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hwa Manri RAW novel - Chapter 501
수로맹의 승전에도 불구하고 황제가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기수의 말마따나 수군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는 게 문제였다.
자기가 궁 밖에 나와 있는데 도대체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는지 의문이었다.
지금 믿고 있는 좌군도독부, 후군도독부, 금군마저 수군처럼 돌아선다면 그때는 정말 아무 희망도 가질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기수를 옆에 두는 게 가장 마음 든든한 일이긴 하지만, 파양호에 있는 한 안전하다는 수로맹주의 말을 믿는다면 그를 잡아두는 게 인재의 낭비일 수 있었다.
황제는 결단을 내리고 즉시 세 사람에게 전할 서찰을 썼다.
기수는 그것들을 챙기고 대도는 공주에게 맡겼다.
공주와 사매들 모두 기수와의 이별을 아쉬워했다.
여건 상, 함께 지낼 시간적 정신적 여유가 없었다는 게 정말 안타까운 일이었다.
이번에도 진무와 동행했지만 쾌속선은 아닌 화물선을 이용했다.
관군도 바보가 아닌지라 쾌속선은 수상하게 여기고 검문 내지는 압류를 할 것이기 때문에 보통 배를 고른 것이다.
겉보기엔 그래도 화물이 실려 있지 않고 사공들의 솜씨가 좋아서 어두워진 뒤에는 상당한 속도를 내서 수군들이 눈에 불을 켜고 있는 수로를 통과할 수 있었다.
그래도 낮에 큰 도시 근처를 지날 때는 검문을 받았는데, 배에 방패나 활, 화살, 창 같은 전투 무기가 실려 있지 않기도 하거니와 관공서에서 발행한 서류가 제대로 갖추어져 있고, 진무를 비롯한 선원들의 장사꾼 연기가 워낙 능청스러워서 모두 무사통과 할 수 있었다.
배는 무사히 황하로 진입했고, 기수는 포구에서 좌군도독부가 허창과 개봉을 모두 장악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자기가 떠나올 때 벌려놓은 일을 장도독이 제대로 마무리 지은 것이다.
기수는 허창으로 들어가 좌군도독과 무림맹주, 천마교주, 석초 등을 한꺼번에 만났다.
모두들 기쁜 표정으로 기수를 반겼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다들 얼굴에 걱정이 가득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기수는 개략적인 상황을 얘기해주었다.
장도독과 주일비, 혈천제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뭔가 믿기 어려워하는 표정이었다.
기수는 그들에게 황제의 서찰을 보여주었다.
장도독은 그제야 얼굴에서 근심을 거두었다.
“이건 폐하의 친필이 맞습니다. 진짜였군요.”
기수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진짜라니요?”
“지금 세상엔 소문이 떠돌고 있습니다. 가짜 황제가 나타나 남경의 유력자들을 모아 천하를 둘로 가르려 한다고요.”
기수는 어이가 없었다.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립니까? 척회왕과 황호가 안팎에서 군대를 일으켜 황위를 찬탈하려 했다는 사실을 모두가 다 알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습니다만…”
기수는 뭔가 분위기가 이상함을 느꼈다.
그의 시선이 주일비에게 향하자 그가 말했다.
“강호에 떠도는 소문에 따르면, 가짜 황제가 일부러 누명을 씌우기 위해 두 사람의 얼굴을 그려 천하에 퍼뜨렸다고 합니다.”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립니까? 그럼 반란군은요?”
“척회왕과 황도독이 가짜 황제의 존재를 알아차리고 처단 하기 위해 군대를 일으켰다가 오히려 역공을 당해 목숨을 잃었다는 식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럼 함께 싸운 여러분, 좌군도독부와 무림맹, 천마교는 무엇입니까? 반군과 맞서 싸웠는데, 그들이 구국의 영웅이면 우리 쪽이 반군이란 말입니까?”
“그건 적의 계략에 빠져 서로 간에 오해가 있었던 걸로…”
기수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척회왕과 황호가 모반의 주동자라는 사실은 삼척동자도 훤히 알 수 있는 일인데 도대체 왜 그런 헛소문이 퍼지는 걸까요?”
