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hwa Manri RAW novel - Chapter 441
기수는 물 끓을 걱정 없이 마음껏 불기둥을 만들어 보았다.
자신의 내공 한도까지 발출해 본 것은 처음인데, 그것은 꽤나 특별한 경험이었다.
‘느낌에 집중해서 한 번 더 해보자.’
찔끔찔끔 할 때와 달리 단전에서 장심까지 이어지는 진기 흐름을 보다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몸 주변에 온수가 만들어져도 금방 흘러가버리기 때문에 부담도 없었다.
‘좋아! 지칠 때까지 해보자.’
기수는 손을 바꾸어 배를 잡은 뒤 반복해서 시도해 보았다.
선장과 선원들은 힐끔거리며 기수를 관찰했지만 그가 뭘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가끔씩 몸을 부르르 떠는 것으로 보아 수중 방뇨라고 짐작할 뿐이었다.
기수는 지칠 때까지 화류 태포련을 반복했다.
숨이 차고 단전이 빈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뭔가 감이 잡히는 듯 해서 기분은 오히려 좋았다.
배 위로 올라간 그는 선실로 들어가 상생순환과 휴식으로 몸 상태를 되돌린 후 잠시 눈을 붙이기로 했다.
“한 시진만 잘 테니까 깨워줘.”
“응. 궁주. 그동안 우리들도 운기조식 열심히 할게.”
그리고 한 시진 뒤.
기수는 뭔가 따듯하고 축축한 감촉을 만끽하며 잠에서 깨어났다.
사매 셋이 입으로 그를 깨우고 있었다.
“쪼옵~! 궁주. 시간 다 됐어.”
“응… 너희들… 열심이구나.”
“궁주가 우리를 따로 뽑은 이유. 우리도 알아. 열심히 해야 매화육궁진도 강해지지.”
“그건 그래.”
기수는 그녀들의 노력에 적절한 보상을 해주었다.
배가 천천히 낙양으로 가는 동안 기수는 수영과 사매들 돕기를 병행했고, 화류 태포련을 극한까지 발출하는 게 자신의 연공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도 발견했다.
절세고수 반열에 들어선 기수는 제대로 된 적과 싸울 기회가 많지 않았다.
그러나 도도하게 흐르는 황하의 물결은 그가 극한의 힘을 끌어내도 넘어설 수 없는 대자연이었다.
지쳐서 숨이 턱에 찰 때까지 연공을 하고 나면 몸은 피곤하지만 기분은 더 할 나위 없이 상쾌해졌다.
그 상태로 잠시 자고 나면 사매들이 정성을 다해 깨워주고, 다시 음양대법과 수영 연공을 반복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화류 태포련에서 뭔가 감이 잡힐 것 같으면서도 구체적인 성과는 얻을 수 없었다는 것이었다.
‘어르신이 이 길로 꾸준히 가면 성공할 거라고 하셨는데…’
답답하기도 하고 조급하기도 했지만 기수는 결국 마음을 편히 가지기로 했다.
합비를 스승으로 모시고 정식으로 배웠어도 쉽지 않았을 텐데, 지름길을 놔두고 자기 나름의 길을 고집한 지금, 그게 그렇게 쉽게 될 리 없었다.
러브 보트의 순항도 마침내 끝을 맞이했다.
기수는 선장에게 약속한 돈을 주고 곱게 보내주었다.
그리고 태화각 골목의 객잔으로 돌아갔는데, 공주 쪽 사매들은 없었다.
풍매, 설매, 아투사는 그들이 아직 오지 않은 걸 기뻐했다.
기수를 독차지할 시간이 늘어난 것이기 때문이다.
기수는 그녀들의 상태를 면밀히 체크했고, 북경에 가기 전에 비해 확실히 차이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너희들. 날 만난 게 정말 다행인 줄 알아.”
그러자 사매들이 한 마디씩 했다.
“다행이 아니라 기연이지.”
“영약이기도 하고.”
기수는 자신을 한 사람의 인격체로 봐달라고 항변했지만 이의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객잔에서 네 사람만 지낸 지 사흘이나 지나서야 공주 일행이 도착했다.
“왜 이렇게 늦었어?”
“놈들 패거리를 확인하느라고.”
“패거리? 가만… 다 온 게 아니잖아? 추매와 동매는?”
“거기 남겨 뒀어. 놈들이 곧 집결할 것 같아서… 그쪽은 어땠어?”
“우린 북경까지 갔었는데, 알고 보니 그놈이 이부상서의 총관으로 일하고 있었어.”
공주가 깜짝 놀라 물었다.
“이부상서 마원? 설마… 그가 역모의 주동자였어?”
“아니. 주동자는 아냐. 하지만 한 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건 확실해.”
기수는 자기들이 알아낸 사실을 전부 다 자세히 얘기해주었다.
공주는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며 분개했다.
“마상서가 도대체 왜!… 부황폐하께서 그를 얼마나 아끼고 신임하는데 감히…”
움켜 쥔 두 주먹이 부르르 떨리는 것으로 보아 극심한 배신감을 느끼는 듯 했다.
