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hwa Manri RAW novel - Chapter 489
기수가 허창으로 복귀해보니 이미 무림맹은 천마교보다 먼저 돌아와 있었다.
“수고하셨습니다! 하하하!….”
주일비는 장도독과 환담을 나누고 있다가 웃는 얼굴로 기수와 혈천제를 맞았다.
표정을 보아하니 꽤 전과를 올린 듯 했다.
“동이 틀 때까지 계신 걸 보니 꽤 힘든 싸움을 하셨나봅니다.”
“예. 그런 편이었습니다.”
“사상자도 많이 생겼나요?”
기수는 그가 장도독 앞에서 곧바로 수치 비교부터 하려는 걸 알고 살짝 기분이 상했지만, 한편으로는 그의 원래 성격을 알기에 이해도 되었다.
옆에서 혈천제가 대신 말했다.
“우리 교도 중 4명이 죽고 17명이 다쳤어요.”
“저런…! 애도를 표합니다.”
“무림맹에도 사상자가 생기지 않았나요?”
혈천제도 수치 비교를 하고 싶어 했다.
주일비는 어두워진 표정으로 대답했다.
“29명이 죽고 56명이 다쳤습니다.”
“아!… 피해가 컸군요.”
혈천제는 괜히 물어봤다 싶어서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주일비가 손을 내저었다.
“전과를 올리려면 피해는 불가피한 일이지요. 대신 위주의 군량과 치중을 상당 수 태웠고 반군 수백 명을 죽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청탑산 패거리도 10여 명이나 처치했으니 그들의 희생이 헛된 것은 아닙니다.”
주일비는 자랑스러워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쳐들었고, 장도독이 옆에서 칭찬으로 분위기를 띄웠다.
“정말 대단합니다. 무림맹 덕분에 병사들의 사기가 충천합니다.”
기수와 혈천제는 서로를 바라봤다.
어떻게 얘기를 꺼내야 할지 곤란했기 때문이다.
그런 두 사람의 표정을 보면서, 주일비는 의기양양 했다.
이번 위주 습격은 자신의 치적 중 하나로 손꼽을 만 한 것이었다.
그는 본래 개방 방주이기 때문에 위주 내부에서 벌어지는 일들과 반군의 병력 배치 등을 떠나기 전부터 손바닥 들여다보듯 훤히 알고 있었다.
위주 분타의 거지들이 완벽한 보고서를 올렸던 것이다.
그 보고를 바탕으로 습격에 대한 중요도와 순서, 그리고 퇴각로까지 완벽하게 구상한 후 성공적으로 마무리 할 수 있었다.
무림맹 중 그 누구도 이만큼 뛰어난 전략을 짤 수는 없을 것이었다.
기수와 혈천제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주일비가 물었다.
“양현에도 청탑산 무리가 있었습니까?”
기수는 대답을 망설였지만 혈천제가 고개를 들고 말했다.
“예. 140명 정도 되었던 것 같아요.”
“그 중 몇 명이나 죽이셨습니까?”
“90에서 95명 정도예요. 정확히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주일비와 장도독은 눈을 둥그렇게 뜨고 혈천제를 봤다.
“그, 그게 정말입니까? 죽은 자들이 분명히 청탑산 무리였습니까?”
혈천제는 기수 쪽을 봤다.
자기를 빼놓고 단독행동 한 것에 대한 원망이 담긴 눈빛이었다.
기수는 입맛을 다신 후 말했다.
“100명은 채우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기병 500명 정도를 죽이고 말을 전부 노획했습니다. 그건 도독님께서 써주십시오. 저희들은 경공이 더 빠르니까…”
주일비와 장도독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기수가 없는 말을 지어낼 사람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장도독이 다시 물었다.
“양현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거기에 대한 대답은 혈천제가 했다.
“군량과 치중은 불태웠고, 반군은 절반 정도 도망치고 나머지는 죽였어요.”
