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hwa Manri RAW novel - Chapter 503
손종사는 신규 채용된 13조 20명을 데리고 다니며 식당과 군막의 위치를 가르쳐주고 식기나 담요 등도 지급해주었다.
“점호는 매일 묘시 초니까 늦지 말도록.”
무림인을 고용했으면서도 여전히 군대식이었다.
기수는 그를 따라다니면서 면밀히 기도를 감지했고, 그가 청탑산 무리와 비슷한 레벨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처음부터 청탑산을 거친 것인지, 아니면 먼저 관리가 되었다가 포섭 이후에 무공을 추가로 배운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일반적인 무관들보다 고수임은 분명했다.
‘한윤 말고도 패거리가 있었구나.’
기수는 손보의 뇌파와 동조를 시도했다.
상대의 내공, 집중력, 정심(定心)등이 강할수록 어려운 일이지만, 그와 손보 사이엔 워낙 격차가 커서 30초도 채 걸리지 않았다.
군막에 들어가 대충 자리를 잡고 담요를 감는데 한 놈이 다가와서 말했다.
“야! 비켜. 그 자리는 내가 먼저 점찍었어.”
기수가 올려다보니 키가 190은 됨직한 거한이었다.
‘죽여 버릴까?’
잠시 생각했지만, 기수는 곧 담요를 말아 들고 일어나 입구 쪽 자리로 옮겼다.
그가 여기 온 목적은 이따위 놈들과 얽히기 위함이 아닌 것이다.
거한은 득의만만한 표정으로 기수에게 조소를 보내다가 옆에 누운 자를 발로 찼다.
“야! 저리 좀 가. 좁잖아.”
채인 사내는 발끈했지만 워낙 덩치에서 밀리다 보니 두 뼘쯤 비켜주었다.
거한은 껄껄 웃으며 말했다.
“하하!… 사부님은 잘 계시나 모르겠네. 요즘 시절이 하수상해서 말야. 내가 이래 뵈도 소림의 속가제자거든.”
정통으로 무공을 익혔으니 까불지 말라는 의미였다.
기수는 그러거나 말거나 신경 쓰지 않고 손보의 마음 씀에만 집중했다.
그렇게 밤이 지나고 아침 점호와 식사가 끝나자 손보가 모두를 모아놓고 말했다.
“오늘은 너희 13조의 조장을 정하는 날이다. 힘 좋고 머리도 좋은 사람이 무리를 이끌어야 서로 편하다는 걸 염두에 두고 알아서들 정해봐.”
그러자 어제의 그 거한이 물었다.
“알아서 정하라는 건, 우리끼리 투표나 의논을 하라는 겁니까?”
“후후… 무림인이 뭘 말로 하려고 그러나? 무기는 들지 말고 힘들을 한 번 겨뤄 봐. 내가 실력을 봐야 하니까 한 명도 빠지면 안 된다.”
그러자 거한이 앞으로 나와서 나머지를 한 차례 쫙 훑어본 후 말했다.
“내가 19번 싸워주지. 자! 누구부터 할래?”
“나부터 하지.”
어제 비키라며 발로 차였던 사내가 선뜻 나섰다.
아무래도 분이 풀리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그러나 맨주먹으로 싸우는데 있어서는 체격과 체중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 마련.
격투기들이 전부 체급별로 싸우는 것을 봐도 알 수 있는 일이다.
무기를 들었다면 급소를 먼저 맞추는 쪽이 이기는 거지만, 주먹질은 달랐다.
거한이 쓰는 소림권은 제법 격식이 있었고 상대는 세 수 만에 다리를 차여 쓰러지고 말았다.
그 뒤로 이어지는 도전자들도 모두 정도 차이는 있지만 거한을 이기지 못했다.
손보는 흡족한 표정으로 연신 고개를 끄덕였고, 마침내 마지막 한 명 남은 기수 차례가 되었다.
기수는 진퇴양난에 빠졌다.
‘저 따위 놈에게 맞을 수는 없잖아.’
하지만 이기면 귀찮은 조장 역할을 떠맡아야 한다.
