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hwa Manri RAW novel - Chapter 517
기수는 어떻게든 분위기를 풀어보려고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탁지연이 그에게 물었다.
“저 두 사람은 언제 만나게 되었죠?”
“사실, 순서를 따지고 보면 비종이 제일 먼저야. 내게 기본 무공과 대법을 모두 가르쳐준, 이를테면 첫 번째 사부라고 할 수 있지.”
탁지연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대법이요?”
“응. 네가 생각하는 바로 그거.”
탁지연뿐만 아니라 공주를 비롯한 사매들 모두 안색이 변했다.
음양대법의 원조라니… 저렇게 예쁘고 어린데…
공주가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다가 물었다.
“그런데 왜 천마교와 저렇게 사이가 좋은 거지?”
기수는 미소 지었다.
“사해는 형제라는 말도 있잖아. 게다가 우리는 같은 목표를 위해 힘 모아 싸우는 사이인데 잘 지내면 좋은 거지 뭐. 자! 기린궁도 이제부터…”
“싫어!”
“응? 그게 무슨 소리야?”
공주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말했다.
“더 이상 여자가 늘어나는 거 싫다고!”
“그러니까… 아까도 얘기했지만, 순서를 따지자면…”
“좀 나가 있어.”
“응?”
“우리끼리 얘기 좀 하게, 궁주는 나가 있으라고.”
“내가 없어도 괜찮겠어? 무슨 얘기를 하려는 건데?”
“알 것 없어.”
등 떠밀려 선실 밖으로 나온 기수는 궁금함을 이기지 못해 선실 주변을 서성거렸다.
그런 그를 보고 진무와 육대기 등이 다가와 함께 술 한 잔 하자며 달라붙었다.
기수는 선실 안의 상황이 더 궁금했지만 수로맹 간부들의 호의를 거절할 수도 없어서 그들을 따라갔다.
옆의 배로 옮겨 타고 보니까 다른 채주들도 잔뜩 모여 있었다.
기수는 황제의 복위를 위해 함께 싸우는 그들에게 술도 따라주고, 건배도 외치는 게 자신의 임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모두들 자신을 영웅처럼 바라보고 있었다.
실제로 이쪽 진영에서 척회왕과 대적할 사람은 자기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원래 구국의 영웅이 될 팔자였나?’
지금은 수로맹 채주들과의 술자리에 집중하고, 여자들 일은 여자들에게 맡겨두기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공주가 아무리 드세게 나온다고 해도 비종의 두 여인이 힘에서 밀릴 일은 없을 것이었다.
술이 한 차례 돌자 진무가 말했다.
“궁주님. 정말 탄복했습니다.”
“갑자기 무슨 소립니까?”
“창주 대살겁 말입니다. 호풍환우의 술법까지 부리실 줄은 몰랐습니다.”
기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호풍환우라면 바람을 부르고 비를 내리게 했다는 얘긴데, 자기가 무슨 기우제 지내는 무당도 아니고 마법사도 아닌데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그날 비는 안 왔는데…”
“하하!… 소문이 다 퍼져서 강호에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날 현장에 있던 병사가 얼마나 많았는데 그 사실을 숨길 수 있겠습니까?”
“무슨 사실 말입니까?”
“목격자들의 말에 따르면 마른하늘에 천둥이 치고 번개가 쉬지 않고 번뜩여 북경에서 온 고수들을 죽였다고 합니다. 천둥번개를 부르는 게 호풍환우 아니고 뭐겠습니까?”
“아! 그거…”
파천강기 발칸포가 구경꾼 입장에서는 그렇게 보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기수는 사실대로 해명할까 하다가 그냥 그렇게 알려져도 나쁠 것 없다고 생각했다.
척회왕의 귀에도 그런 식으로 알려질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에 대해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뭔가 오해하고 착각하게 만드는 건 득이 될 일이었다.
기수는 자기 얘기는 그만 접고, 채주들과의 대화에 집중했다.
한 때 수로맹 채주를 하던 시절도 있었고, 거기다가 염정구심술도 슬쩍 섞어 넣으니까 얘기가 술술 잘 풀렸다.
채주들은 천하의 기린궁주가 자신들을 이해해준다는 사실, 사소한 일도 기억해준다는 사실에 감격했다.
그렇게 술이 서너 순배 돌아갈 무렵.
어디선가 다급한 징소리가 들려왔다.
진무가 놀란 어조로 기수에게 말했다.
“궁주님. 이것은 적의 출현을 알리는 신호입니다!”
기수는 즉시 사람들과 함께 배의 누각 위로 올라가 전방을 살펴보았다.
멀리 수면 위로 수십 척의 관선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우리 움직임이 적에게 알려졌구나.’
하긴 이 정도 대규모 선단이 움직이는데 적이 모르고 있을 리가 없었다.
옆에서 진무가 말했다.
“우리 수로맹을 상대로 수전을 벌이겠다니… 멍청한 놈들!”
그는 부하에게 시켜 한 가지 물건을 가지고 오도록 했다.
바로 황호가 쓰던 청강대도였다.
“이걸 쓰셔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하! 고맙습니다.”