여기에도 언론의 물타기, 논점 비켜가기가 있단 말인가?
장도독이 대답했다.
“황상이 남경에 계신다는 것을 사람들이 이상하게 여기는 것 같습니다. 사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저도 이 서찰을 보기 전까지는…”
기수의 표정이 심각하게 변했다.
반군과 목숨 걸고 싸운 장도독까지 그런 말을 할 정도라면 다른 사람은 어떻겠는가.
‘아! 역시 황궁을 벗어난 게 패착인가?’
하지만 그 당시엔 척회왕이 가짜 대역을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설령 알았다 하더라도 척회왕의 마수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탁지연과 공주가 바른 판단을 내린 것이다.
석초가 말했다.
“이 사실을 온 천하에 널리 알려야 합니다.”
기수도 그 말에 동감했다.
그리고 한 가지 후회도 일었다.
일전에 제갈청을 죽이지 못한 게 아쉬웠다.
그의 도움인지, 아니면 척회왕이 혼자 생각해낸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남경의 황제는 가짜고 자금성에 있는 황제가 진짜라는 식으로 여론을 몰아가는 것은 확실히 설득력 있는 전략이라고 봐야 했다.
수군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인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기수가 서찰이 두 개 더 있다고 얘기하자 석초가 말했다.
“후군도독부와 금군대장이라면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지난번 북경에서 관리 상대하기가 꽤나 번거로웠던 기수로선 반가운 얘기였다.
즉시 출발하자고 말하려는데 혈천제가 갑자기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땋은 머리 끝에 달린 깃털 장식을 살랑살랑 흔든 것이다.
그녀의 표정은 심각했고, 시선도 기수를 향하지 않았다.
그래서 자리에 앉은 사람들 모두 그녀가 깊은 생각에 잠겨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기수는 그녀의 메시지를 확실히 전달받았다.
‘너. 그냥 갈래? 깃털로 해주고 싶은데…’
기수는 침을 꿀꺽 삼켰다.
남경에서 파양호까지, 사매들과 함께 있었지만 합방은 한 번도 성공하지 못한 말도 안 되는 상황으로 인해 욕구불만이 잔뜩 쌓인 상태.
‘황제의 친서를 전달하는 일이 중요한가. 아니면 나부터 살고 봐야 하나.’
기수는 선택의 순간에 바둑용어를 떠올렸다.
‘그래. 아생연후살타라는 말도 있잖아.’
격언은 따르라고 있는 거다.
기수는 석초에게 말했다.
“내일 오전에 출발하도록 하지.”
“예. 준비해놓고 기다리겠습니다.”
장도독은 오랜만에 만난 기수를 위해 연회를 열어주었다.
그리고 기수가 황호를 죽인 이후에 궤멸한 삼군도독부 병력을 자기가 어떻게 수습하고 흡수했는지 자랑스럽게 얘기했다.
“정말 대단한 일을 하셨군요.”
척회왕은 황궁을 장악하느라 황호가 죽은 이후의 삼군도독부까지 챙기기는 어려웠던 듯 했다. 좌군도독부가 그들을 무력화시킨 것은 꽤 잘 된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기수는 마음이 급했다.
혈천제는 줄곧 기수를 한 번도 쳐다보지 않았지만, 깃털은 계속 만지작거렸다.
무림맹주 주일비의 무용담까지 들어주고 두 사람이 흡족할 만큼 찬사를 퍼부은 다음에야 기수는 겨우 일어설 수 있었다.
“내일 먼 길 떠나셔야 하니 저희도 더 잡지 않겠습니다. 하하!”
그렇게 연회장을 나온 기수는 천마교가 머무는 사찰로 갔고 그토록 그리던 혈천제를 안을 수 있었다.
몸이 달아 있는 것은 기수만이 아니었다.
혈천제도 거의 찢어발기듯 기수의 옷을 벗기며 달려들었고, 두 사람은 짐승처럼 얽혀서 서로의 몸을 탐했다.
격렬한 1차전은 5분도 안 되어 끝났다.
오래 굶은 기수가 착 감겨오는 혈천제의 자극을 도저히 견디지 못한 것이다.
