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hwa Manri RAW novel - Chapter 437
기수가 강불귀를 죽이지 않은 것은 그로부터 얻을 것이 많기 때문이었다.
합격진을 단숨에 부순 후, 기수에겐 강불귀 제압보다 급한 일이 있었다.
바로 사매들을 향한 두 합격진의 위력을 약화시키는 것이었다.
자기가 일단 불로 몇 명 지져 놓으면 사매들이 나머지는 처리할 수 있을 거라는 란 생각이 들었다.
등 뒤의 강불귀 움직임을 감지하고 손을 뻗어 막는 순간 빠직거리는 불꽃과 함께 반사적으로 손이 움츠러든 것은 정말 의외의 상황이었다.
만약 호신강기 없이 맨살로 막았다면 반신이 마비되며 쓰러졌을 수도 있는 일.
기수는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네놈도 뇌전격을 펼칠 줄 아는구나!”
기수의 외침에 강불귀가 오히려 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자기 무공의 이름을 훤히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분명 창이 닿았는데도 불구하고 쓰러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강불귀는 머뭇거리지 않고 재차 공격을 가했다.
쓰러지지는 않았지만 기수가 움츠러드는 모습은 분명히 확인한 상태.
동료 다섯 명을 순식간에 잃은 자신으로서는 뇌전격에 모든 걸 걸 수밖에 없었다.
새파란 정전기 불꽃이 뱀처럼 휘감기는 창이 휙! 휙! 파공음을 내며 찔러 들어오자 기수는 자기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뇌전격에 당했던 엣 기억 때문에 도무지 손을 낼 수 없었다.
그러나 뒤쪽엔 다른 패거리가 있었다.
“젠장!”
기수는 양손에 파천강기를 칼날 형태로 튀어나오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강불귀의 창을 상대했다.
기대한 대로, 뇌전격은 파천강기 너머까지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기수 입장에선 좀처럼 적극적인 공세를 펼치기 어려웠다.
마치 나무 막대기로 고압 전선을 건드리는 기분이라서 자꾸만 멈칫거리게 되었기 때문이다. 고수와 고수의 대결에서 그 정도 인터발이 있다면 정상적인 공격은 물 건너갔다고 봐야 했다.
기수는 침음성을 흘렸다. 여섯 명 합격진을 상대할 때보다 강불귀 한 명과 싸우기가 더 버거울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때 공주의 목소리가 들렸다.
“가서 궁주를 도와!”
곧바로 파공음과 함께 두 자루 반월도가 싸움에 끼어들었다.
그 두 자루 칼은 빠직거리는 파란 정전기를 휘감고 있었다.
“아투사!”
기수는 그녀의 가세가 반가웠다.
자신도 뇌전격의 운기법을 알기 때문에 모르는 사람보다 전기 충격을 조금 덜 받는다고 하지만 역시 아투사를 따라갈 수는 없었다.
강불귀는 혈매궁에 뇌전격 쓰는 여인이 있다는 사실에 크게 놀랐다.
그리고 창과 칼을 맞부딪힌 결과, 자기보다 고수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그렇다고 쉽게 제압하기도 어려운 수준이란 사실을 알아차렸다.
뇌전을 휘감은 두 자루 무기는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지 못해서 그냥 보통 창과 쌍칼의 대결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상황이 그렇게 변하자 기수의 가세가 끔찍한 위협으로 다가왔다.
기수는 아투사가 빠진 만큼 공주가 위험해졌다는 사실을 알기에 잠시도 지체하지 않고 공격을 펼쳤다.
파천강기 수십 발이 발목과 무릎에 집중적으로 박히자 강불귀는 중심을 잡고 서있기 힘들었고, 그 상태로는 아투사의 쌍칼을 방어해내기 어려웠다.
“아투사. 죽이면 안 돼!”
기수가 파천강기의 파워를 낮추고 숫자를 많게 운용한 것은 강불귀에게 상처를 입히지 않기 위해서였다.
강불귀의 급소를 노리던 아투사의 쌍칼은 기세를 늦추었지만, 기수의 잔백지는 용서없이 그의 혈을 눌렀다.
“크윽….”
강불귀는 창을 떨어트리며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그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두 사람을 감당할 수 없었던 것이다.
기수는 즉시 공주를 돕기 위해 달려갔다.
얼핏 둘러보니 매화육궁진은 합격진 대 합격진으로 별로 밀리지 않았다.
그에 반해 공주는 몹시 위태로워 보였다.
기수는 첫 번째 합격진을 깨부술 때처럼 마음의 각오를 단단히 하고 일격 필살의 집중력으로 두 개의 불기둥을 뿜어냈다.
“크아악!….”
“아악!…”
불길에 휩싸인 적은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쳤다.
그들 평생에 이런 식의 싸움은 처음이었다.
본래 상대의 무기 길이와 내 무기 길이에 맞춰 간격을 유지하는 게 보법의 기본인데, 기수의 화공은 평생 처음 보는 공격법이라 기준을 잡을 수 없었다.
