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hwa Manri RAW novel - Chapter 527
문제가 되던 여섯 명 중에서 가장 먼저 입장을 정리한 사람은 자영이었다.
그녀는 교주님 명령이라는 핑계를 대고 오빠로부터 자유로워지기로 했다.
부모님은 안 계시기 때문에 오빠만 오케이하면 되는 상황.
혈천제가 그녀를 도와주었다.
암천제는 대충 감을 잡기는 했지만, 자기보다 무공도 고강하고 어려서부터 죽어라 말을 안 듣던 자영이기에 뭐라 할 수 없었다.
최근 들어 교주와 친자매처럼 다정하게 지내는 모습이 의외이면서 다행이라 그냥 원하는 대로 하도록 내버려두기로 했다.
자영 다음으로 길을 정한 사람은 당운영이었다.
“난 사천으로 돌아가지 않고 그냥 중원에 머물 거야.”
“그래도 돼?”
“어차피 데릴사위감 찾으러 나온 건데 뭐. 너 사천에 가서 살기는 싫지?”
기수는 미소 지었다.
“글쎄. 잠시 머무는 거라면 몰라도 당가에 데릴사위로 들어가는 건 좀…”
“그러니까 사윗감 못 찾았다고 하고 그냥 중원에서 지내면 돼.”
“그럼 너희 가문은….”
“언니도 있고 동생도 있으니까 괜찮을 거야.”
“언니?”
“안 돼!”
“뭐, 뭐가?”
“절대로 안 돼!”
“내가 뭘 어쨌다고 소리를 질러?”
당운영은 기수의 급소를 손으로 꽉 움켜쥐었다.
“헉! 아, 아프다. 우리 그건 놓고 얘기하자.”
“내가 사천으로 돌아가지 않기로 결심한 이유는 바로 이 약 때문이야. 먹지 않으면 죽으니까 어쩔 수 없잖아.”
“하핫! 그 얘기를 아직도… 아야! 제발… 제발…”
“안 그래도 다른 사람과 나눠 먹는 거 아까워 죽겠는데…”
“네가 제일 많이 먹잖아!”
“무슨 소리! 아투사가 있잖아.”
“그, 그거야…”
“말 나온 김에….”
“헉! 야!…”
그렇게 두 명은 정리가 되었지만, 나머지 4명은 가문 혹은 사문과 기수 사이에서 고민에 휩싸인 채 갈팡질팡했다.
기수 입장에선 안타까운 일이었다.
뜻을 정한 미녀들은 20명이 너무 많다고, 좀 솎아내도 된다고 생각했지만 기수 마음은 달랐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어디 있겠는가.
파티가 커지니까 오히려 각자의 개성이 더 소중하게 여겨졌다.
황궁이 안정되자 논공행상이 시작되었다.
황제를 호위하여 북상한 남경의 사대부들, 좌군도독부와 후군도독부, 장군부의 무관들이 중용된 것은 물론이고 무림인 중에선 수로맹주와 무림맹주가 관직에 올랐다.
그리고 천마교는 황제로부터 더 이상 마교를 핍박하지 않겠다는 내용이 적힌 단서철권을 하사받았다.
사람들의 관심은 척회왕을 죽인 영웅 기수에게 쏠렸다.
그러나 그에 대해서는 어떠한 발표도 없었다.
황제의 거처.
기수는 공주와 함께 황제 맞은편에 앉았다.
“하하하!… 언제 둘이 정인이 되었단 말이냐?”
“아바마마. 화 나셨어요?”
“그럴 리가 있느냐? 이만한 사윗감이 세상에 또 어디 있다고…”
“그런데 그게… 이 사람은 부마가 되기를 원치 않아요.”
“그게 무슨 소리냐?”
기수가 나서서 대답했다.
“저는 본래 대파산에서 약초나 캐며 살던 촌부입니다. 벼슬을 감당할 능력이 못 됩니다. 부마 자리도 감히 바랄 수 없습니다.”
