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hwa Manri RAW novel - Chapter 507
기수가 잠시 생각한 후 물었다.
“그렇다면 진영군에게 사실대로 말하면 되지 않았을까요?”
당시 상황을 좀 더 잘 알고 있는 태상장로가 대답했다.
“궁주님은 진실을 밝히셨습니다만, 그녀가 믿지 않았다고 합니다.”
기수는 슬쩍 조민과 조현을 봤다.
‘저 상태로 늙지 않는다?’
자기는 남자라 잘 모르겠지만, 여자 입장에선 엄청나게 부럽고, 자기도 꼭 그렇게 되고 싶어 할 것 같았다.
“가르쳐주기 싫어서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했겠군요.”
“아마 그랬던 것 같습니다. 이후 사이가 급속도로 나빠져서 궁주님은 신궁 밖으로 나가지 않으셨습니다.”
기수는 그게 무슨 의미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진영군이 워낙 세니까 숨었다는 얘기의 다른 표현일 것이었다.
진영군이 선인인지 악인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태무신궁에 대해 집착과 원한을 품었을 거라고는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걸 자기 제자한테 엉뚱한 식으로 전해주었다는 게 문제였다.
‘불로불사라…’
그를 고용(?)한 마신도 들어줄 수 없는 소원인가 싶었다.
높은 자리에 올라가면 그걸 영원히 해 처먹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대통령으로 군림했던 역사가 있기에 어느 정도 이해는 되었다.
하지만 바랄 걸 바라야지.
‘넌 내 밥일 뿐이다. 척회왕.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어!’
그러나 여러 각도로 간접 비교해 본 결과 아직은 도전할 때가 아니라는 사실이 기수를 주눅 들게 만들었다.
막판에 괜히 조급하게 덤볐다가 다 이겨 놓은 바둑 공배 메우다 역전패 하듯이 꽥! 죽어 버린다면 얼마나 억울하겠는가.
진짜 서두를 일이 아니었다.
나이 든 여 장로가 입을 열었다.
“지금이라도 우리에겐 그런 게 없다고 사실을 밝히는 게 어떨까요?”
검종을 부하처럼 부릴 수 있는 척회왕이 노린다고 생각하니까 겁이 나는 모양이었다.
기수는 이해했다. 자기라고 해도 두려울 것 같았다.
그런데 조민이 말했다.
“우리가 왜 해명을 해야 하죠? 제멋대로 오해 한 건 그쪽인데. 저는 그렇게 못 해요. 선대 궁주님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궁주가 될 거예요.”
기수는 그녀의 당당한 태도에 기립박수를 치고 싶었다.
조민이 이어서 말했다.
“우리가 강호에 나가려면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장로님들이 알아서 챙겨주세요.”
“명을 받들겠습니다.”
그렇게 태무신궁의 장로들과 상견례를 마친 기수는 다시 궁주의 처소로 갔다.
노 장로들이 눈치를 줄까봐 걱정했는데, 그들은 궁주의 결정엔 어떠한 이견도 없는 게 생활화 된 듯 보였다.
문을 닫자 조민이 기수의 품에 안겨오며 물었다.
“공자님. 무슨 걱정 있으세요?”
“응? 아냐. 그런 거 없어.”
“아까 보니까 표정이 어두우시던데…”
그런 것까지 일일이 다 챙겨주지 않아도 되는데… 어쨌거나 고맙기는 했다.
“사실, 척회왕은 내 손으로 반드시 죽여야 하는 숙적이야. 그런데 언제가 되어야 무공 격차를 줄일 수 있을지…”
조민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공자님. 특이한 무공을 익히신 것 같던데…”
“응. 춘신공, 진영군과 함께 삼선이라 불리던 합비 어르신을 만났지.”
그리고는 몇 가지 시범을 보여주었다.
조민과 조현은 깜짝 놀랐다.
“와! 신기해요. 그런데 이런 신공을 가졌으면서 왜 자신감이 없으세요?”
“기술이야 뭐 서로 비슷하겠지. 하지만 내공에 자신이 없어. 아무래도 세월의 두께라는 걸 일시에 따라잡기는 쉽지 않을 테니까.”
조민과 조현이 서로 시선을 맞춘 후 얘기했다.
“그거라면 우리가 도울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기수는 미소 지었다.
그녀들이야말로 자신의 최대 특기인 음양대법의 원조인 것이다.
“그 전에 우선, 너희들을 안고 싶어. 옷 입은 채로.”
기수는 양팔을 벌려 자매를 안았다.
그 상태로 가만히 있기만 해도 흐뭇하고 마냥 좋았다.
어떠한 의도도 없이, 입맞춤조차 없이 그냥 그녀들의 체온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마음은 이미 희열을 느끼고 있었다.
‘이렇게 좋은데 왜 이제서야 만나게 되었을까…’
기수는 정말 그 상태로 한참 동안 더 있고 싶었다.