게다가 폭발적으로 다가와 전신을 휘감았기 때문에 막기도 불가능했다.
여섯 명 중 두 명이 불덩이가 되어 진형에서 밀려나자 나머지 네 명은 당황했고, 공주는 기가 살았다.
“너희들. 이제 다 죽었어!”
그녀는 기수처럼 특별한 기술을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권장지각의 기본 무공만으로도 적을 압도해 들어갔다.
결국 그녀와 기수, 아투사의 협공에 나머지 네 명도 차례차례 목숨을 잃었다.
12명이 쓰러지고 6명만 남게 되자 그들은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기수는 그들의 의도를 알아차리고 큰소리로 호통을 쳤다.
“꿈도 꾸지 마라! 내가 네놈들이 도망치도록 놔둘 것 같으냐?”
탁지연도 수신호로 매화육궁진의 대형을 바꾸었다.
적의 도주에 대비한 것이다.
수적 우위로 세 개의 합격진을 만들었던 적은 이제 오히려 9대 6의 불리한 위치로 포위당하게 되었다.
기수는 그들이 은혈대법 이외에 다른 수단 동원할 기회를 원천 차단하기 위해 역시 화류의 태포련으로 선제공격을 감행했다.
포위된 적에게 그 공격은 더욱 무서운 공포로 다가갔다.
결국 여섯 명도 오래 버티지 못하고 차례차례 목숨을 잃었다.
기수는 그들이 모용세가를 공격한 범인이란 사실, 특히 순우광과 비룡검문 제자들을 해친 범인이란 사실을 알기에 사정없이 몰아쳤다.
마지막 한 명만 남게되자, 그가 갑자기 들고 있던 칼을 던졌다.
칼은 무서운 속도로 날아갔지만 그곳엔 기수도, 사매도 없었다.
기수는 칼이 향하는 방향을 보고 깜짝 놀라 파천강기를 날렸고, 칼날은 거기에 맞아 경로가 바뀌어 땅바닥에 박히고 말았다.
던진 칼이 향한 곳은 바로 점혈당해 쓰러져 있는 강불귀였다.
비밀을 지키기 위해 동료를 죽이려 했던 것이다.
“지독한 놈!”
기수는 그를 응징하고 싶었지만 무기를 던진 직후 탁지연과 추매의 검에 동시에 찔려 이미 목숨이 끊어진 뒤였다.
17명의 청탑산 고수들을 모두 해치운 기수는 적 진영을 살펴보았다.
“어디 갔지?”
제갈민이 보이지 않았다.
‘약삭빠른 놈.’
어느 시점에 도망쳤는지는 모르지만, 자기 목숨 구하는 쪽으로는 잔머리도 잘 돌아가고 결단력도 빠르다고 인정해 줘야 할 것 같았다.
공주가 말했다.
“흩어져서 찾아보자! 그 학창의 입은 놈.”
탁지연이 기수에게 말했다.
“궁주는 여기서 기식을 고르면서 기다려.”
사매들은 두 방향으로 나누어 적진으로 뛰어들었다.
그들이 움직이자 삼황맹 무리는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기 바빴다.
방금 벌어진, 불쇼를 포함한 18대 9의 싸움은 그들의 상상을 완전히 벗어나는 수준의 대결이었다.
그들에겐 도망치는 것 외엔 다른 선택이 없었다.
기수는 쓰러진 강불귀 옆으로 가서 주변을 경계하며 호흡을 골랐다.
짧은 시간, 급격한 진기 운용을 해서인지 오행류 상생순환을 10번 정도 한 뒤에야 겨우 진원지기가 안정되었다.
그때쯤 사매들이 돌아왔다.
“없어. 어디로 도망갔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어.”
삼황맹 병력이 워낙 많았기 때문에 그들 사이에 숨었다면 흔적을 추적하기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사방으로 어지러이 도망치며 만든 흙먼지 때문에 시야도 좋지 않았다.
기수가 그녀들에게 말했다.
“걱정하지 마. 이 녀석이 우리에게 해줄 말이 많을 거야.”
제갈민까지 잡았다면 더 좋았겠지만, 강불귀를 생포한 것만 해도 충분한 성과였다.
기수는 그를 일으켜 앉혔다.
강불귀는 시점이 높아지자 주변 상황부터 살폈다.
귀로 들었던 대로 17명이 모두 죽은 것을 보고 그는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정말 믿어지지 않는 일이었다.
기수는 그의 점혈을 풀어주려다가 손을 멈추었다.
동료가 죽이려고 했던 것을 보면 이들의 평소 비밀유지에 대한 훈련 상태를 짐작할 수 있었다.
기수는 자신의 특기를 사용하기로 했다.
염정구심술을 발동하여 강불귀의 의식과 동조를 시도했다.
약간 시간이 걸렸지만 확고한 동조가 이루어졌다.
기수는 만족한 미소를 지은 후 질문을 했다.
“한귀비는 지금 어디 있지?”
