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hwa Manri RAW novel - Chapter 512
미녀들은 자신들 앞에 당면한 상황을 받아들여야 했다.
선택의 주체는 자기들이 아니라는 사실.
기수에게 잘 보이는 것만이 그와 밤을 보낼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사실.
억울하기도 하고, 자존심이 상하기도 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기수는 젊고, 잘 생겼고, 키도 크고, 체형도 좋았다.
여자를 대할 때는 여느 남자들과 달리 몹시 존중해주는 마음씨도 보였다.
거기다가 무공으로는 천하제일인으로 알려졌고, 무림맹과 천마교를 한꺼번에 통솔하고 있으며, 심지어 황제의 측근이라는 얘기까지 떠돌았다.
이런 남자 찾기는 정말 어려운 일.
그리고 밤에 잠자리에서 보여주는 절정의 힘과 기교들.
연장이 어마어마할 뿐만 아니라 밤새 달리고 다음날 해가 떠도 식지 않는 절륜한 지속능력까지 지니고 있었다.
여자라면 절대로 거부할 수 없는 남자인 것이다.
그리고 무림의 여인이라면 한 가지 더 그를 원하게 만드는 요인이 있었다.
영약을 먹고 오랜 세월 운기행공을 해야 얻을 수 있는 내공을, 기수는 천상의 환희와 함께 하룻밤 사이에 제공해줄 수 있었다.
한 번 그 맛을 본 미녀들은 절대로 그에게서 벗어날 수 없었다.
자신의 신분이나 배분이 존귀하다 해도 마찬가지였다.
11명 모두 흥분을 가라앉히고 저마다 다소곳한 표정으로 기수의 눈치만 살폈다.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다.
기수는 당당하게 자신의 선택을 얘기했다.
“오늘은 무림맹으로 간다. 다들 내일 봐.”
무림맹 여인들은 주먹을 불끈 쥐며 ‘아싸!’를 외치는 모습이었고 천마교와 태무신궁 여인들은 절망감에 빠지는 표정이었다.
기수는 특히 이런 일을 처음 경험하게 되는 조민과 조현에게 신경이 쓰였다.
그러나 다행히 감정 폭발 없이 그럭저럭 넘어가는 것 같았다.
‘역시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란 말야.’
기수는 순진한 그녀들에게 몹시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곧 억지로 지워버렸다.
‘난 공평무사한 사람이야. 두 사람이라고 해서 특별대우 하면 안 돼. 미녀 위에 미녀 없고, 미녀 아래 미녀 없다는 말도 있잖아.’
그렇게 마음을 다지고 더 이상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무림맹 여인들을 따라가면서, 기수는 미녀 위에 미녀 없다는 말은 좀 잘못 되었다는 생각을 했다. 포개고 노는 것도 대단한 즐거움이기 때문이다.
‘그래. 오늘은 포개고 놀아보자!’
장소는 그녀들이 이미 마련해놓고 있었다.
사람들 눈을 피해 들어간 허창 시내의 객잔.
기수는 오랜만에 만나는 무림맹 미녀들에게 자신의 몸을 마음대로 하라고 맡겨주었다.
여섯 명의 협공이 시작되었는데, 뭔가 달랐다.
그동안 자기네들끼리 무슨 스터디 그룹이라도 결성해서 연구했는지 장족의 발전이 있었다. 특히 기수가 제일 좋아하는 서비스에 있어서 절로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기수는 그녀들의 노력에 충분한 보답을 해주었다.
오면서 계획했던 포지션도 여러 조합으로 즐겼다.
조민, 조현과 비교하려는 마음이 자꾸 일어났지만 널리 미녀들을 이롭게 한다는 자신의 사명을 떠올리고 다양성을 존중해줄 수 있었다.
그렇게 새벽이 되자 능소화가 말했다.
“짧게라도 음양대법 한 번씩 해 줘. 이제 황하를 건너가면 언제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르는데. 응?”
그것도 맞는 말인지라 6명에게 보상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그렇게 모두가 끝난 뒤.
무림맹 여인들은 대만족하는 표정들이었다.
