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hwa Manri RAW novel - Chapter 495
기수는 성 아래가 소란스러워진 것을 느꼈다.
그의 예상대로 숨어 있던 청탑산 무리들이 일제히 몰려오는 것이었다.
다만, 황호를 도와 자기를 죽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죽을 위기에 처한 황호를 구하기 위해서라는 점이 달랐다.
기수는 그들의 수가 예상보다 훨씬 많은 것을 보고 상황이 어수선해질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선 황호의 숨통을 끊었다.
황호의 청강 대도는 전체 길이가 2미터가 넘고 무게도 상당했지만 기수가 다루기에 부담스러울 정도는 아니었다.
그리고 황호의 목을 베고 지나가는 느낌.
사람의 목을 자르는 것은 의외로 쉽지 않은 알이다.
경추가 꽤 단단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청강대도는 정말 스무스하게, 마치 ‘뭐가 있었냐?’ 하는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황호의 목과 몸을 분리했다.
손바닥에 전해지는 느낌은, 네모난 중국식 식칼로 당근을 자르는 정도였다.
‘와! 이 칼. 진짜로 잘 드네…“
기수는 잘린 황호의 머리를 들고 성벽 가로 다가가 높이 쳐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전신을 관통하는 희열과 함께 커다란 장소성이 터져 나왔다.
“우우우….아아아아!………”
달려들던 청탑산 패거리들은 멈칫했다.
황호의 잘린 머리를 봤기 때문이기도 하고, 기수의 장소성에 담긴 미증유의 내공을 감지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또한 수비군들이 일제히 창으로 바닥을 찍고, 칼로 방패를 두드리며 함께 소리를 질러댔다.
“와아아!….”
적의 수장을 죽이고 그 목을 자른데 대한 승리의 함성이었다.
반군은 수가 많지만 황호가 죽은 순간 사기가 땅에 떨어졌다. 성벽 위의 군대가 고함을 지르는 것만으로도 벌써 뒷걸음질을 치는 자들이 보일 정도였다.
청탑산 무리 역시 달려오던 걸음을 주춤거렸다.
수장이 죽은 마당에 무리해서 성벽 위로 올라가 혈매궁주와 싸울 이유가 있나를 생각하게 된 것이다.
기수는 경공을 펼쳐 도지휘사 전중 옆으로 갔다.
그리고 황호의 머리를 바닥에 놓은 후 말했다.
“당장 전군에 진격명령을 내리십시오.”
“성 밖으로 나가서 싸우란 말씀입니까?”
이제껏 지키기만 했고, 적의 수가 많기 때문에 그런 전술은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놈들은 지금 패닉… 그러니까 정신이 없는 상태입니다. 지금 나가면 대승을 거둘 수 있습니다.”
전중의 눈이 빛났다.
확실히 반군의 숫자는 많지만 동요하는 모습은 오합지졸로 보였다.
그는 즉시 휘하 장교들에게 출진을 명령했다.
북소리가 울리고 병사들이 집결하고, 성문이 열리는 동안 기수는 전중에게 물었다.
“허창, 북경과 급히 연락 취할 방법이 있습니까?”
“예. 간단한 군령이나 긴급한 사안은 전서구를 통해 주고받을 수 있습니다.”
“답신을 받기까지 시간은 얼마나 걸립니까?”
“저쪽에서 얼마나 서둘러 답장을 쓰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빠르면 두세 시진 만에 오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당장 첩지를 써주십시오.”
“어떤 내용으로 말입니까?”
“허창에 가는 첩지엔 전군도독이 죽었으니 즉시 출병하여 잔당을 소탕하라 적고, 북경으로 가는 첩지엔 황상이 위험하니 경계를 더욱 강화하라 적으십시오.”
“화, 황상께서 위험하다고요?”
“그리고 황궁의 현재 상황을 최대한 빨리 보고해달라고 요청하십시오. 그게 더 중요합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북경으로 달려가고 싶었다.
황제를 지키는 사람이 바로 공주와 사매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황호의 말 한 마디만 믿고 이 자리를 뜨는 것은 경솔하게 느껴졌다.
전술적으로 몹시 유리한 상황을 제대로 마무리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판단되었다.
전서구로 두세 시진 만에 상황을 파악할 수 있다면 직접 가는 것보다는 훨씬 빠를 테니 일단 그걸 보고 나서 움직여도 된다는 생각이었다.
전중은 급히 지필묵을 가져와 기수가 시킨 내용을 적고 자기 직인을 찍었다.
기수는 그것으로 부족하다 보고 금패를 꺼내어 먹물을 묻혀 탁본 뜬 종이에 자기 이름을 써서 함께 보내도록 했다.
그게 없으면 좌군도독 장현이 하급자인 도지휘사의 첩지에 따르지 않을 수도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렇게 조치를 끝낸 기수는 성 아래를 내려다봤다.
