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hwa Manri RAW novel - Chapter 494
만만치 않은 고수와 절체절명의 대결!
거기에 더해서 기수가 신경 써야 할 일이 한 가지 더 있었다.
자기 주변엔 사매들이 없지만, 지금 성 아래엔 청탑산 패거리가 100여명이나 있는 것이다.
그들은 언제라도 성벽 위로 올라와 황호를 도울 수 있었다.
황호처럼 성벽을 단숨에 뛰어 오를 경공 능력은 없다고 해도, 사람이 100명이 넘으니까 어떻게든 방법을 강구할 것이다.
‘내가 유리한 모습을 보이면 진다.’
말도 안 되는 제약이 걸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수들끼리의 대결에서 한 번 기선을 제압당하면 그걸 회복하기가 얼마나 어려운데 비세를 유지해야 한단 말인가.
그러나 처음에 몰아붙이면 분명 청탑산 패거리들이 사다리를 놓건, 밧줄을 던지건 움직일 가능성이 컸다.
수비군이 활을 쏜다 해도, 전체를 다 죽이지 못한다면 십분지 일인 10명만 가세해도 싸움은 기울어져 버릴 게 분명했다.
“뭘 그리 골똘히 생각하느냐? 흐흐흐….”
황호가 한 걸음 내딛었다. 신중하기 짝이 없는 움직임이었다.
기수도 이젠 싸움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계속 지키다가 딱 한 번의 역습에 선제골이자 결승골을 넣어야 한다. 그게 유일하게 이기는 방법이야.’
싸우기 전에 그러 전략부터 세우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지만 현재로선 꼭 필요했다.
기수는 일단 천기오뢰강을 극한까지 끌어 올려 예리한 칼에 대비했다.
그리고 양손에 파천강기 몸에 붙는 버전을 만들어 양손 수도를 두 자루 검이 되도록 했다. 길이는 각각 일 미터 정도.
단순히 선제골만 중요한 게 아니라 진기 낭비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조건도 붙어 있었다. 육중한 중량에 예리한 도기까지 뿜어내는 상대의 칼을 막아내려면 현재 자신이 가지고 있는 능력 중에선 그게 최상이었다.
사람의 양 손에서 푸르스름한 막대기 같은 게 뻗어 나오는 것은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일인지라, 가까이에서 구경하는 수비군들은 탄성을 금치 못했다.
전중을 비롯한 무관들도 나름 무공을 익혔지만 기수의 그런 모습은 인간의 경계를 벗어난 것으로 보였기에 다들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마침내 시작된 격돌.
황호는 격렬한 공세를 펼쳤고, 기수는 방어에 집중했다.
“으윽….”
기수는 자기도 모르게 신음을 토했다.
몇 차례 정면으로 칼날을 받았다가 극도의 통증을 느낀 것이다.
상처가 난 것은 아니지만, 마치 세워서 때리는 철자를 손으로 막은 것처럼 뼛속까지 시린 고통이 전해져 왔다.
기수는 자기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칠 수밖에 없었다.
작전상 수세가 아니라 진짜 밀리는 것이었다.
‘파천강기와 천기오뢰강을 겹으로 펼쳤는데도 이 정도란 말인가.’
황호의 칼에 대해 새삼스레 두려움이 느껴졌다.
“어딜 도망가느냐?”
황호는 승세를 타고 대결을 끝내려 했다.
뒤로 밀리는 기수를 더욱 거세게 몰아붙였고, 기수의 뒷걸음질 속도는 점점 빨라졌다.
성 아래 반군들은 그 모습을 보고 응원하는 함성을 질렀다.
그에 반해 수비군은 경악성을 터뜨렸다.
기수가 금방이라도 대도에 두 동강이 날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위기감을 느낀 기수는 옹성을 따라 빙 둘러 피하다가 누각 기둥 뒤로 몸을 피하며 겨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가만! 이 기둥은 나무지?’
기수는 본능적으로 주저앉았고 그의 머리 바로 위로 아슬아슬하게 대도의 칼날이 지나갔다.