기수는 대도의 자루를 움켜쥐고 진기를 주입해 보았다.
그러자 칼은 주인을 다시 만난 게 기쁘다는 듯 푸른빛을 번뜩이며 찌이잉~! 하고 격렬하게 울어대기 시작했다.
앞을 가로막는 관선의 수는 계속해서 늘어났다.
그러나 수로맹 선단은 이미 전투태세를 갖추었다.
기수는 황제가 탄 배 쪽을 봤다.
수로맹주와 황제가 누각 위에 올라왔고, 주변엔 공주와 사매들이 방패를 들고 호위하고 있었다. 혈천제와 조민, 조현은 누각 아래층에 자리 잡았다.
표정을 보아하니 다들 평온했다.
적 수군에 대한 긴장감 정도만 드러난 느낌이었다.
단지, 황실과 마교의 관계가 대대로 껄끄럽기 때문에 따로 나뉘어져 있는 것 같았다.
기수는 진무와 함께 소형선으로 옮겨 탔다.
수전은 주로 활로 승부를 가리지만 상대편 배에 올라타는 방식의 전투도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기수는 활솜씨보다는 백병전에 자신이 있기 때문에 침투용 소형 공격선에 탄 것이다.
양측 선단이 마주하게 되자 수로맹주는 깃발을 들어 신호를 보냈고 수로맹 배들은 능숙하게 진형을 펼치며 적을 향해 나아갔다.
기수가 탄 배는 다른 소형선들과 함께 선두에서 달려가 적 선단 사이로 파고들었다.
크고 무거운 관선들이 진형을 갖추지 못하도록 방해하기 위함이었다.
물론,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화살 공격은 각오해야 했다.
모두들 방패를 높이 들고 자신과 사공을 보호하며 버텼는데, 기수는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진무가 세워준 방패를 치우고 대도를 휘둘러 날아오는 화살들을 쳐내다가 훌쩍 뛰어 가까운 관선 위로 올라탔다.
수군들은 자기들 머리 위로 넘어 올라서는 기수의 경공에 놀랐다.
“수적이 올라왔다!”
“놈을 잡아라!”
기수는 냉소를 지으며 칼을 휘둘러서 도신의 옆면으로 수군들을 후려쳐 물속에 빠트리거나 갑판에 쓰러트렸다.
그리고 자기가 직접 나서지는 않고 부하들에게 고함만 지르는 지휘관이 보이자 파천강기 헤드샷을 날려주었다.
그렇게 배 한 척을 점령하는데 걸린 시간은 고작 10여분.
그러나 선원들을 잃은 채로도 배는 여전히 움직였다.
기수는 대도로 돛대 두 개를 다 잘라서 동력을 차단해버렸다.
물 위에 뜬 장애물로 변한 배를 남겨두고, 기수는 소형선으로 복귀했다.
진무가 물었다.
“어떻게 됐습니까?”
소형선은 낮아서 관선 위에서 벌어지는 일을 볼 수 없었던 것이다.
“대충 정리하고 왔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 적 선단에 가장 큰 피해를 입힐 수 있겠습니까? 방법을 얘기해주십시오.”
“가장 좋은 방법이야 적선을 침몰시키는 것이겠지만 그건 쉽지 않고… 일단 진형을 갖추지 못하게 방해만 해도 우리 역할은 다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침몰이라…”
기수는 자기가 괜한 짓을 했다 생각하고 진무에게 말했다.
“배를 적선 가까이로 몰아가 주십시오.”
진무는 이유가 궁금했지만 일단 기수가 시키는 대로 했다.
적선 근처로 가자 화살이 집중적으로 쏟아졌다.
기수는 진무에게 말했다.
“창주에서 사람들이 봤다는 천둥번개는 사실 이거였습니다.”
그리고 관선의 아래쪽, 물과 닿는 지점을 향해 파천강기 발칸포를 쏘기 시작했다.
파파파파팟!……..
순식간에 작은 구멍 수십 개가 뚫렸고, 그 자리에 또다시 파천강기가 집중되자 구멍은 순식간에 커졌다.
관선은 갑작스런 대량 침수에 선체가 휘청거리며 기울어져서 다시는 원래대로 회복되지 못했다.
진무는 물론, 소형선에 함께 탄 수적들 모두 경악했다.
10여장 떨어진 거리에서 배를 부숴 가라앉히는 일이 사람의 힘으로 가능하다니… 직접 보고도 믿어지지 않았다.
기수가 진무에게 말했다.
“자! 다음 배로 갑시다.”
“예? 아!… 네, 네. 알겠습니다.”
진무는 사공들에게 명을 내렸고, 기수는 다음 목표물 역시 순식간에 침수시켜 버렸다.
목재 선박이라 기대처럼 단번에 가라앉지는 않았지만 돛으로도, 노로도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되고 선원들도 제대로 화살을 쏠 수 없으니 전투는 불가능했다.
차례차례 적선을 공격하여 10번째를 채웠을 때 수로맹의 선단이 돌격해 들어왔다.