“전보다 훨씬 진하고 깊은 것 같아.”
“맞아. 기소협 내공은 어쩜 이렇게 계속 심원해지는 거지?”
그러나 기수는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했다.
양주 마시다가 소주로 바꾼 기분이랄까?
예전에는 몰랐는데, 원조의 깊은 맛을 보고 나니까 저절로 비교가 되었다.
내공이 깊어지면서 더 예민해진 때문인지, 6명 중에서도 사하와 당운영이 1, 2위를 다툰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 수 있었고 호운혜의 효율이 다른 5명에 비해 현격하게 떨어진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아! 내가 공평하게 대하고 싶어도 상대에 따라 다른 건 어쩔 수 없구나.’
그저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뿐, 나머지는 파트너의 몫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밤을 보내고 돌아온 다음날.
조민과 조현은 기수의 옷에서 나는 여러 종류의 향수냄새 때문에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떨어져 살 수 없는 사람인데.
기수는 자매에게 사과했다.
“미안해. 어제 일은…”
여섯 명과 지내는 동안 오히려 조민, 조현에 대한 그리움이 더 커진 느낌이었다.
“다른 여자‘들’하고 잔 게 우리한테 사과할 일인가요?”
복수형에 악센트가 들어간, 냉랭한 대답이었다.
“아니. 그게 미안하다는 게 아니라… 너희들 보는 앞에서 그런 행동을 해서 놀랐지? 앞으로는 눈에 띄지 않도록 할게.”
조민과 조현은 기가 막혔다.
그러나 기수는 빳빳이 든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이들에게 당당할 수 있다면 다른 어떤 여인 앞에서도 당당할 수 있다!’
일종의 트레이닝을 하는 셈이었다.
마음속으로야 조민, 조현과 함께 한중의 산골 마을로 들어가고 싶었지만, 사명을 띤 몸으로 어찌 그럴 수 있단 말인가.
조민과 조현의 섭섭해 하는 표정을 보니 가슴이 아파왔다.
‘아!~ 이것이 내가 감내해야 할 삶의 무게로구나…’
아무리 괴로워도 견뎌야한다고 생각하니, 뭔가 좀 더 어른스러워지고 성숙해지는 기분이었다.
조민, 조현 자매와의 관계 개선은 결국 시간이 해결해줄 거라 믿고, 기수는 수로맹의 배를 타고 황하를 건넜다.
무림맹에서 500여명, 천마교에서 400여명이 동원된 대대적 규모.
관군의 눈을 피하기 위해 수로맹 배들은 한 번에 서너 척씩 소규모 선단으로만 움직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동은 빠르게 이루어졌다.
덕주의 수로 교통이 그만큼 좋다는 방증이었다.
후군도독 곽승은 휘하 무장들을 모두 거느리고 기수와 무림인들을 맞았다.
인사를 나눈 후, 기수는 그의 얼굴이 전보다 많이 초췌해 보인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최전방에 자리 잡은 지휘관의 스트레스 때문인 것 같았다.
“저희들이 최선을 다해 도울 것이니 너무 심려하지 마십시오.”
기수의 말에 그나마 약간의 미소가 돌아왔다.
“말씀만 들어도 고맙습니다. 사실, 그동안 적의 움직임 때문에 여간 골차 아팠던 게 아닙니다.”
“움직임이라면…”
“창주에 주둔하는 동안 매일 초병들이 살해당하고, 군량이 불타고, 군마가 죽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병사들은 불안해서 잠도 잘 못 잤지요.”
“범인은 잡았습니까?”
“그게… 하도 신출귀몰해서…”
기수는 청탑산 무리가 후군도독부 군영에 침투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지금은 좀 어떻습니까?”
“그나마 거리가 벌어져서인지 약간 덜합니다.”
“사라진 건 아니고 덜한 정도입니까?”
“예. 아직도 피해 보고가 계속 들어옵니다.”
기수는 곽승과 부하 무관들의 얼굴에 배인 피곤함이 단지 스트레스뿐만이 아니라 수면부족에서도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청탑산 무리 정도의 무공과 경공술이라면 일반 병사로서는 절대로 그 움직임을 감지하지 못할 것이었다.
