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hwa Manri RAW novel - Chapter 500
남경의 관리와 세가들은 민첩하게, 그리고 조직적으로 움직였다.
남경, 양주를 중심으로 장강을 따라 서쪽으로 사천까지, 동쪽으로 절강성까지 소문은 급속도로 퍼져 나갔고, 각지에서 황제를 보위시키고 척회왕을 잡자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그러나 그들보다 더 빨리 움직이는 이들이 있었다.
아침 물안개가 자욱한 남경 포구의 새벽.
욕구불만을 억누르고 연공으로 밤을 꼬박 샌 기수는 수로맹 배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걸 느끼고 갑판으로 나가보았다.
수로맹주와 채주들이 다급한 표정으로 출항준비를 하고 있었다.
“무슨 일입니까?”
“수군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습니다. 배를 띄워야겠습니다.”
“척회왕의 군대입니까?”
“아직은 확실치 않습니다만, 일단 출항하는 게 좋겠습니다.”
기수는 그리 하라고 했다.
수로맹주가 황제를 지키기 위해 항구와 포구마다 부하들을 보내서 남경 주변의 모든 수로를 철저히 감시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기에 믿음을 가질 수 있었다.
배가 움직이자 황제와 공주, 사매들도 갑판으로 나왔다.
“무슨 일인가?”
“수군이 움직이고 있다는 보고가 들어와서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는 것입니다. 심려하지 마십시오.”
“척회왕인가?”
수로맹주가 대답했다.
“통상적인 훈련일 수도 있습니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야 확인할 수 있습니다.”
황제는 불안한 표정으로 갑판을 떠나지 않았다.
배가 강심으로 저어나간 후에도 속속 보고가 들어왔고 수로맹주는 결론을 내렸다.
“이것은 절대로 훈련이 아닙니다. 항주에서 형주까지 모든 수군이 한꺼번에 움직이고 있다고 합니다.”
황제의 낯빛이 굳었다.
그 정도 광범위한 구역에 동원령을 내렸다는 것은 척회왕이 이미 권력을 장악했다는 증거였다.
자기가 없는데도 군령이 전달되었다는 사실이 놀라웠고, 남경에서 시작된 대응이 너무 늦지 않았나 하는 불안감도 생겨났다.
무엇보다도 항주에서 형주까지 수군이 총동원된다면 꼼짝없이 잡힐 수도 있다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어찌하면 좋겠는가?”
황제는 자기도 모르게 수로맹주에게 먼저 말을 걸고 있었다.
수로맹주는 부복하여 말했다.
“폐하. 이 한 몸 가루로 부서지는 한이 있더라도 폐하를 안전하게 모실 것이오니 심려하지 마시옵소서!”
황제는 그를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기수를 손짓으로 부른 후 말했다.
“자네는 내 가까이 있게.”
“예. 알겠습니다.”
수로맹주의 지휘아래 선단의 모든 배들이 돛을 활짝 펼쳤고 일제히 서쪽으로 전속력 항해를 시작했다.
현재 선단은 황제를 모시는 대형 누선 한 척과 중형선 15척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수군과 맞붙어 싸울 전력이 아니었다.
수로맹주의 목적지는 파양호.
거기에만 들어가면 자기 세상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갈 길이 멀다는 게 문제였다.
남경은 원의달을 비롯한 관리들이 이미 하나로 뭉쳤기 때문에 수군의 움직임도 없었지만 선단이 화현을 지나기도 전에 수군 선단의 깃발이 떼거지로 모인 게 보였다.
황제는 앞이 막히다시피 한 것을 보고 수로맹주에게 말했다.
“돌아가야 하는 것 아닌가?”
“아닙니다. 시간을 지체할수록 더 큰 위험에 둘러싸이게 됩니다. 정면돌파 할 것입니다. 안으로 피해 계십시오.”
황제는 그의 말에 따르려다가 기수를 한 번 힐끔 본 후 자리에 남았다.
“짐이 그대들의 전투를 지켜볼 것이다!”
