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hwa Manri RAW novel - Chapter 513
조민, 조현 자매, 혈천제, 그리고 무당장문인이 기수 앞에 모였다.
기수는 그들을 둘러본 후 말했다.
“아시는 대로, 역도들은 지금 허창과 이곳 덕주를 동시에 공격하려 하고 있습니다. 병력으로 따지면 허창 쪽이 더 많겠지만, 이쪽엔 높은 무공을 지닌 자들이 동원될 가능성이 큽니다. 그래서…”
모인 사람들 모두 침을 꿀꺽 삼켰고, 기수의 말이 이어졌다.
“우리도 저들이 했던 것처럼 해볼까 합니다.”
혈천제가 물었다.
“소규모 인원을 침투시켜 적의 전략 요충지를 친다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적이 자신들의 계획을 무난하게 수행하도록 놔둬선 안 된다는 생각입니다. 여러 부대를 움직일 필요는 없고, 저와 경공을 맞출 수 있는 사람들로 10명 정도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상당히 까다로운 조건이라고 할 수 있었다.
엄밀히 따지면 10명을 채울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그러나 무림맹과 천마교 통합 탑 텐 안에 드는 고수들을 모은다면 뭐가 되도 될 거라는 기대감이 일었다.
혈천제가 다시 물었다.
“적의 요충지라면 범위를 어디까지로 생각하십니까?”
“황궁까지로 보고 있습니다.”
“아!…”
조민이 걱정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건 너무 위험해요. 척회왕과 만날 수도 있잖아요.”
기수는 결연한 어조로 대답했다.
“결국은 그를 쓰러트려야 이 모든 게 끝날 것입니다.”
그의 입장에선 마지막 남은 숙적. 피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다.
조현이 말했다.
“하지만 아직은 시기상조가 아닐까요? 좀 더 연공을 한 다음에…”
혈천제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그런데 연공이란 말이 다른 여자 입에서 나오니까 속이 좋지 않았다.
기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금처럼 위급한 때에 그와의 대결을 계속 뒤로 미루고만 있을 수는 없습니다. 만약 허창이 떨어지기라도 한다면 그때는 상황이 또 완전히 달라질 것입니다. 그러니 아직 변수가 있을 때 기회를 노리는 편이 낫다고 봅니다.”
결국은 기수의 의지대로 공격조가 꾸려졌다.
기수와 조민, 조현, 혈천제와 광혼랑, 소혼랑, 무림맹 쪽에선 무당장문인과 비룡검문 문주 진백, 곤륜파의 방옥, 사해문의 호문평 등이 참여했다.
능소화나 당운영 등의 여인들도 끼고 싶어 했지만 배분에서 밀렸다.
기수는 건량과 마실 물 등을 챙긴 후 수로맹의 배가 아닌 육로를 따라 북쪽으로 올라갔다. 적의 배치를 확인하기엔 그게 편하기 때문이었다.
덕주에서 창주까지 가는 길엔 의외로 적의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잠시 쉬는 시간. 조민이 가까이 다가와 기수에게 물었다.
“기공자. 아무래도 연공을 더 해야 하는 거 아닐까요?”
“왜? 못 참겠어?”
“무슨 소릴 하는 거예욧! 난 어디까지나 공자님 생각을 해서…”
“후후…. 알아. 안다고. 하지만 대법만 반복한다고 해서 다 좋은 건 아냐. 과식을 했으면 소화시킬 시간도 필요한 법이거든.”
“하지만, 과식이라고 하기엔…”
“워우! 네 기준으로 얘기하면 안 되지. 9대 1 잊었어? 난 휴식이 좀 필요해.”
“그렇군요. 뭐… 언제든지 필요하면 얘기하세요.”
기수는 미소 지을 수밖에 없었다.
자기는 별로 내키지 않지만 대의를 위해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 모습이 참을 수 없을 만큼 귀여웠기 때문이다.
조현도 옆에서 입술을 삐죽거리고 있었다.