강불귀는 기수가 무슨 수작을 부리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대답할 길이 막혀 있는데 질문을 하다니…
그는 ‘이봐. 난 아직 혈이 풀리지 않았다고!’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그러나 기수는 질문을 반복할 뿐이었다.
강불귀는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그런데 기수의 질문이 바뀌었다.
“너의 주군은 누구냐?”
강불귀는 이번에도 눈을 부릅뜨고 기수를 노려볼 뿐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아니, 말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다.
기수는 혼자서 계속 엉뚱한 질문을 했다.
“아무리 그래도 한 번쯤은 얼굴을 봤겠지.”
강불귀는 기수를 노려봤다.
그러자 다른 질문들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에 대해 뭘 알고 있지?”
“청탑산에서 무공을 익힌 자들은 모두 몇 명이나 되지?”
“다른 훈련장소가 있나?”
“네 동료들은 모두 은혈대법을 익혔나?”
질문이 진행되는 동안 사매들 모두 유심히 두 사람을 바라봤다.
그리고 한 순간.
기수가 강불귀의 이마 한가운데 검지를 댔고, 퓻! 하는 미약한 파공음과 함께 그의 몸은 뒤로 넘어가버렸다.
공주가 깜짝 놀란 외쳤다.
“죽여 버리면 어떻게 해?”
“이 열여덟 명은 처음부터 모두 죽여 순우광의 영전에 바칠 생각이었어. 한 명도 살려둘 수 없어.”
“하지만 정보는? 한귀비와 역모의 배후는?”
“전부 파악했어. 이놈이 알고 있는 한도 안에선…”
“그래? 한귀비는 지금 어디 있는데?”
“몰라.”
“뭐라고?”
공주는 기가 막혔다.
기수는 어깨를 한 번 으쓱해 보인 후 말했다.
“이놈들 완전히 점조직으로 이루어져 있어. 위에서 명령을 내리는 직속상관 한 놈만 알 뿐, 그 위로 누가 있는지, 혹은 좌우로 누가 동료인지 전혀 몰라.”
“그, 그럴 리가…”
“정말이야. 한귀비가 누군지는 아예 모르고… 주군에 대해서도 그냥 그런 사람이 있다는 것만 알 뿐, 만나본 적도 없고 이름도 몰라.”
“말도 안 돼!”
기수도 공주 못지않게 실망했다.
하지만 조금 생각해 보면, 자기라고 해도 역모라는 무시무시한 계획을 세웠을 경우 조직을 이런 식으로 운용했을 것 같았다.
오로지 자기 직속상관만 아는 점 조직.
일이 잘못된다 하더라도 꼬리 자르기에 최적의 조건인 것이다.
탁지연이 기수에게 물었다.
“궁주. 이런 놈들이 도대체 몇 명이나 되는 거야?”
한귀비도 아닌, 일반 무사들과의 6대 6 대결에서 만만치 않음을 느낀 다음이라 탁지연은 부담스러워 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들은 청탑산에서 무공을 익힌 동기인데, 원래 32명이 들어갔다가 18명만 살아남은 모양이야. 서로 얼굴과 이름을 아는 건 이들이 전부고 백호 4진이라고 불렸어.”
아투사가 물었다.
“그러면 청탑산에서 네 번째 배출한 고수들이란 의미인가요?”
“아마 그런 뜻이겠지?”
탁지연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냐. 백호라는 말이 붙은 건 아마 방위를 의미할 거야. 그러니까 서쪽에 배치된 네 번째 부대란 뜻이겠지.”
아투사가 기수에게 물었다.
“청탑산 말고 다른 곳에서도 무공을 가르쳤나요?”
기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들은 청탑산 이외의 일에 대해서는 전혀 몰라.”
공주가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한귀비와 배후에 대해선 아무 것도 알아내지 못했다는 거네.”
기수가 검지를 세우며 말했다.
“그건 아냐. 단서 하나를 잡았거든.”
“그게 뭔데?”
“태화각에 대한 단서를 잡았거든.”
“그게 정말이야?”
공주는 몹시 기뻐했다.
예전에 궁 안에서 한귀비를 잡으려 했을 때, 한귀비가 몹시 신경 쓰며 숨기고 싶어 하던 게 바로 태화각이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 이름만 알게 되었을 뿐, 그게 건물을 가리키는 건지, 아니면 어떤 조직을 일컫는 말인지 파악할 수 없었는데 이곳에서 그 단서를 잡은 것이다.
기수가 말했다.
“태화각은 낙양에 있는 낡은 객잔의 이름이야. 그곳으로 가 보면 뭔가 단서를 잡을 수 있을 거야. 강불귀라는 이놈. 지령을 하달받기 위해 거기 자주 갔거든.”
기수의 머릿속에는 그 객잔까지 가는 길이 자세히 그려졌다.
공주가 들뜬 어조로 말했다.
“당장 가자!”
지령이 오고가는 접선 장소를 찾았으니, 한귀비를 잡아 족치는 것보다 오히려 한 발 더 깊이 들어갔다고 볼 수 있는 상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