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hwa Manri RAW novel - Chapter 453
천마교의 방어진을 뚫으려고 애쓰는 자들은 예상대로 청탑산 고수들이었다.
기수는 당금 강호에서 누구보다도 그들과 싸운 경험이 많았다.
애당초 청탑산 사범의 기억을 전부 빼내서 연구한데다, 수로맹 15개 수채를 지키면서 그들의 움직임을 반복해서 직접 봤기 때문이다.
그들을 상대하기 까다로운 이유는, 기본 무공이 쉽게 보기 어려운 투로를 가지고 있다는 점, 그리고 은혈대법 때문이었다.
천마교에서 미리 방어진형을 갖추어서 다행이지, 그러지 않았다면 진작에 박살이 났을 것이었다.
기수는 자영과 함께 싸움에 끼어들었다.
그가 선택한 방법은 스나이퍼들이 얘기하는 원샷 원킬.
손을 여러 번 섞으면 불필요한 주의를 끌게 되니까 총력을 집중해서 한 방에 끝장내는 게 중요했다.
수로맹에서 60명을 모두 잡을 수 있었던 것도 상대가 미처 은혈대법을 끌어올리기도 전에 기습적으로 공격한 상황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현재 천마교와 싸우는 자들은 전부 은혈대법을 끌어올린 상태지만, 기수 정도의 고수가 일격필살로 가하는 공격을 막기는 역부족이었다.
“크아악!….”
첫 번째 놈을 자신의 파동 타격법으로 쳐서 맞은 자리가 아닌 몸통의 반대쪽이 터져 나가 죽도록 만든 기수는 자신의 손바닥을 내려다봤다.
‘와! 이거 좋은데?…’
수로맹에서 싸울 때에 비해 내공이 증진된 건 거의 없었다.
달라진 거라고는 천마교 교주의 기억을 통해 배우게 된 실전심리였다.
그런데 그 차이가 꽤 컸다.
특히나 ‘이 한 방으로 반드시 죽이고 말겠다!’는 각오를 했을 때 진가를 발휘하는 것 같았다.
기수는 다시 시험해 보았다.
이번엔 약간 떨어진 거리에서 파천강기로 상대의 미간을 노렸다.
‘기필코 널 죽일 것이다!’
굳은 결심과 함께 강기를 날리자 퍽! 소리와 함께 상대의 머리가 뒤로 젖혀졌다.
그리고 다시는 일어서지 못했다.
기수는 가까이 다가가서 그의 상처를 확인해보았다.
이마에 뚫린 구멍. 뒤통수는 부서지지 않은 상태.
예전엔 파천강기가 잘 통하지 않던 것과 비교하면 확실히 다른 성과였다.
‘그래. 몇 번 더 연습해보자.’
청탑산 고수들이 은혈대법 상태라고 해도 기수의 적수는 아니었다.
그러나 한 방에 제압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기수는 세 번, 네 번 반복하면서 점점 더 그 방식에 익숙해졌다.
그렇게 쓰러트린 자의 수가 10명을 넘어갈 즈음 날카로운 휘파람 소리가 들려왔고, 청탑산 무리는 썰물 빠지듯 퇴각하기 시작했다.
자영과 한백랑은 적을 추적하지 않았다.
유인작전에 걸리지 않기 위해 미리 그렇게 정해져 있었던 것이다.
자영이 기수에게 다가오며 주변에 쓰러진 시체들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너 혼자 다 해치운 거야?”
“응. 뭘 좀 시험해 볼 게 있어서…”
자영은 한백랑과 힘을 합쳐 한 명을 죽이고 두 명에게 부상을 입혔을 뿐이었다.
그에 반해 천마교 측의 사상자는 많이 발생한 상황.
기수의 무공이 자신들과 격이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 남자. 진짜 강하다.’
그런 생각을 하니까 갑자기 몸이 뜨거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열망이 담긴 눈빛으로 기수를 보게 되었다.
기수는 그녀의 시선이 무얼 의미하는지 금세 알아차렸다.
‘후후… 나도 마무리를 못 해서 아쉽던 참이라고…’
기수는 오행류 상생 순환을 한 바퀴 돌려 진기를 갈무리했다.
세 단전에 느껴지는 포만감이 기분 좋았다.
이전에 황하에서 수영하며 진기를 극한까지 끌어 올리는 연습을 많이 했었는데, 거기에 선우환의 실전심리가 결합되니까 마침표를 찍는 느낌이랄까.
단지 내공을 집중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마음가짐이 절실함으로 인해서 만들어지는 차이는 기대 이상이었다.
‘이런 상태라면 한귀비와 일 대 일로 싸워도 질 것 같지 않은데?’
자신감이 마구 고양되었다.
자영은 한백랑에게 피해상황을 확인하도록 시켰다.
그리고 자기는 기수의 옆에 바짝 달라붙어 팔짱을 꼈다.
“우리는 하던 거 마저 하러 갈까?”
기수는 씩 웃었다.
“좋지.”
여자가 먼저 이런 말을 할 때는 참 사랑스러웠다.
두 사람은 모옥으로 걸어갔다.
그런데 분위기가 이상했다.