기수는 그들에게 말했다.
“그동안 신궁에서만 지내다가 강호에 놔서 여러 가지 마음에 들지 않는 일들이 많겠지만, 이거 하나만큼은 꼭 알아줬으면 좋겠어.”
“뭔데요?”
“난 이 세상 누구보다 너희 둘을 사랑해. 진심이야.”
“아아!….”
조민과 조현은 황홀감에 도취된 표정을 지었다.
그동안의 마음고생이 전부 녹아 내리를 느낌이었다.
기수의 한 마디가 그런 큰 설득력을 지니게 된 것은 그게 바로 기수의 진정한 속마음이었기 때문이다,
‘지금만큼은 진심이다.’가 아닌 오랜 세월 가슴 속에 담겨 있던 생각이었다.
그렇게 말로서 자매를 보듬어준 기수는 휴식 시간이 끝나기 전에 천마교 진영 근처로 가서 혈천제와 광혼랑, 소혼랑에게도 미소를 지어 보여주었다.
말로 하면 아무래도 진심이 안 담길 것 같아서 표정으로 때운 것이다.
솔직히 혈천제도 대단히 사랑스러웠다.
타이밍이 겹치는 게 운이 나빴을 뿐이었다.
창주에 도착하자 상황은 급변했다.
성 밖까지 군영이 세워져 있었고 관도엔 병사들이 검문소를 운용하여 오가는 행인들을 철저히 조사했다.
흔히 볼 수 있는 장사꾼 행색으로 꾸민 일행이지만 여자가 다섯 명이나 되기에 의심받을 가능성이 높아, 일단 길을 벗어나 숲으로 들어갔다.
“곧 해가 질 테니 잠시 음식을 먹으며 쉬었다가 밤에 움직입시다.”
아홉 명에게는 쉬도록 하고 기수는 혼자 경공을 펼쳐 주변을 둘러보았다.
자기와 경공을 맞출 수 있는 사람들로 뽑아 왔다고는 해도, 현실적으로는 격차가 있어서 이런 식의 정찰은 혼자 하는 게 편했다.
창주성을 멀찍히 한 바퀴 빙 돌면서 적의 군영을 살펴본 기수는 한 지점에서 청탑산 무리로 의심되는 고수들의 기도를 감지했다.
적어도 이삼 백을 헤아리는 많은 수였다.
‘덕주 공격에 총력을 기울이겠다는 뜻이군.’
본래 군대와 군대의 싸움에 있어서 무림인의 효용가치는 그다지 크지 않았다.
50명, 100명의 대결과 5천 명, 1만 명의 대결은 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그러나 정면대결이 아닌 다른 용도에는 효과적으로 써먹을 수 있었다.
적 진영은 이제까지 그걸 잘 활용했다.
척회왕이라기보다는 제갈청의 솜씨로 추정되었는데, 어쨌거나 골치 아픈 존재인 것만은 분명했다.
기수는 그들의 위치를 자세히 정찰한 후 동료들이 기다리는 숲으로 돌아가 공격목표에 대해 자세히 얘기해주었다.
모두 들은 무당장문인이 물었다.
“그들의 군영까지 가려면 보병 진영을 지나가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이리로 들어가서 이쪽으로 빠져나오면 될 겁니다.”
기수는 땅바닥에 그린 간략한 지도에 막대기로 짚었다.
비룡검문 문주 진백이 물었다.
“보병들이야 별 문제 없다고 해도, 청탑산 고수가 300명이라면 우리 10명만으로 그들과 싸우는 게 가능할까요?”
“물론입니다.”
사해문의 호문평이 중얼거렸다.
“보병 진영을 통과하다 보면 적이 알아차리고 미리 방비를 할 텐데…”
기수는 그들의 불안감을 이해했다.
사실, 숫자상으로 10대 300은 너무나 불리했다. 거기다가 은혈대법까기 고려한다면 무모한 계획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기수는 자신 있었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성공하면 적에게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습니다. 저를 믿으십시오! 제가 길을 열겠습니다.”
