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hwa Manri RAW novel - Chapter 407
기수는 정신을 집중했다.
현재 불리한 위치에 처한 것은 맞지만 절망할 상황은 아니었다.
어쩌면 상대의 무리수를 응징할 기회라고 할 수도 있었다.
그 역시 파천강기를 애용하기 때문에 내공으로 장거리의 목표를 타격하는 게 얼마나 비효율적인지 잘 알았다.
사공명은 한 지점에 집중되어 들리도록 하는 괴성과 사람을 공중에 띄우는 수법, 거기다 회선참까지 병행하고 있었는데, 그 내력 소모는 엄청날 것이었다.
아무리 오랜 세월 동안 수련을 했다고 해도 그걸 장시간 감당하기는 어려울 터.
기수는 조급해 할 사람이 자기가 아닌 상대라고 판단했다.
그리고 멀미가 날 것 같은 출렁거림 속에서도 신중하게 기회를 노렸다.
마음이 차분해지자 머리도 빠르게 회전했다.
‘놈의 공격을 막을 게 아니라 역이용할 수는 없을까?’
기수는 중단전에 운룡비결을 운용했다.
그리고 사공명의 회선참이 날아오는 순간 호신강기로 막는 게 아니라 청, 합, 반의 요결로 되치기를 시도해 보았다.
그러자 사공명의 부채가 펄럭였다.
‘된다!’
기수는 상대의 몸이나 무기가 직접 닿는 게 아니라도 운룡비결이 통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강기도 되칠 수 있다면…’
기수는 자신의 떨어지는 몸을 쳐올리기 위해 사공명의 부채가 움직이자 거기에 다시 청, 합, 반을 써보았다.
순간, 회오리바람이 무력화되면서 두 발이 땅에 닿았다.
기수의 기쁨이 큰 만큼 사공명의 놀라움도 컸다.
“어, 어떻게….!”
기수는 씩 웃었다.
“이제 네가 GG 칠 일만 남았다. 후후….”
기수는 두 엄지발가락에 힘을 주고 전속력으로 돌진했다.
철퇴처럼 뾰족뾰족 튀어나온 강기막으로 들이받자 사공명은 훌쩍 뛰어 피했다.
무림맹 군웅들은 위태롭게 허공에서 떠돌던 기수가 반격을 개시하자 일제히 함성을 내질렀다.
“와아아…!”
그 소리가 너무 커서, 기수는 자기가 골이라도 넣은 기분이 들었다.
사공명이 거리를 벌렸지만 기수는 다시 바짝 달라붙었다.
그가 공중에서 저글링 당하면서 느낀 점은, 사공명이 이런 식의 싸움에 몹시 능숙하다는 것이었다. 원래 음종의 무공 자체가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일정 거리를 두고 음공 혹은 회선참, 아니면 장풍 같은 걸로 사람을 밀거나 띄우는 방식이 그의 주특기라고 볼 수 있었다.
‘직접 팔과 팔이 얽히면서 싸우는 방식엔 서툴 수도 있어.’
사공명 정도의 고수에게 있어서 서툴다는 기준은 애매할 수 있지만, 그 차이가 아주 작더라도 자기에겐 득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내겐 분광권이 있으니까.’
손발로 치고받는 타격법에 있어서 분광권만큼 다양한 변화를 내포하고 있는 무공을, 기수는 이제까지 본 적이 없었다.
기수가 저돌적으로 간격을 좁혀오자 사공명도 결국 맞서는 길을 택했다.
상대는 맨손이고, 자신에겐 두 자루 부채가 있으니 상대가 제 발로 접근하는 걸 피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깡!
날카로운 부채의 날이 기수의 손목과 부딪히면서 금속성을 냈다.
사공명은 기수의 양손이 푸른빛을 발하는 모습에 놀랐다. 자신의 회선참이 직접 접촉되었는데도 팔을 잘라내지 못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기수는 정신을 집중했다.
