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hwa Manri RAW novel - Chapter 509
사흘이 지나자 기수도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깊은 수면을 취해야 했다.
아무리 그라고 해도 휴식 없이 5배수를 채우기는 쉽지 않았던 것이다.
푹 자고 일어나서 운기조식을 한 기수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오행류 상생순환보다 훨씬 고순도의 내공이 착실히 쌓여 있었다.
순도뿐만 아니라, 양도 사흘의 성과라고 하기엔 믿어지지 않을 만큼 많았다.
기수는 차분한 운기조식 이후 욕조에 들어가 편안히 몸을 쉬었고, 새로운 활력이 솟아나는 것을 느꼈다.
조민과 조현이 욕실로 들어왔다.
“일찍 일어나셨네요.”
“피곤하지 않으세요?”
“응. 증진된 내공 덕분인지 힘이 막 넘쳐!”
조현이 배시시 미소 지으며 물었다.
“그럼 아침 먹고 바로 대법 시작해도 되겠네요?”
그 미소가 어찌나 어여쁜지…
“아니. 아침 먹기 전에 할 게 있어.”
“뭔데요?”
“대법 없이 셋이서 좀 즐겨보자!”
그리고는 알몸으로 튀어나가 조민과 조현을 덮쳤다.
“꺅!… 어제 밤까지 그렇게 했으면서…”
“대법은 대법이고, 이건 또 다르잖아.”
한 사람에 집중해야 하는 대법과 수시로 좌우 및 상하 교대가 가능한 플레이가 어떻게 같을 수 있겠는가. 기수는 사람이 계속 일만 해선 능률이 안 오르고 가끔씩 레크레이션도 즐겨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일과 레크레이션이 같은 종목이라는 문제는 있지만….
아침을 정오쯤에 먹고, 잠시 쉰 세 사람은 다시 대법연마에 몰두했다.
그렇게 다시 사흘 연속으로 연마하고 하루 쉬는 루틴을 돌다 보니 시간이 정말 빠르게 흘러갔다.
그에 비례해서 기수의 내공도 믿을 수 없을 만큼 증진되었다.
“이 정도면 척회왕에게 도전해도 될 것 같은데?”
운기조식을 마친 기수가 자신감 넘치는 어조로 말하자 조민이 말했다.
“하지만 신중하셔야 돼요.”
조현도 같은 생각이었다.
“맞아요. 확실해질 때까지 조금 더 연공하는 게…”
“물론 나도 그러고 싶지만…”
정말 세상사 다 잊고 이곳에서 자매와 함께 동화책 엔딩처럼 영원히 행복하게 살고 싶었다.
그러나 그에겐 사명이 있었다.
개인에게도 중요하지만, 수많은 백성들의 목숨이 걸려 있는 일이기도 했다.
다른 시대, 다른 나라 사람들이라고 해도…
사람이 길을 가다 엄마 잃은 고양이를 봐도 동정심이 생기기 마련인데, 하물며 수천, 수만 명의 사람들이 죽고 사는 일을 어떻게 모른 척 할 수 있단 말인가.
“여기 너무 오래 있어서 세상 돌아가는 상황을 잘 모르겠어. 이래선 안 돼. 대법을 하더라도 나가서 해야지.”
“아! 그렇다면 출궁할 준비를 할게요.”
듣고 보니 대법을 안 하겠다는 소리는 아니라서 조민, 조현도 불만이 없었다.
준비는 반나절 만에 끝났다.
세 사람이 대법에 열중한 동안 장로들이 이미 인원 선발과 여행 준비를 다 끝내 놓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떠나기 전 기수가 조민에게 부탁을 했다.
“공청석유 한 병 구할 수 있을까?”
“그건 왜요?”
“선물할 사람이 있어서.”
그러자 조민과 조현의 표정이 동시에 굳었다.
“혹시 다른 여인들…”
기수는 황급히 손을 내저었다.
“아냐. 그런 거. 내 은인에게 선물하려는 거야.”
“선물이요?”
