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hwa Manri RAW novel - Chapter 449
기수가 수로맹주에게 말했다.
“맹주님. 저는 중원으로 돌아가 봐야겠습니다.”
“예? 갑자기 무슨 일로….”
“적의 급박한 움직임에 대응해야 할 것 같습니다.”
수로맹주가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천마교주의 죽음이 청탑산 무리의 소행이라고 보시는 겁니까?”
“당금 천하에서 천마교주를 죽일 수 있는 사람은 그들밖에 없습니다.”
“아!…. 하지만 아직 공사가 다 끝나지도 않았는데 궁주님이 떠나시면…”
기수는 그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알았다.
“그들이 천마교를 공격했다면 당분간 장강 쪽으로는 신경 쓸 여유가 없을 것입니다. 안심하십시오.”
수로맹주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혈매궁이 옆에 있어주는 게 가장 마음 든든하겠지만, 전장이 아예 옮겨가는 것도 수로맹 입장에서는 나쁘지 않았다.
“역적 무리를 잡는 일이니 우리 욕심만 내세울 수 없을 건 같군요. 떠나신다면 저희들이 쾌속선과 노련한 사공들을 내어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기수는 기꺼이 그의 호의를 받아들였다.
“오늘밤엔 송별연을 열겠습니다. 꼭 참석해주십시오.”
“물론입니다.”
수로맹주의 연회엔 모든 채주, 부채주, 간부들이 참석했다.
수로맹주는 한 사람도 빠짐없이 혈매궁주 기수와 한 때 수로맹 27채 채주였다가 지금은 혈매궁 제자가 된 강달에게 술잔을 올리고 안면을 익히도록 했다.
내일이면 떠난다고 하니 오늘이 사이를 돈독히 할 마지막 기회였던 것이다.
술자리는 밤새도록 이어졌고, 기수와 탁지연은 다음날 해가 뜬 뒤에야 겨우 일어설 수 있었다.
강도질을 업으로 하는 수적들이라고 해도, 웃는 낯으로 술을 권하고, 친한 척을 하고, 심지어는 애교까지 부리니 기수 입장에선 뿌리치고 일어설 수가 없었다.
특히 육대기는 눈물까지 흘려가며 아쉬움을 표현했다.
거칠고 험악한 사내들이지만 어떻게 보면 순수하고 천진한 면도 있는 것 같았다.
기수는 탁지연의 술까지 대신 마셔줬기 때문에 한동안 걸음이 휘청거렸다.
내공으로 몰아낼 수 있는 취기의 양보다 공급이 많았기 때문에 생긴 일이었다.
수로맹주는 선착장까지 나와 혈매궁 사람들은 전송했다.
그 자리엔 채주와 부채주, 그리고 일반 수적들까지 전부 다 몰려나와서 무슨 공연장 입석처럼 사람들이 빽빽하게 들어찼다.
기수를 보내기가 아쉬워서라기보다는 객사에만 있던 혈매궁 미녀들이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날이기 때문에 다들 까치발을 열심히 했다.
수로맹주는 기수에게 쟁반 하나를 내밀었다.
“갑자기 떠나시게 되어서 준비가 약소합니다.”
“아! 뭐 이런 걸 다…”
쟁반에 놓인 비단주머니는 얼핏 보기에도 무게가 꽤 나갈 것 같았다.
만약 은이 아닌 금원보 들어 있다면 대박일 것이었다.
“사양하지 말고 꼭 받아주십시오.”
“허어! 이것 참….”
사양할 마음은 절대로 없었다.
강달에게 주머니를 챙기라고 한 기수는 수로맹주와 채주들에게 일일히 인사를 나눈 후 선착장에 매인 쾌속선에 올라탔다.
배가 상당히 길고 좁아서 얼핏 보기에도 빠를 것 같았다.
사매들이 선실로 들어간 후 기수는 선미 쪽에 서서 손을 흔들었다.
