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hwa Manri RAW novel - Chapter 448
승자 춘매가 기수로부터 스페셜 어워드를 받은 밤이 지나가고, 아침이 되었다.
탁지연은 찢어진 옷을 버리고 새 옷을 꺼내 입으면서 기수에게 말했다.
“궁주. 우리 이제 그만 이곳을 떠나자.”
“왜? 손중 때문에?”
“생각만 해도 끔찍해.”
기수도 강달의 저 험악한 얼굴에 도대체 왜 끌리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남자끼리는 얼굴이 중요한 게 아닌가?’
기수는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쪽 방면은 자기가 신경 쓸 필요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탁지연은 계속 졸랐다.
“이제 중원으로 돌아가자. 응? 궁주.”
“안 돼. 이곳을 비워둘 수는 없어.”
“왜? 어째서?”
“저들이 부하를 60명이나 잃었는데 가만히 있을 것 같아? 게다가 수로맹 병력은 전부 철수했고… 틀림없이 보복을 해 올 거야.”
탁지연은 포기하지 않았다.
“우리가 이동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아마 목표를 바꿀 거야. 적 입장에선 수로맹보다 우리가 더 큰 방해요인이니까… 우리가 무림맹 가까이 있을 때 무림맹 사람들이 습격당했듯이, 여기 있으면 수로맹도 더 위험해.”
“너. 손중이 그 정도로 싫어?”
“당연하지. 소름끼친다니까.”
“취향은 존중해줘야 하는 거야. 전염병 환자 대하듯 해선 안 돼.”
“당사자가 되어보라고!”
“크크크….”
“웃어?”
사실, 기수도 말은 그렇게 했지만 자기에게 닥친다면 그런 취향을 존중해줄 마음은 눈꼽만큼도 없었다.
공주가 슬그머니 끼어들었다.
“적의 습격은 수로맹의 문제 아닌가? 이젠 본진이 전부 귀환했잖아. 그동안 본 바에 의하면, 저들이 숨겠다고 마음먹으면 절대 못 찾을 것 같던데…”
그녀는 여전히 수로맹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했다.
기수가 웃으며 말했다.
“맞아. 난 직접 보기 전까지는 파양호와 동정호가 이렇게 넓은 줄은 몰랐어. 게다가 무슨 지류가 또 그렇게 많아?”
“그러니까… 수로맹이 청탑산 고수들과 맞서지만 않는다면 피해도 없을 거 아냐.”
기수의 생각은 달랐다.
“이런 지리적 이점을 이용해서 적을 깊숙이 끌어들인 뒤 일망타진할 수도 있는 거잖아. 저들이 장강에 들어선 순간 우리 쪽이 유리해지니까.”
그것도 그럴 듯한 얘기인지라 공주도 더 이상은 할 말이 없었다.
기수가 한 마디 덧 붙였다.
“그리고 난 대리석 욕조가 너무 좋아.”
“으이그!”
“왜? 너도 좋잖아? 안 그래?”
그때 수로맹 졸개가 밖에서 인기척을 했다.
“손님이 오셨습니다.”
모두의 시선이 탁지연에게 쏠렸고, 탁지연은 고개를 푹 숙였다.
이렇게 일찍부터 찾아올 줄은 몰랐던 것이다.
기수가 미소 지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내가 해결해줄게. 그냥 여기 있어.”
“정말?”
“응. 마음 푹 놔도 돼.”
밖으로 나간 기수는 당황한 표정으로 포권하는 손중과 인사를 나누었다.
그리고 그를 마당 쪽으로 데리고 가서 물었다.
“부채주님. 여긴 왜 오셨습니까?”
“아…! 궁주님이 아니라 강채주님을 만나러 왔습니다.”
“만나서 뭐 하시게요?”
“하하!.. 그, 그게 말입니다. 개인적인 용무라서.”
기수는 정원 좌우를 살핀 후 목소리를 낮추어 그에게 말했다.
“너. 내 남자 건드리고 뒷감당할 자신 있냐?”
손중은 깜짝 놀랐다.
“예?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기수는 목소리를 더 깔았다.
“감히 어딜 넘봐? 죽을래? 꺼질래?”
손중은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아아!… 죄, 죄송합니다. 궁주님과 그런 사이인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기수는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누가 누구하고 무슨 사이라는 거야?”
“아! 죄, 죄송합니다. 하지만 걱정 마십시오. 비밀은 절대로 지킬 테니까요.”
기수는 턱짓을 했다.
“알았으니 그만 가 봐.”
손중은 정말 아쉽다는 표정으로 입맛을 다신 후 기수에게 포권 했다.
“두 분. 아름다운 사랑 오래 오래 이어가시기를 빌겠습니다.”
“후후…. 네가 생각하는 방식은 아니겠지만… 어쨌든 고마워.”
그렇게 손중을 처리한 기수는 다시 수로맹주를 만나러 갔다.
친분을 확인한 김에 좀 더 긴밀한 관계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맹주님. 만약 놈들이 다시 쳐들어온다고 가정했을 때, 어디로 유인해서 궤멸시키는 게 좋겠습니까?”
