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hwa Manri RAW novel - Chapter 454
청탑산 고수들의 움직임에 변화가 생겼다.
기수에게 겁을 먹고 움츠러들기 시작한 것이다.
몹시 분노한 상태로 살수를 연속해서 펼쳐대는 상대.
그를 막기엔 자신들의 무공이 부족했다.
특히나 은혈대법을 사용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두려움을 극대화시켰다.
기수가 그들에게 소리쳤다.
“꿈도 꾸지 마라! 한 놈도 빠져나갈 수 없다!”
도주의 낌새를 알아차린 것이다.
기수는 불기둥에 파워를 더욱 집중했다.
진기 소모는 좀 심하지만, 간격유지가 중요한 적의 합격진을 무너뜨리는 데는 최고의 공격법이었다.
“아악!….”
“크아아!….”
청탑산 고수들은 기수의 그 무지막지한 공격에 대처할 방법이 없었다.
파천강기 공격은 무기로 막을 수라도 있지만 화염은 무기를 내밀어도 몸의 다른 부위가 화염에 휩싸여버리니 뒤로 멀찍이 물러서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합격진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화염을 막을 수는 없는 것이다.
기수는 놈들이 하나라도 도망칠까봐 더욱 화염을 강화했다.
3개 단전에 고인 진기가 절반 이하로 소모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있는 대로 다 퍼부을 생각이었다.
“너희들 다 죽었어!”
청탑산 패거리들은 파이어뱃 앞의 저글링 꼴이 되었고, 결국 퇴각 신호가 나왔다.
기수는 자신에게 등을 보이는 놈은 파천강기로 다리를 꿰뚫어주었다.
그러나 그때 타격음과 함께 혈천제의 답답한 신음이 들려왔다.
“으음!…”
기수는 깜짝 놀라 그녀 쪽으로 달려가며 저글링들을 구워주었다.
그쪽 놈들도 기수의 무서운 기세에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기수는 이번에도 역시 등을 보이는 자들을 향해 무차별로 파천강기를 난사했다.
처음 계획과 달리 결국 10여 명은 잡지 못했지만 그래도 나머지는 대부분 태우거나 다리를 못 쓰게 하여 잡아둘 수 있었다.
기수는 그들의 처단보다 혈천제의 안위가 더 걱정되었다.
“부상당했어?”
“아냐. 난 괜찮아.”
“맞은 자리가 어딘데?”
“장을 장으로 맞받았는데 뭔가 사이한 기운이…”
“단정홍이구나!”
기수는 자기가 조금만 늦게 왔으면 그녀가 위험할 수도 있었다고 생각했다.
“내 진기에 저항하지 말고 정신을 집중해.”
혈천제는 기수가 내상을 치료해주려 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라 약간 망설였지만 지금 상황에선 실랑이를 벌일 시간이 없었다.
기수의 손바닥이 명문혈에 닿았다.
“으음….”
혈천제는 그 즉시 밀물처럼 쏟아져 들어오는 뜨거운 진기에 신음을 토했다.
잠시 후 단전까지 파고들어 그녀를 고통스럽게 하던 정체불명의 암경이 순식간에 녹아 사라지는 게 느껴졌다.
기수는 손을 떼고 물었다.
“어때? 불편한 기운이 남아 있나 확인해 봐.”
혈천제는 진기를 한 바퀴 움직여보았다.
“그 기운은 사라졌어. 그런데…”
“그런데 왜? 안 좋은 데가 또 있어?”
“아니. 그게 아니라…”
혈천제는 당황스러웠다. 기수가 주입해 준 진기 때문에 힘이 넘쳐나는 느낌이었다. 문제는 그로 인해 자신의 진기가 덩달아 흔들린다는 점이었다.
이제까지 연달아 싸우면서 진기소모가 심했는데 거기에 외부의 진기가 대량으로 들어오자 약간 어지럽고 메스꺼운 느낌이 들었다.
기수는 그녀의 반응을 보고 자기가 실수했음을 깨달았다.
자신의 내공에 여유가 있다 보니 그녀 상태를 배려하지 못한 것이다.
“아! 미, 미안해. 내가 진기를 좀 빼줄까?”
혈천제는 손을 내저었다.
“아니. 잠시만 시간을 줘.”
그녀는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소주천 한두 번만이라도 하고 나면 문제가 사라질 거라고 판단한 것이다.
기수는 입맛을 다셨다.
서로의 단전으로 진기를 순환시키는 최상의 해결책이 있는데, 그걸 지금 쓰지 못한다는 사실이 아쉽기 짝이 없었다.
‘그냥 하자고 해볼까? 혹시 그녀도 원하고 있을지 모르잖아.’
그러나 사상자가 뒤섞여 있는 난장판에, 더구나 교주가 죽은 이때에 그녀가 다리를 열어줄 것 같지는 않았다.
기수는 그녀가 운기조식 마치는 동안 호법 서는 것을 겸해서 주변을 정리했다.
우선 기어서 도망치려는 천마교 배신자를 점혈해 놓고, 다리 다친 청탑산 고수들을 한 놈씩 확인 사살했다.
