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hwa Manri RAW novel - Chapter 445
막승룡이 괴인에게 제압당하기 직전.
날카로운 파공음과 함께 검 한 자루가 괴인의 명문혈로 파고들었다.
괴인은 막승룡의 혈에 손가락이 거의 닿아 있었지만 배후의 공세를 무시할 수 없었다. 마치 자기가 그런 공격하기를 기다렸다는 듯, 찔러온 검의 기세는 예사롭지 않았다.
황급히 돌아서 팔뚝에 두른 강철 갑루로 검을 쳐낸 괴인은 검을 든 상대부터 제압하려고 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상대는 남자가 아닌 여인이었고, 수적이라고는 하기에는 너무나 고강한 무공을 펼쳐내고 있었다.
“네, 네 년은 누구냐!”
대답 대신 등 뒤에서 또 한 자루의 검이 다가왔다.
위기감을 느낀 괴인은 황급히 자신의 필살기인 은혈대법을 끌어올렸다.
그러나 그 순간, 극심한 통증과 함께 두 여인의 검이 앞다투어 요혈로 파고들었다.
“크으윽!….”
괴인은 자기가 당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어, 어떻게….”
쓰러진 그는 죽립 아래쪽에서 상대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20대 초반의 절세미녀였다.
그녀가 차가운 미소와 함께 대답했다.
“우리끼리 연구를 해봤는데, 일양심법에서 은혈대법을 불러오려면 약간의 시간 차이가 생긴다는 사실을 발견했거든.”
괴인은 그녀의 입에서 일양심법과 은혈대법 얘기가 나오자 깜짝 놀랐다.
이 두 여인은 절대로 수적이 아니었다.
그 사실을 동료들에게 알려야 했다.
마지막 남은 진기를 끌어 올려 소리를 지르려는 순간 검 한 자루가 그의 입에 박혔고, 그는 결국 뜻을 이루지 못했다.
막승룡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두 여인에게 포권을 했다.
방금 본 두 여인의 검술은 과연 명불허전이었다.
혈매궁이 그토록 무서운 이름을 떨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막승룡의 시선은 비명을 따라 움직였다.
자신을 공격하던 괴인은 다행히 제압했지만 다른 세 명의 침입자들은 지금도 거침없이 자신의 가족과 수하들을 해치고 있었다.
막승룡은 자기도 모르게 두 여인에게 말했다.
“도, 도와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달리 방법이 없었다. 침입자들이 자신의 능력으로는 상대하기 어려운 고수들이라는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혈매궁의 두 여인은 고개를 끄덕인 후 곧바로 전장에 뛰어들었다.
다른 여인들도 남은 세 명을 옥죄어 갔다.
또 한 명의 희생자가 생기나 남은 침입자 두 명의 움직임이 갑자기 빨라졌다.
그리고 한 명은 수채를 벗어나 도망치는 길을 택했다.
의외의 적이 나타났음을 알리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한 청년에 의해 앞길을 막히고 말았다.
“비, 비켜라!”
그는 들고 있던 칼로 청년을 베었다.
은혈대법 상태인 자신을 막아낼 수 있는 자는 천하를 통틀어도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을 철석같이 믿고 내지른 일격이었다.
그러나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깡! 소리와 함께 상대가 맨손으로 자신의 칼을 쳐낸 것이다.
그것도 무슨 초식을 쓰는 게 아니라 무릎을 편 직립 자세에서 손만 움직여서, 마치 귀찮은 파리를 쫓는 것처럼 아무렇게나 튕겨냈다.
“아, 이런… 말도 안 되는…”
괴인은 미친 듯이 칼을 휘둘렀다.
그러나 청년의 대응은 똑같았다.
한두 걸음 떼기만 했을 뿐 여전히 맨손으로 칼을 쳐냈다.
괴인은 청년의 손에 푸른색 빛의 막 같은 게 덧씌워져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크게 놀랐다. 그는 강기로 자신의 칼을 쳐냈던 것이다.
청년이 말했다.
“계속 구경만 할 거야?”
괴인은 그게 누구를 향해 하는 얘기인지 몰랐다.
그때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정신을 잃고 말았다.
