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hwa Manri RAW novel - Chapter 480
우세를 점한 사도의 입에서 웃음이 흘러나왔다.
“흐흐흐…. 혈매궁주. 넌 오늘 내 손에 끝났다.”
“웃기지 마라!”
“우선 두 다리를 잘라주마. 그래야 도망을 못 치겠지? 흐흐… 너를 사로잡아 가면 주군께서 몹시 기뻐하실 것이다.”
“흥! 네 꿈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상황은 좋지 않았다.
사도는 청탑산 무리들과 근본적으로 다른 무공을 사용하고 있었다.
한귀비와도 달랐다.
청룡도의 초식도 그렇고, 은혈대법을 쓰지 않는다는 점도 그가 일양심법이 아닌 다른 계열의 무공을 익혔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었다.
관건은 그가 한귀비보다 더 고수라서, 기수는 정신이 집중된 상태에서 겨우 미세한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지금 같이 전세가 역전되고, 지원군까지 도착한다면 정말 잡혀서 다리를 잘릴 게 분명했다.
‘정신 차려! 아까처럼 집중하면 부하들이 도착하기 전에 이길 수 있어!’
기수는 이를 악물고 공세를 강화했다.
진기를 아끼기보다 열세에서 벗어나는 게 더 중요하다는 생각에 수류 태포련을 써서 상대의 청룡도 움직임을 둔화시키고 그 사이 파천강기를 날려 눈을 공격했다.
사도는 흠칫 놀라 청룡도를 거두어들일 수밖에 없었다.
비장의 수법을 공개했다는 점은 아쉽지만, 그 반격으로 인해 상황은 또 달라졌다.
기수의 공세가 이어지자 사도는 방어에 치중하며 물러섰다.
“흐흐흐…. 쉽게 잡히지는 않겠다는 거냐?”
“닥쳐라! 나야말로 네놈의 두 다리를 잘라주겠다!”
그러나 상황은 여의치 않았다.
사도가 갑자기 태도를 바꾸어 텐 백의 수비축구를 시작한 것이다.
부하들이 도착하면 이길 수 있는데 왜 모험을 하겠냐는 의미였다.
그의 그런 태도가 기수를 더욱 불안하게 했다.
‘한 번 더 수류 태포련을 써서 움직임을 제한한 후 도망칠까?’
그게 현실적으로 가장 현명한 대처법이라고 할 수 있었다.
문제는 복면 안에서 노려보고 있는 상대의 두 눈.
마치 자신의 속마음을 알기라도 하는 것처럼 두 발을 주시하고 있었다.
‘혹시 저놈도 비장의 수를 숨겨두고 내가 등을 보이기만 기다리는 거라면?’
소름 끼치는 일이었다.
실력이 비슷한 상대에게 등을 보이는 것은 안 그래도 위험한 일인데, 사도의 청룡도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기는 공격범위가 상당히 넓었다.
망설이는 사이, 청탑산 무리는 더욱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것도 하나가 아니었다.
남서쪽에서 또 다른 무리가 다가오고 있었다.
이번엔 10명 미만으로 느껴졌는데, 무공은 오히려 30명 쪽보다 더 고강한 것 같았다.
“젠장!”
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 할 수 있었다.
기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어차피 죽을 거라면 등이 아닌 앞쪽에 칼을 맞고 죽겠다고 선택한 것이다.
‘씨발! 12명 중 10명이나 잡았는데… 마지막 두 고비를 넘기지 못하다니…’
분통 터지는 일이었다.
엄마에게 미안하고, 그 많은 미녀들을 놔두고 죽는다는 게 억울하기도 했다.
기수는 눈앞의 거인을 노려봤다.
‘네놈만큼은 곱게 살려두지 않겠다!’
죽음을 각오한 이상 마지막 남은 진기 한 방울까지 다 짜내서 기어이 죽이고 말겠다는 각오를 한 것이다.
그러는 사이 일단의 무리가 도착했다.
사도에게 군례부터 올리는 것으로 보아 청탑산 패거리가 분명했다.
그들은 별도의 지시가 없었음에도 순식간에 포위대형을 만들었다.
“으으…”
기수는 침음성을 흘렸다.
20여명, 거의 30에 가까운 인원이 구성한 합격진은 가공할 위력을 뿜어냈다.
이제 도망친다는 옵션은 사라져버린 것이다.
‘역시 나 혼자 해결하려고 했던 건 무리였나?’
적의 준비상태를 너무 경시했다는 후회가 일었다.
‘젠장! 일 대 일로는 이길 수 있는데!!!’
그러나 이제 와서 돌이킬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거인이 놀리는 어조로 말했다.
“흐흐흐…. 포기해라. 덜 고통스럽게 잘라주마.”
“숫자 좀 늘어났다고 너희들이 이길 것 같으냐? 어림도 없다!”
기수는 더욱 힘을 냈다.
그리고 등 뒤의 포위망 펼친 자들을 향해 간헐적으로 파천강기를 날렸다.
사도의 부하들은 그 위력에 놀라 함부로 간격을 좁히지 못했다.
