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hwa Manri RAW novel - Chapter 511
기수가 좌군도독 장현에게 물었다.
“금군대장의 처형에 대해 더 알려진 건 없습니까?”
“워낙 갑작스런 일이라 저희들도 지금 알아보고 있는 중입니다.”
기수는 금군대장 조평이 상당히 신중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했다.
그런 그가 처형까지 당했다는 것은 뭔가 선택을 강요받았다고 추측할 수 있었다.
‘저들이 우리 쪽 전력을 모두 파악하고 있다고 봐야겠군.’
가까운 곳에서부터 숙청을 시작한다는 것은 뭔가 큰 움직임을 준비하는 예비단계로 생각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불안감이 증폭되었다.
기수가 장현에게 다시 물었다.
“후군도독부의 상황은 어떻습니까?”
금군대장이 처형당했다면 그 다음으로 척회왕과 가까이 있는 사람은 후군도독 곽승과 그의 군대였다.
“곽도독은 현재 창주를 떠나 덕주로 군영을 옮겼습니다. 적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서입니다.”
“덕주라…”
기수는 지도를 확인해보았다.
창주와 덕주는 거의 300리나 되는 먼 거리였다.
싸우기도 전에 본영을 그만큼이나 퇴각한다는 것은 일견 소심해 보였다. 그러나 척회왕과 가짜 황제의 조정 장악 능력을 보자면 현명한 판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창주를 하나의 방패로 활용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식이라면… 후군도독부 전체가 방패역할을 한다고도 볼 수 있겠군.’
북경을 기준으로 도독부 명칭을 정했기 때문에 후군도독부는 가장 뒤에 있는, 황실 입장에선 가장 가까이 있는 최후의 보루인 셈이었다.
그러나 가짜 황제와 대결하는 구도가 되다 보니 그들이 최전방에 놓인 것이다.
‘위험해. 아무리 도독부라고 해도…’
기수는 지도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리고 한 가지 사실을 발견했다.
덕주는 주변을 흐르는 작은 강과 시내들이 많아서 상황이 여의치 않을 경우 수로맹의 도움을 받아 탈출할 수 있는 길이 창주보다 훨씬 많았다.
‘그걸 고려하고 옮긴 건가?’
후군도독쯤 되면 전략적인 판단은 아무래도 자기보다 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때론 체계적인 교육이 천재보다 효율적인 경우도 있으니까…
기수는 잠시 생각한 후 말했다.
“아무래도 내가 후군도독부로 가야 할 것 같습니다.”
“예? 굳이 그러실 필요까지는…”
“아닙니다. 적의 가장 첨예한 전력이 곽도독을 위협하고 있는데, 우리 측도 그에 걸맞는 전력을 파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금 병력 대 병력으로 보면 후군도독부가 밀리는 일은 없겠지요?”
“그렇습니다. 사실 숫자만 놓고 보자면 후군도독부 쪽이 더 우위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황하 이북에 한해서 말입니다.”
“바로 그겁니다. 금군대장을 죽인 척회왕이 이번엔 후군도독을 암살하기라도 한다면, 그 이점이 곧바로 사라져버리지 않겠습니까?”
장현의 표정이 굳었다.
누가 감히 도독을 암살할 수 있단 말인가.
평소 같았으면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척회왕과 그 패거리의 무공 수위에 대해 알게 된 지금은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다.
어쩌면 가장 유력한 다음 수순이 될 수도 있었다.
“듣고 보니 기대협의 말씀이 맞군요.”
“내일 날이 밝는 대로 즉시 떠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자 혈천제가 입을 열었다.
“우리 천마교도 함께 갈 거예요.”
기수와 태무신궁이 동행하는 꼴은 못 보겠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주일비도 나섰다.
“우리 무림맹도 동참하겠습니다.”
천마교는 강을 건너 최전방으로 싸우러 가는데 무림맹만 황하 이남에 남아 있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기수는 두 사람의 지원에 감사 인사를 했다.
가장 두려운 적은 척회왕이지만 그에겐 정확한 수를 파악하기 힘든 고수 부하들이 있었다. 이쪽 편에서 많은 인원이 동원될수록 당연히 좋은 것이다.
장현은 적극적으로 나서는 무림인들이 고마워서 간단하게나마 출정 송별연을 열어주었다. 다음날 출발이라 술은 많이 내지 않았지만 고기는 양껏 먹도록 풀었다.
기수와 태무신궁의 스무 명은 성 안에 세워진 군막에 처소를 배정받았다.
막 잠들려고 하는데 기수를 찾아온 사람이 있었다.
바로 혈천제였다.
그녀 좌우엔 소혼랑과 광혼랑도 있었다.
기수는 그녀들을 군막 안으로 들어오게 했고. 내부 공기는 즉시 싸늘해졌다.
조민과 조현, 그리고 혈천제, 소혼랑, 광혼랑이 뿜어내는 한기 때문이었다.
양측의 소개가 끝나자마자 혈천제가 직구를 던졌다.
