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hwa Manri RAW novel - Chapter 46
장원의 담을 뛰어넘기 위해 좋은 자리를 찾아 이동하던 기수는 주변에 뭔가 이상한 기운이 있음을 느꼈다.
‘이 꺼림칙한 느낌은 뭐지?’
기수는 일단 몸을 숨겼다. 그리고 좌우를 살펴보았다.
그러자 은밀하게 움직이는 야행복 차림의 인영들이 하나둘씩 보였다.
그들의 수는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었다.
‘도둑들인가?’
도둑이라고 보기에는 그 수가 너무 많았다.
‘습격이구나! 하지만 누가 감히 천하의 화양문을…?’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검은 그림자들이 일제히 담을 넘었고, 사방에서 고함과 비명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소리로 미루어 장원의 반대편 쪽에서도 비슷한 수의 적이 담을 넘은 것 같았다.
‘어떻게 하지?’
기수의 가슴이 두근거렸다.
얼핏 보기에도 수백 명은 됨직한 침입자.
경공술로 보아 무공 수준도 보통은 훨씬 넘어서는 자들이었다.
어쩌면 화양문에 큰 위기가 될지도 모르는 상황.
사방에서 터져 나오는 단말마의 비명이 그럴 가능성을 증명하고 있었다.
‘도와줄까?’
그러난 이것은 자신과 아무런 상관도 없는 문제였다.
마침 안 좋은 시간에 안 좋은 장소에 있는 것뿐이었다.
화양문이 습격을 당하고는 있지만, 그들이 나쁜 쪽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애당초 강호에 좋고 나쁜 게 존재하는지조차 의문이었다.
무림맹이 스스로를 정도라 하고 나머지는 사도, 마도라고 매도하지만 기수가 보기에 그건 좀 아닌 것 같았다.
현대식으로 보면 그냥 전부 다 조폭들이었다.
힘 센 쪽이 이기고, 이긴 쪽이 정의인 것이다.
“에이, 모르겠다!”
고민하던 기수는 담을 넘었다.
어느 편도 들고 싶지 않았지만 화양문엔 양여옥이 있었다.
그리고 자신은 그녀에게 사과하기 위해서 머나먼 길을 온 것이다.
담을 넘은 그는 야행복 입은 놈들을 닥치는 대로 쓰러트렸다.
그들의 무공이 고강하다고 해도 기수의 잔백지를 막아내는 자는 많지 않았다.
기수는 중간에 검 한 자루를 주워 내공소모가 심한 잔백지 대신 월영검법을 펼치기 시작했다.
그의 검법에도 역시 제대로 맞서는 자는 없었다.
기수는 양여옥을 찾기 위해 지붕 위로 올라갔다.
그러나 그녀의 거처가 어느 쪽에 있는지는 전혀 알 길이 없었다.
땅으로 내려선 그는 야행복이 아닌 붉은 무복을 입은 자에게 물었다.
“양여옥의 거처가 어디인가?”
“죽어랏!”
무사는 대단 대신 칼을 휘둘렀다.
“야! 난 너희 편이야. 도와주고 있단 말야.”
“닥쳐라!”
그는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기수는 그의 혈도를 찍어 쓰러트린 후 다시 물었다.
“흥분 가라앉히고 잘 들어. 난 양여옥을 구해주러 온 사람이야. 무림맹의 친구라고. 그녀의 거처는 어느 쪽이지?”
“저, 정말 무림맹 사람이오?”
“널 죽이지 않는 걸 보면 모르겠나?”
그는 잠시 생각한 후 대답했다.
“서쪽 별채입니다. 큰 연못을 끼고 있습니다.”
기수는 그의 혈도를 풀어준 후 즉시 몸을 날렸다.
연못은 금방 찾을 수 있었다. 더불어 여인의 규방도 발견했다.
그러나 그곳엔 시녀 둘이 숨어서 떨고 있을 뿐 양여옥은 보이지 않았다.
기수는 시녀들에게 물었다.
“양소저는 어디 있느냐?”
“저, 저희들은 모릅니다.”
“검을 뽑아 들고 나가셨습니다.”
“젠장!”
애써서 찾아왔는데 싸우러 나갔다니, 이제 또 어디 가서 찾아야할지 암담했다.
“무슨 장원이 이렇게 넓어?”
애꿎은 데 신경질을 내며 양여옥을 찾아 나선 기수는 장원 한 쪽이 밝게 빛나는 것을 보았다. 더불어 폭음도 들려왔다.
‘저게 뭐지?’
그는 궁금증을 느끼고 그리로 향했다.
가면서 보니 마치 불꽃놀이라도 하는 것처럼 화염이 연속해서 터지고 있었다.
담을 넘자 궁금증이 해소되었다.
큰 체격의 50대 사내가 연달아 쌍장을 내뻗을 때마다 화염과 함께 폭발이 일어났고, 침입자들이 비명을 지르며 화염에 휩싸이고 있었다.