“공주를 데려가면서 부마가 되지 않겠다는 건 법도에 어긋나지. 그리고 경보다 뛰어난 사람은 내 일찌기 보지 못했다. 사양하지 말고 원하는 자리를 얘기해보라. 공을 세웠는데도 상을 주지 않는다면, 그것은 황실의 위신 문제니까.”
그러자 공주가 끼어들었다.
“관직 말고 황금으로 상을 줘도 되잖아요.”
“흐음… 그런 길도 있긴 하다만…”
기수는 공주에게 미소를 보낸 후 말했다.
“폐하. 소인은 아직 할 일이 남았사옵니다.”
“그게 무엇인가?”
“이번에 척회왕의 잔당을 거의 다 체포했지만 딱 한 사람 도망친 자가 있습니다.”
황제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누구인가? 그 자가.”
“바로 제갈청이라는 자입니다. 그는 척회왕의 모사였습니다.”
“그런 자를 어떻게 놓쳤단 말인가!”
“워낙 지모가 뛰어나고 처신이 교활한 자입니다. 꽤 공을 들여야 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꼭 좀 잡아주게!”
황제는 아직도 척회왕 얘기만 나오면 긴장을 했다.
그의 책사가 도망쳤다는 사실을 알고 몹시 못마땅한 기색이었다.
“부마가 되는 일은 그 뒤로 미뤄도 되겠습니까?”
황제는 기수와 공주를 번갈아 봤다.
두 사람이 미리 말을 맞추고 왔다는 느낌이 든 것이다.
“세월이 오래 걸리면 공주는 기다리다가 늙지 않겠는가?”
그러자 공주가 말했다.
“저는 소항산에 도관을 한 채 짓고 수행이나 하면서 기다리면 되요.”
“수행이라…네가 여도사가 된다고?”
“예. 국태민안과 아바마마의 만수무강을 매일 축원할게요.”
“허허!… 그것 참.”
“허락해주세요. 네?”
“글쎄다…”
“출가외인이 되는 것보다 좋잖아요? 자주 찾아와서 뵐 수도 있고.”
황제는 두 사람을 보며 잠시 생각한 후 말했다.
“좋다. 경에게는 장군부와 동창과 도독부의 인원과 병력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금패를 만들어 줄 테니 척회왕의 모사를 반드시 잡아오도록 하라. 그리고 넉넉한 황금과 지금 머무는 장원을 상으로 내리도록 하겠다.”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황제는 공주에게 말했다.
“도관은 내가 지어주겠다. 궁녀나 군사가 필요하면 모두 얘기해 보거라.”
“감사합니다. 군사는 필요 없어요. 누가 감히 저를 괴롭힐 수 있겠어요?”
“하긴, 네 무공도 대단하지. 하하하!…”
기수는 황제가 내리는 술을 마신 뒤 공주와 함께 밖으로 나왔다.
그가 공주에게 물었다.
“정말 이게 최선일까?”
“혼인은 시키고 부마는 삼지 않을 수는 없어. 황실엔 법도가 있으니까.”
“하지만 대외적으로는 네가 노처녀로 혼자 늙어가는 모양새가 되잖아. 그래도 괜찮겠어?”
“그럼 어때? 내실이 중요하지.”
“하핫! 그건 그렇지. 어쨌든 고마워. 이렇게까지 해줘서.”
“대신, 한 가지 약속해줘.”
“뭐를?”
“애는 내가 제일 먼저 낳을 거야. 그렇게 해줄 수 있지?”
“애? 하핫!… 그, 그야 물론이지…”
기수는 자신의 내공 상태로 봤을 때 임신이 가능한 몸으로 돌와왔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동안 임신이 가능한 곳에 파정을 한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확인은 불가능했다. 뱃속으로 들어갔다고 해도 그 배와 그 배는 다르기 때문에…
‘내가 애 아빠가 된다고?’
뭔가 부담스러우면서 동시에 설레기도 했다.
그러나 공주의 요구가 당장 그렇게 해달라는 게 아니라, 하게 되면 자기를 1번으로 해달라는 거니까 얼마든지 부탁을 들어줄 수 있었다.