그가 확신에 찬 어조로 말하자 다들 마음을 정했다.
무림맹과 천마교를 대표해서 뽑힌 사람들답게 무공에 대한 자존심은 저마다 지니고 있었다. 기수가 그렇게까지 말하는데 꼬리를 뺄 수는 없는 일이었다.
깊은 밤.
기수와 동료들은 적진을 향해 다가갔다.
“너희들은 누구냐! 거기 서라!”
보초병의 고함을 듣고도 10명은 멈추지 않았다.
대신 무기를 뽑아들었고, 병사들은 고함을 쳐서 동료들을 불렀다.
기수는 좌우를 둘러보고 준비가 된 것을 확인한 후 선두에서 폭발적으로 튀어나갔다.
나머지 9명도 그를 따랐다.
그로 인해 마치 송곳과 같은 대형이 만들어졌다.
송곳의 가장 뾰족한 부분에 자리 잡은 기수는 잔백지를 계속해서 펼쳐냈고 가로막는 자들은 전부 다 쓰러트려버렸다.
그렇게 첨단이 빠른 속도로 쑥! 뚫고 들어가니까 송곳의 몸통도 손쉽게, 속도를 줄이지 않고 전진할 수 있었다.
겹겹이 둘러싸여 있던 청탑산 고수들의 군영이지만, 기수 일행은 채 5분도 되지 않아 그곳에 도착했다.
그들을 맞은 것은 강력한 살기
소란이 일자 적은 모두들 밖으로 나와 대형을 갖춘 채 침입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기수가 도착하자 무리 중 한 명이 나서서 물었다.
“웬놈들이냐!”
“후후… 너희들을 지옥으로 보내줄 저승사자다.”
그러자 청탑산 고수는 코웃음을 쳤다.
“흥! 어이가 없구나. 스스로 갇힌 꼴을 자처해놓고 우리를 저승으로 보내겠다고? 고작 10명이 말이냐?”
기수는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관통당한 보병들이 이미 배후를 차단하고 있었다.
그가 쓰러트린 숫자는 군영 전체로 봤을 때 미미한 수준이었던 것이다.
기수는 어깨를 한 번 으쓱한 후 말했다.
“들어올 때 마음대로 들어왔는데, 나가는 걸 걱정할 필요가 있나?”
그 말에 동료들 얼굴에 드러났던 부담감이 싹 사라졌다.
청탑산 고수가 입술을 이죽거리며 말했다.
“건방지기 짝이 없는 놈이로구나. 자기 이름조차 밝히지 못하면서 말이다.”
“나? 난 기수라고 한다. 기린궁 궁주지.”
“뭐, 뭐라고!”
순간, 적 진영의 기도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기수의 이름을 듣는 순간 무조건적으로 반응하는 것이었다.
기수는 씩 웃었다.
“그래. 이제 좀 싸워볼 만 하구나.”
그때. 청탑산 고수 36명이 순식간에 12명으로 이루어진 합격진 3개를 만들어 기수를 협공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른 자들도 나머지 9명을 향해 달려들었다.
갑작스럽게 벌어진 혼전.
기수는 적들이 자기에 대한 대비를 상당히 잘 해두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합격진의 압박이 장난이 아니었다.
동료 아홉 명 역시 처음부터 은헐대법을 펼치며 달려드는 압도적인 숫자의 적들에 위압감을 느끼고 주춤주춤 뒤로 물러섰다.
그때 의외의 활약을 펼치는 두 사람이 있었다.
바로 조민과 조현.
그녀들은 압도적인 숫자의 강적들에 둘러싸였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주눅 들지 않고 자신들의 실력을 발휘했다.
비명이 난무하고 적이 낙옆 떨어지듯 쓰러지자 다른 동료들도 기운이 났다.
혈천제는 두 여인을 강력한 경쟁자로 여기고 있었다.