청탑산 무리는 모두 퇴각했는데 제자들이 눈에 띄게 당황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자영이 마령 한 명을 붙잡고 물었다.
“왜 그래? 무슨 일이야?”
“교, 교주님이…”
“교주님이 왜?”
“교주님이 당하셨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자영과 기수는 황급히 교주의 모옥으로 달려가 보았다.
그곳엔 이미 혈천제와 암천제가 와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 기수는 깜짝 놀랐다.
침상 위에 선우환의 몸은 있는데 그의 머리가 보이지 않았다.
침상에 온통 피가 번져있을 뿐이었다.
“도, 도대체 누가…”
혈천제가 말했다.
“우리 내부에 적의 첩자가 있었어. 외부의 적과 싸우는 동안 놈들이…”
“으으….”
기수는 참기 어려운 분노를 느꼈다.
사실, 천마교 교주 선우환과는 이번이 두 번째 만남에 불과했다.
그의 인품이나 인간성에 대해 깊이 알지도 못했다.
하지만 리더로서의 자질이라거나, 말이 통한다는 점, 그리고 약한 상태에서도 자존심을 굽히지 않으려는 사나이 기질 등은 존중받아 마땅하다 생각했다.
특히나 실전심리를 배웠다는 면에선 고마운 스승이기도 했다.
그런 그가 목 없는 시신만 남을 모습을 보니 온몸의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었다.
손가락 가눌 힘도 없는 노인을 이렇게 처참한 방식으로 살해한 놈들을 절대로 용서할 수 없었다.
기수는 즉시 모옥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선풍비를 시전하여 죽림 밖 고지대로 올라갔다.
그는 일단 마음을 최대한 진성시킨 뒤, 적의 기척을 감지하기 위해 애썼다.
5분 정도 집중한 결과 사방으로 흩어졌던 진기들이 한 장소로 모이는 것을 찾아냈다.
‘거기 있었구나!’
기수는 즉시 그 방향으로 몸을 날렸다.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놈들이 진기가 더욱 분명하게 느껴졌다.
‘육십? 칠십?’
확실한 수는 알 수 없지만 상당히 많다는 것은 분명했다.
그때 등 뒤에서 파공음이 들려왔다.
얼핏 돌아보니 혈천제가 따라오고 있었다.
그녀 역시 분노를 이길 수 없었던 것이다.
기수가 파공음을 내지 않기 위해 속도를 줄인 상태였기 때문에 그녀는 금세 기수를 따라잡았다.
“어딜 가는 거야.”
“쉿! 전방에 놈들이 있어.”
혈천제는 즉시 음성을 낮추고 경공 속도도 줄였다.
“어떻게 찾아냈지?”
“그게 중요한가?”
“모두 몇 명이야?”
“60명은 넘고 80명은 안 되는 것 같아.”
혈천제는 당황했다.
“그, 그럼 아까 습격한 놈들이 전부 모인 거잖아? 그런데 우리 둘로 될까?”
기수는 씩 웃었다.
“우리 둘? 그래도 싸울 마음은 있구나.”
“당연하지. 사부님은…”
그녀의 목소리가 울먹거림 때문에 크게 떨렸다.
혈천제는 감정 흔들리는 모습을 보인 게 부끄러워 말을 멈추었고, 기수는 그녀의 심정이 이해가 되서 가슴이 아팠다.
“숫자에 주눅 들 필요는 없어. 전에도 얘기했지만 놈들은 은혈대법이라는 기술을 쓰고 있어. 한 번 사용한 뒤에는 회복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단점이 있지.”
“그럼 지금의 저들은 아까 습격했던 놈들과는 다르다는 뜻이네?”
“절반으로 줄어든 전력이라고 볼 수 있지.”
절반이라고 해도 숫자의 압박은 컸다.
그러나 기수는 적이 100명이건 200명이건 싸울 생각이었다.
선우환의 처참한 시신을 생각하니까 다시 한 번 불같은 분노가 일어났다.
혈천제 역시 결전의 의지를 불태우는 표정이었다.
거리가 가까워지자 기수는 혈천제에게 말 대신 손짓 신호를 했다.
좌우로 나뉘어 동시에 치자는 의미였는데 혈천제는 곧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갈라선 두 사람은 은밀하게 접근했고, 공터에 모여 있는 적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죽고 다친 자의 수를 확인한 뒤 서로 무슨 암호 같은 것을 주고받는 중이었다. 점조직으로 운용되다가 모이는 규모가 커지다 보니 아무래도 절차가 좀 복잡한 듯 했다.
그들 중엔 천마교 복장을 한 자들도 서너 명 섞여 있었다.
바로 그들이 흉수였다.
그들 중 한 명이 이불을 찢은 보자기로 뭔가를 싸들고 있었는데 온통 피가 스며들었고, 여전히 핏방울을 뚝뚝 떨어트리고 있었다.
기수는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이 개새끼들아!”
곧장 달려 들어가면서 파천강기를 난사했다.
청탑산 무리는 깜짝 놀라 무기를 뽑아들고 기수를 막으려 했다.
