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hwa Manri RAW novel - Chapter 411
풍매와 설매가 다가와서 기수의 어깨를 토닥여주며 말했다.
“잘했어. 궁주.”
“우리가 위로 좀 해줄까?”
“무슨 위로?”
“가만 보니까 호소저 가슴에서 눈을 못 떼던데…”
“아냐. 그런 적 없어. 그리고 그건 너무 커.”
“크면 클수록 좋아하는 거 아니었어?”
“절대로 아냐.”
마당에서 그런 얘기들이 오가는 동안 객청 안에서는 탁지연이 공주를 붙잡고 말했다.
“예매. 너무 흥분하지 마.”
“아까 그 키다리가 나를 어떻게 대했는지 못 봤어?”
“하지만 예매가 성질내봤자 득 될 일이 없어,”
“그럼 그 가슴만 큰 키다리가 궁주를 꼬셔도 괜찮단 말야? 난 그런 꼴 못 봐! 나를 위해… 아니, 우리를 위해 반드시 궁주를 지켜낼 거야.”
“바로 그 문제 말인데… 네가 설칠수록 궁주가 우릴 떠날 가능성이 높아져.”
공주는 깜짝 놀랐다.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강하게 나가야 궁주가 한눈을 안 팔지.”
탁지연은 차분하게 설명해 주었다.
“너. 궁주가 다른 여자 만날 때 우리한테 미안한 감정을 가진다고 생각해?”
공주는 곧바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깊이 생각할 것도 없는 질문이었다.
탁지연이 말했다.
“궁주를 억지로 잡아두려고 하면 오히려 자유를 찾아서 떠나버릴지도 몰라.”
“설마…”
“궁주 입장에서 생각해 봐. 그는 부모도 친척도 없는 처지야.”
공주는 입을 다물었다. 그런 처지는 자기도 비슷했다. 그리고 함께 지내며 들은 얘기들을 종합해보면 탁지연이나 다른 사매들도 다 같은 신세인 것 같았다.
탁지연의 말이 이어졌다.
“궁주가 이 여자, 저 여자 찾아다니는 걸 막을 수 없다면, 그가 언제든 외로워졌을 때 찾아올 둥지가 되어주는 게 어때? 살아가면서 정말 그립고 필요한 게 가족이잖아. 그건 누구도 외면하지 못하거든.”
공주는 생각에 잠겼다.
자기가 기수를 잡아두려고 하는 노력이 오히려 그로 하여금 벗어나고 싶어 하는 구속이 될 수도 있다는 탁지연의 말에 충격을 받은 것이다.
그녀 역시 현명하기에 곧 탁지연의 말에 동조했다.
“아무래도 내가 좀 서툴렀던 것 같아. 네 말이 맞아. 궁주 옆에 어떤 여자가 있건 우리가 대범한 모습을 보여준다면 결국 우리 쪽으로 마음이 향할 거야.”
사실, 기수가 다른 여자를 안는다는 것은 상상만 해도 복장이 터지는 일이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막을 방법이 없다면 차선책이라도 택하는 편이 현명했다.
“그래. 자꾸 잘못을 지적하면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겠어.”
공주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 후 말했다.
“그러고 보면 탁매 너는 참 궁주를 잘 이해하는 것 같아.”
“잘 알고 말고 할 것도 없어. 빤히 보이는데 뭐…”
“아냐. 그래도 참 대단해. 넌 나이도 나보다 어린 걸로 아는데 어쩜 그렇게 침착하고 차분하니? 정말 부럽다.”
“그만 해.”
“아냐. 진짜야. 어떤 때 보면 우리 여덟 명 중에서 네가 제일 어른스럽다는 생각이 든다니까. 그러고 보면, 궁주가 널 안을 때 가장 행복한 표정을 짓는 것 같기도 하고…”
“그건 내가 할 소린데…”
“혹시… 그 표정도 궁주가 의도적으로 만드는 건가?”
“이런 표정?”
탁지연이 기수 표정을 흉내내자 공주는 깔깔거리며 웃었다.
