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hwa Manri RAW novel - Chapter 528
무림맹 사람들과 밤을 샌 기수는 잠시 눈을 붙인 후 수로맹에 들렸다.
수로맹주를 위시한 채주들 역시 기수를 붙잡고 아침부터 술판을 벌였다.
수군 도독으로 임명된 수로맹주는 도적 수괴에서 한 순간에 관리가 된 것 때문에 기쁘기도 한 반면, 일을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부담스러워 하고 있었다.
기수는 사람을 보내 석초를 불러오게 했고, 그에게 부탁했다.
“도독님이 군문의 일에 익숙하지 않아서 그러는데, 도와줬으면 좋겠어.”
“걱정 마십시오. 형님. 강남에 아는 수군 장교들이 몇 명 있습니다. 제가 함께 가서 얘기를 좀 하면 다들 알아서 모실 것입니다.”
수로맹주는 크게 기뻐했다.
기수도 석초의 관리들 상대하는 능력을 알기에 믿고 맡길 수 있었다.
수적 두령이 수군 도독을 병행하면 앞으로 장강의 질서만큼은 완벽하게 잡힐 것이었다. 배들의 통행세 지출도 줄어들 것이고…
그렇게 수로맹 사람들과 어울리다 보니 어느새 날이 어두워졌다.
기수는 더 미룰 수가 없어 잡는 손들을 뿌리치고 집으로 왔다.
장원 지붕 위에 올라가서 호흡으로 취기를 배출한 지 30분.
사방이 깜깜해지고 정신이 좀 들자 기수는 반지에 의식을 집중하고 신을 호출했다.
[신님!]
곧 대답이 들렸다.
[이제야 갈 마음이 생겼느냐?]
[예. 데려다 주십시오.]
[우선, 돌아올 이곳에 설정부터 해야 한다. 반지에 의식을 집중해봐라.]
기수는 신이 시키는 대로 했다.
그러자 자신을 중심으로 푸른 구 형태의 빛이 밝혀졌다가 사라졌다.
[됐다. 이제 돌아올 때 반지에 의식을 집중하면 이곳이 보일 것이다.]
[그럼 중원은 여기로만 이어지는 겁니까?]
[아니다. 어디든 네가 발을 디딘 곳에 이런 식으로 포털을 재설정할 수 있다. 그리고 건너편 포털과 시간이 평행으로 흐르기 시작하지.]
[공간만 이동하는… 그러니까 게이트? 포털? 어쨌든 그것도 이런 식인가요?]
[그건 색이 다르다. 녹색으로 보일 거야. 그래도 요령은 같다.]
[몇 개나 가능합니까?]
[너는 특별하니까 모두 8개까지 만들 수 있게 해주었다. 청색 포털 2개와 녹색 포털 6개. 그 정도면 충분할 거다. 언제든 바꿔서 설정할 수 있으니까.]
[현대에서도 가능한 겁니까?]
[물론이지. 단, 타인에게 들키면 뒷감당이 어려울 수도 있으니까 조심하거라.]
[건너갈 곳에 다른 사람이 있는지 어떻게 알죠?]
[설정을 한적한 곳, 이를테면 빈 방 같은데 하면 되지. 그리고 이동하기 전에 의식을 집중하면 그 주변의 경관과 소리, 기척들을 감지할 수 있다.]
[고맙습니다. 므흐흐…]
아직 써보기도 전이지만 일단 감사 인사부터 나왔다.
시공간의 신과 친해지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자신의 노력으로 쟁취한 응분의 보상이긴 하지만…
[그런데 신님. 시간이 평행으로 흐른다는 건 무슨 뜻입니까?]
[여기서 1시간은 저쪽에서도 1시간, 유니즌 되어서 동일하게 흐른다는 거지.]
[아! 그럼 다른 과거나 다른 미래로 점프는 안 되는 거네요?]
[그건 방법만 가르쳐주기로 했지. 원한다면 너 스스로 수행하여 쟁취해야 할 능력이다. 그 반지는 너를 신으로 만들어주는 게 아니라 내 능력 중 일부를 집어넣은 아티팩트에 불과하니까.]
기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내가 궁극적으로 도달해야 할 목표는 남에게 받은 이런 물건이 아니라 내 자체 능력으로 시공간을 넘나드는 존재가 되는 거야.’