‘지금이 유일한 기회다. 반드시 승부를 내야 해.’
그의 두 손은 무서운 속도로 공격을 시작했다.
무림맹 군웅들 사이에서 다시 탄성이 터져 나왔다.
기수의 몸은 보이는데 두 손은 흐릿한 잔영만 남아 있을 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음종의 전인. 현현각주 사공명도 만만치 않았다.
빛을 나눈다는 분광권. 그 빠른 공격을 모두 막아내고 있었다.
기수는 팔에 전해지는 타격의 반탄력을 만끽했다.
‘그래. 이런 게 싸움이지.’
그는 양손에 운룡비결을 운용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놀라운 변화가 사공명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부챗살이 휘기 시작한 것이다.
“어, 어떻게 이런 일이…”
휘었어도 금세 원래대로 복구되어야 하는데 일그러진 형태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탄력이 모두 사라져버린 것 같았다.
그는 기수의 타법에 뭔가 숨겨진 비결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는 다시 거리를 벌리기로 마음먹었다.
바짝 붙는 상대에게 큰 타격을 줄 수 있는 음공이 준비되어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손바닥이 저리면서 부채를 놓치고 말았다.
기수가 오른손엔 운룡비결을, 그리고 왼손엔 자신이 개발한 파동타법을 각각 따로 운용했던 것이다.
파동타법은 부채가 아닌 부채 쥔 손으로 타격을 전달했고, 생각이 많던 사공명은 손바닥에 충격을 받아 자신의 독문병기 중 하나를 잃고 만 것이다.
기수는 바로 그 순간 마음을 다잡았다.
‘됐다! 하지만 여기서 들뜨면 안 돼!’
몸보다 마음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이번 대결.
마무리도 침착하고 냉정하게 할 필요가 있었다.
기수는 더욱 자세를 낮추며 분광권에 집중했다.
사공명은 부채 하나를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기수의 공격을 모두 막아냈다.
하지만 부채로 막는 것과 맨손으로 막는 것 사이에는 차이가 있었다.
그리고 그의 오른손으로는 계속해서 파동타법의 충격이 파고들었다.
즉, 막아도 막는 게 아닌 상황이 된 것이다.
몸 내부로 전해진 충격은 그의 기혈을 흔들었고, 결국 준비했던 음공은 절반 이상 흐트러지고 말았다.
“으으….”
사공명은 이를 갈았다.
천하가 자기 손아귀에 들어오기 직전이다. 그런데 이 새파란 놈이 발목을 잡는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그는 분노를 담아 기수의 귀로 음공을 발출했다.
“끼아아!……”
기수는 상대의 어깨가 들썩이는 것을 보고 즉시 화류 호신강기를 폭발시켰다.
몇 번 당하다 보니 그가 음공 시전하는 순간을 어느 정도 예감할 수 있었다.
“음…”
기수는 기혈이 격탕하는 느낌에 분광권을 멈추었다.
마치 무방비 상태로 있을 때 누군가 귀에 대고 왁! 하고 소리를 지른 것처럼 찌잉~하는 울림이 이어졌고 균형감각도 흐트러졌다.
호신강기를 펼쳤음에도 이 정도 충격이 전해진 것은 거리가 가깝기도 하고, 상대가 전력을 다했기 때문이기도 한 것 같았다.
그러나 견뎌내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기수는 상대가 기회를 놓치지 않고 공격해올 것을 알았다.
그래서 사공명의 상황을 볼 것도 없이 양손을 앞으로 쭉 내뻗으며 자기가 만들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화염방사기를 가동시켰다.
“크윽!….”
화염 사이로 사공명의 부채가 먼저 보였다.
그리고 뒤이어 나타난 그의 몸은 온통 화염에 휩싸였다.
기수는 자신의 순간적인 판단이 적중했다는 사실에 기쁨을 느꼈다.
그리고 불길에 휩싸여 시야가 가린 사공명의 부채를 간단히 피하고 몸을 날려 주먹을 뻗었다.
