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hwa Manri RAW novel - Chapter 477
청탑산 고수들의 합격진은 무시무시한 압박감으로 기수를 조여 왔다.
기수는 정신을 집중하고 적 사이를 파고들며 유성추를 날렸다.
“크윽!…”
“헉!”
유성추에 급소를 가격당한 적들이 하나둘씩 쓰러졌다.
그러는 사이 적의 검과 도, 권각이 차례로 기수의 몸에 적중되었지만, 그것들은 마치 무형의 벽에 막힌 듯 기수의 몸 근처에서 멈추었고 결국 튕겨나갔다.
기수는 방어를 도외시한 채 빠른 보법으로 돌아다니며 공격만 할 수 있었고, 그 결과 1분도 지나지 않아 적을 모두 쓰러트리는데 성공했다.
기수는 비틀거리며 일어서려는 놈들을 잔백지로 점혈한 후 기분 좋게 웃었다.
“하하하!….”
안 그래도 무공에서 차이가 나기 때문에 어떻게 싸워도 이기긴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빠른 시간에, 이렇게 쉽게 이겼다는 것은 의미가 컸다.
방어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고수가 하수를 상대로 동귀어진을 시도한 것처럼 되어 버린 것인데, 천기오뢰강의 방어력이 기대 이상이었다고 할 수 있었다.
기수는 자기 행세 하던 놈의 멱살을 잡아 일으킨 후 뺨을 좌우로 10대쯤 때렸다.
“이 새끼야! 할 짓이 없어서 남에게 누명을 씌우며 돌아다녀?”
신나게 패고 있는데 관군 중 지휘관으로 보이는 자가 용기를 내어 다가오더니 기수에게 말을 걸었다.
“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기수는 가짜를 바닥에 팽개치고 그에게 말했다.
“난 혈매궁 궁주 기수라고 하오!”
그러자 지휘관과 병사들 모두 깜짝 놀랐다.
기수는 손짓으로 그들을 진정시키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시오! 나는 진짜고, 여기 이놈들은 나를 사칭한 가짜니까. 하하하!”
그러나 장교와 병사들 모두 경직된 표정이었다.
기수는 목소리를 더욱 부드럽게 하여 말했다.
“이놈들을 잡아다가 문초하면 그동안 저지른 죄악들이 낱낱이 드러날 것이오. 아! 놈들의 혈도가 풀리면 위험할 수도 있으니까…”
기수는 쓰러진 자들을 하나씩 돌아가며 단전을 파괴해버렸다.
무림인에겐 죽음보다 더 한 형벌이지만, 자기를 사칭했던 놈들에겐 적절한 벌이라는 게 기수의 생각이었다.
“이제 이놈들은 더 이상 위협이 안 될 것이오.”
장교가 조심스럽게 기수에게 말했다.
“당신이 혈매궁 궁주입니까?”
무공의 차이를 봤기 때문에 상당히 공손한 말투였다.
“그렇소.”
“그렇다면 잠시만 저희들의 조사에 응해주실 수 있습니까?”
기수는 미간을 찌푸렸다.
“혈매궁에 대한 나쁜 소문은 모두 다 이 가짜들이 만든 거라고 하지 않았소?”
“하, 하지만 저희들은 혈매궁 궁주를 잡으라는 명령을 하달 받았습니다. 궁주님이 여기 오셨는데 그냥 보내면 나중에 문책당할 것입니다.”
기수는 어이가 없었다.
‘이 새끼가 지금 뭐라는 거야? 다 죽을 걸 살려놓으니까 나를 체포하겠다고?’
조사에 응해달라고 완곡하게 말했지만 그런 의미였다.
도대체 공무원이란 놈들은 머리가 왜 그런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지금 상황이 자기가 책임 질 일을 걱정해야 될 타이밍인가?
기수는 비폭대라수를 테스트해보고 싶은 강렬한 욕구를 느꼈다.
그러나 무림은 물론 관부인 동창과 장군부에까지 그럭저럭 협조관계를 만들어 놓은 혈매궁 입장에서 관군을 죽이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이 가짜들에 대해 보고해 줄 사람도 필요했다.