그런데 조현이 아래로 빠져나가더니 바지끈을 풀기 시작했다.
뭐, 물론 그것도 나쁘지 않았다.
조민은 뜨거운 입맞춤으로 동생과 역할을 분담했다.
그런데 아래쪽이 시원하게 탈의 되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후속조치가 없었다.
이상해서 내려다보니 조현이 존슨을 뚫어져라 노려보며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색이 짙어진 거 같아.”
그러자 조민도 나란히 앉아서 자세히 관찰했다.
“정말! 예전엔 분홍빛이었는데…”
조현이 위를 올려다보면서 물었다.
“왜 색이 달라졌어요?”
“그, 그야 나도 모르지.”
“혹시 너무 많이 사용해서 멍든 거 아니에요?”
“무슨 그런 비상식적인 발언을… 말도 안 돼!”
“아까 혈매궁의 제자들이 전부 여자들이냐고 물었을 때 왜 대답 안 하셨어요?”
기수는 올 것이 왔다고 생각했다.
“전부 여자 맞아.”
조민과 조현은 살짝 당황하는 표정이었다.
“왜 여자를 제자로 받았죠?”
“그녀들 예쁜가요?”
기수는 정직이야말로 최선의 정책이란 신조를 떠올렸다.
“내가 고른 게 아냐. 원래 여자들로 이루어진 문파에 들어가 같은 사부님을 모시다 보니 그렇게 됐어.”
“그렇게 됐다는 게 정확히 무슨 뜻이죠?”
“음양대법을….”
조민과 조현이 존슨을 내버려두고 벌떡 일어섰다.
“우리 말고 다른 여자하고 음양대법을 했다고요?”
“들. 복수형이야.”
조민과 조현의 얼굴이 놀라움, 당황함, 분노로 벌겋게 물들었다.
그녀들의 그런 표정은 처음 보는 것 같았다.
“어, 어떻게 그럴 수 있죠?”
기수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자매의 사랑이 지고지순한 만큼 배신감도 크게, 충격적으로 느끼는 듯 했다.
그렇다고 해서 거짓말을 할 수는 없었다.
“남자에겐 욕구가 있어.”
자매의 안색이 더욱 싸늘해졌다.
기수는 그걸 견딜 수 없었다. 다른 여인들에겐 ‘가는 여자 잡지 않는다.’는 배짱을 부리기도 했지만 조민과 조현에겐 그럴 마음이 조금도 생기지 않았다.
식은땀만 삐질삐질 나고 손가락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러니까 내 말은… 나에겐 사명이 있는데, 척회왕의 무시무시한 세력과 싸우기 위해선 내 편을 한 명이라도 더 고수로 만들어야 할 필요가 있었거든.”
“그게 말이 되는 소린가요?”
“난 심각해. 척회왕을 반드시 내 손으로 죽여야 한단 말야.”
조민과 조현의 표정은 펴지지 않았다.
“객사를 안내해 드릴게요. 거기서 주무세요.”
기수는 그러기 싫었다. 그래서 다른 방법을 동원했다.
“날 이렇게 만들어놓고 그냥 가라고?”
그러면서 힘 빡! 준 하체를 허공에 휘저어 보였다.
맛을 아는 여인이라면 절대로 거부하지 못할 유혹!
그러나 조민과 조현은 냉정했다.
“밖에 아무도 없느냐?”
제자를 부르니 기수도 더 이상 추태를 벌일 수 없어서 얼른 힘을 빼고 바지를 당겨 올려서 입었다.
조민이 말했다.
“혼자 잘 생각해보세요. 무슨 잘못을 했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할 건지.”
조현은 옆에서 말없이 노려보기만 했다.
기수는 찍소리 못하고 제자를 따라 따로 마련된 건물로 갔다.
그렇게 객사의 방에 들어가 혼자 누워 있으려니까 오만 생각이 다 났다.
지금 시점에 무인도 질문이 나온다면 선택은 분명할 것이다.
그러나 차츰 시간이 흐르면서 생각해 보니까 탁지연이나 공주 등을 버리는 선택은 불가능했다.
물론 민아, 현아한테 미안한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어쩌라고.!…’
역시 자기 스타일을 그냥 고수하는 게 정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이 되자 조민과 조현이 객사로 찾아왔다.
어제처럼 냉정한 얼굴이었다.
두 사람의 그런 모습은 정말 보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기수는 심호흡을 하고 마음을 굳건히 가졌다.
“왔어? 언제 출발할 계획이지?”
조민과 조현은 약간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조민이 물었다.
“어제 말씀드린 거 생각해 보셨나요?”
“응. 생각해봤지.”
“어떻게 하실 건가요?”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해? 힘을 모아 척회왕을 죽이고 황상을 원래의 자리로 돌려보내 드려야지.”