성 밖으로 달려 나간 개봉성 수비군은 기세 좋게 공격을 시작했고 반군은 제대로 된 지휘를 받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였다.
‘도독이 둘이나 더 있을 텐데…’
그들은 이 장소에 없거나 황호만큼의 영향력을 지니지 못한 것 같았다.
‘제갈청은?…’
적 진영을 둘러보았지만, 그의 모습은 이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도망치고 숨는 쪽으로는 재능 있는 집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독도 없고, 제갈청도 없다면 남은 것은 반군 진영을 무너뜨리는 일이었다.
청탑산 무리가 그들 앞에 방패 역할을 하고 있었다.
숫자는 많지 않지만 개개인의 무공이 뛰어나기 때문에 개봉 군사들이 마음대로 진격을 하지 못했다.
기수는 대도를 들고 그대로 성벽 아래로 뛰어 내려 적진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청탑산 패거리만 골라서 베어 넘기기 시작했다.
“으아악!….”
“크아아…”
기수의 손에 들린 대도는 찌잉! 찌잉! 하는 울음소리를 내며 푸른 빛을 뿜어댔고, 그때마다 적의 팔다리, 몸통은 동강 나 하늘로 날아올랐다.
기수는 칼의 위력에 감탄했다.
상대가 무기로 막건, 갑옷으로 방어하건, 방패를 들었건…. 가리지 않고 너무나 쉽게 잘려서 반칙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말 타고 이걸 휘두르면 막을 자가 없겠네.’
기수는 말을 타지는 않았지만 누구도 그를 막지 못했다.
오히려 말보다 더 빠르게 날아다니며 청탑산 놈들만 골라서 죽였다.
그들이 없으면 나머지는 족히 걱정할 게 없었다.
수비군 대 반군의 싸움은 이미 시작 단계부터 완전히 기울어진 것이다.
기세가 비슷할 때는 숫자의 많고 적음이 큰 의미가 있지만 조정을 배신한 군대이다 보니 명분이 없고, 수장까지 잃은 뒤로는 도망갈 길만 찾았다.
기수는 청탑산 놈들의 기도가 더 이상 감지되지 않을 때까지 쉬지 않고 칼을 휘두르며 돌아다녔다.
그리고 한참 뒤에야 성으로 복귀하여 전중을 찾았다.
북경에서 온 답신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총지휘관으로서 전장에 뛰어든 상태였다.
기수는 성벽으로 올라가 전황을 살펴보았다.
승부는 이미 기울었지만 워낙 많은 병력이 몰려 있기 때문에 전투가 끝나기까지는 시간이 한참 더 걸릴 것 같았다.
전중이 돌아오기를 마냥 기다릴 수 없다고 생각한 기수는 성에 남은 무장 중 가장 지위가 높은 자를 찾아 전서구 회신에 대해 기어이 알아냈다.
황궁엔 아무 이상도 없다는 내용이었다.
“휴우!~”
저절로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일단 약간의 시간 여유는 생긴 셈이었다.
기수는 자신의 숙소로 가서 신을 불렀다.
[많이 기다리셨습니다.]
[이번엔 그냥 넘어갈까 했다.]
기수는 그의 성격이 정말 쪼잔하다고 생각했다.
[하핫!… 반군을 소탕하다 보니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마신의 계획을 수포로 돌아가게 하려면 중요한 일 아닙니까?]
[그건 그렇다. 수고 많았다.]
기수의 어깨가 으쓱거렸다.
어느새 12명의 사도 중 11명을 처치한 것이다.
마지막 끝판왕이 남아있지만 그래도 상당히 자부심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사도의 우두머리는 황제의 사촌형이더군요.]
[그렇다. 오랜 세월 준비했을 테니 각별히 조심해야 할 것이다. 이제까지의 그 어떤 사도보다 강할 테니까.]
[아무리 준비를 철저히 했어도 내가 다 부숴버릴 겁니다. 하핫!…]
[그래. 이제까지 해 온 대로라면 충분히 그러리라 믿는다.]
기수는 잠시 사이를 두고 신에게 물었다.
[지난번에 부탁한 거 생각해보셨습니까?]
[무슨 부탁?]
[아! 진짜… 이곳의 사람들을 현대로 데려가거나, 엄마를 모셔오거나 둘 중 하나 해결해달라고 했잖습니까?]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했지.]
[그러니까 찾아내셨냐고요.]
[사도를 모두 처치한다는 전제가 걸려 있었지.]
[그럼 척회왕을 죽이기만 하면 해주시는 겁니까?]
[그렇다.]
기수는 뛸듯이 기뻤다.
[감사합니다! 하하하!….]
[척회왕을 죽이지 못하면 모든 게 끝이란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걱정 마십시오! 하하!… 근데 어떤 식입니까 여기서 사귄 아가씨들을 현대로 데려가는 식이 되겠죠? 하핫!]