그녀는 이를 갈며 외쳤다.
“당장 북경으로 가자!”
그런데 자기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표정이 이상했다.
사매들은 깜짝 놀라 다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고, 기수는 이마를 감싸 쥔 채 한숨을 내쉬었다.
공주는 그들의 그런 반응을 이해 할 수 없었다.
“왜들 그래? 북경으로 가자니까.”
탁지연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예매. 너. 방금 부황폐하라고 했지?”
공주는 그제야 원인이 자기에게 있음을 알아차렸다.
“아! 그, 그러니까 그건…”
이부상서가 역모에 가담했다는 사실을 알고 너무 흥분한 나머지 그동안 숨겨왔던 비밀을 자기 입으로 말해버린 것이다.
설매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예매. 너…. 공주였어?”
그러자 옆에 있던 춘매가 황급히 그녀의 입을 막았다.
공주는 고개를 푹 숙이고 한숨을 내귄 뒤 말했다.
“그래. 너희들한테 더 숨겨서 뭐 하겠냐? 나 공주 맞아.”
“아악!”
사매들은 비명 같은 소리를 지르더니 일제히 부복했다.
“공주마마를 뵙습니다.”
아투사와 기수만 앉은 자세 그대로였다.
공주는 입맛을 다셨다.
사실, 좀 늦게 밝힌 느낌도 있었다.
사매들과 자신은 이미 뜨겁고 은밀한 비밀을 공유하는 사이.
이들이 자신의 정체를 안다고 해도 달라질 것은 없었다.
오히려 앞으로는 일이 더 편해질 거라고 기대할 수 있었다.
“다들 일어서.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마마는 뭐야. 그냥 이전처럼 대해 줘.”
“그럴 수는 없습니다.”
“좋아! 그럼 명령을 내릴게. 예전처럼 대해.”
그래도 사매들은 쭈뼛거리기만 할 뿐 감히 고개도 들지 못했다.
특히 동창 출신 다섯 사매는 무릎 꿇은 자세에 각까지 잡혀 있었다.
기수와 아투사는 자기도 모르게 서로를 봤다.
분위기 상 그들도 무릎을 꿇어야 할 것처럼 느껴진 것이다.
“일어나래도.”
“아닙니다. 그동안의 실례를 용서해 주십시오.”
몇 차례 더 얘기해도 사매들이 말을 듣지 않자 공주가 양손을 허리에 얹으며 말했다.
“계속 이런 식으로 나올 거야? 역도들 앞에서도 마마니 뭐니 떠들 거냐고.”
“그, 그건 아니지만… 우리들끼리 있는 곳에서라도…”
“이전처럼 지내는 게 좋다고 얘기했잖아.”
“그럴 수는 없는 일입니다. 엄연히 신분의 고하가 있는데…”
“흥! 좋아. 그럼 궁주는 이제부터 내가 독차지한다!”
그녀의 폭탄선언에 사매들 얼굴이 해쓱하게 변했다.
신분을 내세우면 할 수도 있는 일인 것이다.
탁지연이 미소를 지으며 일어섰다.
“마마의 뜻에 따르겠습니다.”
다른 사매들도 배시시 웃으면서 일어났다.
그리고 설매가 공주에게 물었다.
“앞으로도 그냥 예매라고 부르면 되나요?”
“존대말 빼고.”
“대법 시간도 공평하게 배정받을 거야?”
중요한 질문이었다.
공주는 즉답을 피했다.
“그러고 보니… 북경에 갔다 왔던 너희들 세 명 모두 혈색이 달라졌다. 도대체 뭘 얼마나 한 거야?”
“아이… 언니는…”
설매는 자연스럽게 공주의 팔을 툭 밀었다.
그런 그녀의 행동 덕분에 굳어 있던 분위기는 많이 풀렸다.
그러나 다시 자리를 잡고 앉은 다음에도 어딘가 모르게 공주를 대하는 표정과 말투가 예전 같지는 않았다.
기수는 사매들의 표정에서 약간은 들뜬 기대감을 읽을 수 있었다.
그것은 이해가 되는 일이었다.
사매들의 지상과제는 생존이었다.
천하에서 가장 집요하고 뒤끝도 고약한 조직인 동창과 원수가 된 상태.
그들을 피해 숨는 게 아니라 당당히 벗어나기 위해 강남에 가서 강시 사냥도 했고, 지금은 역도들을 잡으러 다니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동창이 자기들을 놔줄지는 미지수였다.
공을 세우면 그들도 함부로 건드릴 수 없을 거라고 기대하는 수준에 불과했다.
하지만 예매가 공주라면 얘기가 달라지는 것이다.
두 개의 금패를 소지한 그녀는 동창과 장군부에 모두 명령을 내릴 정도로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그녀라면 사매들이 꿈꾸는 진정한 자유를 줄 수도 있었다.
잘 하면 될 수도 있다는 것과, 반드시 된다는 것 사이엔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
예매라면 자신들을 배신할 리가 절대로 없었다.
그동안 살을 비비고, 입을 맞추고, 혀를 대고, 액체를 교환한 게 어디 한두 번인가?