도독과 고위 장교들이 직접 보초를 서지 않는 한 당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
기수가 힘찬 어조로 말했다.
“걱정 마십시오. 오늘밤부터는 절대 그런 일 없을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하!…”
기수는 주일비, 혈천제 등과 함께 덕주성 주변을 돌며 적이 침투할 수 있는 경로를 모두 체크했다.
그리고 중요 포인트마다 무림인들을 배치하여 대응하도록 했다. 뿐만 아니라, 첫 날엔 자신이 직접 성 밖으로 나가 적의 침투에 대비하여 매복했다.
다음 차례를 기다리는 미녀들이 많았지만, 기수는 현재 무림맹과 천마교, 수로맹 도합 천 명이 넘는 무림인들의 안위는 물론 후군도독부의 생사까지 책임져야 하는 위치인지라 음양대법을 펼칠 수 있는 심리상태가 아니었다.
깊은 밤.
자정을 넘어가자 기수의 감각을 자극하는 기척들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가 일어서자 혈천제나 주일비, 조민, 조현 등이 놀라서 따라 일어났다.
“왜 그러세요?”
“놈들이 오고 있어.”
다른 사람들은 느끼지 못하지만 기수는 확실히 감지할 수 있었다.
“북동쪽이야. 모두 여덟 명.”
기수가 경공을 펼치자 다른 고수들도 그를 따랐다.
기수는 자기 혼자 너무 앞서가지 않도록 속도를 조절했고, 일행은 10여리를 이동한 뒤 과연 야행복 입은 적들을 만날 수 있었다.
순식간에 포위당한 그들은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기수가 앞으로 나서서 말했다.
“오느라 수고했다.”
그러자 그들 중 한 명이 대답했다.
“흐흐흐…. 우리 행적을 어떻게 알았는지는 모르겠다만, 이 자리에서 죽는 것은 너희들이 될 것이다.”
그러면서 일제히 무기를 뽑아들었다.
기수는 피식 웃었다.
“너희들. 우리가 누군지 아직 모르는구나. 후후…. 어쨌거나 상관없다. 안 그래도 너희들 병력배치와 공격계획을 알고 싶었는데 때맞춰 잘 와주었다.”
8인의 침투조는 좌우를 둘러보고 비로소 자신들을 에워싼 사람들의 기도가 만만치 않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흥! 설령 우리를 죽인다 해도 입은 절대로 열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괜찮아.”
순간, 기수의 손가락에서 파공음이 울려 퍼졌다.
퓨퓨퓨퓨퓨퓻!…
잔백지가 발출되었고, 적 8명은 거의 동시에 쓰러졌다.
사방에서 경탄성이 새어나왔다.
여기까지 따라온 사람들은 적어도 구파일방의 장문인급 고수들.
방금 펼쳐진 기수의 수법은 지극히 단순해 보였다.
하지만 그 가공할 스피드에 비범함이 숨겨져 있었다.
이곳에 모인 고수들 중 누구도 방금의 지풍이 자신에게 향했다고 가정했을 때 성공적인 방어를 자신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두려움 섞인 경탄성을 내뱉게 된 것이다.
눈치 빠른 혈천제와 당운영은 조민과 조현 쪽을 봤다.
기수의 내공이 전에 비해 늘어난 원인으로 그들 자매를 의심하게 된 것이다.
기수는 점혈 당해 쓰러진 자 앞으로 다가가 뇌파 동조를 했다.
그리고 몇 가지 질문을 한 후 확인 차 다른 자에게도 동일한 질문을 했다.
몇몇 사람은 기수의 독특한 심문법을 알지만, 모르는 사람이 더 많아서 다들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기수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무래도 적의 공격이 멀지 않은 것 같습니다.”
“공격이라면…”
“이곳으로는 금군과 도지휘사 병력이 들이칠 것이고, 전군, 우군, 중군 도독부 병력이 동시에 허창을 칠 계획인 모양입니다.”
주일비가 크게 놀라 말했다.