“응. 전에 얘기했지만, 내게 오행류를 가르쳐준 어르신이 있거든. 그분이 고손자를 자기 후인으로 키우는 중인데, 공청석유라면 연공에 도움이 될 거 아냐. 그분에게 선물할 생각이야. 태무신궁에는 목욕을 할 정도로 많으니까…”
물론 충분한 양을 준다면 사매들에게도 화장품 삼아 선물할 수 있을 것이다.
어려서부터 공청석유에 목욕한 조민, 조현만큼은 안 되더라도 피부에서 광이 날 것 같기는 했다.
조민이 말했다.
“그럴 목적이라면 다른 게 있어요.”
“뭔데?”
“우리가 단약에 넣고 남은 만년하수오가 좀 있어요. 두 가지를 함께 갖다 주면 더 좋아하지 않을까요?”
“자, 잠깐만… 잘 못 들었는데… 만년하수오가 남았다고?”
“예. 우리 신궁엔 궁주에게만 전해 내려오는 영단 제조법이 있거든요. 그런데 만들 때 함량이 엄격하게 정해져 있어서 어떤 재료는 남기도 해요.”
“아!… 그랬구나.”
자기가 쪽쪽 빨아먹었던 진기엔 또 다른 근원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납득이 가지 않았다.
“영약이 남았으면 제자들이 먹어야지.”
“제자들을 위한 영단 제조법은 따로 있어요. 그리고 남았다고 해도 여러 명에게 줄 만큼 많은 건 아니에요.”
옆에서 조현이 거들었다.
“공자님에게 신공을 가르쳐준 분이라면 받을 자격이 충분하시죠.”
“그래? 그렇다면 좀 부탁해.”
“알았어요.”
그렇게 강호로 나선 태무신궁 사람은 모두 20명이었다.
조민과 조현, 두 명의 장로, 그리고 실력으로 골라 뽑은 남녀제자 16명.
기수는 그들과 함께 한중으로 나가 합비가 사는 함양의 합가촌으로 향했다.
척회왕이 보낸 척후병이 있으리라 예상하고 조심스럽게 전진했는데, 한중을 다 빠져나올 때까지 아무도 찾을 수 없었다.
아마도 비종 찾는 일은 후순위로 밀린 듯 했다.
아무런 방해 없이 평야지대로 나온 기수는 처음 만난 마을에서 일행의 옷을 전부 새로 사서 갈아입도록 했다.
짧고 간편한 무명옷으로 갈아입고 죽립까지 쓰고 나니까 그럭저럭 덜 튀어 보였다.
평상 시 같았으면 비단 궁장으로 신궁의 위세를 뽐내며 다니는 것도 좋겠지만, 척회왕이 눈에 불을 켜고 찾는데 굳이 자신을 드러낼 필요는 없는 것이다.
기수는 조민과 조현에게 약간 큰 죽립을 사서 깊숙이 눌러 씌워주었다.
허름한 옷을 입혀도 미모를 감추기는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렇게 장안에 도착하여 객잔을 잡을 기수는 식당 구석에 앉아 음식을 먹고 차를 마시면서 사람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청각에 집중하자 투숙하는 객잔뿐만 아니라 거리에서 사람들이 나누는 대화까지 섞여서 들려왔다.
‘확실히 내공이 증진되었군.’
기수는 사람들의 대화를 통해 자기가 없는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대부분 따라잡을 수 있었다.
다들 남경의 반란 얘기로 시끌벅적했다.
북경이 가짜고, 남경이 진짜 황제인데도 사람들은 남경을 반란군으로 규정하고 있었다. 시작부터 척회왕의 판정승이라고 할 수 있었다.
‘역시 중앙을 먹은 쪽이 유리해.’
그러나 얘기들을 들어보니 남경의 세력도 결코 만만치 않았다.
특히 동서로 장강을 따라 형성된 큰 도시들은 대부분 반란에 참여하고 있었다.