그가 호탕하게 한 마디 할 수 있었던 것은 기수의 무공이 얼마나 뛰어난지 봤기 때문이었다. 그라면 자기를 지켜줄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순간 수로맹주와 채주들의 표정이 변했다.
황제가 피하지 않고 자기들을 지켜봐준다는 것은 엄청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목숨 바쳐 싸울 각오를 하게 만드는 것이다.
기수는 그들의 달라진 기세를 보고 마치 메이저리그 스카우터가 와 있는 날 마운드에 오르는 선발투수 같다는 생각을 했다.
수로맹주가 황제에게 붙여준 두 명의 시종이 커다란 방패를 들고 좌우에 서고 기수는 청강대도를 들고 앞을 방어했다.
그리고 그 옆엔 공주, 전체적으로 빙 둘러 사매들이 각각 방패를 들고 한 방위씩을 맡았기 때문에 화살이건 암기건 황제 근처로는 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수로맹 식구들은 저마다 힘을 내어 배를 저었고, 송곳처럼 일 자 대형을 갖추었다.
양측이 가까워지자 황제를 비롯한 공주와 기수 모두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관군의 배는 크기도 크거니와 숫자도 많았고, 각각의 배에 탄 수군도 압도적으로 많아 보였다.
그러나 수로맹 식구들은 겁먹지 않고 더욱 속도를 냈다.
마침내 거리가 화살의 유효사거리까지 접근하자 하늘이 까맣게 화살이 날아왔다.
황제는 자세를 낮추고 좌우를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잠시 후 슬그머니 상체를 바로 세웠다.
분명 수 백 개의 화살들이 날아오기는 하는데 자기 근처로는 얼씬도 못하고 있었다.
기수가 대도를 휘둘러 쳐내고, 기린궁의 여인들이 방패로 막아내는데 단 하나도 놓치지 않았다.
그것은 황제에게 있어 신기한 경험이었다.
옥좌에 앉아 있을 때는 천하에 두려울 것이 하나도 없던 그였지만 사촌형에게 쫓겨 강호를 전전하는 지금은 상상도 못했던 일들을 많이 겪게 되었다.
불리한 전투의 한 중간에 자리 잡는 것은 그중에서도 정말 위험한 상황인데 이상하게도 별로 두렵지가 않았다.
황제는 수군과 수로맹의 접전을 두 눈 똑바로 뜨고 제대로 보게 되었다.
수군의 배는 크기와 전력 모두 우위지만 수로맹 배엔 탁월한 장점이 한 가지 있었다.
바로 속도였다.
화물 실은 배를 따라잡아서 털어먹으려면 늘 중요한 건 속도였다.
일자 대형으로 관통하는 수로맹 선단은 금방이라도 길을 막히고 포위당할 것 같았지만 간발의 차이로 수군 포위망 사이를 빠져나갔다.
그리고 웅크리고 있던 수로맹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활과 활의 대결.
불화살이 날면서 양측 배에 모두 불이 붙었다.
수로맹은 병력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참으로 기민하게 움직였다.
궁수들은 뱃전이나 방패 밖으로 몸을 드러낸 수병을 쏘아 죽이거나 적 함선의 돛이나 밧줄을 쏴서 속도를 늦추는데 집중했다.
그리고 궁수가 아닌 수적들은 능숙하게 물을 퍼올려 불을 끄고 화살을 보급하거나 방패로 궁수를 보호해주었다.
처음엔 수군이 압도적으로 유리해 보였지만 그 차이는 점점 줄어들었고, 선단의 마지막 배가 빠져나왔을 즈음엔 수군 선단에 불 붙은 배가 훨씬 더 많이 보였다.
호랑이 아가리를 무사히 빠져나온 수로맹주는 피해상황을 보고받은 후 인원을 재배치하고 선단의 속도를 끌어올렸다.
황제는 그 일련의 과정들을 지켜보면서 연신 탄성을 토했다.
수로맹주가 비록 외모는 기괴하지만 나름 재주가 있다고 본 것이다.
기수도 수로맹의 실력을 다시 보았다.
사실, 사마연합 시절의 수로맹은 그저 숫자나 채우는 오합지졸이었다.