척회왕을 이긴 후 뭔가 새로운 목표가 생긴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자. 첫 번째 이동 지점까지는 내가 데려다주마.]
기수는 순간 몸 주변에 서늘한 공기가 회전하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곧 주변 경관이 달라진 걸 알게 되었다. 1초도 안 되는 짧은 순간이었다.
“어! 여기는….”
기수는 사방을 둘러보았다.
가로등 켜진 어린이놀이터. 어느 아파트 단지 안이었다.
“우웁!…”
기수는 손으로 입과 코를 틀어막았다. 갑자기 숨이 턱! 막혔기 때문이다.
[신님. 이게 무슨 냄새죠? 어디서 화생방 훈련이라도 하나요?]
[웬 호들갑이냐. 여기 살았으면서.]
“으으….”
기수는 그것이 바로 서울의 냄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공이 증진된 그에게 현대의 대기는 엄청난 자극으로 다가왔다.
심지어는 눈이 따갑고 피부가 근질거린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도시의 소음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자동차 엔진소리와 굉음들.
눈과 귀와 코와 폐가 익숙해지기까지 한참의 시간이 걸렸다.
‘아! 내가 이런 데서 살았던 건가?’
운기조식도 마음 놓고 못할 것 같은 공기지만, 후각이 마비되고 나니까 그나마 좀 나아졌다. 귀도 그럭저럭 소음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런데 여긴 어딥니까? 왜 낯선 아파트로 왔죠?]
[네 어머니가 여기 살고 있다.]
[예? 그럴 리가요. 우리집은….]
[저 문으로 들어가 봐라. 현관 비밀번호는 705호 별표, 2452다.]
[2452는 우리집 전화번호였는데…]
[정말 네 어머니가 살고 있다. 직접 확인해 봐.]
기수는 시키는 대로 현관문을 열고 엘리베이터에 타서 7층을 눌렀다.
그렇게 705호 앞에 이르러 초인종에 손가락을 대려다가 뗀 후 다시 물었다.
[그런데 어머니가 왜 이리로 이사 오신 겁니까?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단지도 크고 지은 지도 얼마 안 된 아파트라 꽤 비싸 보였다.
[복권에 당첨된 거지.]
[예? 무슨 복권이요?]
[너. 나를 처음 만나던 날 기억하고 있느냐?]
기수는 옛 기억을 되짚은 후 말했다.
[지하철에서 검은 비닐봉지에 든 걸 받았었죠. 그게 신님이었나요?]
[지구에서 잠시 가졌던 몸을 사제들이 본떠서 만든 인형이지. 내 본래 모습은 그렇게 생기지 않았다. 과장이 너무 심해. 어쨌거나, 그날 한 일을 기억해봐라.]
[오는 길에 로또 사고, 인터넷 소설 사이트 접속해서 소설 읽다 잠들었죠. 아!…]
[난 사람을 그냥 막 데려오는 게 아니라 정당한 대가를 지급한다. 그게 내 신조지.]
[아! 그때 그럼 무협소설 읽다가, ‘나도 주인공처럼 되어 봤으면….’ 하던 소원을 들어주신 게 아니라…]
[그 이전에 생각한 ‘로또 당첨되었으면’ 하는 소원을 들어줬지.]
[으아! 정말입니까? 그럼 엄마가 복권 당첨금으로 이 아파트 사신 겁니까?]
[그렇다.]
[신님! 최고입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기수는 신이 옆에 있다면 껴안고 뽀뽀라도 해주고 싶었다.
세상에나! 로또 당첨이라니…
[후후… 난 선불로 깔끔하게 계산하는 것을 좋아한다. 멀쩡한 사람 목숨을 담보로 잡고 데려가려면 적어도 그 정도 보상은 해 줘야지.]
[맞습니다! 하하하…. 맞습니다. 개념이 완벽하게 장착되셨군요. 하하하!…]
기수는 너무나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기쁜 마음으로 초인종을 눌렀고, 잠시 후 안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뉘시우?”
“엄마! 나 왔어! 기수야!”
오랜만에 한국말을 하려니까 발음이 좀 꼬여서 나오는 것 같았다.
