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hwa Manri RAW novel - Chapter 478
쾌속선은 합비로 이동했다.
진무와 함께 습격당한 관청을 멀찍이서 둘러본 기수는 적이 자기를 정말로 잡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때까지는 이 짓거리를 멈추지 않을 게 분명했다.
‘좋아. 네놈들 소원을 들어주마.’
기수는 태선사와 어제 제남 포정사에서의 실전을 거치면서 적과의 싸움에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
100이고, 200이고, 오면 오는 대로 전부 다 상대해 주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이 귀찮고 번거로운 올가미를 속히 벗어나고 싶었다.
기수는 진무에게 배에서 사나흘 정도만 기다리도록 했다.
그리고 자기는 혼자 성 동쪽에 있는 함산으로 올라갔다.
그다지 높지는 않지만 능선이 넓게 퍼져 있는 산이었다.
기수는 우선 봉우리들을 따라 산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진입로외 퇴각로, 그리고 싸울 장소들을 미리 확인해두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산을 내려가 밥을 먹고 휴식을 취한 뒤, 다음 날 새벽 건량과 물을 싸들고 다시 산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주변 지형을 한 번 더 확인했다.
아무리 전투에 자신이 있어도 자기는 혼자이기 때문에 조심해둬서 나쁠 건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가장 높은 봉우리에 오른 기수는 바위 위에 정좌하여 앉은 후 운기조식을 했다.
같은 운기조식이라고 해도 산에서 하는 게 효율이 더 좋았다.
나무가 많아서 공기가 다르기 때문인지, 다른 요인이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평지에서 하는 것과 뭔가 분명히 달랐다.
오랜만에 세 단전 모두 상쾌한 기운을 들이마시고 나니까 기분뿐만 아니라 몸 컨디션도 최상으로 느껴졌다.
‘좋아! 너희들 다 죽었어.’
기수는 오행류 상생순환을 시작하면서 살기를 마음껏 발출했다.
적을 유인하는 것이었다.
가짜 무리가 범행을 저지른 후 아직 합비 주변에 남아 있을 가능성은 없었다.
하지만 범인은 범행장소에 다시 나타난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상황 보고할 부하를 남겨두었을 게 분명했다.
청탑산 고수라면 자신의 기도를 얼마든지 읽을 것이고, 보고를 해서 패거리를 불러 모을 것이다.
그래서 기수는 음식까지 싸다 놓고 본격적으로 상생순환을 하기로 한 것이다.
상생순환은 운기조식과 달리 언제든지 중단해도 상관없고, 주변 여건에 신경을 분산시켜도 위험해지지 않았다.
적이 언제 와도 대응 가능한 상태로 고밀도 연공을 이어갈 수 있는 것이다.
한 시간, 두 시간, 정오가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기수는 순환을 멈추지 않았다.
적이 언제 올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인지 긴장감이 유지되어서 시간이 금방 흐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오후가 되자 기수는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물과 음식을 조금 먹었다.
그렇게 해가 지고, 달이 뜨고, 다시 다음날 해가 떠도 적의 반응은 없었다.
기수는 평온한 마음으로 어제의 일과를 반복했다.
막상 아무도 없는 깊은 산에서 수행을 하니까 기분이 비할 바 없이 평온해졌다.
‘가끔씩은 이렇게 혼자 시간을 보내야겠는데?’
그런 생각을 할 즈음 고수의 기도가 감지되었다.
모두 세 명. 그들은 조심스럽게 기수가 수행하는 봉우리로 다가왔고, 정상에서 400m 정도를 남긴 상태에서 멈췄다.
기수는 피식 웃은 후 수행을 계속했다.
‘내가 바로 너희들이 찾는 사람이야. 그러니까 어서 패거리를 불러 와.’
세 명은 거리를 좁히지 않고 한참 동안 관찰하다가 산을 내려갔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적의 수가 점점 늘어나는 게 느껴졌다.
기수는 싸온 건량을 전부 먹고 호리병에는 샘물을 새로 채웠다.
결전의 시간이 다가옴을 느낀 것이다.
정오 무렵이 되자 적의 수는 두 배, 네 배씩 빠르게 증가했다.
기수는 수행을 중지했다.
자신을 잡기 위해 가짜 놀이까지 한 그들이기에 이번 전투에 상당한 전력을 집중할 게 분명했다. 자기도 신중하게 대처할 필요가 있었다.
적의 수가 100을 넘어가자 기수는 이동을 시작했다.
첫 번째 목표자점은 바로 적의 집결지였다.
강력한 기도와 함께 선풍비로 파고들자 적은 크게 당황했다.
아직 대처 전술이 정해지지 않았는데 목표물이 무서운 속도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기수는 선풍비 상태에서 전신에 천기오뢰강을 두르고 적이 밀집된 지역에 비폭대라수를 시전했다.
세 개의 단전이 따로 운용되기에 가능한 콤보 공격이었다.
인터발이 있기는 했지만, 적은 기수의 수법을 모르기에 적절한 대응이 불가능했다.
파파파파파팟!……..
