다.
“그녀의 가문입니다. 사해문과 우리 십절금왕문이 손을 잡으면 천하의 상권을 장악할 수 있습니다.”
참 속물스럽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래도 혹시나 해서 다시 물었다.
“그래도 호소저가 매력은 있잖아?”
“뭐 그렇기도 합니다만…. 사실, 품에 안기에는 키가 너무 크죠. 형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기수는 속으로 생각했다.
‘힘도 세.’
기수의 속마음을 모르는 백무련은 혼자 떠들어댔다.
“사실, 제 입으로 말하기는 좀 쑥스럽지만 제 동생이 가장 예쁘지 않습니까?”
‘어! 미안…’
“저는, 사실 당운영 소저처럼 좀 아담한 체격을 좋아합니다.”
‘임자 있어.’
“형님은 어떤 여자를 좋아하십니까?”
“마음이 통하는 여자.”
“에이… 그러지 말고 취향을 말씀해보십시오.”
“영혼의 짝.”
기수가 정색하고 대답하자 백무련은 입맛을 다시며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기수는 백무련이 인간관계나 사람의 감정 모두 사업의 수단으로 접근한다는 사실을 간파했다.
그래서 그가 자신을 의형으로 모신다는 게 뺨 몇 대 맞아서가 아니라는 사실도 짐작할 수 있었다.
‘당분간은 네가 하자는 대로 해주마. 하지만 날 이용해 먹기는 힘들 거다. 그 반대의 경우라면 몰라도….’
기수는 적당한 미소와 함께 그에게 말했다.
“난 그만 들어가서 쉴 생각이야. 다음에 보자고,”
“예. 형님. 편히 쉬십시오.”
백무련은 깍듯이 고개를 숙였다.
숙소로 돌아온 기수는 침상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운기조식을 시작했다.
자객에 이어 백무련과의 대결까지 거치면서 정신을 집중한 연공의 필요성을 더욱 간절히 느끼게 된 것이다.
이제까지는 음양대법의 상대만 찾은 게 사실이었다.
그게 효과 면에서 엄청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향경과의 경험에서도 보았듯이 몸을 결합한 극도로 에로틱한 상황에서 주화입마를 피할 정도의 정신적 결합이 병행되는 상대를 만나기는 쉽지 않았다.
유향경만 해도 자신에 대한 의심이 생긴 이후 더 이상은 음양대법이 가능하지 않게 되었다.
그런 불확실한 수련법만 믿고 있기 보다는 효율 면에서 떨어지더라도 가장 확실하고 전통적인 방법인 운기행공을 열심히 하는 게 바른 선택 같았다.
기수는 그 어느 때보다 운기에 집중했다.
처음엔 잡념(특히 여자에 대한)이 일어나서 자세를 유지하기 어려웠지만 기수는 바로 그 순간을 이겨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실제로도 잡념을 깬 정신집중이 조금씩 가능해졌고 지속시간도 길어졌다.
기수는 운기행공으로 꼬박 밤을 새고 다음날 아침 정신과 마음과 몸이 모두 충만한 상태로 가부좌를 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