“기소협. 그동안 나 보고 싶지 않았어요?”
“응? 응. 그야 당연히….”
혈천제는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으며 아예 기수 옆으로 바짝 당겨 앉았다.
“사실대로 얘기해 봐. 나하고 우리 호법들 품이 그리웠지?”
조민과 조현의 볼이 벌겋게 상기되었다.
혈천제와 시선이 마주쳤을 때부터 이미 눈치는 챘지만, 이렇게 노골적으로 나올 줄은 몰랐던 것이다.
“이봐. 당신. 너무 심한 거 아냐?”
“뭐가 심하다는 거지? 사랑하는 남자와 재회했는데, 내가 뭐 못할 말 했나?”
기수는 혈천제가 평소와 달리 몹시 예민하게 대응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것은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다.
혈천제가 보기에도 조민과 조현의 미모 레벨이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조현이 걸상을 박차고 일어서며 외쳤다.
“사랑하는 남자라고?”
“그래!”
혈천제도 마주 일어섰고, 소혼랑과 광혼랑은 언제라도 출수할 수 있도록 좌우로 펼쳐 섰다. 그러자 조민도 동생의 옆으로 나누어 섰다.
사실, 다른 여인 얘기는 기수로부터 이미 들어 알고 있었다.
하지난 이성적으로 이해하는 것과 실제 맞닥뜨렸을 때 감정이 치솟아 오르는 건 전혀 별개의 문제였다.
특히 조민과 조현은 순수한 만큼 질투의 감정도 격렬했다.
혈천제와 소혼랑, 광혼랑은 자기들이 보기에도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화장이며 옷차림, 장신구등이 놀라우리만치 세련되고 풍취가 있었다.
산골의 신궁에만 틀어박혀 지내던 조민과 조현 자매 입장에선 몹시 신경 쓰이고 주눅 드는 부분이었다.
조민과 조현이 내공을 끌어올리자 군막이 펄럭! 소리를 내며 팽창했다.
“흥!…”
그러자 혈천제도 지지 않겠다는 듯 내공을 끌어올렸고, 즉시 비폭대라수의 기수식을 시전했다.
조민과 조현은 그 가공할 살기에 눌려 안색이 변했다.
그렇지만 물러설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두려워도 기수는 포기할 수 없는 사람인 것이다.
환우구종의 각각 한 자리씩을 차지하고 있는 마종과 비종이 바야흐로 정면 격돌하게 된 순간.
“그만두지 못해!”
기수가 버럭 소리를 지르며 일어섰다.
그의 기세에 놀란 천마교와 태무신궁 측은 즉시 진기를 거두어들였다.
기수는 준엄한 얼굴로 그들을 꾸짖었다.
“지금 천하 백성들은 도탄에 빠져 있고, 황상은 가짜에 쫓겨나 멀리 장강을 떠돌고 계시는데, 같은 편끼리 지금 뭐하는 짓이야!”
혈천제와 조민, 조현의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었다.
기수는 더욱 목소리를 높였다.
“척회왕과 청탑산 패거리는 우리가 힘을 하나로 합쳐도 이길 수 있을까 말까 한 강적인데, 정말 이런 식으로들 나올 거야?”
기수로서는 이걸로 밀고 나갈 수밖에 없었다.
혈천제도 이해하고, 조민, 조현도 이해한다.
하지만 어느 한 쪽 편을 들어줬다가는 뒷일을 감당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양쪽을 꾸짖는 찬스를 꽉 잡아야 하는 것이다.
“미, 미안해.”
“저희가 잘못했어요.”
기수는 사과하는 그녀들에게 적당히 훈계 몇 마디를 더 해주면서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군막 밖으로 인기척이 들렸다.
“기소협. 계신가요?”
저자세를 취하던 혈천제와 조민, 조현의 이마에 빡! 주름이 잡혔다.
어여쁜 아가씨 목소리였기 때문이다.
기수는 가만히 있는데 그녀들이 먼저 군막 밖으로 나갔다.
기수는 따라 나가기 싫었지만 유혈사태를 막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일어섰다.
아니나 다를까. 밖엔 무림맹 여인들이 와 있었다.
그녀들은 기수가 나타나자 소녀팬들처럼 눈이 하트모양으로 바뀌었고, 제자리에서 깡총깡총 뛰기까지 했다.
혈천제와 조민, 조현의 눈썹은 더욷 치켜 올라갔다.
기수는 헛기침을 한 후 미소를 지어 보였다.
“왔어? 오랜만이야.”
당운영, 능소화, 사하, 호운혜, 양여옥, 백서린이 동시에 입을 여는 바람에 여섯 사람의 목소리가 섞여서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하지만 표정만으로도 다들 얼마나 반가워하는지 알 수 있었다.
사하가 턱짓으로 조민, 조현을 가리키며 물었다.
“쟤들은 누구야?”
무림맹 여인들의 시선이 두 사람에게 고정되었다.
워낙 빼어난 미모라 경계하는 기색들이 역력했다.
기수는 그녀들에게 두 사람을 소개했다.