배는 빠르게 동정호의 물살을 가르고 나아가서 선착장이 금세 보이지 않게 되었다.
기수는 선실로 들어가 보았다.
내부 역시 대단히 좁아서 8명과 함께 즐기려면 포지션이 서너 개 이내로 제한될 것 같았다.
‘아 놔…. 실내에 들어오자마자 그거 할 자리부터 파악하다니… 나도 참…“
그러나 기수만 그런 게 아니었다.
추매와 설매가 무릎 꿇고 엎드려서 선실 벽에 머리가 닿는지 확인하고 있었고, 풍매와 동매는 이불과 베개의 숫자를 세고 있었다.
기수는 탁지연에게 턱짓을 했다.
그녀는 비단주머니를 벌려서 안을 보여주었다.
기수는 안을 들여다보고 놀랐다. 전부 금원보였다.
“이제 보니 수로맹이 알부자네.”
“당연하지. 물길 따라 이동하는 화물이 얼마나 많은데…”
“잘 챙겨 둬.”
기수는 헛기침을 몇 번 한 후 선수 쪽으로 나갔다.
그곳엔 웃는 모습이 선해 보이는 30대 중반의 사내가 서 있었다.
연회 석상에서 자주 보던 얼굴이지만 이름이 기억나지 않았다.
상대가 눈치 빠르게 먼저 입을 열었다.
“앞으로 궁주님을 모시게 될 진무라고 합니다.”
그제야 기억이 났다. 채주나 부채주급의 간부는 아니지만 수로맹주를 가까이에서 모시는 심복이었다.
“잘 부탁합니다.”
“저야말로 궁주님에게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행선지는 어디로 잡을까요?”
“그건…”
기수는 잠시 할 말을 잊었다.
수로맹을 벗어나긴 했는데 막상 갈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천마교 사람들을 만나고 싶지만, 그들이 어디에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근거지가 없으니까 이럴 때는 좀 아쉽기도 하구나.’
그러나 생각해보니 근거지가 있었다.
“북경으로 갑시다.”
“경사에 볼 일이 있으시군요.”
“아닙니다. 서쪽에 소항산이라는 곳이 있는데, 거기로 갈 생각입니다.”
“소항산이라면…”
진무는 지도를 꺼내어 살펴보더니 검지로 짚어가며 말했다.
“북경에 배를 대면 한참을 걸어야 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북경으로 가지 않고 갈라진 물길 따라 단목촌에 배를 대면 소항산까지 절반도 절반도 안 되는 거리입니다. 게다가 작은 시골 포구는 관군의 검문도 없지요.”
“아! 그러면 그리 갑시다. 우리 목표는 소항산이니까.”
예전엔 정거장이 정해진 노선버스를 탔다면 이 쾌속선은 자가용이었다.
일거리 많은 포구가 아니라 최단거리를 찾아다닐 수 있는 것이다.
기수는 다른 문제를 물어보았다.
“선실은 우리만 쓰는 겁니까?”
“아! 좀 좁지요? 하지만 배의 속도 때문에 어쩔 수 없습니다.”
“수로맹 식구들은요?”
“저희는 저 뚜껑을 들추면 배 안으로 들어가는 길이 나옵니다. 안에 요리를 할 공간도 있고 교대로 잘 자리도 있으니 걱정 마십시오.”
“그렇군요. 혹시 큰 나무 물통 같은 게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기수는 수적 졸개가 물통을 가지고 오자 진무에게 물었다.
“식사는 어떻게 해결합니까?”
“요리솜씨 좋은 애들을 태웠습니다. 원하시는 시간에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그렇다면, 음… 진시, 미시, 술시에 한 번씩 먹으면 좋겠군요. 그 나머지 시간엔 우리들이 선실 밖으로 나오지 않더라도 방해하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만…”
“물론입니다. 제가 확실히 지키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기수는 미소 지은 후 통에 물을 떠서 선실로 들어갔다.