기수는 가짜 황제를 두 눈으로 직접 봤기 때문에 척회왕 쪽에서 얼마나 준비를 잘 했는지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쪽에 그 정도 세력이 구축된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황제가 생각보다 통치력이 뛰어나거나, 남경 원의달을 비록한 권문세가들의 수완이 좋거나, 수로맹주가 수군 제독이 되기 위해 열심히 장강을 누비고 다녔거나 셋 중 하나, 아니 어쩌면 그 세 가지가 모두 합쳐진 결과라고 추측할 수 있었다.
객잔에서의 하룻밤은 대법 없이 즐거움만으로 채워졌다.
욕조가 아닌 나무 목욕통에 침대도 작고 방도 좁았지만, 낯선 환경으로 인한 흥분 때문인지 자매가 도무지 대법을 시행할 상태가 아니었다.
물론 기수 입장에선 뜨겁게 달아오른 그녀들도 대환영이었다.
특히 3차전 이후에 시작된 자매의 ‘입으로만 끝장 보기’ 대결은 기수에게 환희와 더불어 기대감도 가지게 만들었다.
그는 오랜 시간 동안 누가 제2의 아투사가 될 수 있을까를 궁금히 여겼다.
후보는 많았다. 그쪽 방면으로 굳이 순서를 매기자면 무림맹의 당운영, 사매들 중 탁지연과 공주, 그리고 천마교의 혈천제 등을 꼽을 수 있었다.
그런데 조민과 조현도 강력한 경쟁자로 대두되고 있었다.
예쁜 얼굴과 정성스런 마인드로만 어필하느 게 아니라 하드웨어적으로도 점점 깊이를 더해가는 게 느껴졌다.
그렇게 날밤을 새고 아침 일찍 출발한 일행은 다음날 오후 합가촌에 도착했다.
기수는 합비가 언제든 쓰라고 한 옛집에 여장을 풀도록 한 후 조민, 조현 자매와 셋이서 합비의 집을 찾아갔다.
“이게 누구야…. 반갑구나. 하하하!…”
합비는 웃으면서도 두 눈으로는 조민과 조현을 훑어본 후 기수에게 ‘이건 또 누구냐?’는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만날 때마다 파트너가 바뀌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기수는 그가 내어주는 차를 마시면서 얘기를 나누었다.
합비도 걱정이 많았다.
“도대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거냐? 네 이름도 자주 오르내리던데…”
기수는 전후 사정들을 전부 다 얘기해주었다.
합비는 들으면서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허어!… 그렇게 된 거였구나. 그 척회왕이란 자도 참 대단하네.”
“사실, 그 일 때문에 찾아뵈었습니다.”
“그 일이라니?”
“어르신은 춘신공과 진영군과 함께 강호행을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랬지.”
“그 제자가 천하를 어지럽히고 있는데 보고만 계실 겁니까?”
합비는 눈을 끔뻑거렸다.
“내 제자도 아닌데 뭘 어쩌라고.”
“버르장머리를 고쳐주고 싶지 않으십니까?”
“아니. 내 제자 아니라니까.”
기수는 살짝 섭섭했지만, 합비는 이미 오래전에 은퇴한 고인이니 지금 벌어지고 있는 무림사에 개입을 부탁하는 것 자체가 무리라고 할 수 있었다.
죽이 되던 밥이 되던 당금 무림의 사람들이 해결해야 할 일인 것이다.
기수는 입맛을 다신 후 다시 물었다.
“어르신. 춘신공, 진영군의 공동전인과 싸우려면 어떤 점을 조심해야 할까요? 그리고 그들에게 약점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선물까지 싸들고 여기 온 목적이 바로 그것이었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불태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베일에 싸인 척회왕.
사소한 정보라도 알아내면 싸움에 큰 도움이 될 게 분명했다.
한 때 춘신공, 진영군과 함께 강호행을 했던 합비보다 그들에 대해 더 잘 아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합비는 기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말했다.
“넌 도대체 어떻게 된 놈이 만날 때마다 내공이 그리 깊어지는 게냐?”
“하핫! 제가 좀 천재….”
“두 사람의 공동전인과 싸우겠다?”
