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hwa Manri RAW novel - Chapter 439
음양대법엔 기수보다 사매들이 더 집착했다.
기수는 백호 4진과 싸우면서 우위를 입증했지만 사매들은 그러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합격진이 매화육궁진보다 우위에 있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구성원 개인이 강했다.
일양심법과 은형대법의 조합은 전투 후에 회복기간을 가져야 한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지만, 어차피 싸우다 죽으면 그걸로 끝이기 때문에 강적과 상대할 때 아주 요긴하게 써먹을 수 있었다.
사매들은 그런 적들이 많다는 사실을 인지했고, 장차 그들과 다시 만났을 때 밀리지 않으려면 내공을 키우는 길밖에 없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기수라는 최대의 영약을 상대할 때 쾌감보다 생존본능에 더 집중했다.
기수는 두 가지 방법으로 내공을 증진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최근에 들어선 오행류 상생순환 쪽이 더 효율이 좋다는 걸 확인했다.
증진되는 진기의 양은 비슷하지만, 음양대법은 파트너와 맞추고 순환시키는 절차에서 약간의 시간 낭비요인이 있는데 반해 상생순환은 자기 의지만 있으면 언제든지 밀도 높게 순환이 가능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기수는 음양대법에 더 정열을 쏟았다.
자기 혼자 강해지는 것이 목표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한 때는 기수가 자신의 내공증진을 위해 일부러 단전에 미약한 양만 남기는 식으로 운용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오로지 사매들의 내공을 끌어 올려주는데 최선을 다했다.
사매들이 간절하게 원하고, 기수도 적극적으로 베푸니까 대법은 그 어느 때보다 효율적으로 진행되었다.
그렇게 9명은 객잔 2층에서 거의 폐관수련 하는 분위기로 지내게 되었다.
잠복근무의 지루함과 따분함을 음양대법이 날려주어서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한편, 화양문으로 일단 철수했던 무림맹은 다음날 바로 전열을 재정비하고 고원으로 출정했다.
어떻게든 혈매궁을 도와야한다는 맹주 주일비의 생각 때문이었다.
있다가 없으니까 그들의 존재가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 것이다.
그러나 고원에 혈매궁은 없었다.
오로지 적의 시체뿐이었다.
정황상 혈매궁이 벌인 일이 분명했다.
무림맹 군웅들은 시체를 둘러보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모두 똑같은 상처. 급소에 구멍이 뚫린 채 죽어 있었다.
연무장에 전시된 녹아 붙은 창칼보다 더 충격적인 광경이었다.
단지 아홉 명 만으로 이런 일을 해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이 적이 아니라는 사실에 다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고원엔 혈매궁만 없는 게 아니라 적의 자취도 보이지 않았다.
삼황맹들이 군영 세웠던 자리에서 더 많은 시신이 발견되었고, 황급히 철수한 흔적도 찾을 수 있었다.
적은 혈매궁에 쫓겨 철수한 게 분명했다.
주일비는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이렇게 큰 전공을 세울 때 자신들이 옆에 있지 못했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주변을 둘러보니 군웅들의 모용세가와 비룡검문 대하는 태도가 약간은 달라져 있었다.
근처에 있다가 날벼락 맞을까봐 슬슬 피하는 눈치였지만, 고원에 널린 적의 시신을 보고 다시 친해지려는 모습으로 바뀌었다.
자신을 포함해서 사람의 마음이 참으로 간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혈매궁이 떠난 것을 아쉬워하는 사람은 맹주 외에도 많았다.
기수에게 막 중독되기 시작한 무림맹의 여인들.
당운영, 호운혜, 백서린, 양여옥, 사하, 그리고 능소화.
그녀들의 아쉬운 마음은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어깨가 축 늘어져 한숨만 내쉬는 호운혜를 당운영이 위로했다.
“언니. 기운 내요. 그는 우리를 만나기 위해 곧 돌아올 거예요.”
“휴우~ 넌 모른다.”