그러나 설상가상.
나중에 기도가 감지된 두 번째 무리가 현장에 도착했다.
그들은 공터에 내려서기도 전에 합격진부터 구성했는데, 그러자 그 압도적인 기도가 폭발적으로 뿜어져 나왔다.
‘이건 또 뭐야? 씨발…’
어째서 더 강한 적이 계속 나타나는 건지, 하늘이 원망스러웠다.
그런데 뭔가 좀 이상했다.
그들이 뿜어내는 기도가 어딘가 낯설지 않았다.
그리고 마주 보는 거인의 눈빛이 흔들리고 있었다.
기수는 등 뒤의 상황이 궁금했지만, 뒤를 돌아볼 여유가 없었는데, 지옥에서 부처님을 만난 것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궁주! 우리가 왔어!”
깜짝 놀란 기수는 결국 뒤를 돌아보았다.
바로 사매들이었다. 그녀들이 매화 팔괘진을 형성하며 공중에서 뛰어내리고 있었다.
“너, 너희들!….”
“궁주! 앞을 조심해!”
기수는 청룡도의 기운을 느끼고 즉시 거인을 맞아 싸웠다.
‘사매들이다! 사매들이 왔어! 신이여 감사합니다!’
기수는 벅찬 감격에 눈물까지 한 방울 찔끔 흘렸다.
그녀들이 도대체 어떻게 해서 여기로 오게 된 건지 몹시 궁금했지만, 일단 적을 처치하는 게 급선무였다.
기수는 당황한 사도를 몰아붙였다.
“나야말로 네놈의 두 발을 잘라주마!”
상황이 역전되자 밀리는 건 오히려 그쪽이었다.
“흥! 웃기지 마라! 내가 네놈 따위에게…”
거인이 갑자기 힘을 내기 시작했다.
등 뒤에서 연달아 들려오는 비명소리.
그것은 혈매궁 여인들이 먼저 도착한 청탑산 패거리를 일방적으로 척살하는 소리였다.
은혈대법 끌어올린 30명과 매화팔괘진의 8명은 수적으로 거의 4배 가까이 차이가 남에도 불구하고 사매들이 우세한 싸움을 이어가고 있었다.
돌아보지 않아도 상황이 감지되었다.
그것은, 조금 전 기수가 느꼈던 절박함을 거인 사도가 느끼게 된다는 의미였다.
그래서 사력을 다해 상황을 타개해 보려는 것이었다.
기수는 잠시 그가 날뛰도록 여유를 주었다.
워낙 무지막지한 파워를 가진 놈이라 괜히 조급하게 잡으려고 하다가 부상이라도 입게 될까봐 안전한 길을 택한 것이다.
‘이렇게 역전될 줄은 몰랐지? 이놈아.’
기수는 집중력을 끌어 올려 사도의 움직임을 제한했다.
사도의 공세는 그 어느 때보다 거셌다.
우르릉!… 콰르릉!….
청룡도 칼등에 장식된 용이 살아서 포효를 터뜨리는 것처럼 굉음을 내며 기수를 압박해 왔지만 기수는 스피드를 활용해 치고 빠지기를 반복했다.
아무리 파워가 강해도 맞추지 못하면 소용없는 일.
기수는 사도를 잡았다고 생각했다.
사도의 불안정한 눈빛은 기수의 그런 생각을 확신으로 바꿔주었다.
‘침착해야 돼.’
기수는 흥분하려는 자신을 다독이며 상대의 움직임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때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했다.
힘차게 내뻗은 사도의 청룡도 칼 부분이 분리되면서 사슬을 끌며 쑥! 파고든 것이다.
기수는 호신강기를 극한으로 끌어올리며 급히 뒤로 물러서서 칼날에 몸이 동강나는 상황은 면했지만 도기의 침투로 인해 내상을 입고 말았다.
“우웩!…”
피를 한 모금 토하자 거인 사도의 눈빛이 기광을 발했다.
“크하하하!….”
그의 청룡도는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서 마치 도리깨나 철퇴처럼 넓은 반경을 휩쓸며 공격해 왔다.
기수는 그 와중에도 냉정을 잃지 않았다.
칼자루가 칼 전체 크기에 비해 상당히 두꺼운데도 그런 장치의 존재를 짐작하지 못한 게 화가 났지만 내상은 그다지 깊은 편이 아니었다.
피를 뱉어내고 나니까 오히려 속은 더 편했다.
‘천기오뢰강을 배워둔 게 정말 다행이군.’
기수는 광포하게 변한 사도의 공세를 경공으로 피했다.
겉보기엔 내상을 입은 상태로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쩔쩔 매는 것 같지만 기수는 그 와중에도 반격의 찬스를 노렸다.
그러다가 거인 사도와 한 순간 눈이 딱 마주치고 말았다.
웃고 있던 그의 눈은 기수의 심원하게 가라앉은 시선에 흠칫 놀라는 듯 했다.
그리고 갑자기 청룡도와 자루를 한꺼번에 기수에게 던졌다.