기수는 이형환위에 가까운 스피드로 장교의 옆에 바짝 다가가 섰다.
“으힉!…”
장교가 놀라서 몸을 움츠리기도 전에 그를 번쩍 들어서 원래의 자리로 돌아오기까지 걸린 시간은 1초 남짓.
장교는 제법 덩치가 좋고 힘도 센 편이었지만 기수는 그를 공깃돌처럼 쉽게 들었다.
“왜, 왜 이러십니까?”
장교는 혹시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낯빛이 해쓱해졌다.
기수는 미소 지으며 그에게 최대한 부드럽게 말했다.
“내가 알기 쉽게 자세히 설명을 해드리겠습니다. 자! 저기 양쪽 뺨이 다 부은 젊은 놈 보이시죠?”
“예. 보, 보입니다.”
“저놈은 가짜입니다. 뭐라고요?”
“가짭니다. 저놈은…”
“그리고 내 얼굴을 보십시오. 나는 진짜입니다. 뭐라고요?”
“지, 진짜입니다.”
“좋습니다. 가짜와 진짜가 어떻게 다른지 보여드리지요.”
기수는 장교와 약간 떨어져 선 후 양손으로 화류 태포련을 일으켜 사방팔방으로 한 바탕 불꽃 쇼를 펼쳐 보였다.
관병들은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섰다.
뜨거운 열기가 머리카락을 그을릴 것처럼 전해져 왔기 때문이다.
기수는 멍하니 입을 벌리고 있는 장교 쪽으로 돌아서서 말했다.
“진짜는 이런 식으로 싸웁니다. 하지만 가짜는 흉내도 못 내지요.”
“그, 그렇군요… 꿀꺽!…”
“자! 이제 저자들을 조정으로 압송하고 보고서를 쓰겠습니까? 아니면 나를 붙잡고 조산가 뭔가를 하겠습니까?”
그러면서 손바닥에 화염 한 덩이를 만들어 이글이글 타오르게 했다.
장교는 기수의 얼굴과 화염, 그리고 가짜를 번갈아 보더니 바른 선택을 했다.
“즉시 상부에 보고하겠습니다!”
기수는 한 번 더 조사니 뭐니 하는 소리가 나오면 그냥 확! 다 엎어버릴 생각이었다.
“후후… 잘 생각하셨습니다.”
그리고는 곧장 몸을 날려 포정사 밖으로 나갔다.
괜히 더 있어봤자 귀찮게 시간이나 끌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성을 벗어나 포구를 향해 걸으면서, 기수는 통쾌하게 한 차례 웃었다.
“하하!… 나. 너무 대단한 거 아냐?”
꽤나 골치 아플 거라고 예상했던 일이 쉽게 잘 풀려서 다행이었다.
포구 근처까지 당도한 기수는 등 쪽이 밝아지는 느낌에 뒤를 돌아보았다.
불이었다.
조명도, 가로등도 없는 시대이다 보니 불이 나면 도시 밖에서도 잘 보였다.
기수는 그 지점이 바로 자기가 떠나온 포정사 쪽이라는 사실에 놀랐다.
‘분명히 모두의 무공을 폐했는데…’
기수는 급히 경공을 펼쳐 온 길을 되돌아갔다.
불이 난 곳은 분명히 포정사였다.
담을 넘어 들어가 보니 피 냄새가 확! 풍겨왔다.
그가 떠나온 자리.
수십 구의 관군 시체가 나뒹굴고 있었다.
그리고 포로로 잡았던 가짜 무리도 전부 다 죽어 있었다.
‘도대체 누가!…’
기수는 관군 시체들 중에서 자기를 조사하겠다고 했던 장교를 발견했다.
조정에 보고를 하기로 한 계획은 다 틀어져버리고 만 것이다.
궁금한 점은, 포로들도 모두 죽었다는 사실이었다.
기수는 기감을 끌어 올려 주변을 감지해 보았다.
‘역시…’
기수는 수십 개의 기도를 찾아낼 수 있었다.