“그, 그럼 지금 양현엔 누가 있습니까?”
“백성들만 남아있죠. 군량 중 일부는 태우지 않고 그들에게 나눠줬어요.”
기수가 청탑산 무리와 기병을 막아준 덕분에 혈천제와 천마교도들은 성안의 반군을 마음껏 박살낼 수 있었던 것이다.
주일비는 입을 꾹 다물었다.
무림맹이 천마교에 밀린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전과는 비교 자체가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그는 기수를 쳐다봤다.
이렇게 큰 차이가 난 이유는 단 하나.
절세고수의 유무였다.
주일비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자기가 경쟁 대상을 잘못 골랐음을 깨달은 것이다.
능력으로는 말할 것도 없고, 곤란해 하던 표정으로 유추해 보건데 자기를 배려하는 인간적 면모까지 갖추고 있었다.
‘무림맹주가 곧 천하제일인인 시대는 더 이상 아니로구나…’
주일비의 표정이 차츰 변했다.
일단 기수를 천하제일로 인정하고 나니까 마음이 편해진 것이다.
자기가 너무 쓸데없는 욕심에 매달려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고, 기수가 하자는 대로 따라가면 얼마나 편할까 하고 의지하는 마음까지 생겼다.
장도독은 무림맹과 천마교의 성공에 크게 고무되어 승전 축하연을 열었다.
주일비의 달라진 태도는 연회석상에서부터 나타났다. 기수에게 직접 잔을 채워 건배를 청했고, 표정도 밝아졌다.
기수는 그의 그런 변화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눈빛과 표정이 우호적으로 변했으면서도 너무 친한 척은 하지 않아서 좋았다.
연회 도중 석초가 장도독에게 말했다.
“도독님. 지금 양현이 비었는데 어째서 군대를 보내지 않으십니까?”
“전체적으로 우리 병력이 여전히 열세라는 점을 잊어서 안 되네. 높고 두터운 성벽의 이점을 포기하려면 승리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하는 걸세.”
석초는 장도독이 지나치게 신중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허창이 뚫리면 그 파급 효과가 엄청날 것이기에 결국 그의 판단이 옳다고 생각했다.
기수는 연회 내내 시선 처리가 힘들었다.
한동안 못 만난 자영, 그리고 욕구불만 상태인 무림맹 여인들이 계속해서 눈을 맞추고 신호를 보내려고 했기 때문이다.
피하려고 하면 도처에 천마교 여인들이 있었다.
결국 상 위의 요리를 내려다보거나 천장을 올려다볼 수밖에 없었다.
사실, 밤새 격전을 치르고 왔기 때문에 미녀 혹은 미녀들과 여흥 내지는 레크레이션을 즐기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기는 했다.
그리고 나서 한 잠 자면 아주 개운할 것 같았다.
‘천마교 쪽은 사찰에서 함께 지내기 때문에 아무래도 기회를 잡기 어려울 거야. 그렇다면 저자의 객잔에서 능소화나 만나볼까?’
일단 생각이 그렇게 정리되자 가슴이 막 두근거렸다.
그녀의 풍부한 수량과 오르가즘에서의 격렬한 반응이 기억난 것이다.
기수는 안 보는 척 하면서 슬쩍 능소화를 확인했다.
그녀는 뚫어져라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떻게 내 뜻을 전하지?’
중원에 온 이후로 지금처럼 문자 메시지 혹은 카톡이 아쉬운 적이 없었다.
연회가 한창인데 상석에 앉아있는 자신이 빠져나가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연회는 다른 요인으로 인해 중단되고 말았다.
전령 한 명이 다급히 뛰어 들어와 장도독에게 보고한 것이다.
“도독님! 급보입니다.”
전령은 도독에게 첩지를 전했는데, 그걸 본 장현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석초가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장도독은 그 첩지를 건네주었고, 석초 역시 내용을 읽어보고 깜짝 놀랐다.