원래는 물속에서 화류 태포련 연습을 해 볼 생각이었는데, 쾌속선의 속도를 보니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사매들과 행복한 연공을 즐기기로 했다.
강기막을 펼치고 시작해보니 좁으면 좁은 대로 흥취가 있었다.
그리고 배가 빠른 대신 좁아서 흔들림이 좀 심한 편이었는데, 그게 진동을 숨기는데 나름 도움이 되었다.
규칙적인 식사와 규칙적인 운동을 하다 보니 배는 어느새 단목촌에 도착했다.
기수뿐만 아니라 사매들도 모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정말 소항산까지 온 거야? 동정호에서?”
“며칠이나 걸린 거지? 오늘이 이레째야? 여드레째야?”
기수는 만족한 표정으로 진무에게 말했다.
“정말 빠르군요.”
“형제들이 힘을 좀 냈습니다. 하하!…”
“고맙습니다. 이젠 돌아가셔도 좋습니다.”
“아닙니다. 저희는 여기서 대기하겠습니다.”
“그럴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그러나 진무의 태도는 굳건했다.
“맹주님께서 엄명을 내리셨습니다. 역도를 전부 다 잡을 때까지 절대로 궁주님 곁을 떠나지 말라고 말입니다.”
기수는 대충 그 의도를 짐작했다.
수로맹에 위기가 닥치면 최대한 빨리 데리고 올 수 있도록 자기 심복을 붙여둔 것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고마운 일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다른 쪽으로 갈 가능성이 큰데 여기서 기다린다는 것은…”
“걱정 마십시오. 어디를 가시건 포구나 선착장을 만나면 여기 적힌 표시가 있는 배를 찾으십시오.”
진무가 내민 종이를 펼쳐 보니 십여 개의 기호가 적혀 있었다.
그의 말이 이어졌다.
“그 배의 선원에게 맹주님의 신표를 보여주시면 그 즉시 그 배를 사용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저희가 최대한 빨리 그곳으로 가서 만나도록 할 것입니다.”
기수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천하 어디를 가건 수로맹 소속 배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며칠 내에 이 쾌속선이 그쪽으로 와준단 말이지?’
그동안 알고 있던 중원 지도를 다시 그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 근처에 있는 모든 도시들의 거리가 확! 가까워진 것이다.
그리고 농경사회이다 보니 큰 도시들은 전부 강을 끼고 있었다.
기수는 품 안으로 손을 넣어서 한도 무제한의 교통카드나 마찬가지인 수로맹주의 신표를 만져보았다.
절대 잊어버리지 말고 잘 간직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수는 금원보 하나를 꺼내서 진무에게 주었다.
“얼마나 기다려야 할지 모르니 그동안 숙식이라도 하십시오.”
“아! 뭘 이렇게 많이…. 고맙습니다.”
괜히 사양하지 않아서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원래 수로맹에서 받은 돈이니 별로 아깝지도 않았다.
그렇게 진무의 쾌속선에서 내린 기수와 일행은 산길로 접어들었다.
소항산은 상당히 가까워서 두 시진 만에 기문진이 펼쳐진 곳까지 도착하게 되었다.
기수는 주변을 둘러보고 기분이 좋아졌다.
일월신교와 싸우면서 급조한 무극환혼진.
하지만 당시에 제 역할을 톡톡히 해서 결국 대병력을 물리칠 수 있었다.
그리고 상당한 시일이 지난 지금 다시 와서 보니, 나무와 풀이 무성하게 자라서 사람 손길의 흔적을 가렸다. 그로 인해 진의 완성도는 예전보다 훨씬 높아져 있었다.
그 사이를 파고 들어가자 오래지 않아 새소리 비슷한 피리 신호가 들려왔다.
기수는 그 상황에 대해서도 만족했다.
산채의 부하들이 좋은 훈련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걸 확인했기 때문이다.