“꿀꺽! 꿀꺽! 굉장히 많아. 후르릅~ 꿀꺽…”
“그동안 오로지 너만 생각하면서 금욕했거든.”
“흥! 거짓말…”
“후후…. 아까 깃털은 왜 만지작거렸어?”
“알아봤어?”
“알아봤냐고? 오로지 그것만 보이더라.”
“호호호!… 이렇게 해주려고…”
혈천제는 머리장식에 달린 것보다 훨씬 큰 깃털을 3개나 준비해놓고 있었다.
기수는 신음을 토하며 그녀의 공격에 몸을 맡겼고, 그동안 참았던 에너지와 욕정을 밤새도록 그녀에게 전부 쏟아 부었다.
그리고 새벽녘. 탈진하여 쓰러져 죽은 척 하고 있는 혈천제의 이마에 입을 맞춰주고 개운한 기분으로 나오다가 소혼랑, 광혼랑을 만났다.
“너, 너희들… 기다리고 있었냐?”
“말 할 시간이 어디 있어? 이리 와!”
“허억!…”
두 여인에게 끌려가서 충분히 만족시켜주고 나오니까 어느덧 아침이 훤히 밝아 있었고, 석초는 떠날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천마교엔 기수가 떠나는 걸 아쉬워하는 사람이 아직 많았지만 시간을 더 지체할 수는 없는지라 장도독을 비롯한 여러 사람에게 인사를 마치고 배에 올랐다.
황하를 건너 북경 쪽으로 가는 수로는 검문이 더 심했다.
그러나 진무와 선원들은 사투리 실력을 자랑하며 능숙하게 빠져 나갔고, 순조롭게 창주에 도착할 수 있었다.
기수는 석초와 함께 후군도독의 주둔지를 찾아갔다.
금패를 보이지 않고도 통과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역시 석초와 함께 오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후군도독 곽승은 40대 후반으로 키가 약간 작지만 다부진 체격의 소유자였다.
처음엔 두 사람을 반가이 맞았지만 기수가 혈매궁주라고 자신을 소개하자 경계하는 기색을 드러냈다.
기수는 불필요한 오해를 피하기 위해 황제의 친서부터 보여주었다.
곽도독은 그제야 기수에 대한 경계심을 풀었다.
그리고 탄식하며 말했다.
“그렇다면 지금 황궁에 들어 있는 자가 가짜란 말인데… 허어! 이것 참.”
기수는 자기가 파양호를 떠나오기 정말 잘했다고 생각했다.
진위 분별을 못하고 있던 두 도독이 자칫 잘못된 판단을 내릴 수도 있었는데, 적어도 최악의 상황은 막은 기분이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매스미디어가 없다는 게 몹시 아쉬웠다.
기자회견 같은 거 한 번만 하면 곧바로 진실이 만천하에 명명백백하게 밝혀질 텐데, 이렇게 인편으로 친서의 필체를 확인시켜 줘야만 겨우 믿음을 찾을 수 있으니, 앞으로도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이 들었다.
곽도독은 기수에게 관심이 많았다.
“혈매궁의 위명은 정말 대단하더군요. 개봉성을 무너뜨리면서 황호를 죽이셨다고요.”
기수는 그가 소문의 진위에 호기심을 느낀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냥 떠나기보다는 같은 편에 누가 있는지 가르쳐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 슬쩍 솜씨를 보여주고 싶었다.
“실은 황상께서 이름을 지어 내려주셨습니다. 그래서 이제 혈매궁 대신 기린궁이라 불리고 있습니다.”
“아! 그러시군요.”
“제가 간단하게나마 우리 기린궁의 절기 한 가지를 보여드릴까요?”
“보고 싶습니다!”
곽도독 역시 무인이라 현재 강호무림 최고 고수라는 기수의 실력을 보고 싶었다.
기수는 그와 함께 밖으로 나갔는데, 곽도독은 자기 부하 무관들을 전부 다 불러서 연무장으로 나오도록 했다.
기수 입장에선 살짝 당황스러운 일이었지만, 어차피 같은 편에 서서 역도와 싸울 사람들이니 많을수록 좋다고 마음을 고쳐 먹었다.