석벽도 부수던 칼이다 보니 아름드리나무는 무우나 당근처럼 잘려나갔다.
바닥을 구르던 기수는 황호의 칼이 밑을 쓸자 튕겨 올라가 망루 지붕을 뚫고 2층으로 올라섰다.
그러나 거기서도 숨돌릴 겨를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황호의 칼날이 망루 바닥을 창호지 찢듯이 마구 박살내기 시작한 것이다.
기수는 기와지붕을 뚫고 누각의 지붕으로 올라갔다.
황호는 단숨에 2층 망루와 지붕을 한꺼번에 꿰뚫는 점프로 기수 앞에 섰다.
“네 놈이 내게서 도망칠 수 있을 것 같으냐? 흐흐흐…”
“씨발….”
반군도, 수비군도 조용했다.
누각의 기둥을 베어 한 쪽을 무너뜨리고 두 사람 모두 지붕 위로 올라선 일련의 과정은 눈으로 따라가기 어려울 만큼 빠르게 진행되기도 했거니와 상식을 벗어난 모습이라 환호성이나 경악성을 지를 기회조차 잡을 수 없었다.
그저 놀라서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고 지켜볼 뿐이었다.
기수는 지붕 위에서나마 잠시 여유를 찾아보려 했지만 황호는 그렇게 해줄 마음이 없었다.
그가 바닥을 향해 칼을 휘젓자 박살난 기왓장들이 총알처럼 날아왔다.
“씨발!….”
같은 욕을 두 번 연속으로 하면서 기수는 호신강기를 더욱 끌어 올렸다.
중대 지원화기 십자포화를 한 몸에 받는 기분.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황호의 칼이었다.
기수는 난무하는 기왓장들 사이로 황호의 움직임을 보면서 수류 태포련의 유혹을 강하게 느꼈다.
‘한 번만 상대의 움직임을 늦추면 이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것은 강렬한 유혹이었다.
하지만 기수는 참았다.
자기가 단 한 번의 반격으로 역전골을 노릴 수 있는 근거가 바로 그 한 수이기 때문에, 절대 미리 보일 수 없는 것이다.
황호는 방금 기왓장을 먼저 날린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자신의 화류 태포련에 철저한 대비를 하고 있었다.
덩치는 산 만 한 놈이 상당히 미세한 부분에 대해서도 신중한 성격인 것이다.
기수는 이를 악물고 버텼다.
계속 위기에 몰려도 수류 태포련은 쓰지 않았다.
그러다가 숨 돌릴 다른 방법을 찾게 되었다.
발을 디딘 곳이 약하다는 느낌이 전해지자 기수는 그대로 천근추의 수법으로 지붕을 뚫고 내려갔다.
황호의 칼은 허공을 갈랐지만 그 역시 곧바로 기수를 따라 내려갔다.
그러나 기수는 망루 아래 1층으로 내려간 상태였고, 황호가 또다시 따라 내려가자 망루로 올라가는 식으로 경공실력을 발휘하여 급한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다.
“으아아!…..”
큰 체격에 길고 무거운 무기를 든 황호는 위아래로 피하는 기수를 쫓다가 갑자기 괴성을 지르더니 대도를 무식하게 휘둘러대기 시작했다.
콰르릉!… 쾅! 쾅!
요란한 굉음과 함께 누각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숨바꼭질 할 건물 자체를 없애버리는 것이었다.
기수 입장에선 기가 질리는 광경이었다.
반군과 수비군 구경꾼들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누각 전체가 무너져 내리는 데는 5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완전히 폭삭 주저앉은 잔해 위에서 황호가 칼을 빙글빙글 돌리며 말했다.
“자. 이제 다시 시작해볼까?”
기수는 그가 호흡 하나 거칠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러나 그는 자칫 약해지려는 자신의 마음을 다잡았다.
‘괜찮아. 나도 아직 진짜 능력을 다 발휘한 게 아니잖아. 겁먹을 거 없어!’
기수는 자신을 진정시키는 의미로 가볍게 이소룡 스텝을 뛰면서 ‘아비요~!’ 하면서 엄지로 콧방울도 한 번 쳐 줬다.
