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hwa Manri RAW novel - Chapter 464
수괴와 1대1로 싸우려면 나머지 부하들을 따돌려야 했다.
기수는 자기가 동원 가능한 병력을 꼽아보았다.
‘우선 혈매궁은 내가 궁주니까 문제없고… 무림맹도 이런 일이라면 도울 것이고, 천마교는 상중이라 어떻지 모르겠네. 새 교주는 선출되었을까?’
그들이 태선사를 협공한다면 얼마든지 사도를 제압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문제는 병력을 들키지 않고 신속하게 이동시켜야 한다는 것인데, 그거라면 수로맹의 쾌속선이 답이 될 수 있었다.
‘이 정도면 나도 꽤 영향력이 있는 편인데? 혹시 동원할 병력이 더 없나?’
소항산을 지키는 제자들은 정통 수련을 한 게 아닌 산적에서 전향한 녀석들이라 아직 이런 레벨의 전투에 끼어들 만 한 실력이 안 되었다.
‘아! 맞다.’
뜬금없이 비종의 조씨 자매가 생각났다.
그녀들도 비밀스럽지만 세력을 가지고 있을 테니까 이런 일이 닥쳤을 때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생겼다.
‘그나저나… 둘 다 어떻게 지낼까?’
동굴에서의 일은 정말 잊지 못할 추억이었다.
여러 면에서 지금의 자신을 만들어 준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었다.
기수는 자매의 영상을 떠올려보았다.
힙의 라인. 그리고 다리 사이 꽃잎의 형태와 색깔이 먼저 선명하게 기억났고, 그 다음으로 얼굴과 바디라인, 가슴 순서로 형상화되었다.
‘아! 나도 참… 사람을 이 순서로 기억하면 안 되는데…’
머리를 세차게 흔들고 다시 기억을 되살리자 두 여인의 입술과 혀가 생각났다.
자신의 존슨과 결합된 상태의…
‘야! 자꾸 그런 것만 생각할래?’
기수는 주먹으로 머리를 쥐어박으며 자매와의 다른 기억을 생각해보았다.
그러나 태어나서 처음으로 성에 눈을 뜬 상대들이어서 그런지 그쪽으로 너무나도 강력한 기억들이 심어져 있었다.
기수는 일부러 반대 생각을 했다.
‘그땐 처음이라서 그랬을 거야. 솔직히 민아, 현아 두 사람을 지금의 사매들 사이에 갖다 놓으면 특별한 것도 없을 거야.’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조금만 예뻐도 그저 여신으로 보였고, 그래서 실수도 저질렀지만,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 미녀가 알몸을 무기로 사용한다 해도 전혀 흔들리지 않을 만큼 경험이 쌓인 것이다.
지금 다시 조민과 조현을 만나면 어떤 느낌일지 정말 궁금하긴 했다.
‘자, 자!… 일단 여길 깨부술 생각부터 하자.’
기수는 정신을 추스르고 이번엔 퇴각로가 아닌 침투로를 확인해보기로 했다.
퇴각로와 다른 점은 수로맹의 쾌속선을 이용하기 위해 근처에 강이나 시내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도수산은 봉우리가 높고 계곡이 깊어서 근처의 강까지 이어지는 시내가 많았다.
그들 중 어디가 배가 들어올 만큼 깊은지 직접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기수는 협곡으로 향하는 길을 찾아 내려갔다.
“헉!….”
기수는 신음을 토하며 급히 내공을 끌어 올려 균형을 잡았다.
비탈길의 낙엽 쌓인 곳을 디뎠다가 미끄러진 것이다.
날이 어두워 살짝 실수를 한 것이지만, 내공을 끌어올린 게 문제였다.
짧은 순간이었다고 해도 적진의 누군가 감지했을 수 있었다.
기수는 자세를 낮춘 후 태선사 쪽으로 기감을 끌어올렸다.
‘젠장!’
그동안 자신을 꺼림칙하게 만들었던 기도가 큰 변화를 보이고 있었다.