‘에라! 될 대로 되라!’
기수는 거한과 마주선 후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본신무공은 절대 쓰면 안 된다!’
기수가 택한 무공은 태권도였다.
“자! 덤벼라.”
거한은 자신 있는 표정으로 손짓을 했고, 기수는 제자리에서 깡충깡충 뛰기 시작했다.
가드는 내리고 왼발이 앞으로 나갔다, 오른발이 앞으로 나갔다 하면서 스텝을 밟으니까 거한은 낯선 무공에 놀라 선뜻 달려들지 못했다.
기수가 이제까지 공부한 무학적 관점으로 봤을 때, 태권도는 스포츠일 뿐 실전적이라고 보기 어려웠다.
무공을 제대로 익힌 사람끼리 싸울 때 발차기는 자신을 위험에 빠트릴 수도 있기 때문에 극히 조심해서 사용해야 한다.
분광권만 해도 발로 허리 이상의 높이를 가격하는 초식은 없었다.
반격에 당하면 너무 위험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태권도는 점수를 따려면 자기가 넘어지더라도 화려한 발차기를 사용해야만 한다. 그건 스포츠지 목숨 걸고 싸우는 무공은 아닌 것이다.
기수는 바로 그 스포츠 초식들을 쓰기로 했다.
발로 차는 시늉을 몇 번 하자 거한은 멈칫하며 함부로 들어오지 못했다.
기수는 그를 놀렸다.
“왜? 겁나냐? 들어와! 들어와!”
“이놈이!…”
거한은 양팔을 회전시키며 무지막지하게 달려들었다.
‘지금이다!’
기수는 상대와의 거리와 각도를 가늠한 후 일단 눈을 질끈 감았다.
손보가 지켜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뒤 돌려차기를 거한의 턱에 정통으로 꽂아 넣었다.
퍽! 소리와 함께 거한은 곧바로 다운되어 버렸다.
기수는 착지한 후 손보를 봤다.
그의 표정은 복잡했다.
기수가 눈 딱 감고 돌려차기를 했는데 운 좋게 그게 턱에 꽂힌 것이다.
18명의 조원들은 탄성을 토했지만, 고수인 손보는 그게 진짜 실력이 아님을 알았다.
싸울 때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한다는 것은 오히려 하수의 증거였다.
거한이 머리를 흔들며 일어나 소리를 지르며 기수에게 덤비려 하자 손보가 손짓으로 그를 제지한 후 말했다.
“실력은 모두 봤으니까 이제 됐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방렬이라고 합니다.”
“네가 조장이다. 앞으로 나와 너의 13조 조원 사이를 잇는 역할을 잘 수행하도록 해라. 너희들도 조장 말 잘 듣고.”
손보는 그렇게 20명을 남겨두고 가버렸다.
방렬은 헛기침을 서너 번 한 후 말했다.
“내가 조장이 되었으니, 앞으로 명령에 잘 따르기 바란다. 그리고 너!”
그는 검지로 기수를 가리켰다.
“나하고 다시 한 번 해보자.”
자존심이 무너진 상태로는 통솔이 안 될 거라고 생각하는 듯 했다.
기수는 정말 곤란했다.
조금만 더 자신을 자극하면 죽여 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는 심호흡으로 마음을 가라앉힌 후 억지 미소를 짜내며 말했다.
“조장님. 방금 그건 어쩌다 재수가 좋아서 들어간 겁니다. 제가 어찌 감히 조장님을 이길 수 있겠습니까. 다시 싸우면 어디 한 군데 부러질 게 분명하니 제발 봐주십시오.”
그렇게까지 말했는데도 싸우자고 하면 어쩔 수 없었다.
뇌파 동조는 해놓았으니까 밖에 나가서 감시하는 일이 있더라도 죽일 수밖에…
방렬은 자기 목숨이 왔다 갔다 한다는 사실은 모르고 그저 기수가 저자세를 취하며 불러준 조장님이란 호칭에 마음이 너그러워져서 껄껄 웃었다.