그때 문을 통해 기수와 풍매, 설매, 그리고 한 사람의 손님이 들어왔다.
객청에 들어온 손님을 보는 순간, 갑자기 탁지연이 괴성을 질렀다.
“네가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들어와?”
그러더니 다짜고짜 몸을 날리며 손님 얼굴에 일 장을 날렸다.
손님, 당운영은 깜짝 놀라 황급히 피했다.
그러나 탁지연의 공격을 멈추지 않고 연타로 이어졌다.
공주는 이제까지 흥분하지 말라고 하던 탁지연이 기색을 드러내는 정도도 아니고 아예 손님에게 공격을 가하자 그저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었다.
기수는 탁지연을 말렸다.
“그만 둬. 왜 이러는 거야?”
“저 년이 나한테 무슨 짓을 했는지 잊어버렸어?”
물론 기수도 기억하고 있었다.
홍안산 동굴에서 탁지연을 점혈하여 숨겨놓고, 그 보이는 앞에서 자기 실력을 마음껏 뽐내서 탁지연으로 하여금 어떤 세계에 입문하도록 이끌어준 바 있었다.
그건 기수 버전의 기억이고, 탁지연 입장에선 당시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그 전에도 호운혜와 짝궁이 맞아서 자기들은 명문가 출신인데 너는 뭐 내세울 게 있어서 기수 옆에 붙어 있냐고 몰아붙인 게 바로 당운영이었다.
무림맹에 합류했을 때 당운영을 봤지만 꾹 참았다.
하지만 이렇게 찾아오기까지 하다니.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다.
탁지연이 거칠게 나오자 당운영은 그저 피하기에 급급했다.
못 본 사이 무공이 일취월장해서 자기를 꼼짝 못하게 압박한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그러나 당가 사람들은 무공에서 좀 밀린다고 해도 걱정을 하지 않았다.
암기와 독이 있기 때문이다.
그녀의 손목에서 미약한 금속성이 나면서 작은 바늘 수십 개가 탁지연을 향해 발출되었다. 하나하나의 크기는 극히 가늘지만 그만큼 눈에 잘 띄지 않아서 피하기 까다로운 암기 우모침이었다.
암기에 묻은 독도 가려움부터 시작해서 차츰 전신으로 퍼져나가 마비를 시키는 치명적인 것이었다.
이제 탁지연이 자신에게 해약을 구걸하는 처지가 될 거라고 생각하자 당운영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탁지연은 상대의 암기발출을 알아차렸다.
그러나 하나하나가 아니라 안개처럼 확! 펼쳐지는 범위만 눈에 보였다.
설마하니 이런 수법까지 쓸 줄은 몰랐기에 당황스럽기 짝이 없었다.
일단 소매를 휘둘러 쳐내기로 마음먹었지만 전체를 다 막아낼 거라고 자신하기는 어려운 상황. 안색이 저절로 긴장되었다.
바로 그 때. 파란 빛이 번뜩인다 싶더니 날아오던 암기들이 벽에 막히기라도 한 듯 허공에서 모두 멈추었다가 땅에 떨어졌다.
기수가 손을 쓴 것이다.
그는 당운영을 나무랐다.
“얘가 아직도 버릇을 못 고쳤네. 뭐 하는 짓이야!”
당운영은 바로 꼬리를 내렸다.
“날 죽이려고 해서 본능적으로 그만… 미안해요. 오빠.”
탁지연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내가 언제 널 죽이려고 했어? 그리고 우리 궁주가 언제부터 네 오빠야?”
당운영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혈매궁의 일곱 여인들이 어느새 자신을 에워싸고 퇴로를 완전히 차단하고 있었다.
우모침 공격이후 급격한 적대감 상승이 느껴졌다.
그녀는 오로지 기수에게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전 그냥 오빠한테 안부나 물으려고 온 건데, 너무하는 거 아닌가요?”
기수는 당운영의 달라진 태도에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모습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최근에 만날 때까지만 해도 현대의 욕을 배운 그녀가 자기를 씨발놈이라고 부르지 않았던가.