게다가 빠른 속도로 다가오기까지 했다.
‘들켰구나! 일단 피하자.’
기수는 즉시 경공을 시전했다.
발각된 이상 1초라도 허비할 이유가 없었다.
선풍비로 나뭇가지를 밟으며 이동하자 더 이상 지형지물은 방해가 되지 않았다.
순식간에 봉우리 하나를 넘은 기수는 등 뒤로 따라붙는 기도를 감지하고 속도를 더욱 올렸다. 그러자 간격이 점점 더 벌어졌다.
‘역시 내 경공은…’
기수는 흡족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러다가 문든 다른 생각이 들었다.
‘내가 왜 도망치지?’
기수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따라오는 기도를 확인해보았다.
한귀비가 분명했다. 내공을 끌어올리니까 느낌이 더 확연했다.
중요한 사실은, 그녀 주변에 다른 적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청탑산 고수들로서는 따라오기 힘든 스피드였으니 그럴 법도 했다.
만약 자기가 여기서 도망친다면 적은 위치를 발각 당한 태선사의 경계를 더욱 강화하거니 다른 장소로 이동할 가능성이 컸다.
그렇다면 이제까지의 습격 구상이 전부 다 수포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한귀비가 혼자 여기까지 따라와 준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그녀를 1대1로 제압하고 나머지 패거리는 따로 손봐주면 되기 때문이다.
‘좋아! 무덤이 될 줄도 모르고 따라온단 말이지?’
기수는 다시 선풍비를 시전했다.
하지만 이번엔 도망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한귀비를 유인하기 위한 스피드였다.
대신 청탑산 무리가 대결에 어떠한 방해도 되지 않게 하려고 거의 1시간 정도를 잡힐듯 말듯 간격을 유지하면서 계속 달렸다.
‘조금만 더 따라와라. 넌 내 거다. 후후후…’
그러나 좀 지나친 면이 있었는지, 한귀비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었다.
기수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어라? 왜 저러지? 혹시 눈치 챘나?’
1시간을 달려도 따라잡을 수 없는 상대.
한귀비가 의심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지? 내 쪽에서 다가가볼까?’
그건 오히려 의심을 더 키울 것 같았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을 때, 갑자기 등 뒤에서 사람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무 오래 끌었어.”
기수는 소스라치게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언제부터 서있었는지, 산발한 남자가 보였다.
‘고수다!’
기수는 그의 기도가 전혀 감지되지 않았다는 점에 크게 놀랐다.
내공이 자기보다 위라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키는 180정도. 탄탄하게 균형 잡힌 체형. 산발한 머리카락 틈사이로 노려보는 눈빛이 날카롭고, 각진 턱엔 수염을 길렀는데 뺨에 큰 흉터가 남아 있고, 나이는 30대 중반 정도로 보였다.
기수가 노려보기만 하자 상대가 다시 말했다.
“일 각 점에 멈추었다면 충분했을 텐데… 이제 그녀는 네가 아무리 유인해도 절대로 다가오지 않을 거야.”
“으음….”
기수는 침음성을 흘렸다.
상대는 놀랍게도 자기가 한 행동을 처음부터 다 보고 있었던 것이다.
“넌 누구냐?”
흉터 사내는 가볍게 미소 지었다.
“네가 누구냐에 따라 내 이름을 들을 자격이 주어질 수도 있지.”
기수는 이를 악물었다.
기분이 나빴지만 함부로 감정을 드러내기는 조심스러웠다.
‘차분해야 돼. 마음부터 흐트러지면 해보기도 전에 지는 거야.’
기수는 상대가 사도가 아니라는 사실을 처음 얼굴을 봤을 때부터 알아차렸다. 그리고 마주 선 상태로 어떠한 전율도 일어나지 않았다.
적 진영에 사도가 아닌데도 이런 고수가 더 있다는 사실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나를 잡기 위해 따라온 건가?”
“그렇다고 봐야지. 내 숙면을 방해했으니까.”