딱 한 놈만 남겨두었는데, 그것은 도망친 놈들이 어디로 가는지 알고 싶어서였다.
기수는 일단 그를 점혈하여 바위에 기대어 앉힌 후 물었다.
“너희들… 접선 장소가 따로 있나?”
상대는 대답하지 않았다.
마혈이 눌려서 대답하고 싶어도 불가능했다.
“넌 어디 소속이지?”
기수는 그 질문의 답을 듣고 깜짝 놀랐다.
“현무 14진이라고? 4진이 아니라 14진?”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두 자릿수가 넘어가니까 곱셈 암산도 어려웠다.
그때 등뒤에서 혈천제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에게서 뭘 알아내려는 거지?”
기수는 그녀 호흡이 여전히 불규칙하다는 걸 알았다. 주변 상황이 어수선하니까 일단 주화입마 가능성을 없애는 정도로만 운기조식을 마친 것이다.
기수는 검지로 한 쪽을 가리켰다.
“교주님의 머리와 천마교의 배신자야. 먼저 돌아가. 난 놈들의 뒤를 좀 더 추적해봐야겠어.”
그리고는 곧장 몸을 날렸다.
현무가 14진이나 된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까 빨리 쫓아가서 최대한 많은 적을 죽여야 한다는 생각이 온통 그를 사로잡았다.
은혈대법 사용이 불가능한 지금의 찬스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들이 무슨 짓을 할 수 있는지는 혈천제의 부상을 봐도 알 수 있었다.
자기라고 해도 놈들이 회복되어서 은혈대법을 쓰고, 합격진을 펼치고, 또 어디서 방패라도 들고 온다면 귀찮아질 수 있는 것이다.
이번 싸움에서 도망친 10여명.
그들이 자기와 싸운 경험을 동료들에게 전달하기 전에 모두 잡아서 죽이고 싶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놈들의 기척이 감지되지 않았다.
‘어떻게 된 거지?’
기수는 잠시 나무 위에 멈추어서 오감을 한 층 끌어올려 보았다.
그러자 자연적이라고 볼 수 없는 소음을 들을 수 있었다.
상당히 먼 거리였고, 내공을 운용하는 기척은 전혀 없었다.
하지만 기수는 그것이 바로 청탑산 놈들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처음 죽림을 습격한 후 집결할 때는 일반적인 방식으로 움직였지만, 그걸 따라잡히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지금은 진기 운용 없이 체력만으로 은밀하게 야간이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참 다양한 훈련을 많이도 했구나. 하지만 나한테 걸린 이상 못 빠져나간다.’
기수는 냉소를 지었다.
개의 야간 시력은 인간의 10배, 청력은 40배, 후각은 1만배에 달한다고 한다.
내공 증진 이후 기수의 능력은 상식을 벗어나는 수준까지 올라간 상태.
집중하면 개보다 더 나을 거라고 자신할 수 있었다.
‘너희들은 지금부터 사냥감이다. 난 사냥꾼이고…’
기수는 사슴 떼를 쫓는 늑대처럼 민첩하게 몸을 날렸다.
한밤중의 숲 속엔 엄청나게 많은 소리들이 가득 차 있었다.
기수는 그들 중에서 사람 체중이 땅을 밟고, 나뭇잎을 스치는 소리들만 추려냈다.
그것은 극도로 예민한 작업이었고 높은 집중력을 요구했다.
싸우는 것과는 또 다른 짜릿함이 그를 자극했다.
그런데 뭔가 거슬리는 감정도 동시에 느껴졌다.
‘이건 뭐지? 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
이상하게 온몸이 떨리고 강한 공포심에 사로잡혔다.
기수는 잠시 멈춰 서서 사방을 둘러보았다.
두려울 이유가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 마치 누군가 자기를 당장 죽일 것처럼 겁이 나서 다리까지 후들거렸다.
‘도,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아무리 생각해도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기수는 심호흡을 했다.
그러나 공포심은 점점 더 강해지기만 했다.
그러다가 마침내 기수는 걸음을 멈추었다.
갑자기 죽음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절망과 두려움의 극한. 그 끝에 오히려 편안한 종말이 기다리고 있었다.
“으으….”
무릎에 힘이 빠진 기수는 나뭇가지를 잡고 몸의 균형을 잡았다.
‘이게 도대체 뭐지?’
기수는 자기 몸에 생긴 변화를 이해할 수 없었다.
처음엔 그냥 기분이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팔다리에 힘이 빠지면서 무력감이 느껴진 것은 실제 발생한 일이었다.
기수는 정신을 차리자는 생각으로 우선 오행류 상생순환을 한 차례 했다.
그때, 상단전에 뭔가 걸리는 느낌이 있었다.
‘아! 맞다…’
기수는 비로소 자기가 진기운용 한 가지를 계속 해오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혈천제가 운기조식 하는 동안 청탑산 고수 한 명을 붙잡고 염정구심술을 시전했는데, 혈천제가 조식을 마치자 급한 마음에 그냥 달려왔던 것이다.