공주가 기수에게 얘기를 꺼냈다.
“전에부터 꼭 부탁하고 싶었던 게 있었어. 둘만 있으니까 얘기하는 거야.”
“뭔데?”
“척회왕을 쓰러트린 수법. 나도 가르쳐 줘.”
“아! 그거?… 글쎄… 북궁심법이 아니더라도 가능하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쉽지 않을 텐데… 그건 왜 배우려고?”
“조민, 조현에게 무공으로는 지고 싶지 않아.”
“워우! 넌 이미 미모와 몸매로 그녀들 위에 있어. 자신감을 가지라고!”
“네가 그렇게 말해주는 건 고마운데… 나도 눈이 있어. 피부에서 밀려.”
“사람은 피부가 다가 아냐. 네가 얼마나 사랑스러운데.”
“하지만 그녀들의 피부는 너무나 매끄럽고 보드라워서…”
“비벼 봤냐?”
“무슨 소리야? 네가 억지로 밀었잖아.”
“그, 그랬나? 하하!…”
“어쨌거나 가르쳐 줘. 안 그러면 합비 어르신을 찾아가서라도 배우고 말 거야.”
기수는 미소 지었다.
그것은 합비도 가르쳐줄 수 없는 것이었다.
오리지널 화류 태포련은 자기 기술보다 딜레이가 길었다.
어떻게든 오리지널 흉내를 내보려고 목욕물, 강물을 상대로 수련하다가 절체절명의 순간에 묘의를 깨달은 것인데, 딜레이 없이 바로 열기 전달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에 자기 기술이 좀 더 효율적인 업그레이드 버전이라고 할 수 있었다.
창의력과 천재성의 승리라고나 할까?
“알았어. 도관을 세운 후에 가르쳐줄게. 하지만 깨우치지 못한다고 해서 날 닥달하면 안 된다.”
“그리고… 우리 오랜만에 둘만 있는데…”
“하하!… 좋아. 어디서 할까?”
“따라와.”
공주뿐만 아니라 다들 그런 식이었다.
물론 기수는 그런 요구를 절대로 거절하지 않았다.
20:1에도 즐거움이 있지만 역시 베이식은 1:1이었다.
공주가 소항산에 짓는 도관은 다른 문제도 해결해주었다.
가문 혹은 사문의 기대 때문에 입장을 정하지 못하던 4명에게 길이 열린 것이다.
가문에서 원하는 사위를 데려다주지는 못하지만, 그 대신 공주와 같은 도관에서 수행하면서 황실과의 친분을 유지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울 수 있게 된 것이다.
가주나 장문인 입장에선 과년한 딸 혹은 제자가 혼인을 하지 않고 독신으로 수도 생활을 한다는 게 그다지 기쁜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황족과 친하게 지내는 것은 충분히 투자할 만 한 가치가 있었다.
사하도 일단 보타산으로 돌아간 뒤 사부님에게 얘기를 해보겠다고 했다.
남해 보타문이 중원과 멀리 떨어져 지내오긴 했지만 황실과의 교분이라면 허락해줄 가능성이 크다고 볼 수 있었다.
다음 날 궁으로 들어간 기수는 어마어마한 양의 황금을 상으로 받았다.
그리고 정식으로 금패와 북경의 장원, 소항산 기린궁의 소유자가 되었다.
그렇게 정리가 되자 기수는 비로소 엄마를 보러 갈 마음을 냈다.
“나 며칠 다녀올 데가 있어.”
모임에서 그 얘기를 하자 20명이 동시에 도끼눈을 부릅떴다.
기수는 손을 내저었다.
“다른 여자 만나러 가는 거 아냐. 엄마 만나러 가는 거야!”
그러자 다들 난리가 났다.
“이리로 모셔오세요.”
“맞아. 우리들이 정성을 다해 모실게.”
잠자리 기술로 경쟁에서 이기기 어려우니까 다른 쪽으로 우위를 점하기 위해 다들 난리였다. 기수는 웃을 수밖에 없었다.