“하하하!… 다들 들었지? 방금 전 그건 재수였다. 후후후…”
기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적진 안에 들어와서 지내되 조장 같은 귀찮은 일은 안 맡는 게 딱 좋은 조건인데, 결국 그렇게 되었기 때문이다.
방렬은 의외로 뒤끝은 없었다. 조원 모두가 인정해주니까 윗사람으로서의 책무를 제대로 수행하려는 모습까지 보였다.
저녁식사를 마친 후 그가 군막에 모두를 모아 놓고 말했다.
“손종사님이 내일 아침 일찍 출발할 거라고 명령을 내리셨다. 다들 일찍 자도록.”
기수는 의외의 말에 놀았다.
“조장님. 어디로 간단 말입니까?”
“그건 말해주지 않았다. 우리는 그저 시키는 일만 하면 되는데 어딜 가건 무슨 상관이냐. 오늘 들어온 15조까지 300명이 손종사님을 따라갈 거니까 뭔가 그럴듯한 일을 하게 되겠지.”
기수는 손보와의 동조를 확인해 보았다.
상당히 긴장한 기색이 느껴졌다.
‘예상보다 빨리 떠나게 되는군.’
기수는 원래 북경 안에서 그의 상급자들 인맥 지도를 만들려고 했지만, 손보가 긴장할 정도의 일이라면 가보는 게 좋다는 쪽으로 생각을 바꾸었다.
신분확인도 거의 없이 사람을 급히 모아 동원하는 걸 보면 꽤 급한 일일 것이고, 또 그런 일이라면 거기에도 상급자가 있을 것이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점호를 마친 15개조 300명의 무림인들은 손보의 지휘에 따라 포구로 이동하여 커다란 관선 3척에 나누어 탔다.
기수는 그들의 목적을 짐작할 수 있었다.
‘역시 파양호를 치러 가는구나.’
그렇다면 자기가 관군 편에 속해 있는 게 유리한 점으로 작용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배는 출항한지 이틀 만에 서쪽으로 진로를 틀었다.
‘여기는 황하인데…’
황하는 파양호와 이어져 있지 않았다.
완전히 다른 목적지로 가는 것이다.
장안까지 가서는 작은 배로 갈아탔고, 종남산을 지나 얕은 지류를 따라 한참을 더 남서쪽으로 들어간 뒤 나중엔 배에서 내려 육로로 걸어갔다.
그렇게 해서 마침내 도착한 곳은 한중(漢中)이었다.
‘여기엔 도대체 왜 온 거지?’
황제와 아무런 관련도 없는 장소였다.
병풍 같은 산맥들이 첩첩이 둘러쳐진 산동네인 것이다.
그 험준한 산맥을 넘으면 장강을 만날 수는 있겠지만, 황제가 있는 파양호는 다시 배를 타고 한참을 더 가야 했다.
우회하여 뒤를 친다고 해도 이런 식으로 불편하게 여정을 잡을 이유는 없었다.
기수는 손보의 의중을 읽어보았다.
그런데 황당하게도, 그 역시 자기가 여기 왜 왔는지 모르고 있었다.
손보는 첩지에 적힌 영강현이라는 마을로 300명을 인솔했다.
영강현 외곽엔 너른 고원이 있었는데, 거기엔 수백 개의 군막이 세워져 있었고, 기수 일행처럼 급히 끌어 모은 것으로 보이는 무림인 수백 명이 보였다.
북경 뿐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도 비슷한 과정을 거친 것으로 보였다.
기수는 군막 여기저기서 느껴지는 기도를 감지했다.
‘청탑산 레벨 고수들이 적어도 4명 이상 모였구나. 이 깊은 산중에서 도대체 뭘 하려는 거지?’
어쨌거나 상당히 중요한 일 때문이라는 건 분명했고, 그렇다면 제대로 된 상급자도 만날 수 있을 거란 기대가 일었다.
군막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날 이른 아침.
기수는 자던 도중 눈을 번쩍 떴다.
무시무시한 기도가 다가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기수는 자기도 모르게 몸이 반응하려는 것을 억지로 참아 눌렀다.