“뭐를 몰라요?”
“다른 남자들은 절대로 그만큼 해줄 수 없어.”
“그…. 속 깊은 곳을 긁어준다는 거요?”
“길이뿐만이 아냐. 굵기, 단단함, 지속시간… 아아~! 미치겠네.”
당운영은 호운혜가 사람이 아닌 다른 걸 그리워한다고 사실을 알았다.
어떤 면에선 솔직하다고도 할 수 있었다.
“그는 돌아올 거예요.”
당운영은 호운혜의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그리고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난 수명을 이어가려면 약을 먹어야 하는데…’
말도 안 되는 수작으로 시작되었지만, 지금에 와서는 그게 진실처럼 느껴져서 약을 먹지 못하면 죽을 것만 같았다.
기수는 무림맹 여인들이 자기를 그리워하는 동안에도 사매들의 업그레이드를 위해 쉬지 않고 노력했다.
그러던 어느 날.
태화각을 관찰하던 설매가 방문을 열고 황급히 손짓했다.
“다들 이리 와봐! 골목 입구에 고수가 나타났어!”
기수를 비롯한 사매들은 황급히 결합을 풀고, 옷을 입고 창가로 갔다.
과연 발걸음이 날렵한 중년인 한 명이 골목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주변을 살피는 그의 예리한 시선이 창으로 향하자 사매들은 반사적으로 몸을 숨겼다.
그러나 나무판을 얼기설기 덧댄 창 사이로 내다보는 것이고 강기막으로 모든 소리를 차단했기 때문에 발각될 가능성은 없었다.
중년 사내의 시선도 금세 다른 곳으로 향했다.
기수가 사매들에게 상황을 가르쳐주기 위해 일부러 큰 목소리로 말했다.
“태화각으로 들어가지 않는다면 우리 목표는 아냐.”
중년 사내는 걷는 내내 주변을 살피다가 거침없이 태화각으로 들어갔다.
사매들 모두 기수 쪽을 봤다.
“좋아. 이제부터 감시 인원을 두 배로 늘리자. 그리고 접선자가 나타났을 때에 대비한 약속도 미리 해둬야 돼.”
“무슨 약속?”
“그들을 붙잡아서는 알아낼 수 있는 게 별로 없을 거야. 미행해야지.”
“아! 그럼 우리도 따로 갈라져야 하는 건가?”
“맞아. 둘이 만나면 우리도 둘로, 셋이 만난다면 우리도 셋으로 나누어 놈들을 따라가야 돼. 그러니 미리 나눠놓자고.”
공주가 잽싸게 손을 들었다.
“난 궁주 편!”
기수는 그녀에게 꿀밤 때리는 시늉을 했다.
“으이그! 네가 나와 함께 가면 다른 쪽이 강적을 만났을 때 위험해질 수 있잖아.”
“그, 그런가?”
“둘로 나뉠 경우 나와 풍매, 설매, 아투사가 한 조를 이를 테니까 다른 쪽은 너희 다섯 명이 맡아.”
사매들 중 풍매, 설매, 아투사는 입이 쩍 벌어졌고, 나머지 다섯 명은 곧바로 불만을 제기하려 했다.
그러나 양쪽의 전투력을 공평하게 분배하려면 기수의 제안이 합리적이었다.
즉, 사매들 중 그 세 명의 무공이 가장 처지는 것이다.
기수가 이어서 말했다.
“적의 소굴을 찾아내면 그 즉시 여기로 돌아와서 대책을 의논하고 다시 움직이는 거야. 절대 그들을 잡으려 하거나 자극해선 안 돼. 알았지?”
모두들 긴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역모 색출이 걸린 일이니 신중하게 대처해야 했다.
기수 입장에서도 사도를 찾아내는 일이라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사매 8명이 4명씩 맞교대로 감시에 들어간 지 하루.
기수는 쉬는 조가 6명에서 4명으로 줄어들었어도 여전히 바쁘게 본업에 충실하고 있었는데 춘매가 문을 벌컥 열고 말했다.