원래는 진형 갖추는 솜씨를 좀 더 자랑하면서 천천히 가지고 놀다가 이길 생각이었는데, 기수가 적선을 다 격침시킬 것 같은 움직임을 보이자 수로맹주가 급히 돌격명령을 내린 것이다.
자기가 너무 나섰다고 생각한 기수는 공격을 멈추고 잠시 쉬면서 기혈 흐름을 조절했다. 그리고 오행류 상생순환으로 소모된 진기를 보충했다.
수로맹의 전투력은 정말 대단했다.
상대적으로 수군의 훈련이 부실한 이유도 있겠지만, 여러 방면에서 상대를 압도하고 있었다. 그리고 숫자도 수로맹 쪽이 많았다.
느긋하게 구경하던 기수는 거기에 생각이 미쳤다.
‘수군 병력은 저게 단가? 이상하군. 정찰을 했다면 우리 쪽 선단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 확실히 알았을 텐데 왜 이런 무모한 공격을 하는 거지?’
예를 들어, 테란 진영에 히드라 세 부대가 한꺼번에 쳐들어가면 벙커고 탱크고 다 박살낼 수 있지만, 같은 병력이라도 한 부대씩 세 번 쳐들어가면 매번 케찹으로 끝나고 마는 것이다.
‘질 줄 알면서 싸움을 거는 이유는… 혹시…’
기수는 진무에게 황급히 말했다.
“즉시 황상의 배로 갑시다.”
“예? 갑자기 무슨 일로…”
“일단 갑시다. 당장!”
기수가 서두르는 데는 이유가 있다 생각하고 진무는 자기까지 노를 잡고 배를 저었다.
황제의 배 가까이 간 기수는 즉시 그 배로 뛰어 올랐다.
아래층에 있는 조민, 조현, 혈천제, 광혼랑, 소혼랑이 반가이 그를 맞았다.
“기공자. 굉장했어요! 그 큰 배를 격침시키다니.”
“하핫!… 내가 원래 좀… 그보다, 뭐 이상한 일 없었어?”
“이상한 일이라니요?”
기수는 바로 그 때 섬뜩한 기운을 느꼈다.
그의 시선이 향한 곳.
한 사람이 흠뻑 젖은 모습으로 갑판 위에 모습을 드러냈다.
“들켜버렸나? 후후….”
익숙한 목소리. 그는 바로 검종의 장무검이었다.
조민, 조현과 혈천제 등은 그가 드러낸 기도에 깜짝 놀라며 방어 자세를 취햤다.
누각 위층의 사매들도 비로소 그의 존재를 알아차리고 아래로 내려왔다.
장무검은 고개를 젖히며 껄껄 웃었다.
“하하하!… 이렇게 까지 날 환영해주다니… 몸 둘 바를 모르겠군.”
공주가 호통을 쳤다.
“웬 놈이기에 감히 황상의 배에 올라탔느냐?”
“그거야 이유가 하나밖에 더 있겠어?”
장무검은 냉소를 지으며 검을 뽑아들었다.
그 기세에 공주는 자기도 모르게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상대가 무시무시한 고수라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린 것이다.
기수가 말했다.
“모두들 조심해. 놈은 검종의 전인 장무검이야.”
사매들 모두 크게 놀랐다.
장무검이 기수에게 말했다.
“원래는 이렇게 수영을 할 생각은 없었는데 말야. 너 때문에 계획이 모두 어그러져 버렸지. 하지만, 뭐 상관없어… 난 한 사람만 죽이면 되니까.”
기수는 냉소를 지었다.
“흥! 아직도 척회왕에게 묶인 몸이었나?”
“아니. 이제 더 이상 의무는 없어. 이번 건은 제안을 받았을 뿐이야.”
“벼슬이라도 준다고 하던가?”
“벼슬? 그따위 걸 뭐에 쓰려고?”
“그럼 황금을 약속하던가?”
“돈이 많아봤자 제자를 대신 찾아줄 것도 아니고. 다 부질없는 것이지.”
기수는 잠시 생각한 후 말했다.
“그렇다면 무공을 약속했군.”
“흐흐흐….”
장무검은 그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기수는 실소를 머금었다.
“어이가 없구나. 감히 황상을 시해할 생각을 하다니…. 그 정도 조건이라면 단월쇄심장을 가르쳐주겠다고 하던가? 아니면 여의만상권?”
장무검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역시 넌 귀령공의 전인이었구나. 그 무공이름을 알고 있는 걸 보니…”
“난 안타깝게도 그분을 사부로 모시지 못했다. 하지만 가까운 사이이기는 하지.”
“흐흐흐…. 뭐 어쨌거나 상관없다. 괜히 시간 끌지 말고 시작하자꾸나. 아! 합격진 짤 시간부터 줘야 되겠군.”
기린궁 사매들이 순식간에 진형을 갖추어 섰다.
기수는 그녀들에게 손짓을 했다.
“모두 물러서. 이 자는 나 혼자 상대한다.”
장무검의 입술 끝이 비틀렸다.
“계집들 앞이라고 객기 부리는 거냐? 흐흐흐…”
기수는 대답 대신 대도에 진기를 주입했다.
찌이잉~! 하는 굉음에 장무검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