기수는 그 남자 옆에 양여옥이 있는 것을 보고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나서 그 남자의 움직임을 좀 더 자세히 보게 되었는데, 정말 신기했다.
무슨 화염방사기를 등에 메고 있는 것도 아닌데 손을 뻗을 때마다 화염이 폭발하는 모습을 보니까 무슨 마법사의 파이어볼이나 드래곤의 브레스를 보는 것 같았다.
기수는 그 남자가 바로 화양문의 문주 양호중이라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었다.
야행복 입은 자들 중 리더로 보이는 자가 외쳤다.
“흩어져라! 놈은 지쳤다.”
그 말을 듣고 다시 양호중을 보니 정말 호흡이 거칠어져 있었다.
화염을 뿜어내는 그의 공격은 무시무시한 위력을 지녔지만 그만큼 내력 소모도 심한 것 같았다.
수십 구의 불붙은 시체를 만들어냈지만, 적이 암기를 던지며 방어진을 돌려서 소모전을 펼치자 난감한 표정이 역력히 드러나고 있었다.
“아버지. 잠시 기식을 고르세요. 제가 시간을 끌게요.”
양여옥이 나서서 검을 휘둘렀다.
그녀의 무공 역시 놀라웠다.
문주 양호중처럼 화염폭발을 일으키지는 못했지만 장검이 시뻘겋게 달아올라 거기 닿는 모든 물체에 화염을 옮겨 붙이고 있었다.
기수는 감탄했다.
‘완전히 불 쇼구나. 불 쇼. 죽인다, 죽여!’
그러나 야행복 입은 무리는 수가 많았다.
그리고 이들 부녀 상대하는 방법을 미리 연구하고 온 듯 했다.
물러나고 흩어지면서 힘이 빠지기를 유도하자 양여옥은 그의 아버지보다 훨씬 일찍 지친 기색을 드러냈다.
기수는 그녀가 다치는 모습을 볼 수 없었다.
“멈춰라!”
그는 호통을 치면서 멋지게 뛰어들어 월영검법으로 적을 쓰러트리기 시작했다.
적진은 큰 혼란에 휩싸였다.
수많은 동료의 희생을 바탕으로 겨우 두 고수의 힘을 빼놨는데 난데없이 새로운 강적이 끼어든 것이다.
그리고 새로 가세한 자의 무공은 상상을 초월했다.
“크아악….!”
“놈을 막아라… 으악….!”
양호중과 양여옥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싸움에 가세했다.
그로 인해 전세는 완전히 기울어버리고 말았다. 둘로는 버티기조차 힘들었지만 기수가 더해지면서 일방적인 살육으로 상황이 바뀌었다.
야행복 입은 무리 중 한 사람이 외쳤다.
“퇴각한다!”
그러나 양호중에게 등을 보이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다.
연거푸 내뿜는 화염이 그들을 휘감았다.
결국 침입했던 자들 중에서 살아 도망친 자는 극소수에 불과했다.
문도들이 적의 뒤처리를 하는 동안 양호중은 기수에게 다가와 포권을 했다.
“위기에서 구해주어 고맙소.”
기수도 포권을 했다.
“무사하시니 다행입니다.”
“소협의 존성대명을 알려주실 수 있겠소?”
“저는 기수라고 합니다.”
“기수? 혹시 제갈세가의 음모를 만천하에 밝혀낸 그 기소협이란 말이오?”
“그, 그렇습니다.”
“하하하! 과연 대단하군요. 그런데 무림맹에 있을 줄 알았는데 여긴 어쩐 일이오?”
기수는 양여옥을 힐끔 봤다.
뭐라고 대답해야 좋을지 모를 질문이었다.
‘댁의 따님을 강제로 따먹어서 사과하러 왔어요.’
라고 진실을 말할 수는 없었다. 절대로 안 되는 일이었다.
통 바베큐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저는 개인적으로 무림맹 주변에서 얼쩡거리는 수상한 자들을 조사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을 추격하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아! 그랬군요.”
양호중은 자기 딸을 한 번 돌아봤다.
이렇게 무공이 뛰어난 청년 영웅을 사위로 맞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양여옥은 기수를 노려봤다.
하지만 어느 정도는 반가워하는 기색도 있었다.
방금 전, 아버지와 함께 목숨을 잃고 멸문지화를 당할 뻔 한 상황에 처했었기 때문에 기수의 도움이 정말로 고마웠던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를 용서해줄 마음은 없었다.
양호중은 침입자 중 숨이 붙어 있는 자를 붙잡고 물었다.
“네놈들은 누구냐? 누가 시켜서 이런 짓을 한 거지?”
침입자는 입을 꾹 다물고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양호중은 냉소를 지은 후 그의 어깨를 움켜쥐었다.
그러자 그 자리의 옷이 타면서 연기를 내기 시작했다.