“뭐, 뭐라고? 기수라고?”
황급히 도어락이 풀리고 문이 활짝 열렸다.
그리고 나타난 사람. 바로 꿈에도 그리던 엄마였다.
기수는 만면에 미소를 머금고 다가가 끌어안으려고 했는데, 당황스럽게도 엄마가 놀란 얼굴로 뒷걸음질을 쳤다.
막 감동의 눈물을 흘리려던 기수는 손을 반쯤 내민 어정쩡한 자세로 물었다.
“왜 그래? 엄마. 나 기수야.”
엄마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기수를 위아래로 훑어봤다.
“기수라고? 다, 당신이? 정말이요?”
“엄마. 왜 그래? 아! 이 옷 때문에? 이건…”
엄마의 눈동자가 점점 커지면서 그녀 얼굴에 놀라움과 반가움의 감정이 번졌다.
“너… 너… 정말 기수구나!”
“당연하지! 자기 아들도 몰라보는 엄마아 어디 있어?”
“너… 그런데 어떻게 된 거냐? 키가 왜 이렇게 커졌어? 얼굴도 달라지고… 너 혹시 성형수술 했냐?”
“아 놔… 뭔 얘기야. 나 원래 잘 생겼었잖아. 엄마 아들.”
중원에서 내공 증진으로 탈태환골한 것 때문인 듯 했다.
“그러긴 했지만 이 정도는… 어쨌거나 어서 들어와라. 도대체 언제 온 거야? 연락 미리 했으면 공항에 나가 봤을 텐데… 참! 밥은 먹었냐?”
“배 안 고파.”
기수는 현관문이 닫히자 엄마를 와락 끌어안고 참았던 눈물을 흘렸다.
정말 중원 무림에 가서 온갖 고난을 다 겪고, 살인처럼 이곳에선 상상도 못할 일들을 저질렀던 과거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아! 이제 집에 돌아왔다!’
엄마는 배가 안 고프다고 했는데도 기어이 밥상을 차려주었다.
기수는 엄마가 끓인 된장찌개를 떠먹고 다시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서울의 공기와 소음은 마음에 안 들지만, 이 맛만큼은 중원 무림에서 절대로 먹을 수 없었던 것이었다. 황실 연회에도 없던 그 맛!
밥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운 기수는 엄마와 밀린 얘기들을 나누었다.
그러면서 자신이 군 면제 신분이고, 모 기업 중국 지사에 근무하는 걸로 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엄마는 자기가 썼다는 편지까지 보여주었다.
기수는 화장실에 다녀온다고 잠시 자리를 떠서 신에게 물었다.
[어떻게 된 겁니까? 군 면제라니…]
[네가 중원 무림에서 죽을 수도 있기 때문에 서류를 몇 개 만들었다.]
[그런 일도 가능합니까?]
[시공간을 넘나드는 것에 비하면 쉬운 일이지. 로또 맞추기나, 서류 만들기나…]
죽을 경우에 대비했다는 말에 섭섭하긴 했지만, 만약 그랬다 하더라도 엄마의 여생은 편안했을 거라 생각하니 신의 배려가 고마웠다.
[하지만 당당한 대한 남아로서 병역 면제라는 건…]
[중원에서 수많은 생령을 구했으니 범인류적 관점에서 봤을 때 네가 한 일은 정말 대단한 것이다. 군대 의무 복무 못지않은 일을 해냈다고 할 수 있지.]
[그래도…]
[서류 처리는 지금이라도 간단히 할 수 있다. 다시 입영대상자로 만들어줄까?]
[인류애는 보상 받아야 하지 말입니다.]
[역시 그렇지?]
[이번 한 번만 제가 참겠습니다. 앞으론 두 번 다시 이런 부담 주지 마십시오.]
[그래. 참아줘서 고맙다.]
[그런데 편지가 이게 뭡니까? 카톡 메시지도 아니고, 뭐 이렇게 짧게…]
[필체 흉내 내기 힘들었다. 말이 많아지면 거짓말도 계속 늘어나야 하고… 그건 더 이상 따지지 말자.]
[뭐, 좋습니다.]
화장실을 나온 기수는 자기 방으로 들어가 보았다.
침대와 책상, 예전에 쓰던 컴퓨터. 그런데 옷들이 다 작아 보였다.