일전을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한 기수는 역용을 풀었다.
한 줌의 진기도 낭비할 수 없는 상대라고 판단한 것이다.
사내의 눈빛이 이채를 띠었다.
“호오! 특이한 재주를 익히고 있었군. 재미있는데?”
기수는 유성추를 들었다. 그리고 내공을 끌어올렸다.
흉터 사내의 입가에서 미소가 사라지고, 그 역시 내공을 집중시켰다.
“후후후….. 네가 나를 이긴다면 이름을 말해주마.”
“내가 널 이기면 넌 시체가 되어 있을 텐데 이름은 들어서 뭐하겠느냐?”
“그런가? 하하하!….”
웃는 모습이 어딘가 일그러진 소시오패스 느낌이었다.
그래서 더욱 주눅 들고 위축되는 기분이었다.
기수는 오행 상생순환을 한 바퀴 돌리면서 마음을 다잡았다.
‘정신 차려! 여기서 죽을 수는 없잖아!’
사도보다 강한 고수. 자기보다 뛰어난 내공.
그런 사실들이 두려움을 자극하는 만큼, 동시에 전사로서의 본능을 깨어나게 만들었다. 기수는 천마교 교주에게서 배운 것들을 떠올려보았다.
그는 이런 상황을 수십 번도 더 겪으면서 끝내 교주의 자리에까지 오른 사람이었다.
‘그래. 나도 할 수 있어! 아니. 해내야만 돼!’
대결에 임하는 마음가짐이 큰 도움이 되었다.
선제공격을 결심한 기수는 상대의 얼굴을 향해 유성추를 힘껏 던졌다.
흉터 사내의 입 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이 따위 수작이 통할 것 같으냐?”
그의 검이 믿기 어려운 속도로 검 집에서 빠져나왔다.
바로 그 순간.
확! 하는 폭음과 함께 불기둥이 그의 얼굴을 휘감았다.
유성추가 먼저 출발했지만 도착은 화류 태포련이 먼저였다.
흉터 사내는 깜짝 놀라 검을 휘저었지만 검풍만으로 막아낼 수 있는 화염이 아니라 결국 뒤로 서너 걸음 피할 수밖에 없었다.
그 보법이 놀라우리만큼 민첩해서, 기수의 계획했던 연속 공격들은 시작해보기도 전에 접어야 했다.
두 사람은 2장의 거리를 두고 마주 섰다.
사내는 기수의 화염공격에, 기수는 사내의 선풍비보다 빠른 보법에 놀란 상태라 한동안 서로를 노려보기만 했다.
단백질 탄 냄새가 나서 자세히 보니 사내의 머리카락이 상당히 많이 그을려서 얼굴이 모두 드러나 보였다.
흉터 사내가 갑자기 고개를 젖히며 큰소리로 웃었다.
“하하하!… 이럴 수가 있나… 귀령공의 전인을 만나다니…”
기수는 상대가 합비를 알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가만있어 봐. 예전에 합비 어르신이 자기가 평생 이겨보지 못한 세 사람에 대해 얘기했었는데…’
함께 삼선 혹은 삼태공으로 불렸던 춘신공과 진영군 부부. 그리고 검종의 전인인 검신 진처후가 그들이었다.
앞에 있는 사내는 그들 중 하나의 전인일 가능성이 있었다.
“넌 검신 진천후의 전인이냐?”
“호오!…. 그건 어떻게 알았지? 네 사부가 조심하라고 가르쳐주더냐?”
기수는 대답하지 않았다.
확률 3분의 1로 찍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검이란 무기는 상대와의 간격을 대단히 중시한다.
검을 쭉 뻗었을 때 상대와의 간격이 5cm 가깝냐 머냐에 따라서 상대를 죽일 수도 있고, 헛방이 되어서 반격을 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묘한 검술엔 민첩한 보법이 삼겹살에 소주처럼, 치킨에 맥주처럼 늘 따라다니는 것이다.
“검종의 전인이 어째서 역모에 가담한 것이냐?”