무공 수준으로 보아 청탑산 패거리가 분명했다.
‘이놈들… 가짜 무리 주변에 동행하는 팀이 따로 있었구나.’
자기를 도발해서 끌어들인 이후에 포위공격하려고 준비를 해놓은 게 분명했다.
오늘 포정사에선 자신이 적들을 너무나 빨리, 전부 다 제압해버리는 바람에 외부와 연락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다.
기수는 일단 적의 규모부터 파악해보았다.
50명 정도. 상당히 위협적인 숫자였다.
하지만 현재 자신의 능력이라면 질 것 같지는 않았다.
‘좋아! 너희들은 함정을 팠다고 생각하겠지만 그 반대라는 걸 뼈저리게 느끼도록 해주마. 후후…’
상대 중에 장무검이나 사도가 있다면 모를까, 그게 아니라면 이제 은혈대법 상태의 청탑산 고수 정도는 겁나지 않았다.
이미 태선사에서 그들을 가지고 논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기수는 가짜 무리의 시신을 한 차례 훑어보았다.
그들 역시 청탑산 패거리가 죽인 게 분명했다.
‘내공을 운기하지 못하면 동료도 아니란 얘긴가?’
잔인한 행위였다.
청탑산 패거리가 지금은 단체로 몰려다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점조직으로 따로 운용되었기 때문에 서로를 알 기회가 없었고, 그래서 이런 행동도 가능했으리라 짐작이 되었다.
기수는 일단 한 차례 오행류 상생순환으로 기식을 정리했다.
그리고 강력하게 살기를 뿜어냈다.
‘와라! 네놈들에게도 죽음을 선사해주마!’
그의 도발에 곧바로 적이 반응을 보였다.
기수는 유성추를 빙글빙글 돌리며 그들의 도착을 기다렸다.
그런데 뭔가 심상치 않은 움직임이 감지되었다.
그들이 페이스를 조절하면서 대형을 갖추며 다가오고 있었다.
‘아하! 합격진으로 날 잡을 생각이었구나!’
기수는 무공에 자신이 있다고 해서 일부러 위험을 자초할 바보는 아니었다.
적의 의도롤 알아차린 즉시 선풍비를 시전하여 포정사 마당을 벗어났다. 한 놈 한 놈은 자신 있다고 해도 은혈대법 상태의 합격진이라면 만만히 볼 수 없는 것이다.
적은 대형을 유지한 채 따라왔다.
그들의 선두가 보이자 기수는 피식 웃었다.
‘자식들. 그래도 태선사에서 교훈을 얻긴 했구나.’
그러나 여러 사람이 기수의 경공 속도를 따라붙으면서 대형까지 유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기수는 충분히 간격을 벌렸다가 적당히 속도를 늦춰 적이 가까이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대형이 완성되기 직전에 공격하고 다시 멀어지는 방식으로 한 놈씩 적을 제압해 나갔다.
쫓아오는 자들이 늑대무리라고 한다면, 기수는 빠르기는 독수리에 파워는 불곰이라고 할 수 있었다.
따라가자니 너무 빠르고, 막상 붙으면 한 방에 나가 떨어지니 청탑산 무리의 수가 아무리 많아도 소용이 없었다.
답답했던지 그들 중 한 명이 외쳤다.
“왜 자꾸 도망치느냐? 당당하게 맞서 싸울 용기가 없느냐?”
기수는 간단하게 대답했다.
“응.”
고작 용기 어쩌구 하는 말 몇 마디로 자기를 세우려 한다는 게 가소로웠다.
‘너희들이 느린 건데 나보고 어쩌라고? 후후…’
패턴에 익숙해진 기수는 공격의 다양성을 시험해 보았다.
유성추로 면상 박살내기가 제일 재미있었고, 때로는 화류 태포련으로 불덩이를 만들어주기도 했다.
그리고 인터발이 긴 기술인 비폭대라수도 실전에 써먹어보았다.
기수식의 위압적인 기운에 놀라 선뜻 공격하지 못하고 경계하던 적 무리는 곧바로 쏟아진 유성우 폭포 강기에 비명을 지르며 나뒹굴었다.