“비종 태무신궁의 궁주님과 부궁주님이야.”
사하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혹시 너하고….?”
기수는 이럴 때 당당한 남자.
“응. 대법을 함께 연마하는 사이지.”
그러자 무림맹 여인들뿐만 아니라 천마교 여인들까지 야유를 하기도 하고 화를 내기도 하면서 한바탕 소란이 벌어졌다.
조민과 조현도 화 난 눈으로 기수를 노려보며 물었다.
“설마. 이 여인들 전부와 대법을 펼친 건가요?”
“응.”
기수는 역시 당당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숨길 수 없는 일이라면, 약한 모습을 보여선 안 되는 것이다.
조민과 조현은 분노와 질투심으로 인해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는데, 당운영이 한 마디 해서 불을 지폈다.
“이걸로 끝이면 말을 안 해. 혈매궁에도 8명이나 더 있잖아?”
그러자 조현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기수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나쁜 사람!”
기수는 방심하고 있다가 한 방 맞고 말았다.
정타는 아니고 스쳐 맞은 거지만 살짝 당황스러웠다.
그러자 무림맹과 천마교의 아홉 미녀들이 격분했다.
“감히 기소협을 때리다니!”
그러자 조민이 동생 편을 들고 나섰다.
“나쁜 짓을 했으면 맞을 수도 있는 거지. 왜?”
호운혜가 그 큰 키에 주먹까지 위협적으로 휘두르며 따졌다.
“야! 비종이면 다야? 너희들도 기소협과 했으면서, 뭐가 나쁜 짓인데?”
“그, 그것은…”
“여러 말 할 것 없어. 오늘은 기소협을 우리한테 양보해.”
그러자 혈천제가 발끈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 우리가 얼마나 오랜만에 만났는데!”
“너만 오랜만이냐?”
11명의 미녀들이 악다구니 쓰는 모습을 보면서, 기수는 자기가 나서서 뭔가 정리를 하지 않으면 큰일 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방치해둬서 그럭저럭 넘어갈 상황이 아니었다.
현재 이곳에 있는 사람 중 조민, 조현 자매는 비종, 혈천제, 광혼랑, 소혼랑은 마종, 양여옥은 화종, 능소화는 9파 1방 4문 5가 중에서 아미파, 백서린은 십절금왕문, 호운혜는 사해문, 당운영은 사천당가 소속이었다. 사하가 속한 남해 보타문 역시 만만한 문파가 아니었다.
11명 모두 내로라하는 무가에 속한 최고의 미녀들.
단지 미모뿐만 아니라 신분, 강호에서의 배분까지 고려했을 때 어디에 내놔도 빠지지 않는 사람들인 것이다.
자존심이 하늘을 찌르는 그녀들이다 보니 두세 명 혹은 여섯 명이 한 남자를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많이 양보했다고 할 수 있었다.
그걸 넘어서는 경쟁자의 위협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을 어찌 탓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기수가 그냥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여기에 기린궁의 8명까지 가세한다면 문제가 정말 심각해질 것이다.
특히 거기엔 신분으로 따졌을 때 최강인 공주도 있었다.
누군가 나서서 질서를 잡아야 하는데, 그럴 사람은 결국 자기밖에 없다는 게 기수의 결론이었다.
“다들 그만해!”
호통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자기에게 모이자 기수는 일단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단호한 표정을 지었다.
여자(들)에게 휘둘리는 못난 사내가 되지 않으려면 자기부터 중심을 확실히 잡아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그는 헛기침으로 목을 고른 후 말했다.
“우선, 분명히 해둘 게 한 가지 있다.”
어느 때보다 진지한 기수의 목소리에 여인들 모두 긴장한 표정으로 그를 주시했다.
“나는 너희들의 쟁취의 대상이 아니다.”
당운영이 물었다.
“그게… 무슨 뜻이야?”
“내가 선택하는 주체라는 뜻이다.”
11명의 표정이 변했다. 뭔가 굴욕적이라는 기분도 잠깐 들었지만 그보다는 기수의 존재가 갑자기 커 보이는 느낌이 훨씬 강했다.
여자들끼리 싸워봤자 결국 기수가 안아주지 않으면 다 소용없는 일 아닌가.
괜히 자기들끼리 싸워서 점수 깎이기보다는 기수에게 잘 보여야 한다는 쪽으로 사고 전환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기수는 자기 의도가 어느 정도 먹혀 들어간다는 사실을 분위기로 감지했다.
그래서 더욱 강력한 의지를 담아 말했다.
“앞으로 또다시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보이면 그게 누구건 두 번 다시 안 볼 거다. 그때 가서 후회하지 마.”
“하, 하지만….”
다들 저마다 기수와의 사연과 인연이 있기에 하고 싶은 말들이 많았다.
기수는 그 얘기들을 들어주면 끝이 없다 생각하고 검지를 가로저어 모두의 입을 다물게 만들었다.
“같은 말 반복하게 하지 마라.”
11명의 미녀들은 말은 못 하고 서로의 눈치만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