“그렇다면 큰일이군요!”
그동안 전구, 우군, 중군도독부의 병력은 남경을 포위공격하기 위해 남하하는 중이라고 알려져 있었다.
갑자기 방향을 틀어 허창을 포위한다면 위기에 빠질 수도 있는 것이다.
기수는 즉시 성으로 복귀하여 후군도독 곽승과 만났다.
곽도독은 결국 오늘도 제대로 잠을 잘 수 없었다.
그러나 잠이 문제가 아니었다.
기수의 얘기를 들은 그는 크게 놀랐다.
“이곳과 허창을 동시에 친다면 서로 원군을 보낼 수도 없겠군요.”
“병력 이동이 감지당하지 않도록 그동안 일부러 고수들을 보내어 습격을 감행하고, 척후병들을 제거했던 것 같습니다.”
“허어! 그것 참…. 헌데, 삼군도독부 병력이 허창을 친다면 위험하지 않을까요?”
모처럼 와준 무림고수들이 다시 돌아갈까봐 불안해하는 표정이었다.
기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척회왕에게 있어서 가장 큰 위협은 파양호에 있는 황제와 남경을 중심으로 한 복위 추진 세력들이다.
그러나 그들을 바로 제압하기는 쉽지 않았다.
바로 턱밑에 있는 후군도독부와 중원을 장악하고 있는 좌군도독부 때문에 자유로운 병력 운용이 어려운 것이다.
황제와 연결된 남경을 먼저 치느냐, 코앞의 후군도독부를 먼저 치느냐.
그런데 척회왕은 이도저도 아닌 중간에 있는 허창에 병력을 집중하고 있었다.
‘허리를 잘라놓으면 머리와 꼬리는 따로 제거하기 쉽다는 건가?’
어쩐지 이 계획은 전에 죽이지 못하고 살려둔 제갈청의 머리에서 나온 것 같았다.
기수는 주일비와 혈천제를 향해 말했다.
“병력의 절반은 허창으로 되돌려 보내주십시오.”
주일비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삼군 도독부가 몰린다면 우리 모두 돌아가야 하는 것 아닐까요?”
“그 정도는 아닐 거라고 봅니다. 말이 삼군도독부지, 예전과는 다릅니다.”
“어떤 면에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그들의 우두머리였던 황호가 죽고 없기 때문입니다.”
“아!…”
“그가 죽으면서 전군도독부는 거의 와해되다시피 했고, 중군과 우군도독부도 기세가 많이 꺾였습니다. 게다가 남경으로 가던 군대의 진로를 바꾼다면 기병이 먼저 와서 중군을 기다리는 모양새가 될 텐데, 장도독의 용병술과 허창의 높은 성벽이라면 충분히 견뎌낼 수 있을 것입니다.”
기수의 얘기를 듣고 보니 크게 걱정할 바 없는 일 같아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절반은 돌려보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두 분 중 한 분도 가서 장도독을 도와주십시오.”
거기서 주일비와 혈천제의 눈치작전이 시작되었다.
주일비는 큰공 세울 기회를 잡기 위해 기수 옆에 있고 싶어 했고, 혈천제는 다른 경쟁자들을 옆에 두고 혼자만 떠나갈 수 없어서 남기를 원했다.
옥신각신 하다가 혈천제가 말했다.
“지난번엔 무림맹이 궁주님과 함께 행동했으니 이번엔 우리 천마교 차례 아닙니까?”
결국 주일비가 양보할 수밖에 없었다.
“좋습니다. 하지만 다음번엔 우리 무림맹 차례입니다. 잊지 마십시오.”
무림맹 측에선 무당장문인이 남고, 천마교 측에선 암천제와 자영이 돌아가는 것으로 지휘관 배정도 끝났다.
기수는 주일비를 전송하며 따로 말했다.
“허창과 개봉을 지키는 일은 정말 중요합니다. 맹주님 아니면 누가 그런 큰일을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맡겨주십시오. 하하하!….”
절반의 병력이 허창으로 떠난 후, 기수는 곧바로 무림맹과 천마교의 수뇌부를 한 자리로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