쓰러진 괴인 뒤엔 아투사가 서 있었다.
그녀의 손가락 사이엔 아직 파란색 뇌전이 남아 빠직거렸다.
그녀가 청년, 기수에게 말했다.
“미안. 궁주. 솜씨 구경 좀 하느라고…”
기수는 피식 웃었다.
그동안 실전 비무를 하면서 가장 큰 진전을 보인 사람이 바로 아투사였다.
그녀는 본래 살수라서, 무공의 깊이로만 따지면 사매들 중 가장 쳐졌다.
설매한테도 많이 부족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내공 증진 이후, 아투사는 경공술에 특별히 집중했다.
상대와의 간격을 자유자재로 좁히고 벌릴 수 있도록 노력한 것이다.
그것은 뇌전격을 쓸 수 있는 그녀에게 가장 요긴한 기술이었다.
상대 역시 뇌전격을 쓸 수 있는 고수가 아니라면 손이 닿는 순간 이길 수 있으니까 경공에만 우선 투자해도 된다는 탁지연의 조언에 따른 것이었다.
그 결과는 방금 확인할 수 있었다.
민첩한 신법으로 간격을 좁힌 후 단번에 제압.
비록 무공만 놓고 본다면 아직도 사매들 중에 가장 약하다고 할 수 있지만, 치명적인 한 방은 아투사가 가장 강력하다고 봐도 무방했다.
미리 알고 방비하지 않는다면 그녀보다 고수라고 해도 당할 수밖에 없는 게 아투사의 무서운 점이었다.
기수는 쓰러진 자를 점혈해 들쳐 멘 후 아투사와 함께 사매들에게로 갔다.
사매들 역시 혼자 남은 괴인을 간단히 처치해놓고 있었다.
가슴이 함몰된 것으로 보아 공주의 일 장에 맞은 게 분명했다.
기수는 사매들의 상태를 살펴보았다.
다들 호흡조차 가빠지지 않은 것을 보면 큰 부담이 없는 전투였음을 알 수 있었다.
수로맹 26채의 수적들은 부상자를 돌보고 주변 경계를 강화하느라 바빴다.
막승룡이 다가와 일행에게 포권을 한 후 말했다.
“저희들을 구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기수는 가볍게 포권만 한 후 슬그머니 뒤로 빠졌고 강달로 변장한 탁지연이 육대기와 함께 막승룡과 얘기를 나누었다.
“막 부채주. 이제 우리 말을 믿을 수 있겠소?”
“물론입니다. 아까의 무례를 용서해 주십시오.”
탁지연은 제갈세가와 역모에 대한 얘기들을 모두 해주었고, 이번엔 막승룡도 진지하게 들었다.
“그렇다면 우리 수로맹에 큰 위기가 닥쳤다고 할 수 있군요.”
“예. 혈매궁에서 도울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제가 앞장서서 다른 수채로 안내하겠습니다.”
탁지연은 듣고 싶었던 대답을 들었다.
다음 수채에 갔을 때, 육대기의 말을 막승룡이 선뜻 믿지 못했듯이 혈매궁이 쉽게 받아들여지지 못할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육대기와 막승룡이 함께 가준다면 이번 보다는 쉬울 것이었다.
탁지연이 주변을 둘러본 후 말했다.
“부상자가 많지 않아야 할 텐데 걱정입니다.”
“자,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막승룡은 부하들에게 피해 보고를 서두르도록 하고 자신은 가족들의 상태를 살폈다.
잠시 후 돌아온 그의 얼굴은 참담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가족들의 피해가 예상보다 컸던 것이다.
기수는 기절한 괴인을 육대기에게 건네주고 턱짓을 했다.
육대기는 기수의 의도를 눈치 채고 비통에 잠긴 막승룡에게 말했다.
“이 자를 부채주님에게 드리겠습니다. 원하는 대로 처리하십시오.”
죽고 다친 가족들을 보고 분노에 이를 갈던 막승룡은 육대기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포로를 처치한다고 해서 죽은 가족들이 살아 돌아오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복수를 하느냐 못 하느냐는 자기 자신은 물론 가족과 수하들 모두의 사기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
막승룡은 자기네들이 잡은 포로를 기꺼이 내어준 혈매궁에 거듭 감사인사를 했다.