답답했던 마음이 좀 풀리는 기분이었다.
황호는 기수의 돌발 행동에 잠시 상황 파악을 하려는 듯 공세를 펼치지 않았다.
기수는 작정하고 먼저 그에게 돌진했다.
양손에 강기로 두 자루의 푸른 장검을 만들고 분광권의 초식들을 거침없이 펼쳐내기 시작하자 황호가 처음으로 뒷걸음질을 쳤다.
성벽 위의 수비군들은 엄청난 환호성을 질렀다.
“와아아!….”
금방이라도 기수가 황호를 쓰러트릴 거라고 기대한 것이다.
그러나 황호는 기수와 간격을 유지하기 위해 물러난 것일 뿐, 힘에서 밀려 물러난 게 아니었다.
대도가 바람을 가르면서 상황은 오래지 않아 백중세가 되었고, 차츰 그의 우세로 전환되었다. 결국 처음과 똑같은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크하하하!… 고작 이거냐? 혈매궁주도 별 것 아니구나.”
“닥쳐라! 네놈 정도는 당장이라도 때려눕힐 수 있다.”
“흥! 입만 살았구나. 불장난 할 겨를도 없는 주제에…”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황호는 일정 간격 이상으로는 접근하지 않았다.
길고 예리한 칼이 있으니 만에 하나라도 있을지 모르는 위험을 굳이 무릅쓰지 않겠다는 태도였다.
바로 그 태도가 기수에게 반격 준비할 여유를 주었다.
극한 대 극한의 대결에서 100이 아닌 99만 투입하고 1은 갑작스런 반격에 대비한다.
그것은 이제까지 기수가 계속 밀렸기 때문에 나온 전술이었다.
기수는 자신에게 기회가 왔음을 인지했다.
‘딱 한 번. 유일한 찬스다. 두 번째는 없어.’
기수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내공을 최대한 끌어 올렸다.
하단전은 천기오뢰강, 중단전은 파천강기, 그리고 상단전에 수류 태포련을 장전하고 기합을 내지르며 황호에게 달려들었다.
황호의 눈이 빛났다.
기수의 무모한 돌격에 제대로 된 응징을 가하리라 마음먹은 것이다.
황호의 대도가 정확하게 기수의 목을 찔러 들어갔다.
기수의 상체가 휘청이며 경로를 바꾸었지만 칼끝 역시 민첩하게 따라갔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황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뭔가 걸리는 듯 한 기분, 칼에 끈적거리는 뭔가가 달라붙는 듯 한 느낌이 들면서 칼끝이 원하는 만큼 움직여주지 않았다.
그로 인해 기수의 목을 찌르려고 했던 칼은 광대뼈 옆을 살짝 스치는데 그쳤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확! 하는 폭음과 함께 화염이 일었다.
황호는 흠칫했지만 호신강기를 극한까지 끌어 올리며 두 걸음 연달이 물러섰다.
그리고 칼을 휘둘러 기수를 베었다.
눈썹과 머리카락 좀 그을리더라도 상대의 허리를 동강내면 이긴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칼에 전해지는 느낌이 이상했다.
시야가 가린 사이 기수가 칼등을 잡은 것이다.
황호는 손목을 비틀어 기수의 손을 떨쳐내려 했다.
힘이라면 자신이 있기에 병기를 빼앗기는 일은 절대로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기수는 칼을 빼앗으려는 게 아니었다.
운룡비결의 청, 합, 반 요결에 따라 칼을 잡아당기는 척 하면서 오히려 되쳤다.
“으음!….”
황호는 손바닥과 손목에 전해지는 충격에 신음을 토했다.
단순히 되치기만 한 게 아니라 기수는 자신이 개발한 파동타법을 활용했다.
그로 인해 황호가 느끼는 손목 통증은 심각한 수준이었다.
무기가 아닌 무기 든 손을 무력화시키는 데 성공한 기수는 간격을 바짝 좁힌 후 황호의 얼굴에 체중 실은 펀치를 날렸다.