[그녀들이 네 시대의 문물과 문명, 언어, 관습, 일부일처제 등등에 적응할 수 있을 것 같으냐?]
엄마를 모셔오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건은 어떻습니까?]
[갑자기 무슨 소리냐?]
[사람 말고 물건을 이동시키는 것도 가능하지 않냐는 말씀입니다.]
[이를테면 금이나 보석 같은 것 말이냐?]
[하핫! 뭐 노트북이나 게임기라도…]
[사람만큼이나 질서를 교란시키기 때문에 금지다.]
[아! 놔…. 노트북 정도는 괜찮지 않나요? 아무한테도 안 보여주고 나만 쓰겠습니다. 예외로 좀 해주십시오.]
[인터넷이 없어도?]
[뭐… 깔린 게임이라도 하죠…]
[충전은?]
[음…. 발전기도 추가로 하나…]
[가솔린은?]
[정유시설….]
기수는 입맛을 다셨다.
해주기 싫어서 자꾸 딴소리 하는데 구차하게 더 매달리고 싶지 않았다.
[어쨌거나 약속 잊지 마십시오! 꼭 해결해주셔야 합니다!]
[그건 걱정 말고 네 일이나 신중하게 잘 처리해라.]
그렇게 신을 보낸 기수는 간단히 피를 씻어내고 새 옷으로 갈아입은 후 대도를 들고 밖으로 나섰다.
장교 한 명이 다가와 말했다.
“도지휘사님이 곧 돌아오실 것입니다.”
기수는 그에게 북경으로 급히 가봐야 하니 노고를 치하한다는 말을 대신 전해 달라 하고 곧장 경공을 시전했다.
격전을 치른 다음이라 좀 피곤하긴 했지만 이곳엔 더 이상 자기가 할 일이 없었다.
황호가 죽기 전에 한 말.
황제를 치겠다는 그들의 계획에 대비해야 할 때였다.
황궁엔 아무 일도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지만 그래도 한 시라도 빨리 가서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스피드를 올렸다.
그리고 사매들도 보고 싶었다.
밤이 와도 멈추지 않고 계속 달려, 마침내 기수는 북경성에 도착했다.
새벽하늘 아래 북경은 평온해 보였다.
다행이라 생각하고 닫힌 성문 대신 성벽을 뛰어넘은 기수는 동창에서 내어주었던 장원으로 갔다.
그런데 장원엔 아무도 없었다.
공주와 사매들이 모두 궁 안에 들어가 있을 테니까 그녀들이 보이지 않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 그러나 일하는 하인도 없이 장원 전체가 텅 빈 것은 좀 이상했다.
기수는 동창으로 가보았다.
대로에 들어서자 사람들이 그를 보고 놀라서 피했다.
기수는 자기가 대도를 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런 종류의 무기는 휴대가 금지되어 있었다.
더구나 반란으로 분위기가 흉흉한 때에 수도인 북경에서 무기를 들고 다니는 건 무림인이라도 해도 용납될 수 없는 일이었다.
과연 얼마 지나지 않아 관병이 몰려들었다.
“칼을 내려놓아라.”
지휘관으로 보이는 무장이 호통을 쳤다.
기수는 입맛이 썼다.
‘아! 씨발… 내 나라도 아닌데 존나 열심히 싸워줬건만… 돌아온 보답이 고작 이거냐?’
섭섭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자기가 누군지 모르고 그저 본분을 다하는 것일 뿐이니 탓할 수도 없었다.
기수는 헛기침을 한 후 지휘관에게 말했다.
“수고가 많다. 소속이 어디인가?”
기수가 고자세로 나오자 지휘관의 기세가 다소 꺾였다.
“나는 병부에 속해 있습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기수는 금패를 보여주었다.
그것을 확인한 지휘관은 깜짝 놀라 한 쪽 무릎을 꿇고 군례를 올렸다.
“어사를 몰라 뵈어 죄송합니다.”
기수는 벼슬이 없는 서민이지만 굳이 밝혀서 일을 복잡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일어나시오.”
그리고 대도를 들고 다니면 또 다시 귀찮은 일이 생길 것이기에 그들을 길잡이로 쓰기로 했다.
“나를 동창까지 안내해주시오.”
“예!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그들을 따라 무사히 도착해 보니 동창 건물이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기수는 지휘관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라도 생겼소? 웬 사람들이…”
“아! 이틀 전에 동창이 습격을 당했습니다.”
“습격?”
“예. 그 일로 인해서 창주와 수많은 환관들이 죽었습니다.”
기수는 깜짝 놀랐다.
“누가 감히 동창을 습격했단 말이오?”
“그건 아직 밝혀내지 못했습니다. 뇌옥에 갇혀 있던 이부상서와 역적 패거리들이 모두 사라진 것으로 보아 그들 일당이 저지른 일 같습니다.”
기수는 뭔가 크게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