그리고 부하들을 모두 모으고 네 개의 기둥을 세워 세 구의 시신과 한 명의 포로를 묶어놓도록 했다.
그는 날이 시퍼렇게 선 비수를 들고 포로 앞에 선 뒤 부하들에게 말했다.
“이 자들은 제갈세가의 하수인으로 우리 수로맹 채주들의 가족과 형제들을 인질로 잡기 위해 이곳에 왔다.”
그러자 수적 중 한 명이 물었다.
“제갈세가는 우리 편 아닙니까?”
막승룡은 탁지연에게 들은 대로 앞뒤 정황을 모두 애기해주었고, 수적들은 제갈세가의 악랄한 의도에 치를 떨며 분개했다.
“놈들을 용서할 수 없습니다!”
“모두 죽여야 합니다!”
막승룡은 손을 저어 모두를 진정시킨 후 말했다.
“오늘부터 제갈세가와 그들에게 협력하는 놈들은 모두 우리의 원수다! 우선 우리 수채를 습격하여 수많은 형제와 가족들을 해친 이놈에게 징벌을 내리겠다.”
막승룡은 예리한 비수로 포로의 옷을 찢어내더니 먼저 그의 발뒤꿈치 힘줄을 한쪽씩 차례로 잘랐다.
그 사이 깨어난 포로는 극도의 고통에 괴로워했지만 점혈이 풀리지 않은 상태라 비명을 지르지도 못하고 몸부림을 치지도 못했다.
막승룡은 외눈 하나 꿈쩍 않고 그의 손목 힘줄도 모두 잘라버렸다.
그 뒤에 부하들을 시켜 금창약을 가져오도록 한 후 자른 자리를 지혈시키고 붕대로 감아주었다.
기수와 사매들 입장에선 한 편 이해가 가면서도 끔찍하기 이를 데 없는 광경이었다.
네 군데 힘줄이 잘린 괴인은 이제 손과 발을 쓸 수 없는 신세가 되었다.
무공이 아무리 고수라고 해도, 무기를 쥘 수도 없고, 걸을 수도 없는 몸이 된 것이다.
그냥 죽이는 것보다 훨씬 잔인한 형벌.
게다가, 지혈해준 것은 출혈로 쉽게 죽도록 내버려두지 않겠다는 의미였다.
막승룡이 부하들에게 말했다.
“이놈에게 죽지 않을 만큼 물과 먹을 것을 주어 살려놓아라. 나는 혈매궁과 함께 다른 수채들을 돕기 위해 다녀올 것이다.”
수적들은 함성을 질러 대답을 대신했다.
위기에서 살아났고, 침입한 적을 모두 잡아 복수까지 했기에 다들 감정이 격앙되어 있었다. 특히 소문으로만 듣던 혈매궁이 이젠 아군이라는 사실에 들쯘 모습이었다.
갑자기 서포터즈로 변한 그들의 전송을 받으며, 기수 일행은 파양호로 들어갔다.
선단의 규모는 30척에서 40척으로 늘었고, 육대기와 막승룡이 선두에 섰다.
배들은 오래지 않아 24채의 선착장으로 진입했다.
그러나 지키는 수적이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육대기가 주변을 둘러보고 탁지연에게 말했다.
“여기 아무도 없는 것은 이상합니다. 수채가 이미 당했을지도 모릅니다.”
일행은 배가 닿자마자 산 위로 달려 올라갔다.
문을 지나자마자 피비린내가 확! 풍겨왔고, 마당엔 시체가 널려 있었다.
그리고 취의청엔 네 명의 사내가 앉아 술을 마시다가 들이닥친 수로맹 사람들을 보고 껄껄 웃었다.
“하하하!.. 이건 또 뭐냐? 죽일 놈들이 아직도 남아 있었나?”
육대기가 칼을 들고 달려들며 외쳤다.
“이놈들! 이게 무슨 짓이냐! 용서할 수 없다!”
그러자 침입자 네 명은 술잔을 놓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용서할 수 없으면 네놈이 어쩔 거냐? 흐흐흐…”
그들은 육대기의 보법을 보고 벌써 무공수준을 파악했다.