기수의 질문에 수로맹주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유인이요?”
기수는 자기가 알고 있는 적의 규모를 말해주었다.
수로맹주와 함께한 채주들 모두 놀랐다.
“500이 넘는단 말입니까? 그런 고수들이?”
“최소한의 추정치일 뿐입니다.”
“최소한이라면 더 많을 수도 있다는 말씀인가요?”
“그렇습니다. 역모의 주동자는 아주 오래전부터 치밀한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수로맹주와 채주들 표정이 굳었다.
보고에 따르면 이번에 수채를 습격한 청탑산 고수들은 단지 네 명만으로도 수채 하나를 궤멸시킬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들이었다. 생존자가 있는 것은 그들이 놓쳐서가 아니라 인질로 잡기 위해 일부러 살려둔 것일 뿐이었다.
그런데 그런 고수가 최소한 500명이나 더 있다니.
사람들의 얼굴에 공포감이 번지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기수가 보기에 연합을 괜히 탈퇴했다고 후회하는 채주도 있는 것 같았다.
수로맹주가 가라앉은 어조로 말했다.
“그들에 대한 준비를 해야겠군요.”
“그렇습니다. 우선 급한 것은 연락망을 확실히 하는 것입니다.”
“연락망이요?”
“예. 적이 500명이 넘는다고 해도 장강의 모든 수채를 동시에 칠 수는 없습니다.”
“그건 그렇겠지요.”
“그러니 한 수채가 습격을 당한다 해도 다른 수채는 대비를 할 수 있도록, 즉시 전달되는 신호체계가 필요합니다.”
“아! 봉화 같은 것 말씀입니까?”
“예. 방식은 다를 수도 있지만 개념은 그런 겁니다.”
수로맹주와 채주들은 서로를 마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적의 전력이 무섭다는 사실에 잔뜩 움츠러들었지만, 기수의 얘기를 듣고 보니까 겁 낼 일만도 아니었다.
장강에 대해서는 자기들이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수채끼리는 물론, 수채 내에서도 길목마다 연락 체계를 갖춰 놓는다면 육로로의 침입은 약간의 피해만으로 자를 수 있었다.
수로로의 침입은 걱정하지 않았다.
무공으로라면 몰라도, 배를 다루는 데 있어서는 자신 있기 때문이다.
기수가 이어서 말했다.
“그리고 각 수채의 채주와 간부들이 땅과 배를 오가며 교대로 머무르도록 하면 한 쪽이 당하더라도 대처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호오! 그것도 좋은 생각입니다.”
수로맹주는 유소진 남매가 죽은 이후 제대로 된 조언을 들을 곳이 없었다.
그래서 기수의 얘기들이 가뭄의 단비처럼 들렸다.
다른 채주들도 감탄하는 표정으로 경청했다.
기수는 미소 지었다. 자기가 전부 생각해낸 것은 아니고 탁지연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 많지만 어쨌거나 수로맹의 방어전략이 단단할수록 청탑산 놈들은 피해와 손실을 각오해야 하는 것이다.
“또한, 퇴각로를 만들어두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퇴각로라면…”
“놈들이 각오를 단단히 하고 온다면 비록 수로맹이 배 다루는데 익숙하다는 장점이 있더라도 계속해서 파고들 수 있습니다. 그때 어느 수로로 피해야 적이 추적하기 힘든지 다들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물론입니다! 수군이 토벌한답시고 나와도 우리만큼 수로와 갈대밭을 알지 못합니다.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관군은 절대로 찾을 수 없습니다.”
“바로 그런 퇴각로를 미리 준비하고 연습해두는 겁니다. 그러면 청탑산 놈들이 설령 수채를 불태우고, 배를 노획하고, 그걸 저을 줄 안다고 해도 수로맹의 핵심 전력을 어쩌지 못할 것입니다.”
수로맹주와 채주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거라면 자신이 있는 것이다.
기수가 덧붙여서 말했다.
“일단 적이 그렇게 따라온다면 역공은 쉬운 일 아니겠습니까?”
수로맹주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뭍에서 싸운다면 몰라도, 일단 물 위에서라면 상대가 아무리 고수라고 해도 우리한테 안 됩니다. 화전을 맞아 배가 타면 끝 아닙니까? 물 위를 걸을 수 있다면 몰라도.”
다른 채주들도 미소를 지었다.
기수는 속으로 생각했다.
‘똥개도 자기집 마당에선 50% 먹고 간다더니…’
수로맹의 경우엔 거의 90% 정도는 먹고 들어갈 것 같았다.
자기가 입장을 바꿔서 배로 적을 추적한다고 가정해 보았다.
수로맹주 말마따나 물 위를 걸을 수는 없었다.
선풍비로 날아간다고 해도, 한 번 도약 거리가 화살 사거리보다 길지는 못했다.
결국 이리저리 쫓아다니다가 배가 화전에 맞아 불타면 수영을 해야 하는데, 물 속에서 무공을 펼치는 건 아무래도 자신이 없었다.