이 한 번의 공격을 위해 지금까지 참아온 것이기 때문에 기수의 주먹엔 혼신의 힘이 담겨 있었다.
황호는 황급히 팔을 들어 팔뚝으로 그 주먹을 막았다.
퍽! 소리와 함께 황호는 한 번 더 신음을 토했다.
이제까지와 달리 기수의 손 주변에 푸른 기운은 사라져 있었다.
그러나 파천강기보다 더 무서운 힘이 그 안에 숨겨져 있었다.
바로 운룡비결의 압살강기가 실린 것이다.
황호의 팔은 멀쩡해 보였지만 그 내부에서 팔뼈가 뭉그러지고 말았다.
극도의 통증으로 부릅뜬 두 눈.
황호는 자기가 이렇게 당한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런 그의 얼굴에 확! 하는 폭음과 함께 화염이 한 번 도 폭발했고, 시야가 가린 상태에서 기수의 펀치가 연달아 그의 가슴과 배, 옆구리에 작렬했다.
황호는 그 와중에도 어떻게든 반격해보려고 손발을 움직였지만, 기수의 정확하고 위력적인 타격을 결국 하나도 방어해낼 수 없었다.
맞을 때마다 그의 호신강기는 약해졌고 결국 겉으로는 뼈가 뭉그러지고 속으로는 극심한 내상을 입은 채로 그 큰 몸이 뒤로 넘어가고 말았다.
쿵! 소리와 함께 흙먼지가 일었고 기수는 주인과 함께 넘어지는 대도를 발등으로 툭! 차올려서 자기 손에 잡았다.
“우와아아아!….”
성벽 위 수비군들이 엄청난 환호성을 질렀다.
기수는 자기가 월드컵에서 골을 넣은 것 같은 기분이 되었다.
축구보다 좋은 점은, 억지로 90분을 채울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서든 데스 룰처럼 게임은 여기서 끝이었다.
노리던 바를 한 번에 성공시켜 말할 수 없는 기쁨을 느낀 기수는 대도를 빙글빙글 돌린 후 진기를 주입해 보았다.
그러자 끼이잉!…. 하는 강렬한 공명이 일어났다.
기수는 일어나려고 버둥거리는 황호에게 말했다.
“이 칼이 나를 새 주인으로 인정하는 것 같은데? 후후후….”
황호는 되는 대로 부서진 기와조각을 주워 기수에게 던졌다.
그러나 화상으로 시야가 가려 겨냥은 빗나갔고, 손과 팔이 모두 엉망진창이라 힘도 실리지 않았다.
기수는 칼로 그의 목을 겨누며 말했다.
“아까 네가 얘기한 대로, 목을 잘라 성문 위에 걸어주마.”
“으아아!… 원통하구나! 암수 따위에 걸리다니….”
울부짖는 황호의 목소리엔 분노와 회한이 가득했다.
“후훗!… 진 쪽은 늘 억울하다고 하지. 그렇지만 좀 더 강하고 머리도 좋은 사람이 이기는 게 정상 아니겠느냐.”
“흐흐흐…..”
황호는 갑자기 웃기 시작했고, 점점 커져서 앙천광소가 되었다.
얻어맞은 자리마다 복합골절이 일어나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신세인데 뭐가 좋다고 웃는 것인지, 기수는 그를 이해할 수 없었다.
“패배의 충격으로 정신이 이상해진 거냐?”
“너 말이다…. 장기 둬 본 적 있느냐?”
중국식 장기라면 자영과 억지로 둬 본 적이 있었다.
기수가 대답을 하지 않자 황호가 여전히 웃는 얼굴로 말했다.
“장기에선 기물을 많이 잃는다 해도 결국 상대의 궁을 잡는 사람이 이기지.”
기수는 불길한 예감을 느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난 비록 오늘 여기서 죽지만, 우리는 이긴다는 뜻이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흥! 후군도독부, 동창, 금군… 그따위 것들이 궁을 지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느냐?”
“설마…”
“그렇다. 너희들이 변방에 신경 쓰는 동안 황궁에선 이미 처리가 끝났을 것이다. 하하하!…”
황호의 앙천광소가 다시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