“새로운 인물이 나타났어! 그 인상 더러운 놈이야.”
기수는 황급히 뽑고 창가로 가 보았다.
골목으로 들어선 자는 바로 강불귀의 기억 속에 남아 있던 그 총관이라는 자였다.
기수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적의 실체에 한 걸음 바짝 다가선 기분이 들었다.
“모두들 길 떠날 준비해. 접선해서 전달사항을 애기한 이후에 곧바로 나와서 제 갈 길로 갈 가능성이 크니까.”
사매들은 저마다 옷을 챙겨 입고, 무기도 들고, 변장도 확인했다.
총관은 태화각으로 들어간 지 15분 만에 밖으로 나왔다.
기수가 공주에게 말했다.
“내가 맡을게. 너희들은 나중에 나오는 놈을 추적해.”
“알았어.”
“들키면 안 돼.”
“걱정 마.”
“근거지만 찾으면 곧바로 돌아와야 돼. 뭔가 해보려 하지 말고.”
그동안 열심히 내공을 증진시켜 주었지만 적의 전력이 만만치 않았다.
괜히 건드렸다가 20명, 40명에게 둘러싸이기라도 한다면 매화육궁진도 펼치지 못하는 현재의 분리된 상태로는 몹시 위험할 수 있었다.
공주와 탁지연도 그 사실을 알았다.
“그런 일 없을 테니까 어서 가 봐. 놓칠라.”
기수는 즉시 객잔을 나갔고 풍매, 설매, 아투사가 그를 따랐다.
골목을 빠져나간 총관은 사람들 사이에 섞여 강변으로 향했다. 눈에 띄지 않기 위해서인지 보통 사람들과 같은 걸음걸이였기 때문에 미행은 어렵지 않았다.
아투사는 직업이 살수고, 풍매와 설매는 동창 출신이라 기수가 뭐라 하지 않아도 적절한 간격을 유지하며 따라갈 수 있었다.
그러나 강변에 도착하자 문제가 발생했다.
총관이 대뜸 배에 올라탄 것이다.
아마 이곳에 올 때도 타고 온 배인 듯, 사공들이 총관에게 인사를 하고는 곧바로 배를 저어 강심으로 나갔다.
기수는 당황했다.
“어쩌지? 다른 배를 불러서 추적할까?”
영화에서 보면 택시 잡아타고 ‘앞 차를 따라가 주세요.’ 라는 장면이 종종 나오는데, 배로도 그게 될지 의문이었다.
풍매가 말했다.
“강 위에선 뒤따라오는 배가 있으면 금방 알아차릴 거야.”
그러면 곤란했다.
백호 4진이 당했다는 소식이 지금쯤 주군에게 전달되었을 것이고 신경이 잔뜩 예민해져 있을 텐데 그런 식으로 경계심을 자극할 필요가 없었다.
기수는 배에 꽂힌 깃발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배의 형태나 갑판에 짐 싣는 공간으로 볼 때 무슨 상단에 속한 것으로 보였다.
“육로로 따라간다.”
기수는 자신의 시력과 경공을 믿기로 했다.
사실, 그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렇게 해서 배의 진행속도에 맞춰 강변을 따라 가는 미행이 시작되었다.
그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황하로 통하는 지류들을 만날 때마다 문제가 발생했다.
배는 그냥 황하를 타고 가면 되지만, 육로 쪽은 그 지류를 가로질러야 하기 때문에 나룻터나 다리를 찾아 우회하는데 시간이 걸렸다.
그나마 밤이면 경공으로 우회시간을 단축할 수 있지만, 낮엔 사람들 이목 때문에 마음대로 행동할 수 없었다.
기수는 옛날 수로맹 시절이 그리웠다.