요란한 파열음과 함께 비명이 난무하고 피가 사방에서 튀었다.
기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좋았어!”
긴박한 전투상황에서 써먹기는 쉽지 않겠지만, 지금과 같은 때 적에게 막대한 타격을 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아주 마음에 들었다.
기수의 공격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스피드를 늦추지 않고 적진을 관통하면서 양손으로 화류 태포련을 강력하게 뿜어냈다.
“크아악!…”
“으악!”
불길에 휩싸인 적은 비명을 지르기 바빴다.
기수는 불길에 휩싸인 자들, 처음 비폭대라수에 부상당한 자들을 향해 발칸포 속도로 파천강기를 난사했다.
부우욱~! 하는 발사음과 함께 또 한 번 피가 튀었다.
기수는 그 와중에 천기오뢰강에 가해지는 압력을 여러 차례 느꼈다.
‘이놈들 은혈대법을 끌어올렸구나.’
돌파당하는 중에도 반격을 가하는 놈이 있다면 오래 머물 이유가 없었다.
기수는 처음 계획대로 속도를 늦추지 않고 적진을 관통했다.
슬쩍 돌아보니 한 번의 습격으로 전투불능 상태로 만든 게 10명은 넘을 것 같았다.
부상자는 그보다 배는 많았다.
기수는 그들을 지나 남쪽 봉우리로 올라갔다.
그러나 꼭대기까지는 올라가지 않고 중간쯤에 멈춰 섰다.
적이 따라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부상자를 돌보고 대형을 유지할 뿐 기수 쪽으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이대로 도망쳐도 상관없다는 건가?’
적이 겁을 먹고 조심하는 건 확실했다.
그러나 기수가 바라는 대응은 아니었다.
‘죽을 줄도 모르고 따라올 때가 재미있었는데…’
기수는 한 번 더 폭격을 해볼까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처음만큼 재미를 볼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망설이고 있는 사이, 또 다른 기운들이 감지되었다.
‘어라? 이놈들 봐라?’
산 아래 모여 있는 놈들과 비슷한 수의 적들이 두 군데 더 집결하고 있었다.
동원된 인원의 규모가 예상보다 훨씬 많은 것을 보니 단단히 작정을 한 것 같았다.
‘그래. 좋아. 오늘 여기서 끝장을 보자.’
기수는 두 번째 집결지를 향해 경공을 펼쳤다.
그리고 처음과 똑같은 돌파를 시도했다.
그들 역시 수십 명의 사상자를 내며 관통 당했다.
기수의 전술에 대해 정보 공유할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기수는 세 번째 집결지도 같은 방식으로 망가뜨리고 근처의 높은 봉우리로 올라갔다.
적은 피해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따라오지 않았다.
기수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이놈들. 지금 배짱부리는 건가?’
이미 상당수의 사상자를 냈으니까 자기는 이대로 함산 능선을 넘어가 버려도 그만이었다. 적만 일방적으로 피해를 입은 채 이번 접전이 끝나게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따라오지 않는 것은 자기가 그냥 떠날 리 없다고 판단하는 것 같았다.
기수 입장에선 골치 아픈 누명을 계속 만들어내는 가짜 무리를 깨끗이 처단하고 싶은 게 사실이었다.
그가 망설이고 있을 때, 멀리서 또 다른 움직임이 감지되었다.
‘설마…’
기수는 기척이 느껴지는 곳으로 이동해보았다.
또 다른 무리들이 집결하고 있었다.
그곳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지점에서도 기도들이 드러났다.
대략 감지하기에 적어도 여덟 곳, 많으면 열 곳에서 기척들이 느껴졌다.
어쩐지 대응에 시간이 좀 걸린다 했더니 준비를 철저히 하느라 그런 모양이었다.
‘나 하나 잡겠다고 도대체 몇 명이나 불러 모은 거야?’
기수는 두려움을 느꼈다.
100명은 우습고, 200명도 겁날 것 없지만, 만약 적이 십면매복을 준비했고, 총 인원이 800명에서 1,000명 정도 된다면 그건 얘기가 달랐다.
자신의 무공이 아무리 고강하다고 해도 한계가 있기 마련인데, 혼자서 군대를 상대로 싸워서 과연 이길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미국도 월남한테 결국 졌는데… 소련도 아프가니스탄에서 망했고…’
군사력이 강하고 무기가 뛰어나도 전쟁의 승패는 예측할 수 없는 것이다.
기수는 경공을 펼쳐 봉우리 하나를 넘었다.
그쪽 지점에서 보니까 적은 분명히 함산 전체를 포위하는 대형으로 집결하고 있었다.
‘모으느라고 수고했다. 후후… 그럼 난 이만!’
기수는 위험을 자처하지 않기로 마음먹고 산을 넘었다.
그러나 잠시 후 걸음을 멈추었다.
‘천 명이면 내가 쫄아야 하나?’
등을 보인다는 게 영 기분 나빴다.
산 전체를 포위한다고 해도 어차피 자신과 접촉할 적의 수는 십여 명에 불과할 것이다. 그 정도라면 얼마든지 제압할 수 있고, 적의 수가 많아지면 경공으로 빠져나갈 자신이 있다. 그런데 뭐가 두렵단 말인가.