‘뭐야… 그럼 염정구심술이 지금까지 계속 이어져 있었단 건가?’
기수는 진기 운용을 무의식중에도 계속 이어가는데 이미 익숙해져 있었다.
역용술을 애용하게 되면서 잠자는 동안에도 얼굴이 풀어지지 않기 위해 따로 연습을 했던 것이다.
염정구심술도 그런 식으로 여기까지 오는 내내 계속되고 있었던 것이다.
기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가만있어 봐. 거리가 이렇게 멀어도 염정구심술이 이어지나?’
자기가 느꼈던 두려움, 그리고 죽음의 느낌은 어떤 상황인지 이해가 되었다.
혈천제가 철수하기 전에 그를 심문하고 결국은 죽여 버린 게 분명했다.
기수가 놀란 것은 염정구심술의 긴 유효거리였다.
‘이거.. 무슨 텔레파시 같은 건가?’
뇌파를 동조한다는 면에서 SF 영화에 나오는 그런 초능력과 비슷할 것 같았다.
‘지연이한테 가르쳐주면, 서로 휴대폰처럼 통화할 수도 있는 거 아냐?’
통화시험을 해보고 싶었다.
그러나 그 생각은 곧 사라졌다.
자신의 뇌에 들어 있는 생각들 중에 탁지연이 알 필요 없는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기수는 한 번 더 상생순환을 한 후 몸 상태를 점검했다.
염정구심술의 연결이 끊어져서인지 더 이상 불편함은 없었다.
기수는 다시 추적에 집중했다.
오감을 끌어 올리다 보니 마치 자기가 육식동물이 된 것 같았다.
적이 기도를 드러내지 않으려고 속도를 빨리 하지 않았기 때문에 거리는 급속히 가까워졌다.
마침내 30여 미터까지 따라붙은 기수는 상대의 머릿수를 셌다.
‘16명.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
기수는 간격을 유지하면서 그들을 어떻게 공격해야 한 번 습격으로 최대한 많이 제압할 수 있을지 여러 순서를 조합해 보았다.
예전 같으면 16명을 전부 제압하는 건 쉽지 않다고 간단히 결론 내렸겠지만 지금은 달랐다. 사냥감 추적하듯 따라온 것도 그렇고, 최대한 많이 잡기 위해 연구하는 것도 그렇고, 어딘가 좀 더 집요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기수는 몇 가지 조합을 생각해본 후 일단 조심스럽게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세 단전에 진기를 끌어올리는 것과 동시에 몸을 날렸다.
적에게 대응할 틈을 주지 않기 위해서였다.
파파파파팍!…..
파천강기가 기관포처럼 적의 배후를 휩쓸었다.
“크악!…”
“으아악! 놈이 따라왔다!…”
적은 그 와중에도 대형을 짜서 이동하고 있었기 때문에 선두 쪽은 비교적 피해가 적었다.
기수의 파천강기가 전부 다리에만 집중된 게 바로 그 이유였다.
뒤쪽 놈들부터 차례로 이동능력을 제한하면서 앞으로 나간 것이다.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16명 모두의 다리에 크건 작건 타격을 입힌 것이다.
그 다음 단계는 가장 움직임이 활발한 놈부터 제압해 나가는 것이었다.
청탑산 고수들은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쳤지만, 이미 기습을 당한 상태에서 은혈대법 없니 기수와 싸우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기수는 잔인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상대의 약한 부분을 파고들었다.
불필요한 진기 낭비요인이 거의 없었다.
계속되는 연습을 통해 점점 향상되어 온 전사로서의 집중력이 이제는 경지에 달한 느낌이었다.
“합격진을 만들어라!”
누군가 명령을 내렸지만 그것은 공허한 외침이었다.
그들은 기수의 움직임을 따라붙을 몸 상태가 아니었고, 내공도 없었다.
결국 16명은 차례차례 비명과 함께 쓰러지고 말았다.
밤바람과 함께 열여섯 구의 시체만 나뒹구는 숲속.
시체 중 하나가 꿈틀거리는가 싶더니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는 무기를 잡고 방어 자세를 취했다.
천마교의 추격자가 저지른 짓은 끔찍했다.
동료들이 모두 처참한 주검으로 널브러져 있었다.
그는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후 자기 몸 여기저기를 더듬어보았다.
살아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등쪽 옷에 뚫린 구멍을 만지고 상황을 알아차렸다,
추격자는 지풍으로 사혈을 찍어 죽였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바로 옆의 수혈을 눌렸던 것이다. 출혈이 있긴 했지만 치명적이지는 않았다.
사내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동료들이 꼼짝 못하고 모두 당했는데, 자기가 살아남은 것은 정말 하늘의 보살핌, 구사일생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주변을 살핀 후 즉시 현장을 벗어났다.
공연히 머뭇거리다가 추격자가 다시 나타날까봐 두려웠던 것이다.
그가 사라지고 나서 5분쯤 뒤.
기수가 그 자리에 모습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