“으윽… 으아악….!”
침입자는 비명을 지르며 괴로워했다.
“말해라! 누가 사주했는지!”
“미륵하생(彌勒下生)! 명왕출세(明王出世)!”
침입자는 발악적으로 외친 후 혀를 깨물어 자결했다.
양호중은 심각한 표정으로 몸을 일으켰다.
“마교로구나! 아아…..! 그들이 움직이기 시작했어.”
마교라는 말에 양여옥의 표정도 굳었다.
양호중이 기수에게 말했다.
“기소협. 그대는 단지 우리 부녀의 목숨만 살린 게 아니라 정도 무림의 한 축을 지켜준 것이오. 그대야말로 정도 무림의 은인이라 할 수 있소.”
“별말씀을요…”
“아니오. 그대가 한 일이 얼마나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인지 차차 알게 될 것이오. 저들이 어떻게 알았는지는 모르겠으나, 내 폐관수련 기간에 맞추어 습격을 감행한 것은 필경 철저한 사전준비가 되어 있었다고 봐야 하오. 일단 마각을 드러냈으니 장차 본격적으로 무림정벌에 나설 것이오. 하지만! 내가 이렇게 살아남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을 거요. 또한 기소협 같은 정도 무림의 영웅이 출현할 것도…”
양호중은 감격한 표정이었다.
기수는 어정쩡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무림을 종횡무진하는 영웅을 꿈꾸기는 했지만, 그게 딱히 정파 무림을 대표하는 정의의 사나이! 여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양여옥이 다치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뛰어든 싸움이 엉겁결에 화양문을 구하고 마교를 물리친 영웅을 만들어버린 것이다.
“저는 단지 약간의 도움을 드렸을 뿐이고, 실제 저들을 물리친 것은 문주님 아니십니까. 영웅이란 말씀은 과분합니다.”
나는 좀 빼달라는 의미로 한 말이었다.
그러나 양호중은 다르게 받아들였다.
“오오! 그런 놀라운 무공을 지녔으면서 동시에 이렇게 겸손하기까지 하다니…! 어찌하여 기소협의 이름이 아직까지 세상에 널리 알려지지 않았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군요. 하하하!”
양호중은 문도들을 불러 칩임자들을 처리하도록 지시한 후 기수를 안으로 안내하여 좋은 차를 대접했다.
밝은 곳에서 보니까 양호중 역시 붉은 머리카락에 붉은 눈썹, 거기다 수염까지 붉은색이었는데 양여옥이나 양화린보다 훨씬 더 서양사람 얼굴에 가까웠다.
그는 양여옥을 기수에게 소개했다.
“내 여식이오.”
“이미 무림맹에서 봤습니다.”
“아! 그랬군요. 하하하!”
차에 이어 술과 음식이 나왔고, 기수는 배불리 먹은 후 귀빈을 모시는 별채로 안내되어 갔다.
양화중이 거기까지 따라와서 말했다.
“나는 여러 가지 처리할 일들이 많으니 기소협은 이곳에서 푹 쉬도록 하시오.”
“예. 알겠습니다.”
별채에서 나온 양화중은 총관을 불러서 말했다.
“기소협은 우리 양화문의 은인이니 극진히 대접해야 하네.”
“알겠습니다. 한 치도 소홀함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부탁하네.”
그리고는 피해상황을 보고 받으러 집무실로 갔다.
총관 습격 때문에 역시 바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집사 한 명을 불러 지시했다.
“별채에 묵는 손님은 몹시 귀한 손님이니 극진하게 모셔야 한다. 넌 다른 일을 하지 말고 그 일에만 매달려라. 알았지?”
“알겠습니다.”
집사는 별채로 들어가 기수에게 물었다.
“뭐 불편하신 점은 없으십니까?”
“없습니다.”
“필요하신 것은 없으십니까?”
“그것도 없습니다. 신경 쓰지 마십시오.”
기수는 양여옥을 만나 얘기만 하면 되었다. 이제까지는 문주가 곁에 있어서 말을 못 걸었지만 내일은 기회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밖으로 나온 집사는 생각했다.
‘극진하게 모시라고 했는데 그냥 자게 하면 나중에 내가 문책을 당할지도 몰라. 저렇게 팔팔한 나이에 필요한 게 뭐겠어? 그거 하나밖에 더 있어?’
그는 안채로 들어가 하녀 두 명을 미모 순으로 골랐다.
“너희 둘은 하던 일 멈추고 이제부터 내가 시키는 일을 해야 한다.”
“뭔데요?”
“별채에 우리 문파를 구원해준 은인이 묵고 계신다. 너희 둘이 그분의 시중을 들어라. 무슨 말인지 알겠지?”
두 하녀는 볼을 붉혔다.
“예.”
그들은 즉시 몸을 씻고 옷을 갈아입은 후 별채로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