기수는 심호흡을 한 번 했다.
‘그래. 씨발! 함 해보자!’
적이 많이 모였다는 것은 이 전투에서 이길 경우 그만큼 큰 타격을 입힐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이런 기회가 언제 다시 있겠는가.
그리고 미국과 월남을 비교하자면 자기가 월남군 쪽이라고 할 수 있었다.
적이 수적 우위로 몰아붙여도 자기는 민첩한 기동력을 바탕으로 게릴라전, 빨치산 전투를 벌이면 되는 것이다.
싸우기로 결심하자 심장 박동이 빨라졌고, 기분도 아주 좋아졌다.
기수는 자신의 돌파를 경험해보지 못한 다른 무리들을 차례차례 유린하기 시작했다.
‘역시 도망치지 않기를 잘했어.’
기수는 적이 10개 지점에 집결한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그들 모두에게 타격을 입히는데 성공했다.
숫자가 아무리 많아도 늑대는 곰에게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기분이었다.
보통 곰이라면 포위공격을 당해 위험해질 수도 있겠지만 자신은 독수리의 스피드를 가진 불곰이었다.
늑대 무리가 아무리 많아도 스피드에서 따라붙지 못하는 이상 질 리가 없는 것이다.
적 진형에도 변화가 생겼다.
집결이 모두 끝났는지 본격적으로 포위진형이 가동되기 시작한 것이다.
기수는 고지대로 올라가 그들의 움직임을 확인했다.
‘후후… 토끼몰이라도 하자는 건가?’
피식 웃음이 나왔다.
기수는 몸을 한 차례 풀어준 후 단전의 상태를 확인했다.
이 대결의 관건은 적이 아닌 자신에게 달려 있다고 봐야 했다.
전력의 우열은 이미 확인된 상태.
문제는 적을 모두 없앨 때까지 버틸 지구력이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일단 현재로선 전혀 부담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파천강기와 화류 태포련 사용은 자제해야 하겠군.’
기수는 유성추를 꺼내어 줄의 길이에 익숙해지도록 몇 차례 던졌다 받아보았다.
그리고 적진을 향해 달려 들어갔다.
기수가 나타나자 적들은 소리를 지르며 서로를 독려했다.
“놈을 막아라!”
“자기 자리를 지켜라!”
기수는 그들의 전술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열세를 인정하고 버티면서 장기전으로 가는 것이었다.
기수 입장에서도 막상 적이 작심하고 지키니까 만만치 않았다.
압도적인 파워의 기술들을 쓰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도 무공의 고하는 분명했다.
기수의 유성추는 적의 빈틈을 예리하게 파고들었고, 어김없이 비명을 만들어냈다.
기수는 서너 명 정도를 쓰러트린 이후에는 경공을 펼쳐 현장을 벗어났다.
자신을 에워싸기 위해 다가오는 다른 무리가 감지되었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빠른 선풍비. 거기에 심원한 내공이 더해져서 거의 새처럼 날아다닌다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
청탑산 고수 중에도 몇몇 빠른 자들이 있었지만 대형을 유지한 채로는 기수를 추격할 수 없었다.
그렇게 한 시간, 두 시간이 지나면서 날은 점점 어두워졌고 유성추에 맞아 쓰러진 자의 수도 계속 누적되었다.
기수는 협곡으로 들어가 잠시 쉬고 호리병에 계곡물도 새로 채우면서 지금까지 자신이 잡은 적의 수를 세어보았다.
상당히 많지만, 적이 1,000명이라고 계산해보니 백분율로는 얼마 안 되었다.
‘아주 긴 싸움이 되겠군.’
그렇다고 해도 마음은 가벼웠다. 승산이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진원지기의 소모도 미약한 편이라서 나중에 식량만 조달할 수 있으면 결국엔 적을 전부 다 죽일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생겼다.
기수는 잠시 오행류 상생순환을 한 뒤 다시 움직였다.
반복되는 접전.
기수를 지치게 만들려는 적의 시도는 무모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유성추 실력 향상을 위한 스파링 파트너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렇게 꼬박 밤을 새고 새벽이 되자 기수는 청탑산 무리의 기도가 어제만 못하다는 사실을 감지할 수 있었다.
‘후후…. 나보다 너희들이 먼저 지치는구나.’
은혈대법의 지속시간이 다 끝나면 일은 더 쉬워질 것이었다.
그런데, 아침 해가 높이 떠오를 즈음 예기치 못한 변수가 나타났다.
소름이 돋을 정도의 강력한 기도가 감지된 것이다.
‘고수다!’
기수는 비로소 적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적은 자신을 지치게 만들려는 게 아니라 고수가 도착할 때까지 잡아두려 했던 것이었다.
기수는 강한 호기심을 느꼈다.
‘이건 장무검의 기도와는 다르다. 사도 중 한 명인가?’
확인할 방법은 단 하나.
기수는 고수의 기도 쪽을 향해 다가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