좌우를 둘러보던 기수는 연무장 한 쪽 구석에 놓인 돌사자상을 발견하고 그 앞으로 갔다. 후군도독부 무장들 모두 그를 따라왔다.
기수는 그들에게 말했다.
“우리 기린궁에는 몇 가지 특이한 무공들이 있습니다. 오늘은 그 중 한 가지로 이 녀석을 몇 대 때려보겠습니다.”
무관들이 웅성거렸다.
사람 키에 가까운 돌덩이를 어떻게 하려는지 다들 궁금했던 것이다.
기수는 멸절강기로 조각을 해볼까, 파천강기로 구멍을 뚫어볼까, 운룡비결로 뭉그러뜨려볼까 잠시 고민하다가 결국 화류 태포련을 선택했다.
보여주기엔 불꽃 쇼가 최고라고 생각한 것이다.
“조금만 뒤로 물러서 주십시오.”
공간을 확보한 기수는 곧바로 불 쇼를 시작했고, 무관들은 깜짝 놀라 경악성을 터뜨리며 뒷걸음질을 쳤다.
“와악!…”
눈에 보이는 화염도 굉장했지만 피부가 화끈 거리는 열기는 공포감을 자아냈다.
기수는 불 쇼 이후에 사자상에 손바닥을 댔다.
워낙 큰 돌덩이라 뭘 할 수 있을지 개념이 잡히지 않았지만 어쨌거나 내공을 집중하여 열기를 뿜어 넣었다.
지난번 난주에서 구리향로를 녹일 때와 비슷한 느낌.
화염은 발생하지 않았고 열기만 전달되었다.
그렇게 1분, 2분, 3분이 지나면서 연기가 점점 많이 피어오른다 싶더니 한 순간, 턱! 하고 돌사자 머리가 땅에 떨어졌다.
곽도독을 비롯한 무관들은 깜짝 놀라 외마디 소리를 질렀다.
땅에 떨어진 사자상머리는 고체가 아닌 액체처럼 흐물거리며 흘러내리고 있었다.
쇠를 녹여 쇳물을 만들 듯이 돌을 녹여 용암으로 만든 것이다.
기수는 기뻤다.
지난번에 비해 녹인 크기가 훨씬 컸기 때문이다. 구리와 화강암의 녹는점이 각각 몇 도인지는 알 수 없지만 느낌 상 내공 성장이 확실히 감지되었다.
그는 씩 웃으며 생각했다.
‘나. 현대로 돌아가면 포스코에 취직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인간 용광로가 산업용으로 쓰일 리는 없겠지만…
곽도독과 무관들의 기수를 향한 시선은 완전히 달라졌다.
기수는 그들에게 황제에 대한 충성심이 흔들려선 안 된다고 일장 연설을 한 후 인사를 나누고 포구로 갔다.
석초가 옆에서 말했다.
“형님은 정말 인간의 한계를 벗어나신 것 같습니다.”
그러나 기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직 모자라. 나보다 고수가 적어도 세 명은 더 있으니까.”
“예? 그게 누굽니까?”
“척회왕, 검종의 장무검, 그리고 오행류를 내게 가르쳐주신 분.”
“아아!… 하늘 밖에 하늘이 있다는 말이 사실이군요.”
기수는 그 세 사람을 차례로 떠올려보았다.
합비 어르신은 적이 아니니까 상관없지만 장무검을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했다.
그리고 척회왕.
반드시 죽여야 하는 사도의 우두머리인데, 아직 그의 실력을 가늠조차 할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영 마음이 불편했다.
배를 탄 기수는 선실에 혼자 들어가 연공에 몰두했다.
어쨌거나 자기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그것밖에 없었다.
다행이라면 자신이 개발한 오행류 상생순환 덕분에 옆에 미녀가 없더라도 밀도 높은 내공 증진이 가능하다는 점이었다.
북경 포구에 내린 기수와 석초는 세 번째 서찰 전달을 위해 성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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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댓글 감사합니다!
완결은…. 500회 정도면 끝날 줄 알았는데 아직 해결되지 못한 얘기들이 있어서 조금 더 가야 할 것 같네요. 계속 성원 부탁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