그러나 물 위에선 확실히 다른 면모를 보이고 있었다.
수로맹주는 계속해서 부하들을 독려했고, 선단은 무호를 지나면서 또 다시 관군을 만나게 되었다.
그러나 수로맹 연락망을 통해 배들이 속속 모였기 때문에 수로맹측 선단 규모도 40여 척으로 늘어나 있었다.
그러다 보니 처음에 속도로 관통하던 것과는 달리 좀 더 적극적인 수전이 가능하게 되었다.
수로맹주는 거기서 다시 한 번 실력을 발휘했다.
수군의 많은 배를 수로맹의 빠른 선단으로 농락하고 불화살을 실컷 안겨준 후 간단하게 빠져나왔다.
평소의 훈련 상태가 여실히 드러났다고 할 수 있었다.
사람끼리 합격진을 짜는 것도 오랜 연습이 필요한 법이지만, 배로 진형을 만드는 것은 그보다 훨씬 더 어려웠다.
수군과 수로맹의 훈련량엔 확연한 차이가 있었던 것이다.
황제는 숫자가 거의 두 배 가까이 되는 관군이 수적들에게 농락당하는 모습을 보고 통쾌하게 웃었다.
그가 보위에 앉아 있던 때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최대의 위기는 망강진에 이르러 찾아왔다.
무한과 구강이라는 대규모 수군 기지에서 출발한 선단이 망강진에 집결한 채 수로맹 선단의 파양호 진입을 차단하고 있었던 것이다.
파양호에서 도우러 나온 선단과 황제의 선단은 그들로 인해 양분된 상태.
수로맹주는 당황하지 않았다.
양측이 대형을 갖추며 대치하다 보니 날이 어두워졌고, 수로맹주는 남경에서 여기까지 오는 동안 따라붙은 작은 배들에게 특별지시를 내려 밤새 작업을 하도록 했다.
다음 날.
황제가 누각에 높이 오른 채로 대규모 수전이 시작되었다.
수로맹주가 택한 전술은 도주였다.
파양호가 아니더라도 구강의 북쪽엔 백호, 대궁호, 월호로 이어지는 커다란 3대 호수가 있었다.
진로를 알아차린 수군은 다급하게 추격해왔다.
장강은 폭이 넓어봤자 4~5리에 불과하지만 호수들은 폭이 30∼40리, 넓은 쪽은 80∼90리나 되기 때문에 일단 들어가면 잡기가 거의 불가능했다.
수로맹 선단은 아슬아슬하게 수군을 따돌리고 대궁호 초입에 들어섰다.
황제가 관선과의 거리를 가늠해본 후 말했다.
“일부러 천천히 가는군.”
기수가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수로맹주에게 계책이 있는 듯 합니다.”
기수는 황제와 함께 지내면서 그의 머리가 좋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성품도 나쁘지 않았고, 백성들 생각도 꽤 하는 편이었다.
무공으로 따지면야 보잘 것 없지만, 국가를 경영하는 지도자로서는 점수를 후하게 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
척회왕과 만나서 얘기를 나눠본 것은 아니지만, 10년 넘게 암중에서 찬탈을 계획하고 그것을 실천에 옮긴, 맺힌 게 많은 사람일 거라는 사실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런 자보다는 황제가 통치자인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로맹 선단은 호수 입구에서부터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애써서 따라온 관선들은 그걸 보고 조급해졌다.
수로맹 선단이 호수 입구의 작은 섬을 우회하여 돌아가자 관선들은 섬과 육지 사이의 지름길을 택했다.
누가 봐도 그리로 가면 벌어진 간격을 따라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속도가 빠른 수적들의 배가 왜 그 길을 놔두고 멀리 돌아서 가는지에 대해 생각해보는 지휘관은 없었다.
관선들의 선두가 섬과 육지 사이를 빠져나갈 때, 문제가 생겼다.
서두의 배들이 멈추기 시작한 것이다.
수군들은 원인을 찾기 위해 분주했고, 물속에 나무기둥 수십 개가 박혀있다는 사실을 알아내었다.
물 위에선 보이지 않지만 물에 잠긴 배의 바닥은 걸리는 높이였다.