뻐억!
거의 슈퍼맨 포즈였는데, 그 주먹이 상대 얼굴에 정확히 꽂히는 쾌감은 정말 굉장한 것이었다.
사공명은 신음을 토하며 뒤로 날아갔다.
기수는 잠깐의 여유도 주지 않고 다시 몸을 날려 그의 가슴에 한 번 더 주먹을 내질렀다. 이번엔 운룡비결을 운용한 주먹이었다.
푸욱!
사공명의 몸이 크게 들썩였다.
그는 손을 뻗어 기수를 잡으려 했지만 허공만 휘저을 뿐이었다.
기수가 손을 떼자 그의 가슴이 드러났다.
옷은 아직 불이 꺼지지 않은 상태였고 가슴은 한가운데가 움푹 들어가 있었다.
아무리 고수라고 해도 운룡비결 정타를 견딜 수는 없었던 것이다.
“꺼억…꺼억…”
사공명은 손을 휘저으며 어떻게든 일어나려고 했다.
그러나 짓이겨진 심장은 더 이상 피를 순환시키지 못했고, 납작해진 폐는 호흡을 이어갈 수 없었다.
게다가 화상으로 인해 눈을 뜰 수도 없으니 그가 일어나서 다시 싸운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기수는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사도를 이겼을 때와는 달랐다.
순수한 승리의 기쁨! 그 카타르시스만으로 희열이 넘쳐흘렀다.
자신에게 이런 황홀감을 느끼게 해 준 상대.
비록 그가 사마연합의 편에 섰다고 하더라도 분명 존중 받아야 할 만한 강자였다.
기수는 그가 더 이상 고통스러워하지 않도록 검지를 들어 사공명의 이마 한 가운데 파천강기를 쏴주었다.
그리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
“내가 너보다 강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네가 진 것은 승리를 목전에 둔 상태에 들떴기 때문이고, 나는 그러지 않았기 때문에 지지 않은 것이다.”
어쩌면 강적과 대결하는 경험은 자기 쪽이 더 많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사공명의 버둥거리던 몸이 축 늘어지자 무림맹 군웅들은 엄청난 환호성을 터뜨렸다.
순간, 한 쪽에서 뾰족한 신음이 들려왔다.
기수가 그쪽으로 고개를 돌려 보니 공주가 당황한 표정으로 뒷걸음질을 치고 있었다. 그리고 보라빛 감도는 기이한 강기를 내뿜은 혈천제는 잽싸게 도주 중이었다.
여덟 사매들은 고함을 지르며 그녀를 따라갔다.
이제까지 줄곧 우세하게 압박하여 잡기 직전이었는데 이대로 놓칠 수는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기수는 그녀들을 도울까 생각했지만 걸음을 멈추었다.
사공명이 죽는 것을 보고 자기 목숨 구하겠다고 도망치는 혈천제.
그녀의 절박함이 느껴져서 왠지 모르게 악착같이 굴고 싶지 않았다.
처음에 사매들이 맡았으니까 그녀들에게 계속 맡기고, 잡히면 혈천제의 운명, 달아나면 그녀의 행운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기수가 격전의 여운을 음미하며 호흡을 차분히 조절하자 무림맹 군웅들이 우르르 몰려와 그를 에워쌌다.
“기소협!”
간부들 중엔 기수의 본래 모습을 아는 사람도 있었지만 초면인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무당의 육월성이 나서서 무림맹주에게 기수를 소개했다.
마치 자기가 데려온 사람처럼 나서는 게 우습기는 했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지금 무림맹 군웅들에게 기수는 생명의 은인이자 생전 듣도 보도 못한 무공을 펼쳐내는 절정고수였다.
다들 나서서 기수와 인사를 하고 안면을 트고자 했다.
기수는 익히 아는 사람들은 미소로, 그리고 본래 얼굴로 초면인 사람들은 정중하고 겸손한 태도로 대했다.