기수가 받아서 혈천제, 주일비 등과 함께 본 첩지엔 개봉이 위험하니 즉시 원군을 보내라고 적혀 있었다.
반군은 방어태세가 완벽한 허창을 우회하여 개봉을 친 것이다.
석초가 장도독에게 물었다.
“그럼 위주, 양현, 상청에 주둔한 군대는 무엇입니까?”
“눈속임이었던 거지.”
기수는 둘의 대화를 듣고 침음성을 흘렸다.
3개 도독부의 병력이 전부 모였다고 보기엔 좀 적어 보인 게 사실이었다.
청탑산 무리도 자기를 잡으려고 1,000명 넘게 모였던 것을 생각하면 400명은 그 절반도 안 되는 수에 불과했다.
‘아! 이건 나의 실수다. 나머지 인원은 어디 있는지에 대해 좀 더 깊이 생각해봤어야 하는데…’
기수는 병법 책들을 많이 읽기는 했지만, 이런 식으로 실전에서 써먹는 것은 처음이라고 할 수 있었다.
나름 신중하게 접근했음에도 불구하고 부족한 부분이 나타난 것이다.
물론 자기가 총 책임자가 아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일 수도 있지만, 적어도 장도독에게 건의하거나 조언이라도 했어야 한다는 점에서 책임을 회피할 수 없었다.
기수는 자책 대신 대책강구가 중요하다 생각하고 장도독에게 물었다.
“이제 어떻게 해야 좋겠습니까?”
연회는 파흥이 되고 상석은 곧바로 전략회의실이 되어버렸다.
장도독이 잠시 생각한 후 말했다.
“원군을 보내야 합니다. 그건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개봉이 이곳 허창보다 훨씬 중요한 전략 요충지이고, 북경과도 가깝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적이 앞에 진치고 있는데…”
“일부 병력은 여기 남겨서 적이 점령하지 못하도록 해야겠지요. 아마도 놈들은 비밀리에 우회시킨 병력으로 개봉을 쳐서 우리를 끌어낸 뒤 위아래로 협공할 생각이었을 겁니다. 우리가 개봉에 원군을 보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고 말입니다.”
기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목적이었다면 현재 3개 현에 있는 병력 배치가 이해되었다.
장도독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개봉도 중요하지만 허창도 잃어선 안 된다는 게 문제입니다.”
만약 적이 통상적인 방식으로 허창을 공격했다면 비록 좌군도독부의 병력이 열세라도 성벽을 의지하여 얼마든지 견뎌냈을 것이다.
하지만 반군은 코앞 3개 현에 병력을 주둔시켜 놓고 절반의 병력으로 개봉을 치고 있었다. 늑대 세 마리가 지키고 있는데 집 밖으로 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든 것이다.
기수는 이게 적 진영에 있는 제갈세가의 계책이란 걸 알았다.
‘그놈들부터 없애야 한다!’
제갈세가의 가주 제갈청과 두 아들 제갈민, 제갈빈은 셋의 무공을 합친다고 해도 혈매궁 사매들 중 한 명도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일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머리는 무공보다 훨씬 무서웠다.
맨 처음 삼황맹을 끌어들인 것도 그들이고, 일이 여의치 않게 되자 사마연합을 결성했으며, 지금은 반군의 브레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때 제갈민이라도 죽였어야 하는 건데…’
난주에서 기회가 있었는데 잠시 한눈파는 사이에 사라져 버린 일이 있었다.
기수는 장도독에게 물었다.
“도독님. 현재 좌군 도독부 병력으로 삼군 도독부와 싸워 이길 자신이 있습니까?”
“어떤 상황이냐에 따라 다르겠지요.”
“허허벌판에서 협공을 당하는 경우라면요?”
장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런 상황이라면 승산이 없습니다.”
“그럼 포기하십시오.”
“예? 무엇을 포기하란 말씀입니까?”