“예. 그를 이길 방법을 가르쳐주십시오.”
“흐음…. 방법이 하나 있긴 한데…”
기수는 반색을 했다.
“너.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뭔지 아냐?”
“글쎄요. 여러 가지가 있지 않을까요?”
“살아보면 말야. 세월이 제일 무섭다. 척회왕도 나이를 먹으면 죽게 되어 있어. 네가 그때까지 살아 있는다면 승자는 당연히 네가 되는 것이다.”
“어르신!”
“하하하!…. 그거 말고 방법이라면…”
합비는 고개를 왼쪽으로 꼬았다 오른쪽으로 꼬았다 하면서 한참 뜸을 들인 후 말했다.
“없다.”
“예?”
“전성기 때의 나도 그들 중 한 명보다 약했다.”
“그게 정말입니까?”
“진영군이라면 200초식 넘게 버틸 수 있었겠지만, 춘신공에겐 100초를 버티기 어려웠을 거야. 그런데 둘이 부부이니 애당초 도전이 불가능했지.”
“그, 그랬군요.”
“둘의 공동전인이라면, 내공은 몰라도 기술은 두 사람의 것을 모두 익혔겠지? 그렇다면 이기기 불가능하다고 봐야지.”
기수로선 암담한 얘기였다.
“그래도 방법이 있지 않을까요?”
“흐음…. 방법이라.”
“예. 사부가 고수였다고 해서 꼭 제자까지 고수인 건 아니잖습니까.”
“춘신공은 제자를 거두는 데 아주 까다로운 사람이었다. 비인부전이라나 뭐라나 하면서 그 당시 자질이 뛰어나다는 청년들을 여럿 죽였지.”
“죽였다고요?”
“능력 부족한 놈이 자기 이름에 먹칠하게 내버려두지 않으려면 그게 제일 깨끗하니까… 그 마누라인 진영군도 아주 까탈스런 여자였지. 그런데 그런 그들이 공동전인을 삼았다면, 그건 단지 황족이라서가 아닐 거야. 자질이 엄청나게 뛰어났기 때문일 거라고.”
“당시 황제의 조카라는 점도 작용을 하긴 했겠죠.”
“글쎄. 원래 무림인들은 그런 거 별로 개의치 않잖아? 지금 무림맹주도 황족이라고 떠들고 다니지만, 바탕을 따지면 고작 거지 아니더냐?”
“그렇긴 합니다만…”
희망적인 얘기는 나오지 않고 있었다.
합비가 무거워진 기수의 표정을 슬쩍 살핀 후 말했다.
“그래도 기어이 싸워야겠다면 내가 그들의 무공에 대해 아는 데까지 얘기해줄 수는 있다만…”
“부탁드리겠습니다!”
기수 입장에선 고마운 일이었다.
“좋다. 마당으로 나가자.”
“잠시만요. 이 차는 다 마시고 가도록 하죠.”
“그러던가…”
“그런데, 어르신. 고손자는 좀 어떻습니까?”
“그럭저럭 괜찮아.”
“지금 나이 때가 중요하죠?”
“이맘때 벌모세수 한 번 해주면 좋지. 하지만 내가 내공으로 추궁과혈 해주고 있으니까 비슷한 결과가 나올 거야.”
기수는 품안에서 가져온 선물을 꺼냈다.
“이걸 받아주십시오.”
“뭔데?”
종이를 펼쳐 본 합비의 눈이 커졌다.
“이거 혹시 만년하수오 아닌가?”
“맞습니다. 그리고 병에 든 건 공청석유입니다.”
합비는 더욱 크게 놀랐다.
“이게 술이 아니라 공청석유라고? 이 안에 든 게 전부 다?”
기수는 미소 지었다.
“오행류의 전인이 내공이 부족해서야 되겠습니까?”
“저, 정말 이걸 내게 주는 건가?”
“예. 받아주십시오. 그동안 입은 큰 은혜에 조금이라도 보답하고 싶습니다.”
“허어! 이것 참….”
합비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