그러자 흉터 사내는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그건 네가 상관할 일이 아니다.”
그리고 잠시 생각하는 듯 하더니 기수에게 물었다.
“혹시, 네가 혈매궁 궁주냐?”
“그렇다. 내가 기수다.”
“아하! 그랬구나…. 귀령공과 혈매궁이 본래 하나였어.”
“그건 아니다. 나는 그분을 사부로 모시지 않았다.”
“제가가 아닌데도 비전절기를 전수해주었다고? 하하하!… 웃기지 마라.”
기수는 대꾸하지 않았다.
어르신도 만만치 않게 여겼다는 검종.
그 후인이 적의 편에 섰는데, 막상 겨뤄보니 예상보다 부담감이 더 크게 느껴졌다.
화류 태포련을 보법으로 피하는 상대라면 다른 기술들도 잘 먹혀들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장무검이다.”
갑작스런 상대의 말에 기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자 흉터 사내가 다시 말했다.
“내 이름은 장무검이다. 누구한테 죽었는지는 알아야 하지 않겠느냐? 흐흐흐…”
웃는 모습을 보니까 진짜 정신에 약간 문제가 있는 것 같았다.
‘혹시 미친 건가?’
합비에게 들은 얘기를 되짚어 보면 당시 검신 진천후도 일인전승이라는 검종의 전통 때문에 자기 형을 죽여야 했고, 정신적으로 문제가 좀 있었던 것 같았다.
앞에 서있는 장무검 역시 무슨 끔찍한 과정을 거쳤는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상대가 미쳤건 정상이건 내 목표는 오로지 하나뿐이다.’
기수는 3개 단전에 각각 다른 진기를 운용했다. 화류의 호신강기로 몸을 보호하면서 왼손에는 파천강기, 오른손에는 멸절강기를 끌어올린 것이다.
통하건 안 통하건 일단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들로 상대하는 게 중요했다.
그것 역시 천마교 교주에게 배운 마음자세였다.
화류 호신강기를 일으키면서 불길이 원 모양으로 확 퍼지자 장무검은 두 걸음 뒤로 물러섰다.
얼굴을 그을린 공격에 놀랐던 터라 다시 화염을 보자 긴장한 것이다.
기수는 미소를 머금었다.
‘그래. 상대도 나한테 겁먹기는 마찬가지다. 나보다 내공 좀 더 깊고, 보법 좀 더 빠르다고 치자. 그래서 뭐? 승부는 내공이나 보법으로 판가름 나는 게 아냐.’
물론 내공이 몹시 중요한 요소이기는 하지만, 100이란 내공을 가진 사람이 80이나 90의 내공 소유자에게 무조건 이기는 것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적을 죽이겠다는 의지. 그리고 자신의 내공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살초에 투입하느냐에 따라 생사가 갈리는 것이다.
보법 역시 빠를수록 유리한 건 사실이지만 그보다는 상대보다 더 단단한 수비, 더 날카로운 공격이 승패에 더 큰 요인이라고 할 수 있었다.
기수는 두려움을 떨쳐버리고, 자만심은 품지 않는 적당한 선에서 자신감을 되찾았다.
그는 장무검을 노려본 후 다시 한 번 선제공격을 가했다.
퓨퓨퓨퓨퓻!,,,, 파파파파팟!….
수십 개의 파천강기와 멸절강기 스푼컷이 동시에 장무검의 요혈을 노렸다.
장무검은 긴장한 표정으로 검을 휘둘렀다.
그리고 놀라운 상황이 펼쳐졌다.
선풍기 날개보다 더 빨리 돌아가는 듯한 그의 장검은 파천강기와 멸절강기를 전부 다 쳐냈다. 비록 그를 두세 걸음 뒤로 밀어내기는 했지만 단 하나의 공격도 성공시키기 못한 것이다.
기수는 침음성을 흘렸고, 장무검은 흉악한 미소를 머금었다.
“흐흐흐…. 이런 짜릿함은 정말 오랜만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