그런데 단지 미모만 빼어난 게 아니라 무공까지 고강하다는 사실을 알고 크게 놀랐다.
더구나 그녀들의 움직임은 어딘가 모르게 기수와 비슷했다.
‘무공에서 질 수는 없지.’
혈천제는 즉시 내공을 끌어올렸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마공들을 펼쳐내기 시작했다.
그녀가 적극적으로 움직이자 광혼랑과 소혼랑도 사력을 다했다.
여인 다섯 명이 믿기 어려운 신위를 보이자 무림맹의 네 남자들 역시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저마다 이를 악물고 절기를 펼쳐내기 시작했다.
청탑산 패거리들은 그들의 반격에 당황했다.
천마교 교주와 비종의 궁주가 포함된 거의 최강 조합이란 사실을 알 리 없기에 여인들에게 밀리는 상황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것이다.
거기에 결정적으로 기수가 수세에서 공세로의 전환을 시작했다.
적 합격진의 스타일 파악을 위해 잠시 방어에 치중했지만 개략적인 구조를 알아낸 이후에는 더 이상 밀릴 이유가 없었다.
기수의 양 손, 열 개의 손가락 끝에 파란 빛이 맺혔고, 이어서 무시무시한 파공음이 울려 퍼졌다.
파파파파파팟!…..
은혈대법 상태의 고수들을 제압하기란 쉽지 않은 일.
그러나 파천강기는 상대의 몸을 여지없이 관통했다.
기수는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내공증진을 확실히 체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적진 한 가운데로 파고들었다.
청탑산 놈들은 하나라도 살려두면 척회왕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사혈을 노렸고, 최대한 빨리 최대한 많은 적을 죽이기 위해 노력했다.
기수가 그렇게 진심으로 살수를 펼치자 사망자 수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빠르게 늘어났다.
살아 있는 청탑산 무리는 크게 당황했다.
기수의 시야에 들어가기만 하면 거리와 상관없이 푸른빛에 관통당해 쓰러지니, 무슨 대책을 생각해 볼 여유조차 없었다.
기수는 더욱 속도를 냈다.
내공 소모도 개의치 않고 파천강기를 쏴대는 기수의 모습은 5배럴 개틀링 건을 좌우로 장착한 전투 헬리콥터처럼 보였다.
그 앞에 청탑산 무리는 무력하게 학살당할 뿐 대항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
은혈대법으로 내공을 증폭시켜봤자 기수 앞에선 별 의미가 없었다.
전멸당하기 전에 도망쳐야 한다는 생각을 한 자도 있었지만, 그 생각을 실행에 옮길 여유조차 주지 않았다.
결국 기수가 사격을 멈추었을 때.
그의 전방엔 사람이건 군막이건, 깃발이건, 나무건, 서있는 거라곤 단 하나도 없었다.
완전히 초토화시켜버린 것이다.
같은 편인 일행들조차 그 가공할 파괴력에 놀라서 입만 벌리고 있을 뿐, 숨조차 크게 쉬지 못했다.
그러니 반란군 병사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자기들이 지금 꿈을 꾸는 건 아닌지 그저 넋을 놓고 있을 뿐이었다.
병사들은 이곳에 모여 있는 사람들이 무림 고수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혼자서 천 명, 만 명을 상대할 수 있다고 들었는데, 그런 고수들을 몰살시킨 사람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공포감이 밀려오는 걸 막을 수 없었다.
모두의 시선이 자신에게 집중되자 기수는 양손을 들어 올려 권총 모양으로 만든 손가락 끝에 입김을 훅! 하고 좌우 한 번씩 불어주었다.
그리고 허리에 권총을 차는 시늉을 해 보였는데, 안타깝게도 뭐 하는 건지 알아보는 사람은 한 명도 없는 것 같았다.
기수는 좌우를 둘러본 후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자, 이제 누가 또 나를 막을 수 있는지 볼까?”
기수가 한 걸음 내딛자 그쪽 방향에 있던 병사들이 비명을 지르며 달아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