‘나도 너희들 소개시키고 싶지만 말이 안 통하는 걸 어쩌겠냐. 그리고 너희들 중 눈감고 아무나 골라 데려가도 우리 엄마 기절할 거다. 어디서 이런 예쁜 며느리감을 찾았느냐고. 그런데 20명을 소개시켜드리면? 흐흐….’
기수는 그녀들을 진정시킨 후 말했다.
“어머니와 얘기해볼 테니까 다들 걱정 말고 기다려.”
“언제 떠날 거야.”
“내일. 오전과 낮엔 북경에 있는 사람들 좀 만나보고 저녁에 떠날 거야.”
“저녁엔 여기 와서 자고 모레 아침에 가지.”
“안 돼. 그동안 너무 미뤘어. 며칠 걸릴 거니까 다들 자기 사문에 다녀와.”
“좋아! 그럼 오늘 밤은 잘 생각 하지 마.”
“언제는 재웠냐? 자! 줄 서!”
다음날 아침엔 아직 북경에 남아 있는 사람들을 방문했다.
그동안 여인들과만 지내느라 소홀히 한 것 같아서 좀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가장 먼저 방문한 곳은 장군부.
백무영은 몸이 상당히 회복되어서 거동을 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는 석초와 함께 감사 인사를 표했고, 또 기수가 공식적으로 어사금패 받았다는 사실을 알기에 전보다 격식을 갖춰 대했다.
기수는 그러지 말라고 했지만 말을 듣지 않았다.
이어서 방문한 곳은 무림맹.
주일비가 맹주 자리를 내놓았기 때문에 차기 맹주 선출 문제로 한창 말이 많았는데 기수가 나타나자 모두가 달려들어 그를 맹주로 추대하려 했다.
기수는 거듭 고사했다.
그래도 말을 듣지 않자 결국 핑계를 댔다.
“황상으로부터 특명을 하달 받았기 때문에 다른 일은 맡을 수 없습니다.”
“무림맹주가 되시면 일이 더 수월하지 않겠습니까?”
“특명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기수는 심각한 표정으로 손을 내저었다.
“그것은 비밀이라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그렇게 겨우 사람들 성화를 잠재운 기수는 자기 의견을 말했다.
“무림맹은 큰 환난을 헤쳐 나오면서 많은 공을 세웠지만 동시에 큰 피해를 입기도 했습니다. 당분간은 내실을 다지는 기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랜 세월 정파의 태산북두로 일컬어지던 소림과 무당 중 한 문파의 장문인이 맹주자리에 오르는 게 좋겠다고 생각합니다만…”
사람들의 시선이 무당 장문인에게 쏠렸다.
기수의 시선이 그를 향했기 때문이다.
기수는 단지 창주 특공대 활동을 함께 한 그와 좀 더 친숙해졌기 때문에 그쪽을 먼저 봤을 뿐인데, 그 시선 한 번으로 무림맹주가 결정되어 버렸다.
소림방장이 기수의 의중이 그에게 있는 거라 생각하고 싹싹하게 양보한 것이다.
기수 입장에선 어이가 없는 일이었지만, 나름 이해도 되었다.
당금 천하에 자기보다 영향력 큰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주일비가 관직을 탐해 빠져나간 공백이 컸기 때문에, 맹주가 정해지자 그 다음 사항들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기수는 새 무림맹주 취임 축하연에 붙들려서 귀향을 하루 미루어야 했다.
하지만 덕분에 그동안 무림맹 내에서 친하게 지내던 비룡검문 문주나 모용세가 소가주 등과 술잔을 나눌 수 있어서 좋았다.
어느 정도 취기가 돌자 함께 싸우며 얼굴을 익힌 무림인들이 다가와 술을 권했다.
돌이켜보면, 미녀들 말고도 중원무림에서 친하게 지낸 사람들이 꽤 많았다.
기수는 밤새 먹고 마시며 그들과의 우의를 확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