기수는 그곳에 청색 포털 만드는 걸 연습해보았다.
절차는 간단했다. 반지에 의식을 집중하자 북경 장원의 지붕 위가 만져지듯이 생생하게 오감으로 감지되었다. 아시발꿈의 불안감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신님. 그런데 이 반지를 잃어버리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그럼 끝이지. 나와의 연락도, 포털 간 이동도…]
[으으…]
기수는 오른손 약지를 꽉 움켜쥐었다.
안방에서 엄마와 나란히 누워 현대 버전으로 중국에서의 일들을 꾸며서 대충 애기하고 잠이 든 기수는 다음날 아침 엄마와 함께 쇼핑에 나섰다.
맞는 옷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상의는 품이 좁고, 바지는 짧았다.
오랜만에 나선 서울 거리는 낯설었다.
지하철 역 안의 소음이 어찌나 크던지 깜짝 놀라 방어지세를 잡을 정도였다.
역과 열차 안엔 자기 손바닥만 보면서 다니는 사람의 수가 전보다 훨씬 늘어난 것 같았다.
‘나도 하나 새로 사야겠는 걸.’
기수는 최신 패션 흐름을 보려고 남자들을 살폈지만, 눈이 이상하게도 자꾸 여자들 쪽으로만 향했다. 그리고 큰 실망감을 느꼈다.
다들 화장이 너무 짙었다. 내공증진 때문인지 파우더 자국까지 생생히 보였다.
그리고 다리 노출은 심한데 근육 없이 전부 물렁살들이라 과연 제대로 조여 줄 수 있을지 심히 의심이 되었다.
‘완전 철수하지 않고 중원에 포털 만들어두기를 정말 잘했다.’
쇼핑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기까지 천 명도 넘는 아가씨들을 본 것 같은데 그들 중 마음에 드는 외모의 소유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꾸민 스타일은 세련되고 현대적이지만, 기수는 화장과 옷보다 그 안이 보였기 때문에 정말 실망스러웠다.
‘눈이 한없이 높아져서 큰일이네.’
새옷을 한 번씩 입어보고 휴대폰 설명서도 숙지한 기수는 어머니와 함께 저녁 외식을 가기로 했다.
아파트를 둘러본다고 먼저 내려가서 돌아다니다가 벤치에 앉아 기다리는데, 문득 의문이 들었다.
‘여기서도 중원 무림의 능력을 그냥 쓸 수 있는 거겠지?’
확인해보고 싶어진 기수는 슬그머니 내공을 끌어올리면서 손바닥을 의자에 댔다.
순간, 흰 연기와 함께 불꽃이 확! 일었다.
기수는 황급히 불을 끄느라 정신이 없었다. 나중에 보니 벤치엔 안중근 의사의 마크처럼 손바닥 자국이 남아 있었다.
‘역시 되는구나. 후후…’
범행 현장을 벗어나 동 사이를 지나다가 고개를 들고 아파트 옥상까지 점프가 가능할지를 생각중인데 신이 먼저 말을 걸었다.
[여기선 쓰지 마. 어차피 이 시대엔 네 맞상대도 없어.]
[예? 왜요? 시대가 바뀌어도 어딘가 고수는 있지 않을까요?]
[그렇긴 한데… 최고라고 해봤자 2갑자 정도에 불과하거든.]
[애개?]
[애개가 아니지. 총이 보급된 이후로 무림고수는 다 사라졌는데 어쩌겠어. 평생 무공을 익혀봤자 검지 한 번 까닥이면 죽는데 누가 그 고생을 하겠나?]
[그래도 중국엔 좀 있지 않을까요?]
[사실,.. 너와 척회왕의 대결 이후. 그 수준을 능가하는 고수는 더 이상 나오지 않았지. 그러니까 돌아가서도 여인들을 너무 고수로 만들지 마.]
[이젠 대법은 안 하는데요 뭐. 하핫!… 그나저나, 나도 총 맞으면 죽는 겁니까?]
[어떤 총이냐에 따라 다르겠지. 파워가 제각각이니까… 왜? 시험해 보려고?]
[저. 그 정도로 미치지는 않았습니다.]
천기오뢰강의 성능이 궁금하기는 했다.