수로맹주가 기수에게 말했다.
“궁주님의 조언 감사합니다. 우리가 준비할 게 많았는데 그동안 시간을 낭비했군요. 하하하!…”
기수는 그들에게 회의할 시간을 주기 위해 간단히 요기만 하고 연회장을 나왔다.
그리고 종일 사매들과 지낸 후, 다음 날엔 아침 일찍부터 탁지연과 함께 수로맹의 작업에 참여했다.
그들이 연락망을 구성하고 퇴로를 만드는 작업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해서였다.
외부에 알려지면 안 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수로맹주는 두 사람을 환영했다.
그것은 수로맹이 혈매궁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보여주는 행동이었다.
기수 입장에선 약간 부담스럽기까지 한 일이었다.
우선 지도를 펴놓고 의논을 하고, 현장에 나가서 자리를 찾는 작업까지 이루어졌다.
기수와 탁지연은 돕겠다고 왔지만, 사실은 도움을 더 많이 받았다.
두 사람이 알고 있는 병법 지식은 책에 적힌 것들이었다.
그러나 수로맹의 방어체계 만드는 과정은 현실이었다.
그러다 보니 글자가 현장으로 나오면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문제들, 그리고 그것들을 풀어 나가는 방법들을 생생하게 배울 수 있었다.
특히 방어체계는 진법 원리를 적용하기에도 적합했다.
공격할 때는 적진으로 들어가는 것이지만, 방어할 때는 50% 이상 먹고 들어가는 자기 마당에서 벌어지는 일이기 때문에 시도해볼 수 있는 게 많았다.
수로맹에도 나름 기문진법 전문가들이 있어서 기수와 말이 잘 통했다.
기수와 강달이 적극적으로 도우려하니까 수로맹주와 채주들도 기뻐했다.
그렇게 해가 뜬 동안은 수로맹의 방어체계 구축을 돕고, 해가 지면 사매들의 연공을 도우면서 지낸지 며칠이나 지났을까.
장강의 흐름을 타고 강호의 소식들이 전해져 왔다.
가장 고무적인 얘기는 녹림72채가 사마연합과의 결별을 시도한다는 것이었다.
‘좋았어! 결국 원하던 대로 되는구나!’
기수는 몹시 기뻤다.
삼황맹은 처음부터 제갈세가와 시작했으니까 어쩔 수 없다고 쳐도, 천마교에 이어 수로맹, 그리고 이제 녹림72채까지 떨어져 나온다면 사마연합의 말로는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처음부터 삼황맹만 일을 추진했다면 오히려 충격이 덜했을 것이다.
나름 오랜 세월 투자하고 사도까지 심어 놓은 두 조직의 탈퇴는 삼황맹과 제갈세가 모두의 사기를 바닥까지 떨어트릴 게 분명했다.
기수는 무림맹의 동정에도 촉각을 곤두세웠다.
혹시라도 혈매궁이 수로맹을 도왔다고 해서 비난이라도 하지 않을까 신경이 쓰였던 것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무림맹 쪽은 조용했다.
수로맹주는 청탑산 무리의 소식을 듣고 싶어 했지만, 그들의 움직임은 전혀 드러나지 않고 있었다.
사실, 습격을 당하기 전까지는 그런 무리가 있다는 사실조차 모를 정도였으니 정보를 얻지 못하는 게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어떤 준비를 하고 있건, 이제는 자신이 있었다.
기수의 조언에 따라 준비가 착착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수로맹주가 기수에게 말했다.
“궁주님. 우린 시간을 벌었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녹림72채가 빠지려고 한다면 먼저 그들을 잡으려 하지 않겠습니까? 이미 다 빠져나온 우리들보다.”
기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가능성이 높지만 방심해선 안 됩니다. 놈들이 어떤 식으로 나올지는 모르는 거니까요.”
“물론이지요. 절대 방심하지 않을 것이니 염려 마십시오. 하하하!…”
기수가 생각하기엔 청탑산 고수들이라면 녹림72채와 수로매을 동시에 공격한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을 것이었다.
그런데 며칠 뒤에 들어온 소식은 전혀 엉뚱한 내용을 알렸다.
“천마교 교주가 죽었다고?”
“예. 그렇습니다. 포구마다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수로맹주와 채주들은 크게 놀라 웅성거렸다.
기수도 당황스러웠다.
그를 죽일 수 있는 세력이라면 딱 하나밖에 생각나는 곳이 없었다.
탈퇴에 대한 피의 보복을 예상하기는 했다.
순서로 따지자면야 천마교가 가장 먼저 발을 뺐으니까 그쪽에 제일 먼저 보복하는 게 당연하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천마교주라니…’
그가 어느 정도 고수인지 알기에 당했다는 소문에 등골이 서늘해져 왔다.
자기라고 해도 쉽게 승부를 예측하기 어려운 상대 아니었던가.
‘도대체 청탑산 고수들의 능력은 어느 정도란 말인가? 아냐! 어쩌면 사도가 개입했을지도 몰라.’
아직 3명이 남았으니 얼마든지 가능성이 있는 얘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