문제는, 뒤따르는 관선들이 멈출 수가 없다는 점이었다.
선두의 뒤에 부딪히고, 거기에 또 다른 배들이 밀려들자 관선들은 대혼란에 휩싸였다.
수로맹 선단은 잽싸게 선수를 돌려 관선의 배후로 다가갔다.
그리고 바람을 등지고 화전을 쏘기 시작했다.
불화살은 후미의 배들을 태웠고, 그 불길은 계속 선두 쪽으로 번졌다.
“배를 돌려라!”
“여기서 빠져나가야 한다!”
그러나 좁은 곳에 몰려 들어간 다음이라 배를 돌릴 여유 공간이 없었다.
꽉 들어찬 배들이 서로에게 방해가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선발대가 막다른 골목에 들어가 불길에 휩싸인 사이 수군의 2진이 도착했다.
그러나 그들은 똑같이 공을 탐했지만 속도가 느려서 뒤따라온 것이었고, 숫자도 수로맹을 압도할 만큼 많지는 않았다.
파양호 쪽에서 지원 나온 선단과 합류한 수로맹은 그들과 본격적인 정면대결을 시작했다.
배는 느리고, 훈련은 덜 되어 있는 수군이 믿을 수 있는 건 숫자뿐이었는데, 주력이 대궁호에 갇히고 나니까 나머지는 족히 상대가 되지 못했다.
정오 무렵부터 시작된 해전은 해질녘까지 이어졌고, 결국은 수로맹의 대승으로 끝이 났다.
수로맹 선단은 등불을 밝히고 당당하게 파양호로 들어갔다.
어두운 밤, 강 위에 수백 척의 배들이 등을 밝히고 진형을 갖추어 항해하는 모습은 일대 장관이었다.
황제는 몹시 기분이 좋아서 수로맹주를 가까이 불렀다.
“그대의 이름이 무엇인가?”
“예. 소인은 유맹달이라 하옵니다.”
“짐이 환궁하면 그대를 수군 도독으로 삼겠노라. 하하하!…”
“화, 왕은이 망극하옵니다. 폐하.”
수로맹주는 물론 그런 일이 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황제가 지금 기분이 좋아서 그런 식으로 말할 뿐이지, 도적이었다가 단번에 수군의 우두머리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황제가 자기를 알아주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에겐 감격스런 일이었다,
황제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술 석 잔을 내려 그에게 마시도록 했다.
수로맹주는 더욱 감격했다.
수군 도독까지는 아니더라도 뭔가 큰 상급을 기대해도 좋을 것 같았다.
파양호에 들어간 뒤엔 많은 것이 달라졌다.
우선 황제의 거처가 훨씬 더 큰 배로 바뀌었다.
그리고 회의 자리에 공주와 기수에 이어 수로맹주도 끼게 되었다.
그로서는 영광이라고 할 수 있었다.
파양호는 전체가 수로맹의 영역이라 수군이 아무리 많은 병력을 동원해도 능히 막아낼 수 있는 곳이지만, 수로맹주는 마음을 놓지 않았다.
동정호의 함대를 불러와 전력을 보강했고, 쾌속선을 늘려서 비상시에 언제라도 탈출이 가능하도록 했다.
그리고 남경에 오가는 배를 따로 배정해서 원의달과 수시로 연락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런 과정을 지켜본 기수가 황제에게 말했다.
“폐하. 소인은 중원으로 나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윤허해주십시오.”
“무슨 일로 어디를 간단 말인가?”
황제는 기수를 최고의 호위라고 생각했다.
“이번에 수군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인 것을 보면 척회왕의 병권 장악이 예상보다 훨씬 빠르고 치밀하게 진행된 것 같습니다.”
“흐음….”
그것은 확실히 심각한 문제였다.
“좌군과 후군도독부도 지금 어쩌면 흔들리고 있을지 모릅니다. 폐하께서 서찰을 써주시면 제가 가서 그들에게 확신을 주도록 하겠습니다.”
황제의 표정이 심각하게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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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성원 덕분에 500회까지 오게 되었네요.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