지원군이랍시고 나타난 놈들을 쉽게 처리하려면 우두머리를 압도적인 힘으로 죽여 사기를 꺾는 게 가장 효과적이었다.
시선을 교환한 후 두 명이 한꺼번에 달려들자 육대기는 순간적으로 당황했다.
동료들의 시체 무더기를 보고 분노를 이기지 못해 나서긴 했지만 상대의 무공은 자신과 격차가 컸다.
그들의 움직임을 보는 순간 곧바로 알 수 있었다.
그때 날카로운 파공음과 함께 자신을 향해 달려들던 두 명이 갑자기 얼굴을 감싸 쥐었다. 뒤에서 구경하던 두 명도 마찬가지였다.
손가락 사이로 피가 비치는 것으로 보아 눈 근처에 상처를 입은 듯 했다.
육대기는 그게 자기 수채 객청 기둥을 갉아내던 바로 그 수법임을 알아차렸다.
침입자들은 육대기가 우두머리라 생각하고 그의 움직임에 방심하다가 제대로 당한 것이다.
육대기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칼을 휘둘러 한 놈을 베었다.
무공에 차이가 나더라도 이 정도의 허점을 보인다면 결과는 자명했다.
“으아악!….”
한 놈이 비명을 지르며 넘어지자 육대기는 내친 김에 두 번째 놈까지 베었다.
그러나 상대는 만만치 않았다.
앞이 보이지 않는 중에도 비명을 듣고 위기감을 느낀 상대는 칼의 파공음을 가늠하여 검으로 육대기를 찔러 왔다.
죽더라도 혼자 죽지는 않겠다는 동귀어진의 수법이었다.
육대기는 그 날카로운 일격에 크게 놀랐지만 이미 온 힘을 칼에 실은 터라 물러서기엔 늦은 상황이었다.
자기 칼이 먼저 닿아서 상대의 균형을 무너뜨리고, 그로 인해 상대의 공격이 빗나가기를 바랄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상대의 공격이 더 빠르다는 점이었다.
그때 기적처럼 그의 검이 흔들렸다.
마치 누가 옆에서 잡아당기기라도 한 것처럼 갑자기 느려졌다.
기수가 수류의 태포련으로 누른 것인데, 물론 육대기는 어떻게 된 영문인지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서걱! 하는 파열음과 함께 적의 목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육대기가 단칼에 상대를 참수한 것이다.
수로맹 27채의 부하들은 채주의 대활약에 환호성을 질렀다.
그러는 사이 취의청 안의 두 명 역시 최후를 맞고 있었다.
사매들이 간단히 그들을 처치한 것이다.
기수와 사매들은 흡족한 표정으로 서로 시선을 마주쳤다.
이렇게 쉽게 이긴 것은 자신들이 강했다기보다는 적의 방심 때문이었다.
술을 마시고 있을 정도로 해이한 정신 상태였기 때문에 멸절강기 기습이 제대로 먹혀 들어갔고, 그 이후엔 이미 육대기의 공격이 통할 정도로 상황이 기울어졌던 것이다.
육대기와 막승룡은 부하들을 시켜 수채를 뒤지도록 했다.
다행히 모두가 다 죽은 것은 아니었다.
채주의 가족들과 간부들은 건물 안에 점혈 당한 채 모여 있었다.
인질로 잡아놓을 만큼 중요한 사람들이기에 목숨을 구한 셈이었다.
육대기와 막승룡이 점혈을 풀어주자 그들은 연거푸 감사인사를 했다.
두 사람은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에 대해 그들에게 설명을 해주었다.
제갈세가와 역모 얘기는 선뜻 연결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관과 무림은 빙탄불상용인데, 무림 문파가 그런 어마어마한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자기들이 직접 무시무시한 고수들에게 당하고 보니 뭔가 있다는 사실을 체감하게 되었고, 혈매궁이 자기들을 돕는 것 역시 받아들이게 되었다.
육대기는 살아남은 수채 식구들 중 가장 서열이 높은 사람을 한 명 뽑아서 함께 다음 수채로 데려가기로 했다.
일행은 곧장 선착장으로 내려가 배를 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