‘그때 부하들. 배 다루는 솜씨 하나는 기가 막혔는데…’
그들이라면 여러 척의 배로 교대하면서 눈치 못 채게 미행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했을 것이었다. 육지 전투에선 젬병이지만 수상 기동력으로 따지면 그들 만 한 자산도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추적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자 다른 문제가 대두되었다.
배는 사공을 교대하면서 계속 나아가지만, 기수와 세 사매는 한 잠도 못 자고, 한 끼도 못 먹고 배를 따라가야 하는 것이다.
“배고프고 졸리지?”
기수의 물음에 사매들은 의외로 씩씩하게 대답했다.
“우리는 이런 훈련 해봐서 괜찮아. 궁주가 졸리겠다.”
“나야 뭐 상생순환 한 바퀴 돌리면 거뜬해지니까 상관없지만…”
운기조식보다 효율이 훨씬 좋아서 물만 마시면 얼마든지 더 버틸 수 있었다.
기수의 시선이 아투사 쪽으로 향하자 그녀가 말했다.
“전 열흘동아 굶어도 견딜 수 있어요.”
기수는 사매들이 동창 혹은 살수 출신이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처음 물어볼 때는 교대로 업어주려고 했는데 그러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물을 마시고, 건량도 조금씩 씹으면서 네 사람은 계속 배를 따라갔다.
그리고… 결국 기수는 사매들을 번갈아 업어주었다.
추적이 이틀 너머 이어지자 기수를 제외하고는 잠을 안자고 버티기 어려웠던 것이다.
교대로 30분에서 한 시간씩 기수의 등에 업혀 잠을 자는 것만으로도 사매들은 견딜 수 있는 힘을 얻게 되었다.
“궁주. 궁주는 졸리지 않아?”
“잠시 명상 상태를 유지하면 피로가 풀려. 걱정 마.”
자지 않고 며칠이나 버틸 수 있는지 시험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컨디션은 나쁘지 않았다.
그렇게 어려운 추적이 끝난 곳은 북경이었다.
배가 포구에 닿자 총관은 사공들의 어깨를 두드려준 후 대로를 걸어 성안으로 향했다. 기수와 세 사매는 총관과의 간격을 적절히 유지하면서 그를 따랐다.
‘고생한 보람이 있어야 하는데…’
기수는 총관이 주군이란 자에게 자신을 인도해주기 바랐다.
궁극의 적이 도대체 어떤 인물인지 궁금하기 짝이 없었다.
총관은 커다란 저택들이 모인 거리로 들어섰다.
고관대작들이 모여 사는 동네로 보였다.
그는 한 집으로 들어갔고, 담 너머로 대화가 들려왔다.
“오셨습니까? 고총관님.”
“아! 수고가 많네. 집에 별 일 없었지?”
“예. 아무 일 없었습니다.”
기수는 그가 실제로 이 집안의 총관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집안의 하인들은 물론 창고까지 책임지고 관리하는 게 총관의 일이었다.
집 주인이 그런 일을 아무에게나 맡기지는 않을 것이다.
‘사나흘씩 집을 비워도 된다는 것은 주인이 그가 하는 일에 대해 알고 있다는 뜻. 그렇다면 이 집의 주인이 바로 역모의 주체다.’
기수는 일단 가까운 객잔을 잡았다.
고총관의 근거지를 알아냈으니 이제부터는 서두를 필요가 없었다.
기수는 음식을 시켜 먹으면서 점소이에게 지나가는 투로 물었다.
“저건 누구 집이지?”
“아! 예… 이부상서 나리의 저택이지요. 헤헤…”
“이부상서라… 으음…”
기수는 침음성을 흘렸다. 풍매와 설매의 표정도 굳었다.
이부(吏部)는 관료의 인사를 담당하는 부서, 즉 국가의 인사권을 좌지우지하는 자리로 6부 중에서도 단연 으뜸으로 꼽혔다.
그 수장이 모반의 수괴라는 사실이 충격적이었다.
또한, 한편으로는 수긍이 가기도 했다.
상서 정도는 되어야 이 정도 규모의 일을 꾸밀 수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