“그거 말고 다른 여자 말이에요.”
기수는 잠시 사이를 두고 차분한 어조로 대답했다.
“너희들을 놔두고 다른 여자를 만난 건 미안하게 생각해. 하지만 그녀들도 내겐 소중한 인연이야. 너희들이 만약 그녀들과의 이별을 원한다면 포기해. 그런 일은 절대로 없을 테니까.”
조민과 조현 모두 충격을 받은 표정이었다.
조현이 분개한 어조로 말했다.
“그렇다면 당장 여기를 떠나주세요! 우린 기공자가 필요 없어요!”
“그래? 그럼 잘들 지내.”
기수는 냉정한 얼굴로 돌아서서 밖으로 걸어 나갔다.
마음속으로는 눈물이 주르르 흘렀지만 탁지연을 생각하며 이를 악물었다.
‘참아야 돼. 약한 모습 보이면 절대로 안 돼!’
기수는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은 괴로움을 느꼈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조민이 손을 뻗으려 하자 조현이 그녀를 제지했다.
기수는 민아, 현아에게 블러핑을 치는 게 아니었다.
두 사람 때문에 다른 여인들을 버리는 건 있을 수 없다고 결론을 내렸기 때문에 그의 걷는 속도는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마음 같아서는 양쪽을 다 가지고 싶었다.
하지만 선택을 해야 한다면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 이것이 책임감이라는 거겠지?’
기수는 아프지만 견뎌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신궁 건물을 다 빠져나와 동굴 입구까지 갔는데도 아무도 따라 나오지 않자 크게 낙담했다.
‘결국 이렇게 끝나는 건가?’
아쉽기도 하지만 약간은 화도 났다.
‘그래. 세상에 민아, 현아만 여자냐? 그 둘이 얼굴이 좀 예쁘긴 하지만… 그래서 뭐? 몸매 좀 볼륨감 있으면서 늘씬하고, 다리 좀 길면서 곧고, 마인드 좀 짱이고, 피부 좀 예술적이긴 하지만….’
생각해보니 ‘좀’이 아니었다.
하나의 개체에 그런 요소들이 모두 집중된 경우는 정말 만나기 어려웠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선택을 강요한다면 다른 방법이 없는 것이다.
동굴 앞에 이른 기수는 행여나 하는 마음에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이무도 없었다.
‘진짜 내가 떠나도 괜찮은 건가?’
섭섭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조민, 조현 자매가 곧바로 따라 나올 필요는 없었다. 기관을 작동시키지 않은 한 기수는 동굴을 통과해서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것이다.
기수는 경공을 펼쳐 봉우리를 넘을까 생각하다가 동굴 석문 앞 바위에 걸터앉았다.
미련을 떨쳐버릴 수 없었던 것이다.
‘딱 10분만 기다리자. 그 다음엔 미련 없이 떠나는 거다. 진짜로.’
조민, 조현 자매가 30분 뒤에 나타났다.
기수는 무심한 표정으로 말했다.
“문 좀 열어 줘.”
조민이 가라앉은 어조로 물었다.
“정말 우리를 버릴 건가요?”
“버리다니. 무슨 말을 그렇게 해?”
“결국 우리를 선택하지 않으신 거잖아요.”
“너희들이 나를 그렇게 내몬 거지. 너희들 말고 그녀들 입장에서 생각해 봐. 내가 너희들이 요구하는 선택을 하면 그녀들이 버림받게 되는 거라고.”
“그녀들을 선택하면 우리가 버림받는 거고요.”
“꼭 그렇지는 않아. 그녀들은 다른 여인의 존재를 인정해주거든. 즉, 공존이 가능한 거지.”
“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
기수는 뻔뻔해지기로 마음먹었다.
“예로부터 영웅은 삼처사첩이란 말도 있잖아. 황제도 후궁 수백 명을 거느리고. 원래 큰일 하는 남자에게 여자가 따르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야.”
조민은 조현과 시선을 교환한 후 말했다.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일단 들어가서 얘기해요.”
“무슨 얘기?”
조현이 대답했다.
“황상을 복위시키고 천하를 안정시키는 문제에 대해서 의논해야죠.”
“그거라면야…”
기수는 아쉬울 것 없다는 표정으로 자리를 털고 일어섰지만 속으로는 아싸!를 10번도 넘게 연달아 외쳤다.
그녀들의 자존심 때문에 곧바로 오케이 하지는 않았지만, 이 정도라면 자기를 다시 받아준 거나 마찬가지로 봐야 하기 때문이었다.
궁주의 방에서 지도를 펼쳐놓고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슬쩍 눈치를 보니 조민과 조현의 표정이 영 떨떠름했다.
마음속에 앙금이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이다.
기수는 이런 어색한 분위기를 해소하는데 가장 좋은 게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문제는 그 목표에 어떻게 도달하느냐 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