역도를 잡기만 하면 동창에서 벗어날 수 있고, 어쩌면 부와 명예, 심지어 관직까지도 바랄 수 있는 상황인 것이다.
거기에 대한 기대감이 사매들의 눈빛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공주가 기수에게 말했다.
“당장 북경으로 가자!”
“가서 어쩌려고?”
“그 늙은 쥐새끼를 잡아 족쳐야지!”
“워우! 워우! 진정해. 화가 난 건 알겠는데… 그러다간 진짜 몸통이 숨어버릴 가능성이 커. 모처럼 잡은 단서를 그렇게 날려 버릴 수는 없잖아.”
“네가 그 독심술로 전부 읽어내면 되잖아.”
“만약 그에게 주모자에 대한 정보가 없다면?”
“설마, 이부상서나 되는 사람이 직접 만나보지도 않고 한 편이 됐겠어?”
“어느 정도나 아는지 모르는 거잖아. 그리고 한 다리를 더 건넜을 수도 있고… 일단 놈들의 중요한 지령 줄기를 찾아냈으니까 면밀히 감시하면 많은 것들을 얻게 될 거야. 충분히 정보를 수집한 다음에 한 번에 확! 캐내는 게 효과적이지.”
공주는 잠시 생각한 후 말했다.
“그래서 감시자도 남겨놓지 않고 전부 돌아온 거야?”
“무림방파라면 도망칠 수 있지만, 이부상서는 어디 가는 것도 아니잖아.”
공주는 다시 생각에 잠겼다.
이부상서가 괘씸하기는 했지만 이럴 때일수록 냉정한 판단이 필요했다.
상대가 그 정도 고위 관리라면 쳐들어가서 멱살을 잡는다고 해결될 일은 없을 것이었다. 확실한 증거가 필요했다.
시간이 좀 걸리더라고 꾸준하고 집요하게 정보를 모으는 일.
공주는 천하에서 그 일에 가장 적합한 조직을 알고 있었다.
“동창이라면 잘 해낼 수 있을 거야.”
탁지연이 옆에서 말했다.
“하위직 중에는 적에게 포섭된 자가 있을지도 모르니까 믿을 수 있는 사람한테 맡겨야 되요.”
“예전처럼!…”
“믿을 수 있는 사람한테 맡겨야 돼.”
“창주한테 직접 명령해야 되겠어. 그라면 확실하게 잡아낼 수 있을 거야.”
“북경에 다녀오려고?”
“아니. 그가 이리 와야지.”
사매들은 혀를 내둘렀다.
자기들과 한 편인 사람이 동창의 창주를 오라 가라 하는 권력자라는 사실이 신기하기도 하고 뭔가 뿌듯하기도 했다.
기수가 공주에게 물었다.
“너희들이 따라갔던 자는 어떻게 됐어?”
“아! 그 자는 이상한 행동을 하고 있어.”
“어떤?”
“사람을 모으는 중이야.”
“백호 4진 같은?”
“응. 우리가 오기 전까지 접촉한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만 30명이 넘어.”
기수는 깜짝 놀랐다.
“무림맹을 상대할 때도 18명에 불과했는데 30명이나?”
“더 모을지도 몰라.”
“도대체 무슨 짓을 하려고? 전쟁이라도 벌일 작정인가?”
“아직 확실하지 않아.”
“빨리 가보자. 이제 보니 북경보다 그쪽이 더 급하잖아.”
“서두르지 마. 일단 동창에 명령부터 내려야지.”
공주는 자기가 아는 방식으로 동창과 접선을 시도하려고 했다.
그러나 생각해 보니까 편지를 전달하고, 창주가 낙양까지 오려면 시간이 많이 소요될 것 같았다. 그래서 자기가 직접 다녀오는 것으로 마음을 바꾸었다.
“사흘은 걸릴 거야. 최대한 서두를게.”
그렇게 공주가 떠나고 나자 기수는 사매들 모두를 모아놓고 말했다.
“이제 우리가 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황실에서 얼마나 주목하고 있는 일이지 알게 되었지?”
탁지연이 말했다.
“궁주 미쳤지?”
“내가? 왜?”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공주마마를 건드릴 거야? 뒷감당을 어찌 하려고?”
“하핫!… 어떻게 되겠지 뭐. 하하핫!…”
“아아!~ 정말 못 말린다니까. 목숨을 여벌로 몇 개 가지고 있기라도 한 거야?”
“옳다고 믿는 일은 위험하더라도 해야 하는 거잖아.”
“공주와 자는 게 옳은 일이야?”
“알고 보니까 공주라는 게 참 처량한 신세더라. 황제가 오랑캐한테 시집보내는 용도로 제일 많이 쓰던걸? 그래서 내가 구원해주리라 마음먹었지.”
“이게 구원이야? 역도들을 다 잡으면 다시 환궁해야 할 건데…”
“그럼 역도를 잡지 말아야 되나? 하하…”
그건 말이 안 되는 얘기였다.
하지만 주예림이 강호를 돌아다니는 것도 역모소탕 시점까지라고 생각하니까 왠지 모르게 마음이 무거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