하지만 테스트 해보고 싶지는 않았다. 총도 구하기 어려울 것이고…
예전보다 옷차림이 화려해진 엄마와 함께 걸어서 식당까지 가면서, 기수는 여성 속옷 전문점 앞을 지나게 되었다.
보는 순간 딱! 사매들에게 선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대에 마음에 드는 여자가 없다면, 그녀들에게 현대의 속옷을 입히는 방법도 있는 것이다.
‘호운혜에게 맞는 브래지어가 있을까? 그냥 일단 가터벨트만 사 가볼까?’
치수를 잰 다음 다시 와야 할 것 같았다.
엄마가 옆구리를 쿡 찔렀다.
“왜? 중국에 애인이라도 생겼냐?”
“엄마. 혹시… 며느리가 중국 여자라도 괜찮아?”
“글쎄다…”
“페르시아 여자는 어때?”
“글쎄… 말이 안 통하면 좀 그렇지 않을까?”
“말이야 뭐. 그보다… 두 명 이상이면 어때?”
“얘가 미쳤어! 무슨 평지풍파를 일으키려고! 손주들 불쌍해서 안 돼! 절대로…”
엄마는 팔을 마구 찰싹 찰싹 때렸다.
물론 기수도 알고 있었다. 이곳에선 안 된다는 사실을.
다만 엄마에게 오랜만에 맞아보고 싶어서 일부러 한 번 얘기해 본 것 뿐이었다.
그렇게 속옷 가게를 지나 식당에 들어가자 분위기가 예상과 달랐다.
“엄마. 여기 너무 고급 아냐?”
“괜찮아. 내 단골집이야.”
“와! 엄마 이런 데 좋아했었어? 이 메뉴판… 이거 읽을 줄은 알아?”
“얘가 나를 우습게보네? 나도 처녀적에는 이런 데서 칼질 하고 음악도 듣고 하는 거 얼마나 좋아했는데…”
“아! 엄마도 그런 때가 있었구나. 우하하고 세련된…”
그동안 삶에 찌들어 살던 세월을 이제라도 보상받게 되어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당연하지. 야! 아들. 네 뒤에 연예인 있다.”
“어! 진짜?”
기수는 이미 들어왔을 때 레스토랑 내부에 있는 아가씨들을 한 눈에 전부 파악한 상태였다. 옷 사러 다녀올 때와는 완전히 다른 레벨의 수질이라 이 동네로 이사 온 엄마에게 ‘사랑해요!’ 소리가 절로 나오려고 하던 참인데 연예인이라니…
슬쩍 뒤를 돌아보니 그동안 오래 떠나 있어서인지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그러나 도전 의욕을 불태우기엔 충분한 미모였다.
특히 입술이 예뻐서 기수로 하여금 묘한 상상을 하도록 만들었다.
‘신이시여! 제 사명의 길을 밝혀주시는군요. 감사합니다!’
[나 불렀냐?]
[아닙니다. 므흐흐흐흐…]
[너 웃음소리가 이상하다. 그런데… 다른 곳으로 눈 돌리는 건 중원의 여인들에게 좀 미안하지 않냐?]
[거긴 거기고 여긴 여기죠. 므흐흐흐흐….!]
기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중원무림에선 많은 것을 이루었지만 이곳에선 이제부터 시작.
그야말로 새로운 세상이 눈앞에 펼쳐져 있는 것이다.
그는 예전 같으면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아서 못 했을 행동을 자연스럽게 실행에 옮겼다. 일어나서 그 아가씨 앞으로 다가간 것이다.
“혼자 오셨습니까?”
연예인이라는 아가씨는 도도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가 기수의 위아래를 훑어보고는 볼이 살짝 붉어졌다. 잘 생긴 얼굴, 큰 키에 다부진 몸매. 그리고 무엇보다 넘치는 자신감이 대단히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반응을 보고 기수도 가볍게 미소 지었다.
등 뒤에서 ‘잘 한다! 우리 아들!’이라는 엄마의 작은 중얼거림이 들려왔다.
‘여기선 한 우물만 파야지.’
기수는 과연 지켜질지 의문스러운 다짐을 하며 아가씨 맞은편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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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성원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여러분 덕입니다.
고맙습니다~!