그를 놀라 깨어나게 만들 정도의 기도.
그것은 몹시 익숙한 것이기도 했다.
바로 검종의 전인 장무검이었다.
그를 눈으로 보지 않더라도 느낌만으로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기수는 심호흡으로 마음을 진정시키고 기도 발출을 억제했다.
‘저 자가 여긴 웬 일이지?’
장무검의 기척은 손보 등이 머무는 군막으로 향해 갔다.
거기서 회합이 있는 듯 했다.
기수는 손보와의 동조에 집중했다.
그리고 많은 사실을 알게 되었다.
1,500명이 넘은 무림인들, 그리고 다섯 명의 청탑산 패거리.
그들 모두가 장무검을 돕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었다.
기수는 집중력을 더욱 끌어올렸고, 마치 그 자리에 있는 것 같은 느낌으로 장무검의 요구사항을 들을 수 있었다.
그는 5명을 한 조로 짜서 지도 위의 모든 지점을 샅샅이 뒤져주기를 원하고 있었다.
조금 더 집중하자 대화까지 들렸다.
“무엇을 찾는 것입니까?”
“무공을 익힌 사람이나 기문진.”
“찾으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신호용 호각을 불면 된다. 나머지는 내가 가서 해결할 거니까.”
“고작 그런 일에 이 많은 사람이 다 필요하단 말입니까?”
“불만인가?”
“아니… 불만이라는 게 아니라…”
“하기 싫으면 돌아가라.”
“그, 그래도 됩니까?”
“이런 일은 나도 영 귀찮고 하기 싫단 말야. 안 그래도 너희 주군에게 댈 핑계를 간절히 찾는 중이다.”
무관들은 잠시 침묵을 이어갔다.
기수는 손보가 장무검을 몹시 못마땅해 하는 걸 느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척회왕이 시킨 일을 하는 사람이고, 기도 만으로도 오금이 저릴 정도의 무서운 고수인데.
잠시 후 다시 대화가 이어졌다.
“인원이 충분하니 금방 찾아낼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대상이 누굽니까?”
“사람이 아닌 문파다.”
“문파 이름이…”
“비종 태무신궁.”
기수는 자기도 모르게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척회왕이 장무검에게 시킨 일이 태무신궁을 찾는 일이었단 말인가?’
자기가 태무신궁의 폐관수련 자매를 만난 곳은 대파산 자락.
이곳까지 오면서 본 그 수많은 산맥들 중 하나에 태무신궁이 숨어 있다면 지리적으로 얼추 맞을 것도 같았다.
‘척회왕은 왜 비종을 찾으려는 거지?’
기수에게 있어 그것은 그냥 넘겨버릴 수 없는 일이었다.
지금은 궁주가 되었을 조현과 조민 자매.
태양대환단을 먹고 양기가 폭발하여 죽을 뻔한 자신을 구해주고 무공에 입문하게 해준 고마운 그녀들을 싸이코패스 장무검이 찾도록 놔둘 수 없었다.
절대로 좋은 의도는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한중에서 사천까지 이어지는 지역은 산이 많고 험하기로 유명하지만, 1,500명을 5인 1조로 투입한다면 한 번에 300개 지역을 나누어 뒤질 수 있으니 사람이건 기문진이건 찾아내는 게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 같았다.
장무검은 신호용 호각 만드는 법에 대해 얘기했고, 무관 중 한 명이 물었다.
“찾은 다음 그걸 불기만 하면 되는 겁니까?”
“그렇다. 내가 높은 봉우리에 대기하고 있다가 곧장 달려갈 것이다. 거기가 비종의 소굴이면 너희들의 임무는 끝이다.”
“그럼 오늘은 호각을 준비하고 지도를 검토한 뒤 내일부터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좋다.”
장무검은 짧게 한 마디 하고는 나가버렸다.
남은 무관들이 구역을 나누고 식량 조달 세부 사항에 대해 논의하는 동안 기수는 조심스럽게 군막 밖으로 나가보았다.
그러나 장무검의 자취는 이미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