‘악독한 아가씨께서 왜 이렇게 얌전해지셨지? 후후…’
사실, 당운영의 성격이 변한 것은 아니었다.
경쟁자의 존재를 확인한 이후, 기수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좀 더 조신하고 얌전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해서 나온 행동이었다.
그녀는 처음에 기수의 꼬임에 빠지는 척 하면서 약에 맛을 들이고 말았다.
그 후 소녀에서 여인으로 탄생하는 과정에 기수의 도움을 받기도 했다.
기수에 대한 그녀의 마음은 그때부터 간절했는데, 이번에 뜻밖의 상황에 재회하게 되면서 그가 없는 삶은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그것이 언행까지 바꾸게 된 이유였다.
당운영은 기수와 최대한 오랜 시간 함께 있고 싶었다.
지금은 오로지 그 생각뿐이었다.
그러나 탁지연이 이렇게까지 거세게 나온다면 일단은 한 발 물러서지 않을 수 없었다. 방금 이상한 강기 같은 걸로 우모침 막은 것을 보면, 기수도 그녀가 죽거나 다치도록 놔둘 마음은 없는 게 분명했다.
“차나 한 잔 마시려고 왔는데 이렇게 박대를 당할 줄은 몰랐네요.”
그러면서 당운영은 한 마디 덧붙였다.
“혈매궁이 우리 당가와 맞설 정도의 담력이 있다는 것도 놀랍군요.”
탁지연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지금 협박하는 거야? 흥! 그깟 독이나 암기 따위가 뭐 대단하다고?”
공주가 다가가서 탁지연의 팔을 잡고 진정시켰다.
당운영은 탁지연을 외면하고 기수에게 말했다.
“오빠. 저 좀 배웅해주세요. 이만 가봐야겠어요.”
기수는 분란 종식을 위해 얼른 그녀를 밖으로 안내했다.
그러나 마당을 지나 별채 문밖으로 나가면서 당운영이 한 마디 했다.
“약 먹는 거 22번 남았어요. 기억하시죠?”
“응? 으응….”
당운영은 깜찍하게 미소를 지어 보인 후 떠났고, 사매들은 기수를 안으로 끌고 들어가서 동시다발적으로 물었다.
“방금 그게 무슨 소리야?”
“약이라니?”
“혹시… 설마… 그 약이라는 게….”
기수는 손을 내저었다.
“아냐! 너희들이 무얼 생각하건, 그런 거 절대로 아냐.”
사매들은 바른대로 불라고 강력하게 다그치기 시작했다.
공주는 그런 그녀들을 보면서 자기만 설쳐대는 게 아니란 사실을 확인했다.
당장 탁지연만 해도 평소와 다른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가.
그래서 그녀도 기수를 몰아붙이는 사매들 행렬에 가세했다.
기수는 비명을 질렀다.
“아야! 방금 꼬집은 거 누구야? 누가 꼬집었어? 아야!”
사매들을 피해 도망 나온 기수는 비룡검문을 찾아갔다.
“문주님을 뵈러 왔습니다.”
비룡검문 제자들은 기수가 바로 자기네 호법으로 지내던 양십일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걸 아는 사람은 문주 진백뿐이었다.
제자들은 무림맹을 구한 절세고수의 갑작스런 방문에 다들 놀라고 당황했다.
안으로 안내되어 들어간 기수는 진백에게 정중히 인사했다.
“오랜만입니다. 문주님.”
“하하!… 정말 반갑군. 어서 오게. 술 한 잔 해야지.”
비룡검문 제자들은 문주가 기수를 안다는 사실, 그리고 막역하게 대한다는 사실에 놀라는 동시에 자부심을 가지게 되었다.
기수는 진백과 술잔을 나누면서 자기가 없는 동안 있었던 얘기들을 들었고, 또 난세의 배후에 대해 알아낸 얘기, 역모 얘기 등을 해주었다.
진백은 걱정스런 표정을 지었다.
“그렇다면 정말 큰일이군. 마교와 싸울 때가 아냐.”
“그렇습니다. 문주님이 다른 문파에도 얘기를 잘 좀 해주십시오.”