그러나 분노가 극에 달한 기수의 공격은 순식간에 세 명의 얼굴에 구멍을 뚫었고, 나중에 무기를 들어 막은 자들도 비틀거리며 서너 걸음씩 밀려났다.
순식간에 천마교 배신자들 앞에 도착한 기수는 두 말 할 것 없이 곧장 놈들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뻑! 소리와 함께 가장 가까이 있던 놈의 두 발이 모두 땅에서 떨어졌다.
워낙 감정이 실린 주먹이다 보니, 그는 맞는 순간 이미 두개골이 복합 골절되며 목숨을 잃고 말았다.
나머지는 기수와 맞서 싸우려 했지만 그것은 무모한 시도였다.
기수는 파천강기나 멸절강기를 날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러 주먹으로 놈들을 두들겨 팼다.
한 놈이 팔을 십자 모양으로 교차시켜 그의 주먹을 막았지만 우두둑! 소리와 함께 두 팔이 모두 부러져버리고 말았다.
기수는 발로 그놈의 턱을 차서 공중으로 떠올린 뒤 발목을 잡고 휘둘러서 세 번째 놈의 머리 위로부터 내리 찍어버렸다.
요란한 복합 골절음과 함께 두 놈은 동시에 목숨을 잃었다.
선우환의 머리를 든 자만 남자 기수는 먼저 놈의 양쪽 무릎에 멸절강기를 날렸다.
“크윽!…”
그는 신음을 토하며 비틀거렸다.
기수는 간격을 좁힌 후 주먹으로 놈의 쇄골과 늑골을 연달아 가격했다.
맞을 때마다 상체 전체가 회전할 정도의 타격이었지만 치명상을 입지는 않아서 목숨은 끊어지지 않았다.
기수는 그를 쉽게 죽이기 싫었다.
이렇게라도 선우환의 원수를 갚아주고 싶었다.
그러나 그 사이 전열을 정비한 청탑산 고수들이 배후를 공격해왔다.
기수는 돌아서서 그들과 싸워야 했다.
홀로 살아남은 천마교 배신자는 그 틈을 타 도망치려 했지만, 처음에 타격 당한 무릎이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그가 비틀거리며 걸음을 떼어놓는 사이, 기수는 청탑산 고수들에 완전히 둘러싸였다.
숫자에서 차이가 너무 났다.
그때, 기수가 먼저 뛰어드는 바람에 협공 타이밍을 못 맞췄던 혈천제가 뒤늦게 가세하여 적의 배후를 교란시키기 시작했다.
기수는 적절한 기회라 생각하고 화류 호신강기를 끌어올렸다.
순간, 화악~! 하는 폭음과 함께 커다란 화염이 링 모양으로 퍼져 나갔다.
청탑산 고수들은 그 갑작스런 변화에 화들짝 놀랐다.
그러나 진짜 놀랄 일은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기수의 양손이 불기둥을 만들어내기 시작한 것이다.
“으아악!….”
“끄아악!….”
단백질이 불에 익는 냄새.
적은 폭발적으로 뿜어져 나오는 화염을 막지도, 피하지도 못했다.
불기둥의 사이즈는 내공증진의 지표라고 할 수 있었다. 기수 본인도 놀랄 정도로 굵어지고 길어진 화염은 반경 5미터 이내에 있던 자들 모두에게 화상을 입었다.
뒤쪽에 있던 자들은 그나마 나았지만 가까이 있던 자들의 상황은 심각했다.
기수는 화염에 휩싸인 자들을 향해 파천강기를 날렸고, 순식간에 칠팔 명이 쓰러졌다.
그러자 짧고 단속적인 휘파람 소리가 들려왔고, 놈들은 곧바로 합격진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기수의 무지막지한 불 쇼에 겁을 먹고 그냥 싸워서는 안 되겠다고 판단한 것이다.
단순한 포위망과 합격진은 압박의 강도가 달랐다.
그러나 기수의 예측대로 은혈대법은 중복 사용이 불가능했다.
합격진이 아무리 정묘해도 구성원 개개인의 무공이 고강하지 못하다면 기수 같은 절세고수를 가두는 데는 무리가 있었다.
기수는 진의 구성원을 하나씩 각개격파 하는 전술로 싸움에 임했다.
그러면서 슬쩍 혈천제 쪽을 봤다. 그녀 역시 합격진에 둘러싸인 상황.
하지만 상황은 자신과 달랐다. 낭패한 표정으로 밀리고 있었다.
기수는 그녀가 다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조금만 버텨! 내가 갈게.”
내공의 바짝 끌어올린 기수는 오른손으로 불기둥을 뿜어내고 왼손으로는 파천강기를 연달아 발출하기 시작했다.
근거리와 원거리를 동시에 공략하자 합격진의 무너지는 속도는 배가되었다.
“막아라!”
“뚫리면 안 된다!”
청탑산 패거리도 비는 자리를 계속 채워 넣으며 사력을 다해 버텼다.
기수는 냉소를 지었다.
“도망치지 않고 계속 싸워줘서 고맙구나. 후후…”
그 말에 청탑산 패거리의 낯빛이 창백해졌다.
수적 우위가 이 남자에겐 전혀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달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