조금 더 올라가자 신호 피리소리는 그치고 징소리와 함께 병력 움직임이 감지되었다.
기문진은 제대로 작동해서 기척만 느껴질 뿐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공주가 놀라서 물었다.
“우리 지금 기문진에 갇힌 거야?”
설매가 말했다.
“이제 눈치 챘어? 궁주가 만든 거야.”
“굉장한데…”
“아무렴. 우리 궁주가 못 하는 게 뭐가 있어?”
사매들이 그 말에 공감을 표하고 있을 때 기수는 죽립을 벗고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진 건너편에서 환호성이 들려왔다.
“궁주님이 돌아오셨다!”
기수는 불필요한 화살 공격이나 교전 없이 기문진을 지나 산채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
임시 산채 두령인 총관 왕사동이 반가이 일행을 맞았다.
“어서 오십시오! 궁주님.”
“그래. 그동안 수고했어.”
“별말씀을요… 그런데 식구가 두 분 늘었군요.”
“하하!… 그렇게 됐지. 그나저나 배가 좀 고픈데…”
“즉시 준비하겠습니다!”
기수와 사매들은 오랜만에 마음껏 먹고 푹 쉬었다.
산채지만 꽤 오랜 기간 머물렀던 곳이라 그런지 집처럼 아늑한 맛도 있었다.
다음날 기수는 왕사동을 불렀다.
“산채에 건물을 몇 채 더 지었으면 좋겠는데…”
“명령만 내려주십시오.”
“그리고 아주 큰 대리석 욕조를 만들고 싶은데 말야. 한 변 길이가 적어도 열 자는 넘어야 돼.”
“대리석은 비싸지만 다른 돌이라면 가까이에서도 구할 수 있습니다.”
“아냐. 꼭 대리석을 써. 최상등품으로.”
기수는 그에게 금원보를 서너 개 건네주었고, 왕사동은 입이 쩍 벌어져서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대리석을 구하기도 어렵고, 그걸 산까지 옮기기도 힘들겠지만 돈이 이 정도 있다면 못 할 일이 없었다.
왕사동이 금원보를 챙긴 후 물었다.
“여러 개로 잘라서 나르고, 나중에 이어 붙이는 건 괜찮을까요?”
“그건 상관없어. 어차피 하나로 그만한 돌은 없을 테니까.”
기수는 소항산 산채 겸 혈매궁 본부건물이 다른 문파의 건물들보다 규모가 작고 높이가 낮아도 상관없었다.
그런 것은 전혀 부럽지 않았다.
하지만 욕조만큼은 천하에서 제일 크고 화려한 걸 가지고 싶었다.
절대로 지고 싶지 않았다.
“부하들 중 똑똑하고 눈치 빠른 녀석을 한 명만 불러 줘.”
“예. 알겠습니다.”
잠시 후 나타난 졸개에게, 기수는 3개의 선으로 이루어진 물결무늬를 그려 보였다.
“북경으로 가서 손님 적은 객잔에 머문 뒤, 이 문양을 석필로 객잔 입구에 그려. 그러면 너를 찾아오는 사람이 있을 거야. 그를 이리로 데려오면 돼. 할 수 있겠어?”
“예. 궁주님. 맡겨주십시오. 말을 안 들으면 제가 끌고 오겠습니다.”
“하하! 천마교 제자를?”
“처, 천마교라고요?”
“겁먹을 건 없어. 내가 부르는 거라고 하면 올 거야.”
“아, 알겠습니다.”
천마교를 찾을 방법이 없으니 예전에 고혼랑이 가르쳐준 방법을 써먹기로 한 것이다.
북경엔 워낙 사는 사람도 많고 오가는 사람도 많으니까 그 표식을 알아볼 천마교 교도들도 많을 거라는 게 기수의 생각이었다.
그들이라면 천마교 교주가 어떻게 죽었는지 정확한 얘기를 해줄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