‘이거 쓸 만 한데…’
관통력은 파천강기만 못하고, 폭발력은 화류 태포련만 못한 데다 시동에 긴 시간이 걸려서 실전용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써보니까 다수의 적을 상대할 때 꽤 효과적이었다.
그런 식으로 수가 많은 쪽만 일방적으로 사상자가 발생하는 추격이 이어지자 청탑산 무리도 더 이상 바보짓을 하지 않았다.
휘파람 신호에 멈춰 서더니 사방으로 산개하여 도망치기 시작했다.
기수는 씩 웃었다.
“포기가 너무 빠르잖아?”
이것 역시 태선사 이후에 추가된 대응책으로 보였다.
합격진으로면 공격해라. 잘 되지 않으면 포기하고 도망쳐라.
그러나 기수는 그들을 보내줄 마음이 없었다.
이젠 쫓고 쫓기는 쪽이 반대로 되어서 파천강기가 난무했다.
등을 보인 상태로는 기수의 그 공격을 피할 수 없었다.
결국 돌아서서 싸울 수밖에 없는데, 합격진이 무너진 상태에서의 대결은 청탑산 무리에게 있어 절망적이었다.
“너희들로는 안 돼. 우두머리한테 직접 나서라고 해!”
기수는 종횡무진 뛰어다니며 도망치는 적들을 격살했다.
결국 동이 틀 무렵까지 이어진 역추격 끝에 기수는 30여명의 적을 죽이는데 성공했다. 태선사의 참사 이후 대응방식을 바꿨다고 해봤자 무공 차이를 넘어설 수는 없었던 것이다.
기수는 그들의 시신과 포정사의 가짜 무리를 엮어서 관에 넘기고 싶었다.
가짜 무리가 다 죽어 없어졌다고 해서 일이 끝난 게 아니라 누명까지 벗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구한테 넘겨야 할지, 또 30명을 죽인 것에 대한 해명은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하니 답답했다. 공무원과 또다시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
‘아! 이래서 관과 무림은 불가근불가원이라는 건가.’
이럴 떄 장군부 사람 하나쯤 옆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수는 일단 성안으로 들어가 종이와 필묵을 빌려 포정사와 제남 주변의 혈사에 대한 내용을 상세히 적었다.
그리고 안찰사 건물로 찾아들어가 그 서찰을 관청 기둥에 단검으로 꽂아놓고 빠져나왔다.
관에 내려진 자신에 대한 추포령만이라도 해제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긴 밤을 보내고 포구로 돌아오자 선장과 선원들이 기수를 반가이 맞았다.
“성안에서 불이 나서 걱정하던 참입니다.”
“다 잘 됐으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선장은 배를 출발시켰다.
진무와 연락이 되었다는 것이었다.
기수 입장에선 자기가 전부 다 해결한 다음이라 굳이 그를 만날 필요가 없었지만, 그래도 쾌속선을 다시 타보고 싶은 마음에 약속장소로 갔다.
1시간쯤 저어 간 어느 갈대밭.
두 대의 배를 마주 대고 기수는 쾌속선으로 옮겨 탔다.
전에 타던 선장에게는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돌려보냈다.
진무가 기수에게 말했다.
“걱정이 많으시지요? 도대체 어떤 놈들이 그런 몹쓸 짓을 하는지…”
“하하! 이젠 다 해결되었습니다.”
그러자 진무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요?”
“가짜 무리를 모조리 잡아 죽였습니다.”
진무는 자기 일처럼 기뻐해주었다.
“아! 다행이군요! 정말 잘 하셨습니다. 하하하!… 안 그래도 합비에서 그런 일이 있다는 보고를 듣고 얼마나 신경이 쓰였는지 모릅니다.”
기수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합비라니요?”
“어저께 가짜가 출몰한 곳 말입니다.”
“어제?”
기수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시간 상 합비에서 제남까지 이동했을 리는 없고, 또 다른 가짜 팀이 운용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이 새끼들이 정말…’
기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