혈매궁의 포지션은 애매한 면이 있었다.
무림맹을 음종 현현각의 마수에서 구해주었고, 난주 탈환에 앞장서기도 했다.
그래서 모두의 은인이자, 화양문 입장에선 귀빈 중의 귀빈이었다.
그러나 무림맹 소속은 아니라고 분명하게 선을 그음으로 인해 맹주 주일비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고, 무림맹 회의에 낄 수도 없는 처지가 되었다.
말을 안 들으면 두들겨 패겠다고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최후의 수단이고, 가능하면 순리대로 잘 풀리는 게 좋은 일 아니겠는가.
“모용세가라면 얘기가 잘 될 것이고… 그 밖에도 말이 통할 문파들이 몇 있으니까 내가 최대한 설득해보겠네.”
“감사합니다.”
기수는 진백이 검술과 기문진법에만 능숙한 게 아니라 경륜도 풍부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얘기하는 걸 들어 보니 길지 않은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문파들과 돈독한 유대관계를 다져놓은 듯 했다.
처음 무림맹에 입성할 때만 해도 남궁세가를 몰아냈다는 이유 때문에 미운 털이 잔뜩 박혔었는데, 그런 인식을 바꾼 것은 참 대단한 일이었다.
기수는 제자들의 무공 진척에 대해서도 상세히 물어보았다.
이젠 다시 비룡검문의 호법으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자꾸 마음이 쓰였기 때문이다.
두세 시간 정도 대작을 하고 비룡검문 숙소를 나온 기수는 보타문을 찾아갔다.
사하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보타문 제자들 역시 기수의 방문에 다들 놀랐다.
그리고 모두 여자들이라 그런지 잔뜩 상기되고 기대감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그녀들의 기대감은 여지없이 박살났다.
사하가 반색을 하고 기수를 맞은 것이다.
“왔어? 어서 들어와.”
“하핫!… 그 동안 잘 지냈어? 어디 다친 데는 없고?”
“있지. 여기.”
그러면서 그녀는 자기 가슴을 가리켰다.
보타문 제자들만 없었다면 ‘어디 보자. 내가 호~ 해줄게.’하고 달라붙었겠지만 꾹 참고 안으로 들어갔다.
오랜만의 재회.
사하와 마주앉으니까 마음이 참 편했다.
그러나 사하는 약간 못마땅한 표정이었다.
“그 여자들과는 무슨 사이야?”
“난 궁주고 그녀들은 모두 내 사매들이야.”
“그것뿐이야? 다른 관계는 아니고?”
기수는 잠시 망설였다. 그러나 정직하게 말하기로 마음먹었다. 정직이 최선의 정책이란 금언도 있지 않은가. 셰익스피어도 정직만큼 값진 유산은 없다고 했고…
“사실… 사매들과는 연인 관계이기도 해.”
“그녀들 중 누구?”
“그러니까… 그게…”
기수의 표정을 살피던 사하가 눈을 크게 떴다.
“서. 설마…. 그녀들 전부하고 다…..?”
사하가 평소 쿨한 것 같아 보여도 막상 호운혜와 문제가 생기자 상당히 신경을 쓰던 일이 생각났다.
‘아! 괜히 사실대로 말했나?’
그러나 이제 와서 돌이킬 수는 없는 일. 정직을 밀고나갈 수밖에 없었다.
“응. 사매들 여덟 명 전부가 내 정인이야.”
사하는 의자를 박차고 일어서더니 검지로 문을 가리켰다.
“나가! 당장!”
“이, 이봐. 흥분하지 말고 차분히 얘기 좀 하자.”
사매들한테 돌아가면 또 꼬집힐 텐데 좀 봐주면 안 되나 싶었다.
“필요 없어! 당장 나가 이 호색한!”
기수는 그녀의 기세에 밀려 일어섰다.
예전과 달리, 이제는 여자도 남자를 때릴 수 있다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기에 동작은 잽싸게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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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캐릭터 인기투표를 실시중입니다. ^^;
항목이 10개밖에 없어서 올리지 못한 출연자도 있네요… 그녀들은 다음 기회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