“요행을 바라지 말아야 한다는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적은 분명히 우리의 욕구를 꿰뚫어보고 있을 겁니다. 개봉도 구하고, 허창도 지키고… 그렇게만 된다면야 더 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지금 적진엔 제갈세가가 있습니다. 그들이라면 우리가 원하는 바를 다 취할 수 있을 것처럼 꼬여내서 일망타진할 계획을 세워놓고 있을 겁니다.”
장도독이 침을 꿀꺽 삼켰다.
기수의 말은 지극히 현실적이었다.
둘 다 가지려고 하면 둘 다 잃게 될 것이다.
어찌 보면 지극히 상식적인 일인데 사람은 꼭 욕심을 내다가 일을 그르치는 것이다.
병력에서 열세인 좌군도독부가 개봉과 허창을 모두 지켜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휴우~”
장도독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현실은 그 불가능한 일을 해내야 한다는 게 문제였다.
기수가 말했다.
“제 생각엔 허창을 지키는 데 집중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개봉이 함락되면…”
“개봉도 함락되고 좌군 도독부도 몰살당하는 상황을 생각해보십시오.”
장현은 몸소리를 쳤다.
상상조차 하기 싫은 일이었다.
“이곳을 버리고 개봉으로 달려간다면 지리적으로나 전술적으로 그렇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개봉이 함락당하는 것은 아주 큰 일이지만 최악의 상황은 막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좌군 도독부 병력이 굳건하게 버티고 있다면 놈들이 개봉을 취한 뒤에도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할 것입니다. 등 뒤 허창에 병력이 버티고 있으니까요.”
“그렇긴 합니다만….”
“개봉은 지금 누가 지키고 있습니까?”
“도지휘사의 병력들입니다.”
“지휘관은 어떤 사람입니까?”
“이름은 전중이라 합니다. 사람됨이 침착하고 충성심이 깊어서 믿을 만 합니다.”
기수는 잠시 생각한 후 말했다.
“도독님은 무림맹과 함께 허창을 굳게 지켜주십시오. 제가 천마교와 함께 개봉으로 가보겠습니다.”
“하지만 적의 병력이 굉장히 많은데…”
“정면으로 싸울 생각은 없습니다. 상황을 봐 가면서 괴롭힌다면 개봉성 함락이 그리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만약 성 안에서 버텨주기만 한다면 곤란해지는 쪽은 오히려 반군이 될 것입니다.”
“아!…”
장도독은 암울한 순간에 희망의 빛을 보았다.
“그렇다면 내가 훈련시킨 정예기병을 데려가 주십시오. 3,000기에 불과하지만 기동력을 발휘하여 적을 교란시키기엔 충분할 것입니다.”
기병 3,000이라면 대단한 병력이었다.
“그들이 없어도 괜찮겠습니까?”
“반격을 포기하고 농성만 한다면 기병이 없어도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렇군요.”
그때 주일비가 의견을 제시했다.
“어제는 천마교가 궁주님과 동행했으니 이번엔 우리 무림맹이 동행하겠습니다.”
헐쳔제는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는 듯 눈을 부릅떴다.
그러나 기수의 생각은 달랐다.
혈매궁주, 천마교, 수로맹이 늘 붙어 다니는 것은 이미지를 고착시킬 수가 있었다.
자기는 정도 아니고 사도 아닌데 무림맹과의 동행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무림맹주가 먼저 말해주었다는 사실이 고맙기까지 했다.
“좋습니다. 이번엔 무림맹과 함께 가기로 하지요.”
그리고 섭섭해 하는 혈천제에게 말했다.
“교주님께서는 보살펴야 하는 난민들이 있으니까 성에 남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청탑산 무리가 성벽을 넘을지도 모르니까 각별히 신경 좀 써주십시오.”
혈천제는 기수의 마음이 정해진 것을 알고 그 뜻에 따랐다.
“알겠습니다. 허창은 우리가 지키겠습니다.”
그 즉시 연회는 끝나고 무림맹과 기병들은 출정 준비를 갖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