비룡검문 문주와 사하를 봤을 때는 포옹이라도 하고 싶을 정도로 기뻤지만 사람들이 많아서 자제했다.
그리고 여인들과는 가능한 시선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애썼다.
솔직히 그녀들에게 어떻게 해명해야 할지 결정하기가 현현각주와 싸우기보다 더 어렵고 신경 쓰였다.
무림맹주 주일비가 말했다.
“기소협. 모두를 대표해서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할 일을 해야 했을 뿐입니다.”
“하하하!… 우리 무림맹에 이보다 더 기쁜 날은 없을 것이오. 그동안 여러 차례 우리 무림맹을 위기로 몰고 갔던 음종을 궤멸시켰으니 말이오. 기소협. 말해보시오.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기수는 가볍게 미소 지었다.
그리고 머릿속으로는 잽싸게 상황을 파악했다.
지금 주일비는 자신에게 상을 내리려 하고 있었다.
개방 방주이자 동시에 무림맹주이니 돈이면 돈, 지위면 지위. 무엇이건 줄 수 있을 것이었다.
기수는 지금 이 순간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현현각주와 싸운 것은 비룡검문과 보타문을 구하기 위해서, 보다 근본적인 이유라면 지난번에 마무리 짓지 못했던 대결의 끝장을 보기 위해서였다.
그 결과로 위기의 무림맹을 구하기는 했지만 그것은 부수적인 효과에 불과한 것이다.
원하는 건 다 줄 테니 말해보라는, 유치원 아동에게 통할 수준의 유혹에 덥석 말려들고 싶지는 않았다.
‘나도 그동안 세상물정을 좀 배운 것 같군. 후후…….’
여기서 무림맹주의 제안을 받아들이면 그의 아래 서열임을 인정하는 꼴이 되는 것이다. 주일비가 의도했건, 아니면 무의식적으로 취한 태도이건 결과는 같을 것이다.
기수는 이제까지 정체를 숨기고, 얼굴을 숨기며 지내왔다.
그것이 사도를 찾아내고 처단하는데 유리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와 이렇게 얼굴을 드러냈으니, 더 이상 움츠리거나 숨을 이유가 없었다.
‘그래. 내가 무림맹 소속이어야 할 이유가 없잖아. 세게 나가자.’
그렇게 생각한 기수가 주일비에게 말했다.
“내가 원하는 것은 무림의 분쟁을 모두 없애는 것입니다.”
“하하하!… 과연 대장부다운 말씀이오.”
주일비뿐만 아니라 모두들 기수의 발언에 호응했다.
박수를 치는 사람도 있었다.
기수는 정색하고 다시 말했다.
“그것은 사마연합을 무찌르겠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 발언에 좌중이 일시에 조용해졌다.
그게 갑자기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기수는 일부러 곧바로 얘기하지 않고 한 차례 빙 둘러서 사람들과 시선을 마주쳤다.
일건 눈빛으로 기선제압을 시도한 것이다.
과연 들떴던 사람들 눈빛에 놀라움과 두려움의 빛이 보였다.
기수는 충분히 여운을 즐긴 후에 말을 이었다.
“무림맹과 사마연합 간의 대결을 중지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주일비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사마연합을 무찌르지 않고 어찌 평화를 찾을 수 있겠소?”
“간단합니다. 그냥 전쟁을 그만두면 됩니다.”
사람들이 조금씩 술렁이기 시작했다.
주일비가 다시 말했다.
“우리는 전쟁을 원치 않는다 해도, 저들은 그럴 마음이 없을 것이오. 한쪽만 그만두어서야 전쟁이 멈출 리 없지 않소.”
기수는 다시 한 번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기를 기다린 후 말했다.
“혈매궁의 궁주인 내가 저들을 멈추게 할 것입니다.”
일부러 자신의 소속을 명확하게 밝힌 것은 무림맹과 별개인, 독자적인 세력임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군웅들은 이제 대놓고 웅성거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