기수는 그 사슬에 얽히지 않기 위해 훌쩍 뛰어 피해야 했는데, 그 사이 거인 사도는 잽싸게 뒤로 돌아 도망치기 시작했다.
기수로서는 당황스런 상황이었다.
이제껏 당당하던 그가 갑자기 도주를 택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기수는 황급히 그를 추격했다.
“거기 서라! 사내자식이 등을 보이다니, 부끄럽지도 않냐?”
그러나 상대는 오로지 경공에 집중할 뿐이었다.
사실, 이성적으로 판단하자면 도주가 현명한 선택이었다.
기습 성공으로 내상을 입히는 데까지는 성공했지만 의외로 피해는 경미해 보이는 상태. 게다가 혈매궁 여인들이 부하들을 쥐 잡듯이 하고 있으니 언제 가세할지 모르고, 무기도 분해되어서 원래의 위력을 발휘하기 어려웠다.
더 있어봤자 득 될 게 없는 것이다.
그러나 기수 입장에선 화가 나는 일이었다.
“덩치는 산 만 한 놈이 창피하지도 않냐? 사나이란 승리를 자신할 수 없을 때도 목숨을 걸어야 할 때가 있는 법이란 말이다!”
자기는 그랬는데, 상대는 도망친다는 사실이 왠지 억울했다.
기필코 잡아서 버르장머리를 고쳐주고 싶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선풍비가 상대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었다.
‘왜 이러지? 혹시 저놈이 경공 실력을 숨겼었나?’
그건 아닌 것 같았다.
원인은 바로 내상.
피 한 번 토한 후 별 문제없다고 생각했는데, 풀 스로틀을 겨루는 스피드 경쟁에서 그 차이가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었다.
‘이러다 놓치겠는 걸.’
기수는 고함치기를 멈추고 오로지 선풍비에만 집중했다.
그러나 전력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간격은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간격이 조금씩 더 벌어졌다.
‘혹시 내상이 심각한 거 아냐?’
그런 생각까지 들었다.
결국 기수는 추격을 포기했다.
그리고 멀어지는 거인 사도의 뒷모습을 보면서 진기를 한 차례 순환시켜 보았다.
운기에 불편함은 없지만 100%라고 보기는 어려운 상태.
오랜 전투의 누적된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오는 느낌이었다.
‘그래. 오늘은 보내주마. 하지만 다음에 만나면 절대 놓치지 않을 것이다.’
기수는 사매들에게로 돌아갔다.
사도가 도망쳐서인지 부하들도 사방으로 흩어져 도망치는 상태였지만 사매들은 여덟 명이나 되었고, 그들이 그렇게 하도록 놔두지 않았다.
마지막 한 놈까지 모두 처치한 후 여덟 명이 한 자리에 모였다.
“궁주!”
기수는 양팔을 벌렸고, 8명이 한꺼번에 달려들어 안기는 바람에 그들에게 깔리고 말았다. 그래도 마냥 좋았다.
기수가 탁지연에게 물었다.
“내가 여기 있는 건 도대체 어떻게 안 거야?”
“몰랐어. 우리는 적의 움직임을 추적하는 중이었어. 점점 많은 숫자가 집결하면서 한 곳으로 가기에 따라왔을 뿐인데, 여기 궁주가 있었던 거야.”
“하하! 그랬구나.”
“그런데 방금 피를 토한 것 같던데 괜찮아?”
“아! 경미한 내상이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기수는 8명을 모두 한 번씩 안아주었다.
입가에 피가 묻어 있어서 키스는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나서 물었다.
“그런데 너희들… 소항산에서 날 기다리기로 했잖아? 그런데 강호엔 왜 나왔어?”
“걱정 돼서 나왔지. 왜 나왔겠어?”
“무슨 걱정? 너희들 혹시 내가 진짜로 살인, 강도, 방화, 강간을 하고 돌아다닌다고 생각했던 거 아냐?”
8명이 동시에 양손을 내밀더니 격렬하고 가로저었다.
“아냐. 절대로 아냐.”
“강한 부정은 긍정인데… 너무 강해 부정이…”
“호호호!… 그나저나 궁주는 도대체 어디서 뭘 했기에 연락도 없었어?”
“나야 바빴지.”
“뭐 하느라고?”
8명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기수는 근엄한 표정으로 헛기침을 했다.
“어흠. 너희들 생각하는 그런 거는 아냐.”
“우리가 무슨 생각을 했는데?”
“무슨 생각을 했건, 무조건 아냐.”
사매들은 더 따지지 않았다. 대신 공주가 질문을 했다.
“그동안 우리 보고 싶었어?”
“당연하지!”
“누가 제일로 보고 싶었는데?”
이런 유치하고도 난감한 질문을…
기수는 8명을 차례로 훑어보았다. 목숨을 구해줘서인지 한 사람, 한 사람이 사랑스럽기 짝이 없었다.
그리고 그녀들의 특징과 특기들이 총천연색으로 좌르르 펼쳐졌다.
“므흐흐….”
“웃지만 말고 대답해 봐.”
기수는 다시 한 번 사매들을 훑어보았다.
그리고 한 여인에게 시선이 고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